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신문 행동대장이 '빨갱이 기자'가 됐습니다

[찜! e시민기자] '진보 울산' 터줏대감, 박석철 시민기자

등록 2013.03.08 16:32수정 2013.03.22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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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올해부터 '찜! e시민기자'로 선정된 시민기자에게는 오마이북에서 나온 책 한 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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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I 울산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이 발병한 피해자와 유족, 삼성일반노조, 반올림, 울산인권연대, 울산지역노동자건강권대책위가 2월 21일 오전 11시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실상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박석철


지난달 21일, 울산에서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들은 바로 삼성SDI 울산공장에서 일하다 암·백혈병 등 희귀질환에 걸려 투병 중인 사람들과 이미 숨진 사람들의 유족들. 한 공장에서 18명의 노동자에게 희귀질환이 발병했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지도 못한 가운데 이미 6명이 숨졌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기자회견이었다. 삼성반도체의 직업성 백혈병 문제에 이어 다시 삼성에서 비슷한 폭로가 나왔다(관련기사 : <삼성SDI 울산공장, 암·백혈병 18명 확인... 6명은 사망>).


하지만 삼성이라는 공룡재벌의 '포스' 때문일까. 그날 기자회견 내용을 보도한 신문은 <오마이뉴스>를 포함해 단 네 곳뿐이었다. 한 누리꾼은 관련한 후속보도에 "언론이 다 죽은 줄 알았는데 그래도 <오마이뉴스>가 사막에 오아시스 같은 존재군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삼성에 맞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린 기자, <오마이뉴스>를 '오아시스'로 만들어준 고마운 시민기자는 바로 오늘 '찜! e시민기자'의 주인공 박석철 시민기자다.

울산에서 인터넷신문을 발행하며 든든한 터줏대감으로 활약하고 있는 박석철 시민기자. 2005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3000편이 넘는 기사를 썼다. 그는 보수와 진보가 팽팽히 대립하는 울산에서, 부패한 정치권력과 재벌기업의 그림자를 늘 날카롭게 비판해왔다. 지역 인터넷신문 기자로서, 중앙 종이신문도 못하는 일을 용기 있게 해오고 있는 그의 각오와 고민을 지난 6일 전화와 서면 인터뷰로 허심탄회하게 들어봤다.

☞ 박석철 시민기자가 쓴 기사 보러가기

- 자기소개부터 부탁합니다.
"울산에 사는 50세의 가장입니다. 인터넷신문 <시사울산>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동안 10권의 책을 공동 혹은 개인 집필로 펴냈습니다. 가족으로는 '이쁜이'라는 별명을 가진 직장인 아내와 자칭 '냉철한 지성인' 대학 2학년 아들, 자타가 공인하는 지역 최고의 귀염둥이(?)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있습니다."

-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보내주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2004년 재직하던 지역신문에서 노사분쟁이 발생했습니다. 노조 위원장을 맡았는데, 우리의 억울함을 모든 언론이 외면하더군요. 하지만 <오마이뉴스>만큼은 여러 번 기사로 다뤄주더군요. 이후 신문사를 그만두고 레스토랑을 시작했는데, <오마이뉴스> 상근기자와 시민기자가 인터뷰하러 왔었습니다.


언론에 미련이 있던 차에 '인터넷신문을 만들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도 활동해보라'고 권유하더군요. 그래서 2005년 <시사울산>을 창간하고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레스토랑 운영은 뒷전이고, 카메라를 들고 취재 다니며 미친 듯이 기사를 올렸습니다. 결국, 1년 만에 레스토랑은 문을 닫았죠."

"보수 신문 행동대장이던 제가 어느새 '빨갱이 기자'가 돼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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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철 시민기자(왼쪽)와 아내 ⓒ 박석철


- 박 기자님의 기사를 보면, 재벌과 보수정치 세력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가 강합니다. 지역에서 오며 가며 만나는 사이에, 기사 때문에 불편해지는 일도 많을 것 같습니다.
"미운털이 박힐 수밖에요. 저를 '빨갱이 기자'라고 스스럼없이 말합니다. 한때 보수 지역신문의 행동대장이던 제가 빨갱이 기자가 돼 있더군요. 제가 지역신문사에서 파업을 하게 된 핵심적인 이유는 동료의 부당해고를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중앙 유력언론사 소속인 그 동료가 울산시청에서 저를 만날 때마다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으로 저를 데려가더군요. 가까이 지내는 걸 남들이 보면 자기도 오해를 받는답니다."

- <시사울산> 후원계좌 안내 글을 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면에 기업 광고가 잘 보이지 않는데, 후원만으로 운영하시는 건가요? 광고 없이 신문을 발행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후원계좌 안내를 해도 들어오는 후원은 지금까지 0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마이뉴스>에 올린 기사가 쌓일수록 초기에 제법 있던 <시사울산> 광고는 점점 끊기더군요. 하루에 2개씩 비판기사를 쓰는데 어느 지자체나 기업이 광고를 주겠습니까.

대출금 액수만 늘고 있습니다. 점심 거르기를 밥 먹듯이 합니다. 춥고 배고플 때는 나보다 어려운 해고자와 비정규직을 생각합니다. 또 능력 없는 가장을 만나 마음고생 심한 가족들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더군요. <오마이뉴스> 기사가 알려진 덕에 저자로서 활동이 시작된 겁니다. 2009년 이후 집필 활동으로 수입이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10권을 썼습니다."

- 울산지역 정치 지형이 새누리당과 진보정당으로 양분되다 보니, 박 기자님 기사에 대한 반응도 극단적일 거라 생각됩니다. 어떻습니까?
"재미있는 것은, 제가 보수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면 별다른 항의가 없는데, 어쩌다 진보진영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면 항의가 많습니다. 단, '박사모' 관련 기사를 쓰니 양쪽에서 모두 저를 욕하더군요. 보수는 자기네들을 비꼰다고 하고 진보는 굳이 왜 이런 걸 보도해주느냐고 합니다."

- 지역 뉴스를 전국 이슈로 만드는 데 <오마이뉴스>라는 틀을 아주 잘 활용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써주신 기사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한 기사는 무엇인가요?
"포털 다음에서 '현대차 비정규직노조'를 검색하면 제 이름이 관련 검색어로 나오더군요. 제가 많이 쓴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는 비단 울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신음하는 전체 비정규직들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들 입장이 돼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기사를 씁니다."

- <오마이뉴스> 편집국도 서울에 있다 보니, 지역뉴스의 가치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지역 이슈를 다루는 데 어떤 점이 부족하다고 보시나요?
"저도 편집 일을 해봤기 때문에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입장을 존중합니다. 단지 <오마이뉴스>가 중앙 이슈 위주로 흘러가다 보니 지역 이슈는 단발성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울산뿐 아니라 전국 각 지역에서 산적한 문제들이 많을 겁니다. 이번에 <오마이뉴스>가 전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킨 이마트 집중보도처럼, 지역의 사안도 가끔씩 집중보도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지자체·기업 비판 기사에 광고 끊기고... "우선 자존심부터 지켜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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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워크숍에 참석하여 인사말을 하고 있는 박석철 시민기자. ⓒ 고정미


- 앞으로 꼭 다뤄보고 싶은 주제, 파헤쳐보고 싶은 사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삼성SDI 노동자들의 희귀질환 발생 소식을 듣고 마음 아팠습니다. '삼성맨'이 됐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그들이 지금은 해고되고 암까지 걸려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을 보니,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알게 되더군요. 삼성SDI뿐 아니라 곳곳에 산재해 있는 억울한 사람들의 모습을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

- 현장기자로서 얼마나 더 활동할 계획인지,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궁극적인 꿈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얼마나 더 숨을 쉬고 싶나'라고 묻는 것 같군요. 나이나 환경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마이뉴스>가 문을 닫지 않는 한 끝까지 함께하고 싶습니다. 제 기사를 통해 어려운 분들이 도움을 받고 모순적인 사회가 바로잡힌다면 언론인으로서 긍지를 느낄 것 같습니다."

- 주말도 없이 정말 부지런히 기사를 써주십니다. 너무 바쁘다고 가족들이 원망(?)하시지는 않는지요.
"월급을 받는 일이 아니니, 쉼 없이 기사를 써야 안심이 됩니다. 직장에 다니는 아내를 위해 설거지와 청소 등 집안일은 많이 합니다. 그리고 막내와 매일 토론을 합니다. 초등학생이지만, 어릴 때부터 인터넷을 즐겨서인지 토론이 되더군요."

- 다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가운데 꼭 한번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지난 2월 22~23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워크숍에서 보고 싶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늘 생각합니다. '나는 왜 블로거 아이엠피터 같은 열정이, 변창기 시민기자 같은 절박함이, 고상만 시민기자 같은 전문지식이 없을까'라고요. 이런 분들의 장점을 배우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다른 지역신문에서 활동하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분들께 한마디 해주십시오.
"지역 문제를 알리는 것에 있어 <오마이뉴스>라는 영향력 있는 매체를 활용하라고 권하고 싶군요. 또한 '빵이냐 명예냐'라는 문제로 갈등에 처한다면 자존심을 우선 지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박석철 #시사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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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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