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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통령 노무현, 안녕히 잘 지내셨는지요?

[영화로 읽는 세상이야기 82] 노 대통령 서거 2주기에 본 <굿모닝 프레지던트>

11.05.23 11:31최종업데이트11.05.2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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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실는지요? 이태 전 "건국 이래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대통령을 만난다"는 홍보 문구를 내걸었던 옴니버스 영화를, 대통령은 물론 참모들과 국회의원까지 죄다 코미디 장르에 녹여 희화화시키면서도 현실 정치를 절묘하게 포착해 낸 영화를, 대통령의 친근한 행동이 웃음의 소재가 되고 그래서 유쾌하게 웃으며 행복할 수 있었던 영화를,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로 9시 뉴스를 기다리게 하는 대통령을 그렸던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를요.

영화는 세 명의 대통령을 에피소드로 하고 있지만 시종일관 한 사람의 초상을 추억하게 합니다. 그는 노무현입니다. 그와 함께 영화는 김대중과 더불어 전두환, 노태우를 교차시킵니다. 그리고 문재인 전 비서실장,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노건평씨 등을 화면에 겹쳐 보이다 이명박 대통령으로 귀결됩니다. 영화가 '국민이 꿈꾸는 대통령'이라는 현재진행형 메시지를 담은 만큼, 이 대통령과 비교평가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영화에서 노무현은 다양한 모습의 대통령으로 스크린에 재현됩니다. 직접적인 묘사나 간접적인 암시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가 동화 같은 이야기를 경유하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현실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은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던 촌부였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차지욱 대통령이 청와대 주방에서 맨발에 노타이 차림으로 조리사들과 격의 없이 파안대소하는 장면은 노무현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으로 다가 온다. ⓒ 소란플레이먼트(주)


먼저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을 빗댄 새한국당 대통령 차지욱(장동건)입니다. 그가 새한국당 대통령인 연유를 장진 감독은 뒤에 풀어 놓습니다. 지욱이 청와대 주방에서 김치 하나에 라면을 먹은 뒤 맛나게 담배를 피우던 모습이나 엔딩 크레딧이 오르며 노타이 차림에 맨발로 주방 위에 걸터앉아 요리사들과 한담을 나누며 파안대소하던 모습은 영락없는 노무현이었습니다.

청와대 재임시절 집무실을 찾은 기자들에게 '디스'와 라이터를 내밀며 맞담배를 권할 정도로 소탈하고 격의 없던 그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날, 부엉이 바위에서 끝내 한 대 태우지 못한 그를 위해 오랫동안 뭇 사내들은 불을 댕긴 담배를 재떨이 위에 올려놓곤, 끊었던 담배를 뽑아 서로 권하며 침묵했더랬습니다.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고무 장화를 신고 밀짚모자를 쓴 채 논에서 일하고, 빨간 수레가 달린 자전거에 손녀를 태우고 들판을 달리다 구멍가게서 하드를 달게 먹고, 마을을 찾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수그리고, 농민들과 '상동 탁주'를 마시며 너털웃음을 짓던 그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던 그저 평범한 촌부였습니다.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재래시장에서 민생행보를 하던 지욱과 "대통령님, 우리 아버지 살려주세요. 신장이 필요하다"고 외치며 달려드는 주종(박해일)과의 만남입니다. 친구인 문형철 비서실장은 신장이식을 고민하는 척 시늉하면서 인간적인 대통령의 모습을 부각시키자고 제안합니다(실제 문재인은 고인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할 만큼 영혼이 맑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욱은 "저의 힘으로 단 한 명의 목숨을 구해낼 수 없는 대통령이라면 수만 수천의 국민의 생명도 지켜낼 수 없다는 것이 제가 믿고 있는 신념"이라며, 신장 이식을 결심하고 병원으로 향합니다. 이 말은 경선 당시 장인에 대한 색깔론이 극에 달할 때 "사랑하는 아내를 버려야 대통령 자격이 생기는 겁니까? 그런 대통령 후보라면 그만 두겠다"고 했던 노무현에 대한 장진 감독의 오마주로 읽힙니다.

그리고 지욱이 수술 직전 주종의 아버지에게 남긴 말은 마치 노무현이 우리에게 남기려고 했던 말처럼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저하고 삶을 나누는 겁니다. 제가 부족한 부분 열심히 살아 주셔서 도와 주셔야 합니다."

노무현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하나이면서 둘이었습니다

노무현의 두 번째 재현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 한경자(고두심)입니다. 영부군 최창면(임하룡)을 데리고 청와대에 입성하지만 돌출 행동으로 국정수행의 걸림돌 노릇만 합니다. 그리고 그가 노후에 전원생활을 한답시고 수도 이전 예정지에서 사들인 부동산이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 사태를 촉발하는 대목은 노무현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웁니다.

김정호 대통령과 차지욱이 화기애해하게 여야영수회담을 갖는 장면은 생전의 김대중과 노무현 두 대통령의 각별했던 관계를 떠 올리게 한다. ⓒ 소란플레이먼트(주)


또한 경자가 TV로 부동산 특별법 담화를 발표하며 "이번에 통과시키려는 이 법은 대한민국의 수도이전 및 다기능행정자치…"라고 말한 대목은 당시 무산된 노무현의 신행정수도 이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대목은 최근 안희정 충남지사가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위헌 결정에 대한 재심을 청구해 노무현이 못다 이룬 약속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과 맞닿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노무현 탄핵 당시 길길이 날뛰었던 조중동을 대표해 동아일보를 등장시킵니다. '한경자 게이트 부동산특별법은 연막이었나'나 '대통령이 남편의 선물로 부동산 특별법을 마련했다'는 장면 등은 노무현 당시 신행정수도 이전을 결사반대했던 조중동을 가리킵니다. 조중동에게 권력 나눠먹기를 포기하고 하찮은 국민들과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는 것만큼 불온한 대통령은 없었을 테니까요.

영화에서 첫 번째 대통령으로 나오는 김정호(이순재)는 노무현과 김대중을 동시에 품습니다. "민주화한다고 도망 다니다 잡혀 옥살이하고 또 도망 다니다 잡혔던" 정호는 민주화운동의 상징 김대중을 가리킵니다. 그가 월드컵 로또를 구입하면서 "만약에 이게 된다면 돈 없어 평생 못해봤던 기부를 원 없이 해 볼 것"이라고 말한 대목은 재산보다 더 많은 빚을 남기고 떠난 노무현을 가리킵니다.

특히 정호와 지욱이 맥주를 마시며 아버지와 아들처럼 토닥거리며 여야영수회담을 하는 장면은 자신의 딸 이연과 지욱을 짝지어주려던 정호가 이연에게 민주화운동을 할 때 자신은 수없이 잡혀갔어도 지욱은 잘 빠져 나갔다고 말하는 장면과 연결되면서 영화는 노무현과 김대중을 하나이면서 둘로 조명합니다.

그리고 그 각별함은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오열하던 김대중 대통령으로 이어집니다. 당시 정부의 반대로 못했던 육필 추도사에서 김 전 대통령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킨 용사"였으며 "고통받는 사람을 위한 아낌없는 봉사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헌신"한 "국민적 영웅"이었으나 (이명박정부) 검찰의 수사로 "일생에 걸친 헌신이 무위"로 돌아갔다고 노무현을 기렸습니다.

노무현을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은 행복합니다

노무현의 세 번째 재현은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앞서 지욱이 재래시장으로 민생행보를 나가기 전 주저하자 문 실장은 "이게 제일 간편합니다. 보여주면 믿잖아요"라고 합니다. 동건은 "서민정치는 서민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거지 시장가서 떡볶이 먹는다고 뭐가 달라지냐"며 보좌진들을 타박합니다. 하지만 문 실장은 한 술 더 뜹니다.

"떡볶이? 그거 좋은데요. 오뎅이나 순대도 좀 넣고. 그렇지 먹는 모습이 있어야 그게 진짜 같거든."

시장에서 떡볶이를 먹는 지욱은 이명박 대통령의 민생행보를 비틀며 정치 쇼를 풍자한다. 이 대통령은 떡볶이를 먹으면서 얼마나 행복했을까? ⓒ 소란플레이먼트(주)


일찍이 순댓국밥집 TV 광고에 출연해 '이명박은 아직 배고픕니다'며 보여주기에 일가견을 보인 그는 서민행보를 한답시고 떡볶이에 오뎅까지 맛나게 먹으며 부자정권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 무진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는 물가 폭등과 불황으로 집세를 못내 쫓겨날 판이고, 민생행보의 결과 실천한 것이라고는 달랑 떡볶이 사먹은 것 외에는 없다는 비아냥만 남았습니다. 굳이 떡볶이를 입에 물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서민이었던 노무현과 이명박은 이렇게 달랐던 것입니다.

영화는 세 대통령의 에피소드를 잇는 장 조리사(이문수)를 통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합니다. 세 명의 대통령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그를 찾는 이유입니다. 모든 해법은 결국 국민의 소리에 있고, 장 조리사는 일상적인 화법으로 국민의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인물입니다. 비록 세 대통령이 소주 한잔 하고 가고, 라면 먹고 가고, 멸치를 씹어 먹고 가지만 그들은 귀를 열고 다른 이의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대통령들이었던 것입니다.

한경자가 남편과의 이혼 문제로 고민하다 장 조리사와 주고받는 대목은 그런 의미에서 많은 것을 함의합니다. "행복하지 못한 대통령이라도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는 데 부족하진 않겠죠?"라는 물음에 장 조리사는 "대통령이 모든 국민이 행복해지는 걸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국민은 행복한 대통령을 바란다"고 말합니다. 비록 노무현의 최후가 불행했지만 국민들은 우리에게 그런 대통령이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한 반면에 이 대통령이 행복하다고 국민도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잔혹한 현실은 이에 대한 해답인 셈입니다.

그 잔혹한 현실을 뚫고 너그러운 희망을 품으면 품을수록 역대 대통령들의 면면 즉,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에 이르기까지 노무현과 김대중을 제외한 <그때 그 사람들>(임상수 감독 2005년작)과 <굿모닝 프레지던트>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커서 쉬이 희망을 품기조차 두렵게 만듭니다.

기억하실는지요?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장 조리사가 출간한 '아주 특별한 주방'이라는 책을 통해 속삭인 영화의 프롤로그를. 그 프롤로그엔 2년 전 5월 23일 우리 곁을 떠난 노무현과 그리고 87일 뒤인 그해 8월 18일 다시 우리 곁을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께 건네고픈 우리네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언젠가 나이 지긋한 대통령이 찾아와 소주 한 잔을 권할 때,
담배를 끊은 대통령이 담배 한대 빌려 달라며 다가올 때,
이른 아침 우리 앞에 다가와 인사를 하는 대통령을 만날 때,
우리는 웃는 얼굴로 이렇게 얘길 합니다.
네~ 좋은 아침입니다."

영화의 제목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모닝을 빼면 <굿 프레지던트>가 됩니다. 문재인의 지적처럼 참여정부의 공과 과를 성찰하고 복기하는 지금, 남김없이 전부를 다 던졌던 노무현을 추억 하는 것 또한 국민들에겐 행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웃는 얼굴로 이렇게 인사합니다.

"굿모닝 노무현 굿모닝 김대중, 굿 프레지던트. 그동안 안녕히 잘 지내셨는지요?"

노무현 노무현 서거 2주기 김대중 이명박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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