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 미래한국의 해법

[서평] <우리는 중산층까지 복지 확대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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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insain)등록 2011.11.04 15:26

<우리는 중산층까지 복지 확대를 요구한다> 책표지. ⓒ 도서출판 밈

복지국가. 2011년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뜨거운 이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부터 시작된 무상급식 논쟁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셀프탄핵'을 낳았고,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등록금으로까지 번져 전사회적으로 복지국가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마저 '한국형 복지국가'를 논하고 있으니 복지가 시대적 대세임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복지논쟁은 정치권과 학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졌고, 평범한 시민이 복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중산층까지 복지 확대를 요구한다>(도서출판 밈)는 단연 눈에 띈다.

<경향신문>의 '복지국가를 말한다' 기획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평범한 시민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한국사회에 복지가 필요한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바닥에 떨어진 사람들

'삼포세대'라는 말이 있다. 경제적 이유로 연애, 결혼, 출산을 스스로 포기한 청년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불안정한 일자리, 학자금 대출상환, 기약 없는 취업 준비 등에 떠밀린 청년 세대는 자발적으로(?)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공기업에서 비정규직 사무보조로 일하는 한지혜씨(27)는 학자금 대출을 6년째 갚고 있지만, 아직도 700만 원이 남아 있다.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하고 알바전선에 뛰어든 후 10년 동안 로맨스에 마음 줄 여유는 없었다.

"결혼하는 친구들은 주로 경제력 있는 친구들이에요. 예식비, 전셋값 얘길 듣다보면 '연애든 결혼이든 출산이든, 내 인생에는 있을 수 없겠다'는 우울한 생각이 듭니다."

취업준비생 김윤진씨(29)는 "백수는 연애할 수 없다"고 말한다. 불안한 백수가 연애하면 오히려 불안한 상황이 증폭되기 때문이다. 혹여 연애하게 되더라도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학교 때부터 내가 겪은 무한경쟁과 그에 따른 불안을 사랑하는 존재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가 불행해지는 건 단순히 돈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잖아요."

중년세대 역시 각박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다. 중산층 가정의 가장 강제균씨(47)는 IMF 구제금융 직전에 첫 직장을 잃었다. 강씨는 "일개미가 잘못해서 개미집이 무너진 것도 아닌데 '고통분담'은 일하는 사람에게만 돌아왔다"고 회고한다.

두 번째로 들어간 직장에서는 살아남았지만, 임금이 동결됐고 회사의 복지체계는 쪼그라들었다. 회사에 위기가 왔을 때는 언제 퇴출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심 때문에 회사 눈치를 보며 다녔다.

2005년 10월 강씨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그만뒀고, 그를 위한 국가복지제도는 없었다. 그는 아파트를 담보로 잡혀 대출을 받고, 쌀집을 냈다. "우리집 중에서 진짜 우리 것은 베란다뿐이다." 강씨가 아들에게 자조적으로 던지는 농담이다. '열심히 일하면 국가가 미래의 삶을 보장해줄 것이다'라는 기대가 산산이 부서진 현실 앞에 그는 국가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다.

"어릴 적 가족은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는 회사를 믿었어요. 지금도 가족은 아버지를 믿는데 아버지인 저는 회사도 국가도 못 믿겠어요. 국가라는 큰 시스템에 기댈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혜택이란 걸 받을 수 있으려면 내 생활이 완전히 바닥에 떨어져야 겨우 좀 오는 거 같고요."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바닥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고작인 현실. 그런 국민을 그저 방관하고 있는 국가. 강씨의 말은 국가의 역할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국가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지속가능한 한국사회를 위해

복지 확대에 부정적인 이들은 '지속가능한 복지'(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운운하며 지금의 복지국가 논의를 복지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이지만, 복지국가 논의는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물음이다. 젊은이들이 가족을 꾸리려 하지 않는 나라, 중산층마저 삶의 무게 앞에 허덕이고 있는 국가가 과연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얼마나 존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대로라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별로 커 보이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저출산‧고령화의 심화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저출산의 여파로 2029년부터 한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으로 들어설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일할 수 있는 인구는 적어지고 고령화로 인해 성장잠재력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65세 이상 노인인구 부양비는 크게 늘어나면서 2010년 현재 생산가능인구 6.7명이 부양하고 있는 노인 1명을 2050년에는 1.4명이 부양해야 할 것으로 OECD는 추산했다.
-<우리는 중산층까지 복지 확대를 요구한다> 52p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해법은 복지 확대다. 무상보육 등의 실시로 청년세대가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국가를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앞날은 어둡다.
그래서 복지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는 한국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다. 한국의 복지예산은 국내총생산의 7.48%로 OECD 30개국 중 꼴찌다. 국가복지의 부재는 사회 양극화를 불러오고, 사회 양극화는 다시 내수 침체로 이어져 경제성장을 저하한다. 현 정부에서조차 "사회 양극화와 중산층 약화가 우리나라 성장잠재력을 위협하고 있다"(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국가, 사회 양극화를 해소해 중산층이 튼튼한 국가를 만들지 못한다면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제는 '지속가능한 복지'가 아니다. '지속가능한 한국사회'다.

'2040세대'를 넘어 노인까지

불과 일주일 전에 있었던 10.26 서울시장 선거가 보여준 것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등 돌린 민심이었다. 특히 '2040세대'는 박원순 후보에게 60~70%의 표를 몰아주며 현 정권을 심판했다. '2040세대'의 반란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점차 각박해지는 삶에 대한 불만이다. '2040세대'의 반란은 등록금‧비정규직‧교육·주거 등 그들이(그리고 우리가) 당면한 수많은 삶의 문제들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선언이다.
'2040세대'의 반란은 환영할 일이지만, 복지국가로의 여정을 위해서는 정치권이 노년층을 끌어안을 필요가 있다. 사실 노년층이 처한 상황은 '2040세대'의 현실보다 나을 것이 없다. 노인자살률은 이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우리나라의 노인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어디와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인구 10만 명당 74세 이하 노인 자살률은 81.8명으로 일본 17.9명, 미국 14.5명에 비해서 5~6배 차이가 나고 있으며 75세 이상 자살률은 10만 명당 무려 160명이 넘는다. 한국의 폭증하는 노인자살률 때문에 우리나라만 별도 단위로 그래프를 봐야 할 정도다.
노인빈곤율 역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5.1%로 OECD 평균치(13.3%)의 3배 이상이다.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 사이에 적지 않은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수많은 노년층을 끌어안고 그들의 삶을 책임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이유에서도 노년층의 지지를 받는 것은 중요하다. 지금의 고령화 추세는 쉽게 뒤집을 수 없으며, 전체 유권자 가운데 노인들의 비중은 당분간은 계속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복지국가가 단기간 안에 뚝딱하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전체 유권자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노년층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복지국가를 위한 다이제스트 매뉴얼

10.26 서울시장 선거의 핵심에는 복지 이슈가 있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문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물러나면서 선거가 결정됐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상급식 예산 결재이니 무상급식으로 시작해서 무상급식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에서도 복지 이슈는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을 것이다.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등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무게를 가진 사안들이 복지라는 하나의 이슈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민의 복지에 대한 열망 역시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에 복지를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식지 않을 것이다. 복지국가를 두고 수많은 말이 오갈 것이고, 그 속에는 복지국가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왜곡, 때로는 복지국가에 대한 지나친 낙관이 뒤섞여 있을 것이다.
<우리는 중산층까지 복지 확대를 요구한다>는 복지국가를 둘러싼 말의 성찬 속에서 혼란을 느끼는 시민에게 길잡이가 돼줄 것이다. 이 책은 복지국가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한국의 복지 50년 역사, 아르헨티나‧그리스‧스웨덴 등 다른 나라와의 비교,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한 시민토론회까지. 이 정도면 복지국가를 위한 다이제스트 매뉴얼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민의 목소리가 좀 더 녹아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시민이 말하는 복지를 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
그러니 복지국가에 관심이 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읽기를 권한다. 왜 복지국가가 화두인지, 복지국가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손대야 할 것이 많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답을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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