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힘겨루기만... 내겐 참 벅찬 배우자였다"

[공모-가족인터뷰] 평생 엄마를 붙잡고 있던 아빠가 남긴 크나큰 선물

등록 2013.09.19 11:13수정 2013.09.1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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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여행박사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하는 '가족이야기'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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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아빠를 꼭 닮은 우리집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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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닮은 둘째 효심으로 키우는 둘째 ⓒ 정가람


오늘도 세 살난 둘째 산들이와 옥신각신이다. 다섯 살 까꿍이도 아직 옷으로 고집을 부린 적이 없는데 둘째는 돌 때부터 제 마음에 드는 것만 고집한다. 호불호가 극명하고 고집 세고 예민한 아이인지라 처음 만난 사람도 산들이와 한두 시간만 같이 있으면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그래도 셋 중 제일 애교가 많고 제가 원하는 대로만 되면 늘 웃는 우리집 둘째. 예민한 만큼 섬세해 타고난 안목으로 둘째가 고르는 건 뭐든지 맛있고 좋다. 게다가 셋 중에 외모와 몸매, 영리함까지도 가장 좋은 듯하다.

이렇게 셋 중에 가장 키우기 힘든 둘째, 누구를 닮아 그런가 생각해보니 영락없는 돌아가신 친정 아빠다. 외모, 몸매, 성격, 취향, 식성, 심지어 걷는 모양까지 판박이다. 둘째 때문에 힘들어하면 남편은 못다 한 효도한다 생각하라지만 내겐 친정 아빠를 닮아 더 힘이 든다. 친정에 갈 때마다 아이와 씨름하는 나를 보며 안타까워하시는 친정 엄마께서 아빠를 보낸 후 밀려오고 쓸려간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산들이를 보니까 이제야 알겠어. 아빠가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충실했는지, 인생을 얼마나 잘 살았는지. 넌 산들이 때문에 힘들겠지만 난 산들이한테 많은 걸 배워. 산들이처럼 살아야 되는 거였어, 자기 뜻대로. 산들이를 보면서 이제야 아빠를 이해하게 되어서 산들이에게 참 고마워. 산들이가 너한테 키우기 까다로운 애인 것처럼 아빠도 내겐 참 벅찬 배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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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으로 시작했던 엄마의 사랑 그러나 부대끼며 살다 보니 사라져 버리고 ⓒ 정가람


엄마에겐 벅찬 남편이었던 아빠는 내겐 애증의 대상이었다. 엄마보다 아빠와의 추억이 더 많고 외모도 성격도 그리고 생각도 아빠를 더 많이 닮은 나였지만, 아빠가 아내와 아들에게서 채울 수 없는 자리를 내게서 채우려 하셨기에 난 아빠에게서 무척이나 벗어나고 싶어 했다. 출가외인이라고 결혼 후 조금 벗어났다 싶었지만,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내가 미처 몰랐던 아빠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마음을 헤아려드릴 시간도 없이 지난 봄 아빠는 갑자기 먼 길을 떠나시고 말았다.

마지막 인사도 못한 채, 아빠를 보내고 두 계절이 지나고 있다(관련기사: 3월 어느 날, 아버지가 인사도 없이 떠나셨다). '누군가를 잃고 크게 울기보다 그를 오래오래 기억하는 게 더 중요하다' 했는데, 일상에 치여 아빠를 잃어버린 슬픔도, 아빠와 함께 했던 웃고 울었던 기억도 어느새 잊고 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둘째에게서 아빠를 보며 아빠를 기억한다.

평생 힘겨루기 했던 아빠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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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힘겨루기 했던 부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엄마와 아빠 ⓒ 정가람

"엄마, 아빠한테 뭐가 제일 미안해?"
"평생 힘겨루기를 했던 거 같아. 아빠가 '똑똑한 니가 해봐라. 난 너한테 졌다. 넌 나한테 한 번을 안 진다' 그랬고, 나도 그런 소릴 듣고 살아서 '남편에게 지면 안 된다, 남편이 안 져준다' 그랬지. 그런 나 때문에 아빠가 많이 속상해 했어. 아빤 나한테 안 지고 싶어서, 나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자꾸만 일을 벌이고 난 어떻게든 막아보려 하고, 아빠는 그런 나를 원망하고. 무조건 반대하고 말릴 게 아니라 아빠랑 충분히 의논하면서 말릴 건 말리고 밀어줄 건 밀어줬어야 했는데. 수고한다, 잘한다, 고맙다 말 못하고 애쓴 마음 못 풀어주고 보낸 게 제일 아쉽고 미안해."


"아빤 왜 그렇게 엄마한테 인정받고 싶어 했을까? 동갑이라 그랬을까?"
"아빠가 그렇게 된 건 할아버지 때문인 거 같아. 아빠는 서울로 대학을 가 회계사가 되고 싶어 했대. 그런데 마흔 넘어 얻은 귀한 장남 군대 가면 총 맞아 죽는다고 교대에 아빠 몰래 원서를 넣고, 공부 못하게 공부방에 매일 밤 맥주를 한 상자씩 넣어주고 술친구를 붙이셨대. 당시 교대는 남자는 원서만 넣으면 다 붙었거든. 교대를 가서도 어떻게든 서울로 가보려고 애를 썼는데 잘 안 됐고, 결국 할아버지 곁에 남아 교사가 됐지."


"할아버지 원망을 참 많이 했겠다."
"그런데 할아버진 아빠를 무척 구박하셨어. 장남의 의무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고 교사가 되어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낮엔 학교 나가고 새벽엔 농사도 짓고 최선을 다했는데 늘 할아버진 아빠 하는 일이 못마땅하고, 제대로 못한다고 야단치고 마음에 안 들어 하셨지. 두 분이서 싸우기도 엄청 싸웠어. 그런데 아빠가 할아버지 하신 그대로 현재(오빠, 가명)를 야단치고 현재는 참다 참다 대들고…. 결국 피난시키다시피 현재를 분가 시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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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꿈 하늘을 둘둘 말아 피리를 불고 싶었다던 ⓒ 정가람

"아빠가 오빠에 대한 기대 때문에 그랬던 것처럼 할아버지도 아빠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거 아닐까?"
"그랬겠지. 그렇게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걸 아내인 내게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 했는데, 난 그런 아빠의 서러움을 알면서도 별다른 말을 못해줬어. 너무 열정이 넘쳐 자꾸만 여러 일을 벌이는 아빠가 벅차기도 했고. 하늘을 둘둘 말아 피리를 불고 싶다는 꿈, 참 허황된 꿈이었지. 재작년에 중환자실에서 죽다 살아 나와 겨우 지팡이 짚고 걸으면서 뭔가를 또 해보겠다고. 버섯도 소도 다 내가 키우고 있었는데."


아빠는 할아버지 때문에 스무 살 꿈은 접었지만 이후 평생 뭔가를 꿈꾸고 도전하셨다. 밤, 배, 가지, 버섯, 소, 돼지, 염소 등등. 그러나 아빠가 꾸는 꿈에 가족 모두가, 특히 엄마가 매달려 뒷수습을 하느라 너무나 고된 날들을 보내야 하셨다. 가족을 위한다는 아빠의 꿈은 가족의 시간과 자유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었다. 게다가 사고와 질병으로 병원 신세는 얼마나 자주 지셔야 했는지. 그 간병까지 모두 엄마가 책임져야 했으니 딸인 난 아빠 때문에 고생하시는 엄마를 보며 아빠 원망을 참 많이 했었다.

아빠가 우리에게 남긴 큰 선물, 엄마를 돌려준 아빠

"그런데 엄마,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빠가 먼저 떠나는 큰 희생을 해서 우리한테 '엄마'라는 큰 선물을 준 게 아닐까 하는. 아빠가 편찮으신 채로 계속 계셨다면 내가 애들과 친정에 와 맘 편하게 있기도 힘들었을 거고, 저번에 우리 이사할 때 엄마가 애들 봐주러 오기도 힘들었을 거고. 그런 생각이 드니까 아빠한테 너무 죄송하고 고맙고 그랬어."
"현재 집에 가서 빨래하고 밥 해놓고 현재 퇴근시간 기다리면서 나도 그런 생각을 했어. 강한 아빠에게 눌려 피난가듯 분가해서 지 마누라한테 대우도 못 받고 고아처럼 버려져 있었던 현재한테 니 아빠가 먼저 가는 걸로 나를 돌려줬구나, 아빠가 자식들한테 나를 주려고 양보를 하고 갔구나 하고. 현재한테 날 선물로 줬구나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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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의 가족여행 아이처럼 즐거워 하시던 아빠 ⓒ 정가람


"오빠가 아빠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고, 가장 큰 선물을 받았네."
"내가 늘 아빠 중심으로 사느라 현재를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어. 어릴 때 치료도 하고 증상에 맞게 교육도 잘 시켰으면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을 텐데. 부모가 둘 다 교사면서 특별한 교육도 못 시키고 제껴 놓았어, 살기 바쁘고 힘들어서. 결혼 후에는(오빠는 2002년에 중국동포와 소개로 결혼을 했지만 2012년 가을에 이혼을 하고 말았다) 더 제껴 놓았지. 아빠가 급격하게 안 좋아지기도 했고. 그 세월이 10년이었다. 그래서 아빠 간 후론 조금이라도, 하루라도 더 현재한테 가 돌봐주고 싶어. 어릴 때 못해준 거 이제라도 갚아주고 싶어."


오빠 얘기를 하며 울음을 참는 엄마는 내가 처음 본 엄마의 약한 모습이었다. 오빠는 어려서부터 행동발달이 남들보다 조금씩 늦었고 지금도 모든 면에서 조금씩 늦다. 오빠는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다. 내게 오빠는, 글쎄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엄마의 삼키는 울음을 들으며 나도 엄마는 물론 남편에게도 쉽게 꺼내지 않았던 오빠에 대한 내 마음을 처음으로 내보였다.

엄마의 아픈 손가락 엄마의 아들, 나의 오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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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뒷모습 그래도 든든한 장남 ⓒ 정가람

"아빠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해 이제와 이렇게 후회하는데, 오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참 쉽지 않아. 내가 동생이라 더 그렇겠지. 어릴 때부터 늘 오빠를 돌봐야했던 게 참 싫었어. 오빠에게 치여 늘 혼자 모든 걸 해야 하는 것도. 커선 오빠가 자기보다 잘난 동생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내 눈치까지 보는 것도 아는데, 그래서 오빠한테 더 잘해야지 하는데 그게 잘 안 돼. 아직도 난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오빠가 있는 애들이 부러워." 
"그런데 못난 자식이 효도한다고 현재가 있으니까 내가 지금 밥을 하고 반찬을 한다. 현재가 나한테 이렇게 큰 힘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 만약 현재가 똑똑해서 지 마누라랑 자식이랑 잘 살고 있었으면 난 진짜 갈 데가 없었을 거야. 이 큰 집에 혼자 가만히 있었어봐, 내가 어떻게 됐겠어. 성당일도 많으니 진주에서 산청으로 출퇴근 하듯 해. 그렇게 견디니 시간이 가고 세월이 가."

"아빠가 자주 그랬어, '현재가 그래서 현재 몫까지 니가 다 해야 해서 부담이 많이 될 거다. 그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어쩌겠냐, 가족인데. 그래도 현재가 나랑 네 엄마 자식이니 조금 늦어도, 언젠가는 될 거다, 그때까지만 오빠 몫까지 니가 좀 해.' 아빠한테처럼 나중에 후회 안 하려면 있을 때 잘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네, 엄마."

평생 엄마를 놓아주지 않았던 아빠가 엄마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주었고, 짐이라 생각했던 오빠가 엄마에게 힘을 주고 있다는 얘길 들으니 '잘난 것도 없이 그동안 아빠와 오빠에게 주제넘게 잔소리하며 살았구나' 미안하고 또 미안해졌다. 그러나 이 집에 살면서 딸로서, 동생으로서 나도 힘든 부분이 분명 있었다.

상처의 대물림, 마더쇼크, 파더쇼크

"근데 엄마, 아빠의 그 인정받지, 사랑받지 못했던 상처가 나한테도 내려왔어. 어릴 때 내가 1등을 해서 엄마아빠한테 칭찬을 받겠구나 잔뜩 기대해서 왔는데 엄마가 아빠한테 '애가 1등 했는데 칭찬을 하면 기가 살아서 공부를 안 할 거다, 더 현재를 이기려 들거다' 하는 말을 듣고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지금까지 난 제대로 칭찬받아 본 적이 없는 거 같아."
"내가 보기엔 넌 성격도 강하고 뭘 하든 잘하고 혼자 잘 하니까 칭찬 안 해도 되겠지 했지. 또 너무 강하니까 더 칭찬하면 현재한테 상처가 될까봐."


"집에서 인정받지 못한 걸 대신 하려고 밖에서 얼마나 긴장하고 애쓰며 살아왔는지 엄마는 모르지? 결혼 후엔 아빠가 엄마한테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남편에게 인정받고 싶은데, 이서방도 엄마처럼 가족끼리 뭘 굳이 말로 하냐고 마음으로 알면 된다고 해. 그래서 내 마음 한구석이 늘 허전해. 결혼 초엔 엄마 고생하는 게 헤아려지더니 애들 낳고 살수록 아빠가 참 외로웠겠다, 허전했겠다 마음으로 이해가 가. 돌아가시고 나니 더더욱."
"난 어릴 때부터 너무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받아서 그 기대와 부담감이 너무 커서 힘들어서 너한테는 그런 걸 안 주고 싶어서 칭찬을 안 했는지도 몰라. 또 아버지가 나를 너무 칭찬하고 키우셔서 친정 오빠에게 늘 미안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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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4대 외할머니 엄마를 낳고, 엄마 나를 낳고, 나는 까꿍이를 낳고 ⓒ 정가람


"그래도 우리한테, 특히 나한테 너무 엄했어. 아빤 술 드시고 나한테 얘길 많이 해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표현은 많이 해주셨지."
"니 외할머니가 무척 엄하셨어, 특히 나한테. 난 어릴 때 친정엄마에게 야단맞았던 기억뿐인데 동생들은 꾸지람 들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더라. 그렇게 자란 내가 싫었는데 나도 모르게 너희들을 엄하게 길렀고, 너도 애들을, 특히 까꿍일 엄하게 키우더라. 네가 애들 야단치는 거 보는 거 정말 괴로워, 어린 날 내 모습을, 넌 혼내던 날 보는 거 같아서."


"엄마가 까꿍이한테 정말 한없이 잘해주고 같이 놀아주고 그러는 거 보면 좀 서운하기도 해. 내 기억 속의 엄만 늘 바쁘고 무서웠는데…. 내가 엄마랑 얼마나 놀고 싶었는데…. 하긴 까꿍이도 매일 그래, 엄마랑 놀고 싶다고(웃음)." 
"엄마가 아이를 야단치는 게 훈육이 아니라 감정싸움이더라. 엄마가 지치기도 하고 여자라 감정적이 되어서. 따끔하게 야단을 치면서 훈육을 해야 하는데 자꾸만 서로 지치는 감정싸움을 해. 니가 까꿍이 꾸중하는 걸 보면 꼭 반복을 해. 나도 그렇게 널 키웠겠지. 한 번 말해가지곤 아이들이 안 들을 거 같고, 한 번 말해선 내 마음이 안 풀릴 거 같으니까. 그런데 애들은 한 번 이상 하면 안 듣거든."


"'마더쇼크', '파더쇼크'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공감이 가. 성격도, 상처도 육아도 다 대물림 같아. '본대로 자란다'더니 모성도 부성도, 훈육도 다 대물림 되는 거 같아."
"그게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원죄'라고도 하더라. 산들이는 네 아빠를 닮았고, 까꿍(첫째)인 내 성격 그대로라 걱정이다. 소심하고 그런 게 애들한테 안 내려가야 되는데 손주들한테까지 내려가서. 거기에 엄하게 키운 것까지 너한테서 반복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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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끼는 가족사진 대화가 필요해 ⓒ 정가람


상처까지 대물림되는 자식과 손주들을 보시면서 엄마는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인터뷰 내내 부탁하고 또 강조하셨다.

"지금까지 말한 모든 걸 이겨낼 수 있는 게 가족 간 대화야. 부모라도 어린 자식에게 상처 준 게 있으면 아주 작은 거라도 미안했다 사과를 해야 상처가 바로 치유가 될 거 같아. 다 커서 지난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한다고 해도 상처 받고 자란 그동안의 세월은 보상받지 못하거든. 부모와 자식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잘 들어줘야해.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야단만 치지 말고 뭘 바라는지 얘기를 하셨다면, 아빠랑 나도 서로에게 원하는 걸 얘기하고 듣고 싶은 얘길 해줬다면, 또 우리가 너희들 얘기를 많이 들어주고 충분히 사랑을 줬다면 우리 가족은 지금과 분명 다를 거야. 그러니 아이들과 마음을 터놓고 얘기해, 우리가 너희들에게 못해준 거 넌 꼭 해. 지금은 막내가 돌도 안돼서 니가 진이 빠져 못하는 거 알지만 그래도 좀 더 애를 써. 너처럼 안 키우려면, 나처럼 후회 안 하려면."

"막연히 여섯 살 되기 전까진 집에서 키우자 하고 셋 다 끼고 있긴 한데, 너무 방치하는 건 아닌가, 내 육아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물려주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되고 그런데, 엄마가 교육자 입장에서 보기엔 어때?"
"니가 힘들어 그렇지 집에서 셋이 어울려 지내는 것도 다 교육이 돼. 특히 까꿍이랑 산들이처럼 정반대의 성격인 아이들이 같이 자라면 서로의 성격을 보면서 부족한 점을 배우고 자신을 고치기도 하겠지. 산들이가 까꿍이 보면서 적응 잘하는 거 배우고 까꿍인 산들이가 고집스럽게 자기 거 챙기고 섬세한 거 배울 거고. 좀 힘들어도 끼고 사는 거 잠깐이니까 참고 네가 우리한테 부족했던 걸 채우면서 잘 키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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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대물림 그래도 나를 이룬 살과 피 ⓒ 정가람


아빠를 보낸 후 엄마는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빠에게 매여 있던 엄마의 삶이 해방 아닌 해방을 맞으면서 엄마는 비로소 아빠의 삶을 그리고 엄마, 자식들의 삶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신 것이다. 아빠가 돌려주신 엄마라는 선물을 받은 우린 늦었지만 아빠를 이해하고 서로를 헤아려주며 비로소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재우며 불 꺼진 방 안에서 어렵게 말문을 열었던 엄마와의 인터뷰는 어느 순간 환한 식탁 위로 올라왔고, 자정이 지나 이야기소리에 자다 깬 다섯 살 딸아이의 간절한 속내까지 나오게 했다.

"까꿍아, 엄마가 너한테 꾸중할 때 한 번에 안 하고 또 하고 또 하니까 싫지? 엄마가 꾸중을 한 번만 하면 좋겠지? 괜찮으니까 할머니한테 말해봐."
"엄마가 다신 화 안냈으면 좋겠어. 잘못하면 한 번만 얘기하면 좋겠어."
"그래, 앞으론 엄마가 니들이 아무리 잘못해도 '이걸 잘못했구나, 조심해야지' 하고 화내지 않고 한 번만 얘기할게. 그렇게 니들 키우면 엄마는 성인군자가 되고 너희들은 천사처럼 정말 잘 자라겠구나. 이렇게 하라고 엄마?(웃음과 한숨 동시에)."
"그래. 잘하네. 나도 이렇게 해주라고?"
"응(웃음)."


지난날 상처와 기억을 끄집어내고 조각조각 이어 붙였던 인터뷰는 아빠가 남긴 가족들이 대물림 된 상처를 극복하고 사랑의 대화로 건강한 가족을 만들어갈 수 있는 물꼬를 트며 마무리 되었다. 돌아오는 추석, 처음으로 아빠 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아직도 아빠의 부재가 믿기지 않는다. 지우지 못한 아빠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면 아빠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고, 친정에 내려가면 아빠가 환하게 웃으시며 사위 붙들고 맥주 한잔 하자 하실 것만 같다.

그래, 아빠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늘 우리 곁에 계시고 앞으로도 함께 하실 것이다. 비록 지금까진 상처였지만, 내 안의 나로, 둘째 산들이의 모습으로 대물림 된 아빠의 모습을 보듬으며 아빠를 오래오래 기억하며 엄마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로, 아이들의 지혜로운 엄마로, '인간 정가람'으로 건강하게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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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가장 아끼는 아빠의 사진 엄마의 휴대폰 바탕화면 ⓒ 정가람


덧붙이는 글 가족이야기 공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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