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월드컵을 향한 대한민국 전사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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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득(dongdong2)등록 2010.01.05 11:08
허감독은 붉은 태영이 지평선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선수 이름 하나하나를 불러본다. 강민휘, 곽태수, 김치일, 김형진, 김동일, 박지영, 박주성…… 현재 국가대표 예비 명단에는 50여 명의 선수가 있다. 외국 리그에 나가서 활동하고 있는 10여 명의 선수와 국내파 선수 40여 명이 허감독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그 중에 반수가 월드컵무대에 나서게 된다.

흐르는 물처럼 시간도 흐르듯이 사람도 흘러가고 있는 게 세상의 이치이다. 경험도 중요하지만 도전정신이 더 중요한다고 허감독은 생각한다. 허감독은 경험이 독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계하는 편이다. 좋은 경험을 밑천으로 명분 있는 도전을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성은 경험을 좋은 밑천으로 사용할 줄 모른다. 경험한 자의 겸손함이 없이는 명분 있는 도전은 불가능하다고 허감독은 굳게 믿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에 참여했던 선수 중에 다수가 독일 월드컵에 참여했었다. 좋은 선수들임은 분명했지만 경험한 자의 겸손함이 묻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발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과 역시 그 선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다. 경험한 만큼의 성과도 얻지 못하고 돌아온 그들. 그들이 지난번의 경험에 겸손한 마음으로 독일 월드컵을 준비했다면 분명 16강 진출은 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전 세계의 축구 선수들 아주 특별한 선수 몇 명 빼고는 다 비슷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 다음이 중요한 게 정신자세인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겸손함이 묻어 있는 인간이어야 국가대표로서 자격이 있다고 허감독은 생각하고 있다.

국가대표의 세대교체는 사실 만만한 일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선수 명단을 발표하는 듯 하지만 멀리 내다보고 선발하는 선수와 당장 실전에서 필요한 선수를 구분해서 잘 뽑아야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막말로 어느 날 갑자기 대학 선수들을 다 뽑아놓고 몇 년 뒤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는 언제나 최고여야 하고, 어느 대회에서나 최고의 성적을 올려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2010 경인년은 대한민국의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세대교체가 성과로 나타날 해가 되어야 한다. 허감독은 지난 2년 동안 적절한 타이밍에 세대교체를 이루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월드컵 지역예선전을 치르면서 젊은 피를 충분히 수혈했고, 수차례 있었던 평가전에서 젊은 선수들에게 좋은 경험을 쌓도록 출전시간을 늘려주기도 했다. 물론 결과 때문에 축구팬들에게 비난을 받았지만 국가대표의 미래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었다. 누군들 경기에 나가 우승을 하기 싫겠는가. 당연히 어느 경기에서도 지고 싶지 않은 게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허감독 역시 남아공월드컵에서 4강 이상의 성적으로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축구를 전 세계에 보여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슴 속에서 불끈불끈 솟아오르고 있다. 허감독에게 2010 경인년은 그만큼 중요한 해이다.

발갛게 익은 태양이 지평선 위에 동그랗게 떠오르자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만세를 부른다. 대관령 정상의 아침 온도는 영하 20도 밑이다. 칼바람 역시 무섭게 스쳐지나가지만 모든 사람들은 두 팔을 벌려 만세를 부르고 있다. 허감독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는 손을 들어 만세 삼창을 외친다.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경포 바다 해변가에서도 수만 명의 인파가 하나같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장관이다. 이게 바로 우리 대한민국의 뜨거운 국민성이다. 위기 때는 하나로 모일 줄 알고, 기쁠 때 역시 하나로 모여 즐길 줄 아는 게 바로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아니던가.

우리 민족의 위대함이다. 같이 할 줄 아는 문화가 우리 민족의 자랑인 것이다. 집안 잔치 문화가 그렇고, 동네 품앗이 문화가 그 바탕이 된 것이다. 동네 부역에 솔선수범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성이 바로 붉은 악마가 탄생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허감독은 대한민국 국가대표 서포터인 붉은악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온다.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준 엄청난 퍼포먼스였다. 그 퍼포먼스는 영원히 진행 중일 것이고, 허감독은 든든한 응원군의 지원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국가대표 감독인 것이다. 지금도 가슴이 떨리면서 벅차온다. 붉은해가 찬란하게 떠오르고 있어서 그렇고, 붉은악마가 눈앞에 있는 듯해서 그렇다. 허감독은 어금니를 굳게 깨물며 다짐한다. 전 세계인들이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축구에 반할 그 시간을 꼭 보여주겠노라고.

허감독은 옆에 있던 사람들이 청해오는 새해맞이 악수를 받아주며, 덕담을  나누었다. 모두가 지난밤에 산에 올라와 산장에서 머둔 사람들이었다. 몇몇 사람은 해마다 만나는 사람들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처음보는 사람들이지만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과 같이 밤을 보내고, 새해맞이를 한다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해주는 분들이었다. 허감독은 해마다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고맙고 감사한 분들과의 만남이 좋았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진정한 형제라고 밤새 말했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달라는 당부의 말도 그들은 따뜻한 마음에 담아 해주었다.

허감독은 주변의 몇몇 분과 새해맞이 포옹을 하고 먼저 산을 내려온다. 바로 파주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1월3일 남아공 현지 적응 전지훈련에 참가할 선수들을 소집했고, 그들과 다시 2010 경인년 새해에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을 다짐해야 한다. 허감독은 선수들에게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로서의 마음가짐을 단단히 지도해 줄 생각이다. 이번에 참가하는 선수 몇 명은 청소년 대표에서 올라온 선수도 있고, 국가대표 선발군에 처음 이름을 올린 프로 선수들이 있었다. 외국 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를 배제한 채 국내에서 활동하는 선수 중심으로 구성하여 전지훈련을 떠나기 때문이었다.

허감독은 대관령을 내려오자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소담스런 함박눈이었다. 아주 기분 좋게 해주는 눈이었다. 아내와 눈오는 날이면 데이트를 참 많이 즐겼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가족들에게 아침을 준비해주고 있을 아내에게 전화를 해줘야 할 시간이기도 했다.  

(3회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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