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무시하던 장모님께 '한방' 날렸습니다

[가족이야기] 자격지심 사위와 여장부 장모님

등록 2013.09.18 21:20수정 2013.09.1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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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여행박사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하는 '가족이야기'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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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과 함께 한 즐거운 여행 장모님과 우리 네 가족은 매일매일 부대끼며 아직도 서로가 적응하고 있다. 장모님이 특이한 성격 탓도있지만 사위의 무뚝뚝함도 한 몫한다 ⓒ 이혁제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은 소위 말해 잘 나가는 사위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최소한 친구들 모임에서 "자네 사위는 무슨 일 해?"라는 물음에 서슴없이 말 할 정도의 회사에 다니거나 실제로 돈 좀 버는 사업을 하는 백년손님들이나 받는 호사일 것이다.

경제적 능력이 모자라면 장모 비위라도 잘 맞추는 성격이라도 타고나야 한다. 한 10년 쯤 지나면 웬만한 장모들은 사위 덕에 호강하려던 꿈은 포기하게 되고 당신 딸이 좋으면 그만이지 하고 애써 정을 붙이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잘 나가는 사위도 붙임성이 좋은 사위도 아니었다. 보통 장모들은 사윗감으로 안정적인 직장인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결혼 당시 나는 대학원을 다니면서 학원에서 애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혹시 교수가 될 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결혼 승낙을 했는지 모르지만 교수되기가 그리 쉬운가! 대학원을 마치고 시간강사에서 더 이상 진전은 없었다.

 처갓집 사촌들은 왜 그리 잘 나가는지

우리 처갓집은 믿거나 말거나 왕년에 당신네 땅을 밟지 않고는 사방 십리를 갈 수 없었다고 할 정도로 부잣집이었다고 한다. 아내가 어렸을 적 장모는 기사가 딸린 자가용을 타고 다녔다고 하나 결혼 당시 상황을 보면 믿을 수는 없었다. 아내가 거짓말 할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믿기야 하는데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 말이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처갓집 인적자원은 훌륭했다. 특히 사촌들은 누구하나 모자람이 없이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장모님 남매들은 며느리, 사위 맞이가 인생 후반부 절대 절명의 목표이기도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Y대를 나온 이모님 사위는 대기업 사원으로 시작하여 현재는 억대 연봉의 임원급이 되었고, S대 박사학위를 받고 공기업 과장급으로 취업한 사촌처남은 동급의 며느리를 처갓집에 선물했다.

나는 처갓집 결혼시장에서 최하품이 되고 만 것이다. 나의 등장은 자존심 강한 장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고 이것은 죄 없는 내 아내에 대한 짜증과 나에 대한 보이지 않는 무시로 돌아왔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내 아들과 딸에 대한 사랑은 어떤 외할머니 못지않았다. 사실은 여느 외할머니도 하지 못한 사랑을 외손자들에게 보여주었다. 당신이 지금까지 다 키워 주셨으니까.

그런데 우리 애들은 외할머니보다 나를 더 좋아한 것 같다. 내가 장모님이라고 해도 서운할 정도이다. 속으론 미안하다가도 "외손자들은 키워줘 봤자 다 소용없다"고 대놓고 말하는 장모님을 볼 때면 속으로 쾌재를 부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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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게 벌 서는 아들과 딸 장모님은 외손자 외손녀을 다 키워주셨다. 그러나 가끔 친손자를 나두고 외손자들을 키우고 있는 상황에 짜증을 내기도 한다. ⓒ 이혁제


생활 습관의 차이는 장서 갈등의 씨앗

시끌벅적한 오남매와 함께 시골에서 자랐던 나와 명색이 기사 딸린 자가용을 타고 학교 다녔던 1남 1녀의 처갓집 문화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나는 성격이 급해 밥을 빨리 먹는 편이다. 이런 나의 식습관은 형제들이 많아서 서로 먼저 먹으려다 생긴 버릇으로 간주되었고, 새 옷을 산 다음 날 곧장 입고 출근하면 촌놈들은 새것만 좋아한다는 핀잔으로 돌아왔다.

사실 여태 같이 살고 있지만 처갓집의 이런 부분은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장모와 아내는 새 옷을 사도 며 칠 지나야 입고 나가고, 누가 케이크를 선물해도 바로 먹지 않고 다음 날이나 먹었다. 어떤 때는 냉장고에 쌓아 두다가 먹지 못하고 버릴 때도 있었다.

밥이 조금 남아서 새로 해야 하는 경우에도 나 같으면 막 지은 밥을 먼저 먹고 남은 밥은 나중에 누룽지로 끓여 먹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장모님은 식은 밥을 먼저 먹고 새 밥을 나중에 먹는다. 이러면 남는 것은 결국 새로 지은 밥이 된다. 아직도 상호간에 의견 절충이 안 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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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의 장모님과 아들 영찬 칠순에도 정열의 빨간 옷을 즐겨입는 장모님은 나와는 정 반대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장서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 이혁제


장모님은 이과 기질, 나는 천생 문과생  

갈등은 이런 생활방식뿐이 아니었다. 장모와 사위의 기질 차이는 둘의 화합을 저지하기에 충분했다. 장모님은 남자는 밖에서 싸울 줄도 알아야 하고 집안의 사소한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당신이 이런 성격과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웬만한 사내들도 우리 장모에게 잘못 걸리면 시쳇말로 뼈도 못 추리고 말았다. 또한 집안의 크고 작은 공사는 당신 손으로 대부분 해결했다. 이것을 보면 왕년에 부잣집 사모님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나의 의심을 확신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또한 무능한 사위를 두 번 죽이는 꼴이기도 하였다.

장모님은 집 안의 전등이 깜박깜박하면 말하기 전에 내가 알아서 교체해 놓기를 원했다. 화장실 변기에서 물이 새면 부품을 사가지고 와서 고쳐놓기를 원했고, 내 차는 물론 장모님 차의 엔진오일이나 와이퍼를 제 때 갈아주기를 원했다. 남자가 만물박사도 아닐 텐데 집안의 모든 하자는 남자의 손을 거쳐 제자리로 돌아 와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나는 기계에는 관심이 없다. 자동차는 고장 나기 전까지 그냥 타고 다니고, 집안의 전구는 아예 불이 안 들어와야 그때서야 야단을 맞고 갈기 일쑤고, 그것도 한 번에 갈지도 못한다. 나는 전기가 무섭다. 나는 천생 문과생이다. 움직이는 것보다는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고, 컴퓨터 게임 보다는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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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태의 장모님 아직도 외모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여성이면서 동시에 요리까지 잘하는 장모님이다. ⓒ 이혁제


아들 위한 요리솜씨는 결국 사위 배만 불려

우리 장모님은 얼굴도 예쁘지만 요리 솜씨는 더욱 훌륭하다. 이런 점은 양갓집 마나님이다. 물론 못마땅한 사위를 위해서는 그 훌륭한 솜씨를 뽐내지 않는다. 그러나 일 년에 두 번 당신이 가진 온갖 솜씨를 펼칠 날이 있다. 바로 설날과 추석이다. 나를 위한 것도 아니지만 조상의 은덕을 기리기 위한 것도 아니다. 장모님의 음식 향연은 오로지 명절날 귀향하는 손위 처남과 하나밖에 없는 친 손자를 위해서만 펼쳐진다.

아무리 무서운 장모라고 해도 명절이 다가오면 성격이 온순해진다. 정말 당신에게 아들이란 어떤 존재일까 할 정도로 지극 정성이다. 아들과 손자를 기다리는 설렘이 얼굴 한 가득 드러난다. 그리고 일주일 전부터 야단이다. 하루에도 시장을 몇 번 드나들고 김치며, 소고기며, 산낙지며 지난 명절에 처남댁 식구들이 잘 먹었던 것을 기억했다가 준비하느라고 즐겁게 분주하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는 아내의 입술은 퉁퉁 부어있다. 장모님은 극구 부인하지만 어려서부터 남녀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아내는 이런 장모님의 모습에 화가 절로 나나보다. 어렸을 적 오빠에게 받은 트라우마가 다시 살아난 듯하다. 그러나 승리는 결국 우리의 것이 된다.

장모님에게는 불행이지만 우리에게는 다행히도, 처남은 서울사람이 다 되었는지 입이 짧다. 조카 녀석도 우리 애들에 비하면 짧기는 마찬가지다. 지극정성 해 놓은 다양한 음식들 앞에서 손이 가는 것은 막 담근 김치뿐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는 장모는 서울 음식에 질려 엄마 김치만 찾는다고 안타까워 하지만 어쩌겠는가! 타고난 입이 그런 걸! 이제 우리 가족이 나설 때이다. 매 년 반복되는 행사라 눈치도 봐 지지 않는다. 단지 음식 하느라 수고한 장모님과 입이 짧은 처남에게 고마울 뿐이다. 상상해 보시라. 아들 위해 며칠 공들여 만든 음식을 먹고 있는 사위를 보고 있는 장모의 심정을.

나도 본때를 보여주어야지 그러나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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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2 지방선거 때 선거 포스터 "꼭 하고싶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에 꼭 당선되서 장모님께 본때를 보여주고 싶다는 강한 열정이 들어있었다. ⓒ 이혁제


결혼 생활 10년 째 나도 이제는 무엇인가 보여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0년   간의 나의 사회생활은 가정에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인정은 직업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지난 10년 간 지역에서 다양한 봉사활동과 교육운동을 하면서 여러 청년단체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2010년은 나에게 있어 잊을 수 없는 해였다. 대외적인 명분은 차치하고라도 지금까지 처가 식구들에게 기죽게 만들었던 사위에서 한 순간에 잘 나가는 사위로 탄생 할 지도 모르는 기회가 온 것이다. 바로 2010 6.2 지방선거의 해였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 지방의원에 입후보해 있었다.

지역의 교육과 문화의 양극화 해소를 제도권으로 들어가서 직접 이루겠다는 야심찬 대외명분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번 기회에 장모님에게 사위 덕에 나팔 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동안의 못난 사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위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당겨 치른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득표율 11%로 간신히 선거비용의 절반은 건졌지만 처갓집에서 추락할 대로 추락한 나의 입지는 지하 주차장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드디어 기회가 오다

장모님과 함께 살았던 우리 식구들은 아이들이 크자 분가를 하였다. 그래도 멀리 보내기 싫었는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서 살게 되었다. 예전보단 훨씬 편해졌지만 그래도 매일 한 두 번씩은 왕래를 하는 처지다. 그런데 밤에 장모님에게 전화가 왔다. 올 추석에 내려 올 처남 식구들을 위해 한 참 바쁠 텐데 무슨 일로 전화를 했을 까 궁금했다.

장모님은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나보고 잠깐 내려와 보라고 했다. "내가 무슨 잘 못을 했나"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약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주섬주섬 옷을 집어 입고 장모댁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런데 비밀번호가 틀렸는지 이상한 소리만 났다. "아니 이거 비밀번호 바꿔놓고 이야기도 안 했구만" 속으로만 투덜거렸다. 다시 시도해보았다. 그랬더니 이번엔 열린 것이 아닌가. "이런 내가 왜 이러지, 나는 아무 잘 못 안 했어. 침착하자." 마인드 컨트롤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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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갈등을 풀어 준 가스레인지 장서갈등은 작은 사건으로 쉽게 풀어질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왜냐하면 장모와 사위는 가족관계이기 때문이다. ⓒ 이혁제


가스레인지야 고맙다

장모는 온통 짜증이 나 있었다. 범인은 내가 아니라 바로 가스레인지였다. 아내가 작년에 바꿔준 가스레인지에 점화가 안 되었던 것이다. 장모님 말로는 오늘 하루 종일 가스 불이 안 켜져서 밥도 못 해 먹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나 보고 고쳐보라는 것이다.

삼일 후면 추석인데 아들을 위한 하루를 허비하였으니 얼마나 애가 탔을까 생각만 해도 알만 했다. 그러면서 유명회사도 아닌 싸구려 가스레인지를 사주어서 고장 나고 애프터서비스를 받으려고 전화를 100번을 해도 안 받는다고 죄 없는 아내에게 그 탓을 돌렸다. 어려서 오빠와 차별을 받았다는 아내의 말이 사실임을 믿게 한 순간이었다.

나는 꼭 고치고 싶었다. "장모는 하다하다 안 되니까 혹시나 해서 나를 불렀을 거야. 물론 내가 고칠 것이라고 기대도 안 하면서" 나는 장모가 원하는 기술깨나 있는 남자인척 가스레인지 주변을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손잡이를 돌려보고 가스 밸브를 열었다 닫았다 해보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다. 뒤에서 장모님이 어떻게 하나 보고 있을 것인데 긴장되기 시작했다.

"그래 네가 그럴 줄 알았어, 나도 못하는데 네가 고칠 줄 알겠어, 그냥 올라가 봐" 장모의 입에서 곧 이런 말이 나올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가스레인지를 뜯어보자" 나는 가스레인지 밑을 들여다보며 드라이버로 나사를 풀려고 했다.

이 때 드디어 장모의 입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됐어, 그만 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뜯었다가 사고나 치지." 나는 순간 짜증 섞인 화가 났다. '그럼 왜 불렀어요?' 차마 입 밖으로 나올 수 없어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아니 할 수 있어요. 잠깐만 계시라니까요." 그래도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나는 큰 소리로 약간 화가 났다는 것을 암시하게끔 내 뱉었다. 순간 장모님도 당황한 것 같았다. 생전 말 대구도 못한 놈이 이런 말을 했으니 움찔 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사태는 더욱 심각해 졌다. 큰 소리는 쳤는데 사태의 실마리는 풀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꼬리를 내릴까. 여기서 더 나가서는 나에게 승산이 없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무능력을 보여주었으면 될 텐데 괜히 객기를 부렸다 싶어 후회가 막심했다.

그러나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역시 교회에 나간 효과가 있었다. 사실 우리 집에서 나 혼자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이 점도 장모가 나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이유였다. 가스레인지 모서리 부분에 건전지 표시가 보인 것이다. 그랬다. 가스레인지에 불이 붙지 않은 것은 건전지 수명이 다 되어서 불꽃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순간 나는 장모님의 노안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다 됐어요. 간단하구만."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손잡이를 돌리자 이글거리는 불꽃이 올라왔다. 파랗다 못해 시퍼런 가스 불꽃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진짜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였다. 그리고 이 번 추석 음식은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먹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것 뿐이 아니었다.

돌아가려는 나에게 장모님의 입에서 믿기 어려운 말이 흘러나왔다. "역시 집에는 남자가 있어야 돼, 아들이 있어야 돼, 고생 했네, 올라가 쉬게" 이 순간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나는 장모님에게 이미 아들이었던 것이다. "가스레인지야 고맙다. 자주 자주 고장 나라."
덧붙이는 글 '가족이야기'에 공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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