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동생의 줄무늬 셔츠... 저는 목이 메었습니다

[공모-가족이야기] 막내의 일등성별

등록 2013.09.12 16:48수정 2013.09.1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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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여행박사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하는 '가족이야기'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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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모두가 그렇지 않겠지만 출생 순위에 따라 성격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학설이 있다. 맏이는 둘째가 생기면 페위된 왕과 같이 혼자 적응하는 전략을 습득하게 된다. 막내는 크고 힘센 형들 사이에서 독립심이 부족할 뿐 아니라, 열등감이 크다는 것이다. 그 열등감을 보충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하는 막내들 중에는 유능한 예술가나 체력인이 많다고 한다.

막내는 부모의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지 못한 채 태어난다. 또한 억척스럽게 생을 꾸려가는 부모의 보살핌보다 형제들의 그늘 속에 자라며, 부모의 마지막을 일찍 직면하게 된다. '막내의 울음소리가 저승까지 들려올 것 같아 눈을 못 감겠다'는 어느 어머니의 애틋함처럼 막내는 열 손가락 중 가장 뼈마디 아픈 손가락일 수 있다.

15년쯤 전 이야기다. 나에게는 밑으로 남동생이 둘 있다. 그중 큰 동생은 공부와는 적성이 안 맞는지 대학 졸업도 못하고 말았다. 가까스로 소규모 기업체의 가스 배달을 맡게 된 그는 일이 무거운 가스통을 배달하는 일이어서 늘 청남방이 후줄근하게 젖어 있었다. 부모가 이혼해서 박봉인 아버지 밑에 있다 하지만 언제나 보면 그 옷 한 벌이었다.

가끔 누이의 집이라고 들르면 얼음을 띄운 미숫가루 한 잔 들이키고 나면 그뿐, 휘적휘적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돌아선 날이 더 많았다. 그런 날은 나도 모르게 희미한 그림자처럼 탈진하여 하루를 빼앗기곤 했다.

모처럼 옷 한 벌 사주겠다고 동생을 불러냈다. 그는 짐짓 고상한 갈색 줄무늬 와이셔츠를 골랐다. 좀 톡톡해 보이는 하늘색 남방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그랬더니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디자인이 맘에 안 든다며 실제 이상으로 손을 내저었다. 누나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한 과장된 몸짓임을 왜 내가 모르랴.

이듬해 막내동생이 군에 입대하는 날이다. 새벽녘에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도착하자 아침이 부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동생은 배웅나온 친구들 몇몇과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바짝 자른 머리 밑으로 동생의 귓볼이 갓 정미한 곡식의 배아처럼 투명하다. 거뭇하게 그을은 귓볼에 '충성' 하고 거수경례를 붙이며 현관을 들어설 동생을 떠올리며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랬다. 어머니도 동생의 손에 간식을 쥐여주며 몇 마디 말한다.

곧이어 아버지가 다가왔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보자 흠칫 놀라며 마치 못 볼 사람이나 본듯 휭하니 등을 돌린다. 두 사람은 막내가 열네 살 때 헤어졌으니 약 십여년만의 해후인 셈이다. 내게 있어 두 사람의 만남은 눈물겹도록 소중했건만, 아버지는 여태도 마음을 풀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권하는 음료수를 자식들 앞이라 그런지 차마 거절도 못하고 억지로 받아 마신다. 시간은 과거를 추억으로 미화시킨다고 했건만 아버지는 망각의 기법을 익히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다.

막내가 탄 버스가 떠나려는지 '부릉부릉'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린다. 아까까지도 웃음기를 보이던 막내는 이제야 실감이 나는지 눈자위가 붉어진 채 손을 한번 흔들고는 차창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막내를 떠나 보내기 위해, 우리 가족은 다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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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군 육군 제3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열린 신병수료식에서 훈련병들이 백골구호를 제창하고 있다.(자료사진) ⓒ 연합뉴스


그때 문득 내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이 있었다. 갑자기 목이 뻣뻣하게 굳어오는 것을 느꼈다. 막내가 입은 와이셔츠는 내가 큰동생에게 사준 바로 그 갈색의 줄무니 와이셔츠였던 것이다. 부모가 함께 있지 않아도, 누이가 곁에 없어도 저희들끼리 서로를 다독이고 위해주는 그들의 나눔에는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었다. 늘상 그들은 나에게 동생이라기보다 자식과 같은 심정으로 자리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대견한 성장 앞에 목이 메어왔다.

부모의 이혼에 심리적 타격이 가장 컸던 막내는 카세트에 팝송 테이프을 감아내리며 자신을 추스려왔다. 그런 막내가 의젓이 입대를 하는데 왜 아버지는 막내를 위해서라도 어머니에게 다정한 눈길 한번 못 주는 걸까? 그 나이에 가지기 쉬운 자존심인가? 아니면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을 거꾸로 드러내 보이는 걸까?

막내를 떠나 보내기 위해 잠시나마 만난 가족들. 그러나 기쁨처럼 번져오는 유열도, 자식을 보내는 이별의 아픔도 쉽게 드러내놓지 못했다. 웬만한 가정이라면 입대하는 아들의 손목을 잡고 섧은 눈물을 쏟았겠지만, 십여년 만에 만난 네 사람은 또 다른 이별을 앞에 두고 소리없이 울음을 삼켜야 했다. 우리들의 슬픔은 눈물로도 씻어내지 못할 더 큰 샘을 지니고 있었나보다. 서로의 뇌리에 다시는 지울 수 없는 문신처럼 저마다의 가슴에 새겨져있는지도 모른다.

막내만 결혼해서 잘 사는 걸 보면 여한이 없다고 되뇌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눈꺼풀이 이제는 무겁게 내리 덮히고 팔목에 반점이 나날이 검은 꽃을 피우는데. 어렵게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그리 길지 않은데.

세월이 흘러 막내의 결혼식 날, 예비신부인 올케에게 결고운 순백의 와이셔츠를 사서 건네주었다. 그날만은 티끌만 한 얼룩 하나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동생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오기까지의 아팠던 종양들과 시름의 흔적에서 그를 한시도 머물게 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두 분 부모님께서 그간 감추고 사셨을 인간적인 애련과 애증의 찌꺼기마저 정갈하게 표백하고 싶었다.

감청색 턱시도에 받쳐 입은 동생의 와이셔츠는 눈이 부셨다. 양복 저고리에 꽂힌 순백의 백합과 그 옆에 마음씨 고운 올케와도 잘 어울렸다. 빳빳하게 날이 선 와이셔츠 칼라에서 나는 동생의 환한 미래를 점쳤다. 그리고 그날 그가 입은 와이셔츠의 요요한 눈부심 속에 한없이 묻혔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한없는 나약함을 고작 흰 셔츠에 기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은 곧 부모님과 동생들로 인해 늘 걸리던 우울의 굴레에서 벗어나고픈 심정이었을 것이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결혼 반주곡을 생각하면 축제의 코러스처럼 내 귀에 울려퍼진다. 그날 이후 내 속에 흐름을 정지했던 시냇물 노래 다시 여울지고, 스러져가던 젊음의 빛깔을 다시 찾은 듯한 기분이었다.

늦은 밤 가끔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럴 때마다 그날 막내의 어깨 너머로 화혼을 밝히던 촛불이 바로 저기, 서편 하늘에 일등성별로 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가족이야기(가족인터뷰)' 공모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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