마키아벨리안 박근혜 소론: 그녀는 과거다

[주장] 박근혜의 탁월한 권력조종술은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결과다

등록 2009.06.19 15:08수정 2009.06.1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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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는 아직도 장유유서 관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최근 김동길이나 지만원이 자기들에게 무례하게 군 젊은이들을 향해 공개적으로  버릇없다고 벌컥 화를 낸 게 예가 되겠다. 남존여비도 마찬가지다. 옛날과는 물론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명색 국회의사당에서 '여자가 뭘 안다구!'라는 폭언이 튀어나오고, 초등학교에만 가도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들에게, 자기들은 남자이기 때문에 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간직하고 있고, 기업에서 여자 상사에 대한 야릇한 거부감은 은근히 완강하다.

매우 이례적인 탈관습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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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역사박물관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뒤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분향소를 나서고 있다. ⓒ 남소연

그런데 탈관습 현상 하나가 바로 지금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심지어는 내로라하는 나이든 남자 정치인들까지 박근혜 치마자락이라도 잡아보려고 애를 쓰고, 박근혜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살려달라고 애원하기도 한다. 박근혜가 대구에 나타나면 기차역 대합실은 아예 마비 상태가 되고, 박근혜가 움직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극심한 교통 정체가 생긴다. 선거 때가 되면, 지원 유세는 안 된다 할지라도, 하다못해 박근혜 동영상이라도 하나 얻으려고 애를 쓰고, 그게 안 되면 박근혜 사진을 들고 다니며 운동한다. 일부러 알아보았는데, 세계 정치사에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딴 정당은 친박연대가 처음인 것 같다. 두루 지극히 예외적인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설명은 어렵지 않다. 지금 사람들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1952년생 박근혜가 아니라, 1917년생, 절대권력자 박정희의 망혼이다. 그녀가 대구에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할 때, 대구 사람들이 투표한 것은 박근혜가 아니라 박정희라는 데 이의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선수(選數)를 중시하는 한국 정치판에서, 박근혜는 초선에서 부총재, 재선에서 대통령선거 선대위 의장이 되고, 이어 당대표 자리에 올라섰다. 전례 없는 이런 대접도 박정희 존재를 빼놓고는 설명되기 어렵다.

나이든 남자 정치인들이 바치는 굴신의 예를 봉건군주 시대 공주나 여왕 같은 권위로 받아넘기는 그녀의 대인(對人)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가 청와대에 들어간 것은 그녀 나이 아홉 살 때였다. 그때부터 그녀의 호칭은 '영애 근혜양'이었다. 언론 보도도 그랬다. 이미 지엄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녀가 영부인 대행을 시작한 것은 그녀의 나이 스물둘 때였다. 아마 그때쯤부터 그녀에 대한 호칭이 '영애 근혜씨'가 되었을 것 같다. 정승 집 개 대접마저 융숭한 우리네 습속에서, 해바라기성일 수밖에 없는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절대권력자의 맏딸인 그녀에게 바쳤을 굴신의 예는 짐작해볼 수 있을 듯하다. 그녀가 대중 앞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아예 옛날 황족을 맞이하는 신민의 자세였다. 그러니까 그녀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타인으로부터 받는 굴신의 예에 어린 시절부터 익숙해져 있었다. 조금도 이상스러울 게 없다.

박정희의 부활

정치인이 된 박근혜는 경북지방부터 박정희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그녀의 발길이 그녀 어머니의 고향인 충북지방까지 미쳤을 때, 박정희는 박근혜를 통해 완전히 되살아났다. 도처에서 박정희 부활작업이 진행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순풍에 돛단 듯한 순항이 계속된다. 득표기계로서 그녀의 존재 가치가 높아지며 그녀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대권 가능성이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부동의 정치 거물이 되어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 박근혜에게 잘못 보이면 이재오나 이상득 같은 당대의 거물도 항변 한마디 제대로 내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나가떨어져야 한다. 이재오는 1년 동안 미국에서 귀양살이를 해야 했다.


박근혜에게는 아무개의 딸이라는 거, 제발 잊어달라던 시절이 있었다.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일본 군인으로서의 박정희나, 대한민국 국군의 군복을 입고 좌익 활동을 한 박정희나, 법의 이름으로 살인을 감행한 사람으로서의 박정희나, 김대중을 납치한 사람으로서의 박정희나, 영호남 지역감정을 부추긴 정치가로서의 박정희나, 탐색(探色)을 일삼은 박정희가 여론의 도마 위에 쉴새없이 오르내리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박근혜는 '아버지 뜻을 잇겠다' 공언한다. 이제 자리를 잡았다는 확신으로부터 비롯된 공언이었을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그녀는 우리 정치판에서 거부할 수 없는 존재로서 그 영향력이 막강해졌다. 2004년, 탄핵 역풍을 맞아 박살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 당대표가 되어 당을 너끈하게  건져낸 것은 그 영향력의 확인이었다. 더불어 그녀 주변에 사람들은 더 많이 모여들게 되었다. 그 뒤,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그녀가 낙선했지만, 그녀 주변 사람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그 이유를 박근혜는 그들의 '애국심' 때문이라 했는데, 그녀가 말한 '애국심은 건달들의 마지막 피난처'(사무엘 존슨)다. 그러니까 건달은 애국심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의 입에서 나온 애국심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국무총리와 국회의원을 지낸 노재봉이 우리 국회는  '한량들이 한담하는 곳'이라 증언한 적이 있다. '한량'의 다른 표현은 '건달'이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애국' 타령을 지겨워한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의 '애국' 타령은 되풀이된다. 왜냐하면 애국을 젖혀둬버리고는 달리 둘러댈 구실이 없기 때문이다.

건달들의 계산법

그녀 주변 사람들은 그녀 곁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줄기차게 그녀 쪽으로 몰려오고 있다. 그래서 '친박'이니 '원박'이니 '월박'이니 하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후진(後進), 저질이라는 한국 정치판의 농축 같다. 싸구려 코미디 판 같은 이런 국면의 형성 근원은 간명하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확보한 것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차기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정치인이란 어차피 해바라기성일 수밖에 없다. 변절의 위험보다는 수절의 타산성이 확실히 앞서는 마당에 등을 돌려, 자신들의 정치 인생을 망쳐버릴 이유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건달'들의 계산법일 수 있다. 최근에 그녀를 향해 자기 소신을 표명한 김무성이 은근히 돋보이는 것은, 이 절박한 계산법에서 결코 쉽지 않을 예외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가 결국은 '친박의 좌장' 자리로 돌아가리라 의심되는 것은, 그도 그렇고그런 정치인 가운데 하나이기에 결국은 그 계산법에 굴복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서글픈 전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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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지난해 6월 2일 오후 여의도 63빌딩에서 친박연대, 친박무소속연대 소속 의원들과 긴급 회동을 한 뒤 김무성 의원의 배웅을 받고 있다. ⓒ 남소연


박정희의 딸 박근혜

내가 감수성이 예민하다. 권력의 끝에까지 가봤고, 그래서 권력의 속성을 자연스럽게 잘 알게 되었다. 그것이 얼마나 무상한가도 알고…. (오마이뉴스 2007-11-10)

열 살이 채 되기 전에 청와대에 들어가, 어머니의 피살로 영부인 역할을 해야 했을 때는 불과 스물두 살 때였으며, 그녀가 가 본 '권력의 끝'은 아마도 아버지가 참변을 당했을 때일 듯한데, 그때 그녀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그녀는 박정희가 어떻게 사람을 다루었고, 그 결과는 어땠던가를 잘 알고 있다. 김형욱이나 김재규 등, 측근의 배신도 충분히 경험했다. 그녀는 정치에 입문한 뒤, 실로 노회한 정객들을 아주 효과적으로 잘 다루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실수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다. 그녀의 권력조종술은 그만큼 탁월하다.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덕분이다.

그녀가 박정희의 용인술을 닮았다는 구체적 심증을 갖게 된 것은, 최근 불거진 김무성과의 갈등설을 보도하는 언론에 그녀가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구절을 본 다음이었다. 그것은 곧 박정희의 용인술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2인자' 김종필과의 갈등이 시작되었고, 그 뒤에 3선 개헌이나 영구집권을 노린 유신 정변이 이어진다.

박정희는 특히 경호실장, 비서실장, 정보부장, 권력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리던 세 자리 인사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이 자리에는 배짱이 서로 잘 맞는 사람을 앉히지 않았다. 그들이 협조가 잘 된다는 것은, 그들이 힘을 키워 모반할 가능성을 키워주는 게 되기 때문이다. 나눠놓고 조지기(Divide and Rule), 그것이 그의 용인술이었다. 그런데 박정희의 참변은 바로 경호실장과 정보부장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자기가 놓은 덫에 친 셈이었다.

마키아벨리는 모든 치자(治者)들에게 교사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모든 공화주의자들의 교과서'라는 평가도 있지만, 치자들이라면 이 책을 읽게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조목조목 금과옥조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서재에 <군주론> 일본어본이 있었고, 그 책에 여러 겹의 곁줄이 그어져 있었다 - 그렇게 증언할 수 있을 만한 사람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가, 그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아 이건 바로 박정희의 용인술인데, 하는 대목이 많다.

김호진(고려대학교 교수·정치학)이 '박정희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마키아벨리즘을 맹신하고 계속 채찍을 휘둘렀다'고 쓴 적이 있다. 그 채찍 끝에서 거침없이 태어난 악과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긴급조치'였다. 대통령, 곧 박정희의 뜻이라면 안 되는 게 없고, 못할 짓이 없던 시절, 박정희는 언제나 그 서슬이 시퍼랬다. 박근혜는 그런 분위기에서 성장했고, 형성되었다.

박근혜의 냉엄한 표정과 어조, 언어와 실천은 그대로 박정희의 그것이다. 당연하다. 어린 시절, 그녀의 장난감은 권력이었고, 그녀의 교과서는 마키아벨리였으며, 그녀의 교사는 박정희였고, 박정희의 측근들이나 정적들은 그녀의 학습 교재였다. 그녀는 권력에, 그리고 그 권력을 조종하는 기술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권력조종술은 결국은 치인술(治人術)이다. 그녀는 치인술에 능하다. 모든 언어, 모든 실천이 치인술에 의해 정교하게 기획된다. 그래서 자신과 자기 계파의 이익을 위해 치인술을 비정하게 실천한다. 선거 때는 물론이고, 자기 계파의 목적을 위해, 현직 대통령을 곤경에 빠트리고 자기 소속 당을 불능화시키는 것마저 서슴지 않는 게 한 예다.

친박, 종교집단처럼 달라붙어 비난 쏟아내

당연한 것일 듯한데, 그녀는 박정희가 그랬던 것처럼, 민주주의자가 아닌 것 같다. 성장 환경부터 그랬다. 박근혜가 스물일곱 살까지, 거의 20년 동안 머물렀던, 그리하여 그녀의 인간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을 당시 청와대는 절대 권력의 총지휘부로서, 권력으로서 불가능한 게 없던 공간이었다. 당시의 굴신은 요즘이야 조폭 세계에서나 구경 할 수 있는 90도 허리꺾기가 예사였다. 그것이 박근혜의 견문이었고, 실천이었다.

요즘의 박근혜에게서 그 당시, 그런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른바 '여의도 정치'에 대한 이명박의 혐오감은 완강한데, 도대체 '여의도 정치'란 어떤 것인가? 여의도 정치란 이른바 패거리들끼리 몰려다니고, 보스의 깃발 하나에 냉큼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고, 당리당략은 물론, 사리사략을 위해서도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는 후진적 정치 형태를 뜻할진대, 박근혜를 구심으로 하는 집단의 존재는 바로 그런 비민주적 후진성의 에센스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녀가 독설을 불사하는 것이나, 위협적 교시나 은사(恩賜)의 손짓으로 조직을 통제하는 것이나, 계파의 이익을 위해서는 대의마저 무자비하게 막봐버리는 것이나, '패자가 패자의 길을 가지 않는' 불복 태도나, 모두가 민주주의와는 역시 거리가 멀다. 친박 세력이 형성하고 있는 분위기는, 유신 치하, 제4공화국, 우리 정치사의 핵겨울 풍경 그대로다.

인터넷 포털 야후 화면에 <홍준표 '친박, 종교집단처럼 달라붙어 비난 쏟아내'>라는 제목이 떠올라와 있었다(2009-6-17). 늘 그렇듯, 내용을 읽어볼 마음이 일지는 않았는데, 홍준표가 오랜만에 맞는 말을 했다. 친박의 종교는 바로 유신이고, 그 교조는 박정희이고, 현재의 교주는 박근혜다. 더구나 교조나 교주를 비판하거나 할 경우, <동물농장>(조지 오웰)의 절대권자 나폴레옹을 건드리려면, 이빨을 드러내고 사납게 덤벼드는 제시나 블루벨 같은 존재의 공격을 각오해야 한다. 홍준표가 역린(逆鱗)의 어리석음을 범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는 제2의 이재오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이른바 친박의 유신시대적 질서다.

박정희로부터 민주성을 거세한 것은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집념이었고, 그가 지향했던 것은 '조국근대화'였다. 그것이 그의 깃발이었고, 그 깃발에 의해 영구집권 획책, 고문의 일상화, 사법살인, 용공조작, 언론탄압 등, 허다한 무리가 감행되었고, 결국은 그 깃발 아래 쓰러졌다. 그 자신만의 비극이 아니다. 그 하나의 집념으로 말미암아 그의 모든 가족이 하나의 예외도 없이, 그리고 그의 치하에 있는 모든 국민이 최악의 고통을 당해야 했다. 지금 표명되어 있는 박근혜의 집념은 '대한민국을 새로 만들고 싶다'(오마이뉴스 2007-11-10)이다. 이 집념이 그녀 자신을 위해, 그리고 대한민국을 위해 비극의 근원이 될 수 있다.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가 그랬듯이.

과거는 과거로서 흘려보내고, 이제 진도 나가야

한번 더 적는다. 박근혜 등장 이후 박정희 향수는 완강해졌다. 요즘 한국 시세대로 하자면 윗대나 먼 친척들의 친일이나 친공 부역 행위까지 들춰내 물어뜯으려 하는 판이고, 그로 말미암아 낙마하는 경우마저 생기는데, 박정희는 명백한 친일이고 부역자다. 그에 대한 향수는 그러므로 더욱더 예외적이고 비정상이다.

그것은 비유해보자면, 대개의 국민에게 의문과 미움의 대상인 전두환이 그의 고향인 합천에서는 숭배 받고 있는 것이나, 김일성에 대한 북한 주민의 유별난 애모가 예가 될 듯한데, 피독재자의 환각 효과일 수 있다. 피독재자에게 독재자가 신으로 우러러보일 수 있다. 독재자가 더 가혹할수록, 이런 환각은 더 지극해진다.

그런 효과는 죽도록 고문을 받다 보면 고문자가 우러러 보인다는 피고문자의 환각 심리에 견줘볼 수도 있다. 굳이 박정희의 공과를 이 자리에서 재론할 이유는 없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의 공과 그의 과를 알고 있다. 그런데 그에 대한 향수가 짙어지면서 그의 과는 묻혀지고 그의 공은 부풀려지고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지극한 퇴행 현상이다.

만일 박근혜가, 그녀 자신이나 그의 추종자들 희망대로 이 나라의 최고권력자가 될 경우,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노태우 추종세력들까지 모두 되살아난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한 핏줄, 동기(同氣)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서 우리 민주주의는 후퇴했다 하는데, 이제 지난 공화국 시절 귀신들까지 모두 살아난다면 우리 역사는 그야말로 시궁창이 될 수밖에 없다.

과거는 과거로서 흘려보내야 한다. 3김 시대를 겨우 벗어났는가 했는데, 다시 3김 이전,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박근혜는, 또는 그의 추종자들은 말할 것이다. 아니, 박근혜는 박근혜 자체로서 위대하다. 그렇다면 반문할 수 있다. 박정희 없이 박근혜가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하고, 박근혜는 그 존재 자체가 우리 정치현실의 심각한 퇴행 현상을 명시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정말 나라를 사랑한다면, 그녀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하루살이 부나비들을 털어내버려야 한다. 그녀 자신의 안녕을 위해서도 이런 결단은 긴요하다.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박근혜도 우리 정치의 명백한 과거다. 우리 정치의 극단적 후진성은 자타가 공인하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이제 정말 조금이나마 진도를 나가야지, 언제나 탄식만 하고 있을 일은 아니지 않은가. 허구한 날 과거에만 매달려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박근혜 #박정희 #친박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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