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앤 더 시티> 구체적이고 친밀한 정직함

등록 2010.08.29 11:34수정 2010.08.2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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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 전부터 진짜 혹은 가짜에 대한 판단에 골몰해왔다. 이건 진짜고 저건 가짜야. 그 사람은 진짜고 저 사람은 가짜야. 내가 진짜라고 생각한 것은 대개 내면적인 가치를 지닌 것, 지속적인 것,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 하여 가짜는 현란하게 눈에 보이는 것, 잠깐의 해프닝 같은 것, 전혀 내면적이지 않은 것이었다.

 

<섹스 앤 더 시티>는 6시즌까지 방송했고, 두 편의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충분히 흥행한 미국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장점은 개성 있는 캐릭터와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스토리라인이다. 또 단점은 한마디로 요약해서 상업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드라마가 좋아서 하루에 몇 편씩을 꼬박꼬박 봐왔는데 그 이유는 진짜 혹은 가짜라서가 아니라 답답하지 않아서였다.

 

그것은 사랑을 '섹스'라고 부르는 어법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사실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네 명의 삼사십 대 여자 친구들이 겪는 그 안의 또 그 밖의 인간관계 말이다.

 

사만다가 유방암 항암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갔는데 예약이 안 돼서 대기의자에 앉아서 며칠을 기다린다. 기다리다가 옆에 앉아 있던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수녀였다. 결국 사만다의 남자친구(배우)를 카운터 직원이 좋아한다는 것이 밝혀져서 사만다의 예약이 즉시 이뤄졌다. 사만다는 저 수녀도 예약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수녀가 신께 기도드린다. 사만다가 말한다. "거기 말고 내 남자친구에게 감사를 전해요."

 

신에 대한 판단 이전에 이것이 더 정직한 표현이라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감사의 방향이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더 옳다, 저것이 더 옳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구체적으로 정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 말이다.

 

또 이런 경우가 있다. 모르는 사람이 전문가적인 견해로 하는 말이 아니라 친밀한 관계에서 더 잘 아는 경우 말이다.

 

이혼한 샬롯이 긍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돕는 모임에 참석한다. 방청객 중 한 사람이 자신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강사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러자 샬롯이 강사에게 질문한다. 자신도 노력하는데 언제 저렇게 될 수 있는지, 강사가 그 질문에 대해 정리해서 말한다. "의심과 걱정의 마음이군요. 노력을 더 하시면 될 겁니다." 그러자 샬롯의 옆에 앉아 있던 친구 캐리가 대신 말한다. "노력하고 있어요." 강사가 다시 말한다. "노력을 좀 더 하시면 될 겁니다." 캐리가 다시 말한다. "정말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어요."

 

물론 강사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누구의 말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캐리의 더 말이 더 옳고 샬롯을 더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말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빅터 프랭클은 체스를 둘 때 가장 좋은 수를 두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상황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 나은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하기 위해서 충분히 윤리적이고자 노력해야겠지만 이런 구체적이고 친밀한 정직함이 있어서 상업적이라는 비판도 뚫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2010.08.29 11:34 ⓒ 2010 OhmyNews
#섹스앤더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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