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나라

[取중眞담] '성소수자 인권 강화'란 세계 추세에 역행하는 한국

등록 2013.04.25 16:14수정 2013.04.2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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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저는 당신과 함께 합니다(I'm with you)."

지난 15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인권, 성적지향, 성정체성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반기문 국제연합(UN) 사무총장은 레즈비언과 게이, 양성애자, 트렌스젠더 등 성소수자(LGBT)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UN사무총장으로서 당신들을 향한 비난과 공격을 밝혀낼 것이고, 세계 정상들에게 LGBT 차별 금지 노력을 지속적으로, 강력히 요구하겠다"고도 약속했다.

그즈음, 한국에선 민주통합당 김한길 의원과 최원식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을 철회할 계획이란 소식이 알려졌다. 두 의원은 철회 요지서에서 "차별금지법안의 취지 오해를 넘어 지나친 왜곡과 곡해가 가해져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주체사상 찬양법, 동성애 합법화법이라는 비방과 종북 게이 의원이라는 낙인찍기까지 횡행하고 있다"고 밝혔다.(관련 기사 : "종북 게이" 논란에 파묻힌 차별금지법 결국...)

차별금지법의 주 내용은 학력이나 혼인상태, 종교, 정치적 성향, 전과,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수 기독교단체들은 "법이 통과되면 학교에서 동성 간의 성행위를 가르쳐야 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들을 처벌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두 의원실은 물론, 공동발의한 의원실과 법안을 심사할 법제사법위원회 의원실을 집중 공격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조항'이 공격의 근거였다. 김한길 의원과 최원식 의원은 4월 24일, 끝내 차별금지법을 철회했다.

반기문 "성소수자와 함께"... 한국은 차별금지법 철회, 동성애 처벌 움직임

차별금지법 철회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성소수자들에게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일마저 생겼다. 민주통합당 민홍철 의원은 19일 군형법 공동발의안 요청서를 동료 의원들에게 보냈다. 지난달 공포된 군형법 제92조 6 '추행' 조항을 '동성 간의 간음죄'로 명칭을 바꾸자는 제안이었다.

이 조항은 '군인이 항문성교나 추행을 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 의원은 요청서에서 "현행 법이 동성애 행위 한쪽만 처벌하는 조항으로 오인되지 않도록 하고, 쌍방을 처벌하는 근거를 명확히 하기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성폭력의 객체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확대한 취지를 반영하려면 '여성들 간의 유사 성행위'도 처벌대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성애 자체를 처벌하는데다 그 대상까지 확대하려는 민 의원의 발의안은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또 한걸음 후퇴시킨다. 성소수자임을 밝힌 이송희일 영화감독은 23일 자신의 트위터에 "민홍철의 '동성간음죄'는 형식적으로 존재했던 군형법 92조 6항을 동성애금지법으로, 더욱 폭력적으로 확장하는 희대의 퇴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한국은 동성애를 금지하는 나라가 아니지만, 졸지에 (동성애) 금지국이 될 상황에 놓였다"며 "차별금지법 철회를 포함, 발의안 많이 만들어 칭찬받고 싶은 민주당 의원들이 그 무지 때문에 엄청난 민폐를 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군인권센터와 인권연대도 이날 "민 의원의 군형법 개정안은 헌법이 보장하는 성적 자기결정권과 평등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국회가 비준동의한 국제규약에도 어긋난다"는 검토 의견을 냈다. 비판이 거세지자 민홍철 의원실 관계자는 25일 "'동성애'란 표현을 수정하거나 법안 발의 진행을 좀 더 검토할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2013년 4월, 한국 성소수자들에겐 '잔인한 달' 프랑스는 '반가운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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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하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 최종 통과를 보도하는 <르 몽드> ⓒ 르 몽드


연이은 논란 속에 한국의 성소수자들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 말하고 있지만, 프랑스의 성소수자들은 달랐다. 4월 23일(현지 시각) 프랑스 하원은 동성애자들의 결혼과 자녀 입양을 허용하는 '동성결혼법안'을 찬성 331표, 반대 225표로 가결했다. 세계에서 14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것이다. 

지난 1월과 3월, 종교계 등으로 이뤄진 프랑스 보수단체들은 이 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주도했고, 최근에는 하원의원과 동성커플을 상대로 한 테러 위협마저 있었다. 그럼에도 법안은 가결됐다. 반대 여론에 '법안 철회'라는 보기 드문 상황이 빚어진 한국과 상반된다. 이날 크리스티앙 토비라 법무부 장관은 법안 통과를 "위대하고 고귀한 싸움"에서 승리한 것에 빗댔다. 동성결혼은 프랑스뿐 아니라 미국과 영국, 아일랜드 등 다른 나라에서도 합법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성소수자 A씨(33)는 25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한국은 지금 세계적 흐름을 거스르면서 인권 후진국으로 가고 있다"며 표현했다. 이미 노무현 정부 때 한 차례 차별금지법 입법 무산을 겪었고, 이명박 정부 시절엔 인권 전반이 후퇴한 만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지고 화가 난다"고도 했다. 또 "UN인권이사회에서 (한국에) 차별금지법 제정과 군형법 동성애처벌조항 삭제를 권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제 사회 권고와도 정반대로 가는 상황이니 우리는 UN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은 2006년 초대 이사국으로 선출된 이후 계속 연임에 성공, 현재도 이사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UN인권이사회가 2011년 6월 성적지향 등에 따른 인권침해를 우려하며 통과시킨 '인권,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에 대한 결의안'은 과연 지켜지고 있는가. 아니, '최초의 한국 출신 UN사무총장'이라며 그토록 자랑스러워 한 반기문의 약속조차 우리는 지키지 못하고 있다. 인권의 풍경은 오늘도 스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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