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중국으로 국경을 넘다

[영웅 안중근 18] 둘째마당 - 하얼빈행 열차를 타다

등록 2010.10.15 10:20수정 2010.11.1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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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과 경술국치 100년을 앞두고, 우리 근현대사에 가장 위대한 애국자 안중근 의사의 유적지인 러시아 크라스키노,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포브라니치나야, 중국 쑤이펀허, 하얼빈, 지야이지스고(채가구), 장춘, 다롄, 뤼순 등지를 지난해 10월 26일부터 11월 3일까지 아흐레간 답사하였습니다. 귀국한 뒤 안중근 의사 순국날인 2010년 3월 26일에 맞춰 눈빛출판사에서 <영웅 안중근>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습니다.

2010년 경술국치 100년에 즈음하여 <영웅 안중근>의 생애를 다시 조명하는 게 매우 의미 있는 일로 여겨져, 이미 출판된 원고를 다소 손보아 재편집하고, 한정된 책의 지면 사정상 미처 넣지 못한 숱한 자료사진을 다양하게 넣어 2010년 11월 20일까지 43회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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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중국 국경지대 초소 ⓒ 박도


포브라니치나야 역

12:50, 러시아 측 국경 역인 포브라니치나야 역에 도착했다. 승무원은 짐을 모두 가지고 객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가방과 선물보따리, 그리고 노트북 가방 등, 세 개의 짐을 끌거나 들고, 또 어깨에 메고는 플랫폼에 내렸다. 대부분의 승객은 국경역인 이곳에서 내렸고, 나와 한 중국인만 국경을 넘어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가는 승객이었다.

중국인과 나는 역원의 지시에 따라 국경검문소 대기실로 가서 출국 심사를 무작정 기다렸다. 러시아 관리들은 얼마 동안 기다리라는 말도 없었고, 중국인이나 나는 언어가 소통되지 않아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눈치껏 행동하면서 마냥 기다렸다.

중국인은 자기는 하바롭스크에서 출발했다고 하는데, 바로 내가 탄 객차 뒤 칸을 혼자서 타고 온 모양이었다. 그 칸은 승무원 1인에 승객 1인이고, 내가 탄 칸은 승무원 2인에 승객 1인이 타고 온 셈으로, 그동안 러시아나 중국이 자본주의 국가였다면 경영합리화로 벌써 오래 전에 폐선이 되었을 것이다. 성수기 때는 승객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태라면 아마도 곧 이 노선이 주1회로 줄어들거나 아예 없어질 것이다.

국경지대라 러시아 군경도 눈에 자주 띄어 포브라니치나야 역사나 플랫폼 등을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혹이나 국경법 위반으로 걸리면 그동안 찍은 장면마저 전부 지워야 하거나 카메라를 압수당하는 등에다가 골치 아프게 당국에 연행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몇 해 전에 중국 국경에서 공안에게 걸려 혼나지 않았던가. 대기실 화장실에 갔더니 거기도 사람이 지키며 12 루블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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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검문소 대기실 창문에서 바라본 국경도시 포브라니치나야 역 언저리 ⓒ 박도


출국 심사

출국 심사는 간단하게 끝났다. 러시아 관리는 여권과 비자를 한참 보더니 뭐라고 묻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 벙어리처럼 잠자코 있었다. 그랬더니 그편에서 더 이상 질문을 포기하고 출국허가 도장을 여권에 '쾅' 찍어 주었다.

순간 '침묵이 때로는 웅변보다 더 현명하다'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라는 우리나라 속담처럼 지위 고하간에 사람들은 괜히 쓸데없이 혀를 놀리다가 그게 화근이 되어 목숨까지도 잃지 않는가. 마침 국경검문소 대기실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의자에 올라 창밖 포브라니치나야 역 언저리 풍경을 얼른 한 컷만 담았다. 답사자에게는 사진 촬영보다 중요한 일이 있는가.

많은 역내 선로에는 열차들이 머물고 있어 구도가 좋지 못했다. 곧 내가 타고 온 열차 그 객실에 올랐다. 언저리를 살핀 뒤 객실 차창을 통해 미처 촬영치 못한 포브라니치나야 역사와 플랫폼을 얼른 한 컷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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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도시라 겁을 먹고 열차 안 창문을 통해 찍은 포브라니치나야 역 플랫폼 ⓒ 박도


15:40, 2시간 50분을 정차한 뒤에야 열차가 움직였다. 거기서 타는 승객이 꽤 많았지만 내가 탄 침대칸에는 새로 한 승객만 탔다. 러시아 60대 여인으로 보였다. 차림으로 봐서는 화장도 예쁘게 한 귀부인으로 어느 영화에서 본 배우처럼 보였다.

그는 나에게 세련된 윙크와 미소를 보내며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나는 입을 닫은 채 미소로 답례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이국 여성과 연애도 할 수 없나 보다. 젊은이들에게는 말이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르지만. 지대가 높은 탓인지 열차는 쉬엄쉬엄 달렸다. 차창 밖에는 삼림지대로 자작나무 숲도 자주 보였다. 숲들은 겨울철이라 초록을 잃었기에 매우 을씨년스러웠다.

16:10, 자그마한 국경 역에서 열차가 멈췄다. 중국군과 세관원이 승차하여 객차 내를 순시하면서 검열했다. 16:35, 마침내 러시아 국기가 펄럭이는 영토를 벗어나 국경 역을 통과하여 중국 땅에 들어섰다. 붉은 색 별 다섯 개가 새겨진 중국 국기가 먼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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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중국 국경지대(1) ⓒ 박도


국경지대인데다가 경사가 몹시 심한 듯, 열차는 계속 느릿느릿 달렸다. 내 보기에는 이 일대는 100년 전이나 별반 다름없을 것 같았다. 일백년 전 그때 안중근은 우덕순과 이 철길을 달렸을 것이다. 그들은 가슴 속에 품은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이토 히로부미의 심장을 꿰뚫을 결의를 다졌을 것이다.

오랜만에 열차가 터널을 지나는데 그 안에도 바위 덩어리가 그대로 있었다. 철도 언저리 나무들은 제 수명을 다하고 쓰러진 고사목이 많았다. 국경지대라 철로 가에는 중국군이 경계를 서고 있었는데 손을 흔들어주자 그들은 나를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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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중국 국경지대 철조망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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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중국 국경지대(2)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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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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