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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감밭 근처에서 우연히 지역 후배를 만났다.
후배 "행님 오랜만인데 한 잔하고 가이소."
나 "한 잔은 좋은데 먹을 만한 데가 있나?"
후배 "우리 동네 슈퍼에서 무면(먹으면) 되지 예."
나 "그것도 괜찮지. 콜."
그렇게 들른 곳이 마을 사랑방겸, 매점겸, 슈퍼겸, 식당겸, 술집인 '○○아지매집'이다. 밖에서 보기엔 완전 그냥 가정집이다. 영업집이란 걸 알리는 간판도 뭐도 아무것도 없다. 문 열고 들어가기 전엔 이곳이 물건을 파는 영업집일 거라는 건 아무도 모를 것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창틀 문 앞에 달랑 맷돌 하나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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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도 간판도 없는 가게입구 멧돌 댓돌하나가 손님을 맞는다 ⓒ 서재호
테이블은 없다. 바둑판이 식탁을 겸하고 있다. 의자도 달랑 하나. 둘이 가면 한 명은 서 있거나 문지방에 걸터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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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블 없음, 의자 달랑하나. 그래도 동네 사람들은 늘 이집을 찾는다 ⓒ 서재호
주인도 보이지 않는다. 손님이라야 늘 동네 사람들이니 손님들이 알아서 '셀프'한다. 메뉴도 몇 가지뿐이니 선택할 것도 없고 술은 냉장고에서 직접 꺼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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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블 대신 바둑판이지만 푸짐한 과자(?)를 안주삼아 한잔을 기울이고... ⓒ 서재호
후배와 한잔 술을 기울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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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처음엔 갸우뚱? 나중엔 아하! ⓒ 서재호
'주인도 없는데 나중에 계산은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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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징맞은 볼펜 꽂이 이렇게 써놓아도 주인은 누군지 알까? ⓒ 서재호
그 궁금증은 잠시 후에 풀렸다.
둘이서 맥주 세 병을 나눠 먹고 일어섰다. 한잔 사겠다고 큰소리친 후배가 돈을 꺼내는 대신 선반 앞에 섰다. 거기엔 종이 박스 하나와 그 박스 가운데에 꽂혀있는 볼펜이 보였다. 이름 하여 '외상장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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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의 흔한 외상장부 적어놓은 글귀가 재미있다 ⓒ 서재호
이 집은 동네 편의점인 셈이다. 24시간 편의점과 같다. 밤낮이 없다. 주인은 가게에 있을 때도 있지만, 없을 때가 더 많다. 손님이라야 같은 동네 사람들. 평생을 봐 온 사람들이다. 알아서 먹고 먹은 만큼 이 외상장부에 적고 간다. 후배도 익숙하게 먹은 날짜와 음식 종류를 적고 돌아 나온다. 나는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어 사진을 몇 장 찍어봤다. 그중에서 누군가 적어 놓은 글귀가 재밌다.
"할머니, 바나나킥 사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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