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가 기숙사라고? 말도 안 됩니다

[주장] 이주노동자 주거권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등록 2012.02.29 14:28수정 2012.02.2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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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컨테이너에서?"

지난 26일, 김포에서 스라랑카인 부부가 화재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내뱉은 첫마디였다.

전기합선으로 추정되는 불이 난 것은 26일 오후 6시쯤. 불은 20여 ㎡의 컨테이너 내부와 가재도구 일부를 태운 뒤 15분여 만에 진화됐지만, 평일 장시간 노동으로 피곤한 몸을 달래려고 잠을 자고 있던 스리랑카인 부부 만돌라(38)씨와 수빈나(29)씨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사망한 부부는 인근 공장에서 일하면서 평소 컨테이너에서 생활해 왔다고 한다.

"또 컨테이너에서"라고 말을 내뱉었던 것은 그동안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다 화재로 사망하거나 사고를 당한 경우를 숱하게 봐 왔기 때문이다. 충남 당진에서 기숙사로 쓰던 컨테이너에서 자다가 화재로 친구를 잃었다며 울먹이던 인도네시아인 가니(Gani), 경기 광주에서 일하며 여름 불볕더위와 열대야를 피하느라 컨테이너 박스 위에 올라가서 잠을 자다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쳤던 태국인 피시(Phicit), 이천의 한 양말 공장에서 일하다 화재로 화상을 입고 울던 이름을 잊어버린 인도네시아인…. 모두 기숙사라 칭하던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던 이주노동자들이다.

작은 방 한 칸 마련하지 못해서 컨테이너 숙소를 이용하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 방치된 이주노동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리고 컨테이너 화재로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들 역시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이처럼 열악한 이주노동자들의 주거권에 대한 관심은 화재로 사망하는 이가 나타나도 이슈가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컨테이너 박스가 기숙사라고?

공장의 분진이나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대부분의 이주노동자 숙소는 공장 내부에 있거나 공장 인근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공간만 놓고 보면 1인당 3.3㎡도 되지 않는다. 거기다가 온갖 살림살이를 놓는다면? 공간이 협소하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좁은 공간 안에는 화재위험이 다분한 주방시설과 냉장고, TV와 전기장판, 온갖 낡은 가재도구들이 놓여 있을 것이다. 또한 대형 여행용 가방과 빨아 널은 작업복, 벽면에는 검게 변한 너덜너덜하게 떨어지는 벽지와 얼키설키 엮인 위험천만한 전선은 빨랫줄을 대신하기도 할 것이다.

그나마 깔끔 떠는 이주노동자들의 방에는 거미줄이 없지만, 대개는 거미줄이 천정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고, 겨울철에는 웃풍을 막는다고 창문을 은박지 등으로 꽁꽁 틀어막아서 대낮에도 어두컴컴하다. 형광등을 켜도 별 차이는 없다. 찢어진 장판에 청색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모습. 이런 모습들은 이주노동자 숙소의 대동소이한 풍경이다.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실시한 지 올해로 8년째 접어들고 있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주거권과 건강권에 관심을 갖고 체계적인 실태조사를 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나마 관련 시민단체인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가 지난 2009년 조사한 결과를 통해서 이주노동자들의 주거권 실태를 엿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수도권 지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주거환경 실태를 조사하고 11개국 출신 노동자 53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를 보면 컨테이너 박스 하나에 4명이 잠을 자는 경우가 많았다. 이주노동자 1명이 차지하는 면적은 3.3㎡, 1평도 채 되지 않았다.

주거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노동자들이 공장 밖의 소위 쪽방에서 생활하기도 했고, 그런 열악한 주거를 제공받으면서 숙박비를 공제 당하기도 하는 등 문제가 심각했다. 컨테이너 박스처럼 주거용이 아닌 곳을 기숙사로 꾸며 놓고, 화재가 일어났을 때 응급 대피할 수 있는 어떠한 장치도 마련해 놓지 않다 보니 불이 나면 곧바로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돈 벌러 왔으니 일이나 하라고 말하지 마세요

영화 <방가방가> 중 한 장면 ⓒ 상상역엔터테인먼트


최근 다문화담론의 확산으로 일부 안티(Anti) 다문화단체들이 세력화하고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외국인에 대한 시선이나 관심이 분명 나아진 면이 없지 않다. 그 가운데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심 역시 분명 나아졌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산업재해와 화재 등과 같은 안전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주거권에 대한 무관심은, 그들의 퇴근 후의 삶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사회가 이주노동자들의 퇴근 후의 삶에도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주노동자의 퇴근 후 삶에 대해, 퇴근 후 안식·오락·여가에 대해 이야기하면 혹자는 내국인도 살림살이가 팍팍하고, 일하러 온 사람들에게 별 거 다 챙기려 든다고 역정 내는 이들이 없지 않다. 그러한 인식 속에는 '이주노동자 = 기계적 일꾼 = 여가가 필요 없는 존재'라는 등식을 담겨 있다. 이주노동자에게 기본권으로서의 여가를 논하는 것은 사치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돈 벌러 왔으니 일이나 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욕구를 갖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지난해 나는 필리핀 귀환 이주노동자 실태조사를 할 때 기본적인 욕구를 보장받지 못해 사망한 사람의 가족, 산재를 당한 사람의 가족들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얼굴이 뜨끈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던 기억이다. 그 중 한 사람의 말이 지금도 귀에 울린다.

"'돈 벌러 온 주제에 교회는 무슨?'이라고 말하는 사장님 때문에 일하다가 손가락을 잃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사장님은 종교도 없는 공산주의자인가요?"

산재를 당했던 필리핀 이주노동자의 하소연대로라면 이주노동자의 여가에 대한 요구를 묵살하는 것은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하는 공산주의자와 다를 바 없다. 고된 육체노동과 타향살이의 설움과 그리움을 달랠 길 없는 이들에게 발이라도 편히 뻗고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줘야 하는 이유는 이주노동자도 대접받을 권리가 있고, 쉴 수 있는 권리, 욕구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옛 마을을 지나며

찬 서리
나무 끝을 날으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옛 마을을 지나며>(김남주)

스스로를 '전사'라 칭했던 시인 김남주는 그의 시 <옛 마을을 지나며>에서 까치밥을 조선의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추수 시기가 지나고 겨울 문턱에 잎이 몇 개만 남아 있는 감나무 꼭대기에 달린 감을 다 따지 않고 남겨 놓은 것을 까치밥이라고 한다. 이는 추운 겨울이 돼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계절에 날짐승과 지친 나그네들을 위한 배려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 조상의 아름다운 마음을 볼 수 있는 좋은 풍습이다. 어디 까치밥뿐이겠는가? 우리 조상들은 먼 길을 가는 나그네를 위해서 까치밥만 아니라, 사랑방을 내주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어렵게 살았고 배고픈 경험을 했던 우리 조상들은 먼 길을 가는 나그네나 날짐승의 배고픔을 충분히 이해했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언제나 가난했다. 비록 지금이야 경제개발에 성공해서 먹고 살만하다 하지만, 백성들은 언제가 가난하게 살아야 했던 것이 불과 반세기 전의 이야기다.

그런 가난한 나라의 백성들이 짐승마저 가엽게 여기고 살았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삶이 고달팠기에 고달프게 사는 삶을 이해했다는 것일 수도 있고, 함께 사는 세상을 꿈꿨다는 말이기도 하다. 까치밥에 담긴 정신은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날짐승들 먹으라고 남겨두는 감 몇 개. 많고 많은 날짐승들의 삶의 모습이나 힘든 사람들의 모습이나 모두 같은 것이다.

우리 땅에 들어 온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 구성원들은 이 시대의 나그네들이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현재 우리 시대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 구성원들의 사랑방이고, 까치밥 같은 존재인지 묻고 싶다. 시대정신을 노래했던 시인이 말한 '조선의 마음'을 품은 정겨운 이웃이 얼마나 있는지 묻고 싶다.

개발독재 시대에 쪽방이 있었다면, 우리시대에는 '컨테이너 숙소'가 있다. 공순이 공돌이가 살던 곳에 이주노동자가 살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변한 게 없다. 이주노동자들은 조세희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 시대의 난쟁이'인 셈이다. 난쟁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컨테이너 안에서 숙식을 동시에 해결하고, 노동도 같은 곳에서 한다. 화재사고가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 이주노동자 고용 사업장 및 주거시설에 대한 지속적인 안전관리가 있어야 한다. 비록 뒷북 행정이긴 하겠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주노동자 밀집 지역에 대한 소방안전 점검 및 교육 실시와 이주노동자 숙소에 대한 소화기와 화재경보기 등 소방시설 설치 의무화 등의 조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관계 당국자들이 '조선의 마음'을 회복했으면 한다.
#컨테이너 숙소 #이주노동자 #화재 #김남주 #까치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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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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