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 때문에 무상보육 흔들흔들?

전업맘도 워킹맘도 "잘못 만들어진 정책 탓" 한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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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희(sost)등록 2012.06.18 16:28
"땡" 전자레인지 소리가 울렸다. 미지근하게 데워진 우유를 식탁 위에 두고, 곤히 자는 진영이를 깨운다. 아침 9시, 말갛게 씻겨 어린이집 보낼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 박영미씨는 전업주부다. 21개월 된 아들 진영이는 올겨울이면 동생을 만난다.

입덧이 뭔지도 몰랐던 첫 임신 때와 달리 둘째를 가진 박씨는 밥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을 했다. 진영이를 돌보기는커녕 쉽게 짜증을 내곤 했다. 입덧은 심해지고, 스트레스도 쌓여가던 3월, 내년 봄에 입학시키려고 미리 신청해뒀던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3세반 인원이 자리가 난 데다 국가에서 만 0~2세 기본 보육료를 지원해준다며 진영이를 당장 보낼 건지 물었다. 몸이 너무 힘들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입덧 심해져 무상보육 이용하기로 결정" "어린이집 보내기엔 아직 불안"

옆집 김정은씨네 사정은 달랐다. 피아노 교습소를 하던 김씨는 일을 쉬면서 2살짜리 딸 쌍둥이를 돌보고 있다. 두 아이를 한 번에 돌봐야 하니 쉴 틈이 없다. 증권사에 다니는 남편이 퇴근 후 또는 휴일에 도와주면 그나마 낫다.

기사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가상의 인물이다. <오마이뉴스>는 학부모 10명을 인터뷰해 박영미씨, 김정은씨, 한미진씨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세 사람이 처한 상황은 제각각이나,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국공립 보육시설 마련이 시급하다'고 느끼는 것은 공통점이다. ⓒ 박소희


올해 3월부터 만 0~2세 무상보육이 시행된다는 뉴스는 봤다. 하지만 엄마와 떼놓기엔 아이가 너무 어리다. 어린이집 위생 문제 역시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복지제도는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함께 텔레비전을 보던 남편은 "사회 전반적으로 복지도 열악하고 맞벌이도 많으니까 무상보육으로 가야 한다"고 하면서도 "근데 어린이집 안 보내는 부모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고, 어린이집에서 아이 이름을 명단에만 올리고 돈 받는 경우처럼 부작용도 있을 것"이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전 10시, 진영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준 후 아침밥을 먹은 박씨는 가까운 은행에 들렸다. 인근 대형마트에서 장도 봐야 하고, 집으로 돌아가 꽉 찬 세탁 바구니도 비워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을 진영이의 어린이집 수업이 끝나는 오후 3시 전에 마쳐야 한다. '직장 안 다닌다고 노는 것도 아니라니까.' 72개가 한 묶음인 3만2천 원짜리 기저귀를 쇼핑카트에 담으며 박씨는 생각했다.

진영이가 먹을 우유를 고르던 박씨는 이웃 김씨, 아파트 다른 동에 사는 한미진씨와 마주쳤다. 29살 동갑내기인 박씨와 김씨보다 한씨는 3살이 많은 고등학교 교사로, 8개월 전 딸을 낳고 육아휴직 중이다. 당장은 직접 아이를 돌보고 있지만, 내년에 복직하는 한씨는 걱정이 많다. 야간자율학습 지도를 해야 하는 탓에 밤 9~10시까지 아이를 맡겨야 하는데, 야간보육 가능한 어린이집은 적은 편이다. 경쟁률 자체도 너무 높다. 가까운 곳에 물어보니 대기인원 경쟁률만 8 대 1이라고 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무상보육 찬성하는 워킹맘도 "전업주부들 역시 힘들겠지만...."

아이를 안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여성. 육아가 여전히 여성의 몫인 우리 사회에서 허울뿐인 육아제도는 여성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 박경현

"진영 엄마처럼 입덧이 심하거나 다른 사정이 있어서 어린이집 이용하는 전업주부들도 있다는 걸 이해해. 

근데 나라에서 부모들한테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해주니까 이용하는 사람이 더 늘었다잖아? 가뜩이나 어린이집에서 우리처럼 맞벌이하는 사람은 똑같은 돈 내고도 아이를 더 오랫동안 맡긴다고 싫어해서 일부러 피한다는데... 신청 인원까지 느는 바람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보육시설을 이용 못하는 사례도 있다더라고. 나도 걱정이야. 

무상보육이란 게 방향은 맞아도, 너무 무분별하게 지원하는 것 같아. 지자체 예산이 없어서 곧 지원 중단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애한테 기저귀니 분유비니 하면 매달 20~30만 원씩 드니까 시설 보육료라도 정부 지원받으면 좋긴 한데 말야."

마트 한 쪽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던 한씨가 말했다.

"나라에서 어린이집 비용이 나오는 게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죠. 진영이만 해도 한 달 원비가 34만 7000 원"이라며 박씨는 오렌지 주스를 빨대로 쭉 들이켰다. 무상보육 정책 덕분에 박씨는 교재비, 소풍비 등으로 월 7만 원만 어린이집에 납부한다. 월 300만 원인 남편 월급의 10%가 넘는 금액을 아끼는 셈이다. 보육료 지원은 날짜에 맞춰 정부에서 받은 '아이사랑카드'를 날짜에 맞춰 어린이집으로 보내는 식으로 이뤄진다.

"근데 자꾸 전업주부들이 게을러서 무상보육 지원이 끊긴다고 하는데, 억울하기도 해요. 물론 직장 다니는 엄마들이 살림하랴 애 돌보랴 일하랴 힘든 건 알아요. 하지만 집에 있는 엄마들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다고 종일 쇼핑하고 차 마시면서 놀지도 않는데다, 모성애가 없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처럼 임신을 해서 입덧 심한 사람은 생활이 아예 안 되고...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엄마 마음 모르는' 정책이 엄마들만 더 힘들게 하는 현실

"제 말이. 정책 만드는 사람들이 남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진짜 엄마들이 뭘 필요로 하는지 모른다"며 커피를 다 마시고 빈 종이컵을 만지작거리던 김씨가 거들었다.

"저처럼 어린이집 안 보내고 직접 돌보는 부모들한테는 월 10만~20만 원씩 주거나 지금처럼 하더라도 민간이든 국공립이든 맞벌이 가정 자녀는 몇 %씩 아이 받는 걸 의무로 하면 낫지 않겠어요? 아이한테 워낙 돈이 많이 들어가잖아요. 시장에서 반팔 티셔츠 하나 사도 1만 원 넘더라고요. 

아니면 부모들에게 보육료 지원하는 돈으로 국공립 어린이집을 더 지었으면 좋겠어요. 민간 어린이집이 전체 90%가 넘는다던데, 사실 엄마들은 민간 시설 보내는 것을 꺼리잖아요. 위생에 문제 있거나 비리 있는 곳, 교사가 아이를 함부로 대하는 곳이 있다는 얘기가 들리니까 불안해요. 국공립 어린이집이라면 조금 더 안심이죠. 아무튼 무상보육제도의 취지는 좋은데, 부작용을 너무 생각 안 한 50점짜리 정책이에요." 

2011년 8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영유아 전면 무상보육 실시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올 3월부터 만0~2세를 대상으로 어린이집 보육비 전면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에 참석한 황우여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홍준표 대표. ⓒ 남소연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박씨는 "근데 애 돌보는 것만이 아니라 다시 일하고 싶은 엄마들 앞길도 깜깜해서 큰일"이라며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사촌언니 얘기를 꺼냈다.

"저야 둘째 임신하면서 일할 생각 접었지만, 우리 언니는 12년정도 경력이 있어서 복귀할 생각이더라고요. 전문직이라서 저처럼 평범한 회사원 출신보다 찾는 곳이 많대요. 근데 아이를 늦게 가져서, 3년 후에 직장 구할 때면 40이 넘으니까 두렵다고 하더라고요. 다시 적응해야 하니까 편하게 들어가는 것도 아니라고. 근데 몇 시죠? 어머, 벌써 12시 넘었어요? 진영이 오기 전에 일 다 봐야하는데, 큰일났네."

"무상보육 위기는 정부의 준비 부족... '보편적 복지'가 '무상'은 아니다"

'만 0~2세 보육료 지원 확대는 부모의 도덕적 해이 등 부작용을 발생시켰다'는 국회예산정책처(NABO) 보고서의 한 줄은 '공짜 보육료의 그늘' '복지의 덫'이라며 보편적 복지를 공격하는 무기가 됐다.

하지만 지난 7~11일 동안 <오마이뉴스>가 만난 10명의 엄마 아빠들은 "무상보육이 아니라 현 제도가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위 기사는 그들의 직업·나이·가정형편 등을 고려해 가상의 인물을 설정, 재구성한 것이다.

NABO가 5월 발표한 '영유아보육 및 유아교육 사업 평가' 보고서는 "정부가 새롭게 생겨날 어린이집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충분한 시설을 확충하지 않고 추진하는 등 준비가 미흡했고 정책대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정책을 설계했다"며 계획 단계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꼬집었다. 76쪽에 달하는 보고서 본문에서 '(부모의) 도덕적 해이'란 표현은 딱 두 번 등장한다.

또 NABO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건전성이나 사업의 지속가능성 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데다 관리·감독·평가체계의 실효성마저 부족하다"며 전반적으로 제도 자체가 미비하다고 평가했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과학부 교수 역시 "(무상보육 논란의 원인은) 본질적으로 정부가 재정의 장기적 추계나 지방정부와 서비스를 어떻게 역할 분담할지, 또 어떤 것이 정말 보편적 돌봄서비스며 그것을 어떻게 확대할지 하는 계획이 전혀 없이 집행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이어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가 함께 재원을 부담하는 현재 구조는 "지방재정에 한계가 있어 중앙 부담을 늘려도 감당할 수 없다"며 "북유럽 등 다른 국가처럼 지자체가 보육서비스를 책임진다면 과세 등 재정 권한도 함께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 0~2세를 시설에 보낼 경우 보육료를 지원한다'는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며 "많은 학자가 연구한 결과 '0~1.5세는 부모가 직접 양육하게 하고, 국가가 부모를 직접 지원하는 게 맞다'고 얘기한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보편적 복지'와 '무상복지'는 다르다"고 윤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보편적 복지란 소득수준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모든 아동이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인데 정부와 민주당 모두 '보편적 복지=무상'으로 만들어버렸다"며 "대표적인 복지국가 스웨덴만 해도 법으로 소득의 3%이상 보육비로 지출할 수 없게 했다"고 말했다. 진짜 '보편적 복지'정책이란, 당사자가 좋은 복지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한 비용을 능력만큼 부담하되 도움이 필요하면 정부가 나서는 일이란 뜻이다.

윤 교수는 "아이들의 보육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며 시급한 과제 네 가지를 꼽았다. 그는 "모든 아동이 소득 수준이나 가구 형편에 관계없이 좋은 서비스를 받도록 정책방향을 만드는 일"이며 "어린이집 시스템을 종일제와 반일제로 구분해 종일제는 일하는 부모에게, 반일제는 그것과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이어 "무상보육이 아닌 양질의 서비스 제공이 중요하다"며 공공보육시설 확대를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무상이 아니라 '보편적 권리'로 접근해야 한다"며 "무상보육이란 말이야말로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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