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꽃이 부르는 노랑나비

[인천 골목길마실 55] 도시에서 잊혀져 가는 벗님, 나비

등록 2009.07.20 11:17수정 2009.07.2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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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마실을 하면서 가장 기다리거나 궁금하거나 바라는 벗님이 하나 있다면, 바로 나비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 인천 골목동네 어디에서나 나비를 아주 손쉽게 만날 수 있었고, 나비 몇 마리쯤은 날마다 잡고 놀았습니다. 흔하디흔한 배추흰나비부터 노랑나비와 부전나비와 제비나비와 호랑나비와 모시나비와 네발나비는 좋은 벗님이었습니다.


잠자리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국민학교 4학년이었을 때(1985년)에 운동회 연습으로 두 시간째 운동장에서 얼차려 받듯 시달리고 있던 무렵, 운동장에 드러누워 다른 동무를 들어올리는 짓을 하며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있는데, 문득 올려다보게 된 하늘에 잠자리가 수백 마리 떼를 지어 날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운동회가 벌어지면 언제나처럼 석 달 앞서부터 제식훈련과 체조훈련을 한답시고 날마다 두어 시간, 때로는 네 시간씩 시달렸습니다만, 그날 그때 본 잠자리떼는 그 고단함과 시름을 잊도록 해 주었습니다. 팔이 덜덜덜 떨리면서도 싱긋 웃음이 났고, 제 위에서 저와 마찬가지로 팔을 덜덜 떨며 버티는 동무는 "너 미쳤냐?"하고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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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갯짓 쉬지 않는 나비를 담기 퍽 힘들었습니다. ⓒ 최종규


1995년에 고향 인천을 떠나던 전철길에서 본 나비 또한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그무렵 '인천-서울 전철'은 에어컨이 한 대도 없었고, 오로지 선풍기 몇 대에 기댔는데, 그나마 선풍기가 고장나거나 아예 없는 칸조차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때에는 전철에서 다들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며 땀을 식혔습니다. 한 칸에 칠백 사람 남짓 찡겨 타던 아침나절 지옥철에서 마른오징어처럼 눌리며 헉헉거리고 있는데, 열린 창문으로 나비 한 마리가 살랑 들어왔다가 다시 살랑 나간 적이 있습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요 몸뚱이는 사람과 사람으로 겹쳐져 아프고 괴로워 죽을 노릇이었는데, 그때 창문으로 들어왔다가 나간 네발나비 한 마리를 보면서 괜히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어, 나비네!" 하는 외마디소리가 절로 나왔고, 저와 제 둘레에서 찡기던 사람들이 주루루 그리로 눈길이 갔으며, 찡긴 채로 다들 살며시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아, 나비네요!"

온갖 꽃그릇으로 꾸며져 있고, 알뜰한 손길을 탄 텃밭이 있는 골목길을 아기를 안고 마실을 하면서, 다른 무엇보다도 '왜 이렇게 나비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어여쁜 꽃이 많은데 왜 나비는 찾아들지 못하는가 아쉽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가만히 헤아려 보면, 나비가 깃들거나 머물 만한 흙땅이 도시에는 거의 없는 걸요. 인천만이 아니라 온나라 어디를 가더라도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길막음을 해 버리면서 나비이든 벌이든 조용히 살 수 없는 터전으로 바뀌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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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한 마리 사진으로 담은 이날 하루는, 오랜 벗님을 모처럼 만난 즐거움이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 최종규


어릴 적 골목동네를 다시금 떠올려 보면, 나비도 많았으나 벌도 많았고 땅강아지도 많았고 길앞잡이도 으레 보았습니다. 길앞잡이는 산에만 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동네에는 박쥐도 많이 살았고 제비도 많이 살았습니다. 박쥐 몇 마리쯤 어디에서나 숨어서 낮잠을 즐기고 있었기에 살금살금 다가가 만져 보는 놀이를 곧잘 했습니다. 연날리기 놀이를 할 때에는 제비와 함께 놀았습니다. 그즈음 텔레비전에서 '황금박쥐' 만화영화가 나왔기에 '우리 동네 박쥐 가운데에는 황금빛 박쥐는 없나?' 하고 찾아보기도 했는데, 모두 시커멓게만 보이는 박쥐뿐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에 잠기고 저런 생각을 젖으면서 골목마실을 하던 엊그제, 잠깐 날이 반짝하고 밝던 엊그제, 숭의3동 109번지 언덕받이 골목길 한쪽에서 아주 오랜만에 나비 한 마리하고 마주쳤습니다. 노란 꽃송이에 찾아드는 노랑나비 한 마리.


나비는 쉼없이 날갯짓을 하느라 애써 마주쳤어도 사진으로 담기 힘듭니다. 속으로 '제발 한 번쯤은 고운 모습으로 찍혀 주라' 하고 외면서 꼼짝을 않으며 나비 곁에 섭니다. 그렇게 1분쯤 얌전히 서 있으니, 나비는 아주 잠깐 날갯짓을 멈추고 살짝 꽃송이에 걸터앉습니다. 두어 번 잽싸게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노랑나비는 이내 팔랑팔랑 제 갈 길을 찾아 날아갑니다. 날아가는 나비한테 눈인사를 하고는 언덕받이 골목을 마저 올라갑니다. 꽃그릇으로 둘러싸인 꽃내음 평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는, 1936년에 지어진 깊은 역사가 있음에도 지난해에 하릴없이 허물어진 공설운동장과 숭의야구장(도원야구장) 자리에 새로 들어서는 '축구 전용구장' 공사터를 내려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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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를 만난, 언덕받이 골목길 한켠. 이쯤 꽃그릇이 모여 있어야 나비도 찾아들 만하겠지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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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를 만나기 앞서는, 골목길에서 먹이 찾는 참새를 만났습니다. 예전에는 서울에도 참새가 많았는데, 이제는 참새도 거의 다 사라지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뭐, 어느 도시나 매한가지일 테지만.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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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그릇으로 작은 숲이 이루어진 둘레에서 마르는 빨래에는 꽃내음과 풀내음이 배어듭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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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선 집들이 있는 동네입니다. 어찌어찌 보면 가난한 동네이지만, 좀더 안쪽으로 파고들어서 바라볼 수 있다면 ……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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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한 집 한 집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다면, 집집마다 얼마나 너른 가슴으로 꽃과 텃밭을 품고 있는지 새삼 놀라면서, 아름다운 빛줄기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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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문패요 주소패일지라도, 우리 집임을 떳떳이 밝히고 내세우는 문패요 주소패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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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길 울타리 따라 이불 빨래도 널어 놓지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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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이라 하면 옛생각이나 가난이나 꾀죄죄함을 떠올리는 분이 많으나, 저한테 골목길이라 하면 맨 먼저 떠오르기로는 ‘푸성귀나 꽃을 심은 꽃그릇’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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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을 늦출 수 있다면, 안쪽 골목집을 들여다보는 눈이 있다면, 누구나 골목꽃 내음을 즐길 수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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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사람 자리이지만, 길손도 잠깐 다리쉼을 해도 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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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손을 쉬는 이발관과 미용실 앞에서 잠깐 발길을 멈추어 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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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차가 다닐 수 없어, 널직한 가운데 자리에 꽃그릇으로 잔치를 벌이는 언덕받이 골목 앞에 즐겁게 섭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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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즐기기에 너무 아쉬운 꽃잔치길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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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어여쁘고 고운 대문 앞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습니까. 내 집을 드나들 때에 아침저녁으로 꽃내음을 맡을 수 있는 데가 세상에 얼마나 있겠습니까. 골목동네 어르신들은 자부심을 세우셔도 좋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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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나비가 찾아들기도 하는 골목동네잖아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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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깊은 운동장 두 곳이 하루아침에 허물리는 판이니, 골목동네란 더 손쉽게 허물릴 수 있을 텐데.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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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때에는 사라지게 되더라도, 골목동네가 어떤 모습인지를, 한 번쯤은 제대로 둘러본 다음 사라지도록 하면 고맙겠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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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햇살과 함께, 두 다리로 사뿐사뿐 골목마실을 한 번쯤은 해 보고 나서, 골목동네를 재개발을 하든 철거를 하든, 도시정비를 하든 도시정화를 하든, 우리가 낸 세금으로 하는 ‘개발’이 우리 삶터를 가꾸는 일이 되도록 마음쓰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꿈꿉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골목마실 #골목여행 #인천골목길 #골목길 #노랑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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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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