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광기의 역사’를 쓰는 한국의 지하철

- 대구지하철참사 10주기를 추도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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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임(uldam)등록 2013.01.28 17:25
지하철 기관사가 자꾸 죽는다. 작년 언론에 보도된 기록만 4건, 미보도 1건, 엊그제 또 한 건, 2003년에도 있었다. 이때는 떼죽음이었다. 그런데 교통사고도 아니고 암도 아니다. 자살이다. 지하공간에 죽음을 부르는 유령이라도 있단 말인가? 그런 것 같다.

미셀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지배계급이 광인을 어떻게 취급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광인이 아닌 자를 광인으로 만든 역사를 설명한다. 지배계급의 지배 욕망을 적절히 완성할 수 있도록 많은 '다른 사람'을 광인으로 만들어 간 역사 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현재 새로운 광기의 역사가 쓰여 지고 있다. 지하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진짜 광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인이 되도록 유혹하고 있는 지하공간의 유령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지하공간의 유령은 가시적이다. 너무 잘 보인다.

온통 좁고 어둡고 긴 터널이 첫 번째 유령이다.
기관사들은 전방주시 의무 속에서 좁고 어둡고 긴 터널을 하루 5시간 이상 돌아다닌다. 필자는 연구 목적으로 기관사 옆에서 동승하는 경험이 꽤 많은 편인데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뱀의 몸 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 같다. 눈이 피로하고 머리가 어지럽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다. 좁은 터널 속 공기는 고속으로 달리는 전동차에 밀리거나 부딪치면서 굉음을 낸다. 무척 시끄럽다. 개인적으로 이 일은 할 일이 못 된다는 생각을 한다. 5시간 넘게 운전하는 동안 상당수의 기관사는 바깥공기를 전혀 마시지 못한다. 햇빛 한 줄기 얻지 못한다. 매일매일 이렇게 일 해야 한다.

두 번째 유령은 플랫폼마다 무더기로 서 있는 승객이다.
이렇게 터널을 통과하면 2분에 한 번씩 확연히 밝은 플랫폼으로 나가게 된다. 그런데 이 때가 더 공포다. 어떤 승객은 불안전한 자세로 플랫폼에 서 있고 어떤 승객은 출발하려고 할 때 갑자기 뛰어든다. 이럴 때 기관사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어떤 승객은 운전실 쪽으로 뭐가 불만인지 삿대질을 해대기도 한다. 이러다가 누군가 선로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날은 빙의가 된다.

세 번째 유령은 야간노동이다.
새벽까지 일을 하거나 새벽에 일어나 전동차 운전을 시작해야하는 매우 불규칙한 근무방식을 가진 이들 기관사는 불결하고 시끄러운 사업장 내 숙소(이 또한 지하공간에 있는 경우가 있다)에서 잠을 자야 한다. 그나마 이런 수준의 숙소도 충분하지 않아 개별 침실을 갖기 어렵다. 어렵게 뒤척이다 잠이 들어도 다른 기관사가 근무를 마치고 들어오면 금방 깰 수밖에 없다. 숙면을 취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런 상태로 비몽사몽 전동차를 몬다.

네 번째 유령은 관리시스템이다.
상습적인 수면부족에 피로가 쌓여 오늘 하루 휴가나 병가를 내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된다. 그 이유는 병가를 내면 팀 평가 점수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관리자들은 특별히 민감하게 개입한다. 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기본적인 권리이고 사규에도 있고 단체협약에도 적시되어 있지만 병가나 휴가를 쓸 수 없다. 관리자들이 아우성을 치면 동료기관사들끼리도 눈치를 본다. 이런 평가기준이 우리나라 공기업에 버젓이 적용되고 있다는 게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기관사를 더욱 슬프게 만드는 유령이다.

다섯 번째는 이런 모든 문제를 기관사 혼자 해결하도록 강제하는 유령이다.
우리나라 지하철은 어떤 경우에는 기관사 혼자 승무하는 곳이 있는가하면 기관사와 차장이 동승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 기준이 애매하다. 사실 기준이 없다. 혼잡도가 기준인지, 기술체계가 기준인지 알 수 없다. 어디에도 규정이 없다. 그런데 기관사 혼자 승무하는 경우는 당연히 차장이 지원하지 않으니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그 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일련의 자살 건은 거의 대부분이 기관사 혼자만 근무를 하는 영역에서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섯 번째는 대체기관사 부족이라는 유령이다.
대체기관사가 부족하다. 휴가를 내거나 병가를 내는 게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도 대체기관사 부족이 한몫을 하고 있다. 게다가 화장실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운전실에서 갑자기 변통이라도 느끼게 된다면, 갑작스런 정신적 스트레스로 공황상태가 될 것 같은 경험을 느끼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당연히 대기하고 있던 대체 기관사가 바로 투입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기관사가 없다. 그래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아예 식사를 하지 않는 기관사, 먹는 것에 히스테리를 보이는 기관사, 심지어 달리는 전동차에서 볼 일을 보다가 선로에 추락해 사망한 승무원...

연인원 25억 명이 탑승하는 우리나라 지하철. 이 지하철의 승객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사의 현주소가 이렇다. 승객들이 이러한 사실을 정확히 안다면 어떤 반응일까? 나도 승객 중 한 사람으로 나는 꾸준히 싸우고 있다. 난 지하철에서 죽고 싶지 않으니까. 불귀의 객이 된 10년 전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승객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두통이 생긴다. 당시 기관사는 혼자 운전을 하다가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상황에 부딪쳤을 것이다. 사실 상황인식을 못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거다. 사령과도 연락이 잘 되지 않았고 후부를 봐 줄 차장도 없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라면 혼비백산할 가능성이 높다. 차장만 같이 있었더라도...기관사의 처지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안전을 모두 책임지라고 하고 사고라도 날라치면 감옥에 보내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정말 믿는 것인가?

그래서 이제 기관사들은 스스로 죽기를 결심했다. 유령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이다. 이 무책임한 국가와 사회가 이들을 이 지경으로 내몰았다.

대구지하철참사 10년이 경과하는 이 시점, 지하철 노동자들의 처지는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 결국 도시의 위험 수준은 더 높아진 셈이다. 이대로 있을 순 없다. 이젠 본격적으로 유령퇴치조, '고스트바스터스'가 나서야 할 때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유령은 처치가 좀 곤란하다. 애초부터 지하철을 지상구간에 건설했으면 좋았을 게다. 그런데 지하시설을 뭉개고 다시 지상화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너무 큰 비용을 요구한다. 그러면 승객을 없앤다? 이 또한 불가능하다. 승객을 위해 지하철이 있는 것이니까. 다행히 최근에는 스크린도어가 많이 설치되어 있어 '승객 끼임' 문제를 제외하면 추락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졌다. 광역철도 구간에도 모두 빠른 속도로 설치해야 한다. 세 번째 야간노동도 지하철 운행시각을 조절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다. 시발시각을 오전 6시경으로 늦추고 종착시각을 오후 11시 경으로 맞추면 좀 나아지겠지만(그렇다고 해서 이 사이 시간에 기관사가 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시업과 종업시각 전후로 1시간 이상의 준비, 정리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도시민 삶의 패턴 상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반면 네 번째 유령부터는 퇴치가 충분히 가능하다. 인력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물론 비용이 든다. 이렇듯 반인권적 상황이 만들어진 것도 결국은 '비용절감', '경영합리화'라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돈을 더 많이 벌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싶기 때문 아닌가. 그래서 사회적 부는 자꾸 커져 가고 있다. 그런데 사회적 위험은 더 크게 증가하고 있고 일부 집단은 스스로 궤멸의 길로 걸어가고 있다. 이런 사회는 행복을 줄 수 없다. 이런 사회에서 살려고 우리가 억척같이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2012년 3월, 이미 또 한사람의 기관사가 자살을 하면서 서울시에서는 대책위 요구를 받아 안아 '서울시 지하철 최적근무위원회'를 구성하고 6개월째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제 서서히 첫 번째 권고안이 채택되려는 시점에서 또 이런 비보에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다. 서울시는 더욱 박차를 가해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승객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고, 한국 지하철 기관사들이 새로운 광기의 역사를 쓰고 있는 이 때 우리는 한국사회에 정의가 있기는 한 것인가에 대해 자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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