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의 방송'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게릴라칼럼] 새 보도국장에 백운기 선임... 더는 눈뜨고 볼 수 없는 KBS '침몰'

등록 2014.05.13 10:19수정 2014.05.1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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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길환영 사장이 KBS 앞마당이 아니라 청와대 앞마당에 가서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게 사과했다. 전날 밤 유족들이 KBS를 찾아왔을 때에는 그처럼 매몰차게 내치더니 불과 하루 뒤 청와대 앞에서는 더할 수 없이 극진하고 정중한 모습으로 유족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은 한심하다 못해 처량하기까지 하다."

KBS 노동조합이 11일 내놓은 성명서 내용이 가히 충격적이다. 겉으로는 '국민의 방송'을 참칭하면서 뒤로는 최고 권력에 부역하고 아부하는 행태를 노조는 '한심하다 못해 처량하다'고 표현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 길환영 사장은 조속히 결단하라'란 성명의 제목에서부터 위기감이 어느 정도인지 잘 묻어난다.

KBS 노조는 "청와대 정무수석 전화에 만사 제쳐두고 청와대로 달려간 순간 길환영 사장은 KBS 사장을 정무수석의 아랫사람으로, 공영방송 KBS를 청와대의 부속기관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고 무거운 신산을 성명에서 토했지만, 그동안 '청 바라기' 또는 '박 바라기'란 표현이 틀린 말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해 보였다.

"KBS 사장, 세월호 이전에도 끊임없이 보도 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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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급히 자리 떠나는 길환영 KBS 사장 길환영 KBS 사장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을 방문해 사과를 한 뒤 현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 ⓒ 이희훈


세월호 참사 이후 지속적인 왜곡보도와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이른바 '교통사고' 망언으로 유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해원의 상처를 안겨준 데 대한 KBS 사장의 사과가 노조의 주장대로 청와대의 지시나 교감으로 이뤄진 것이었다면 이는 실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8일 밤 유족들이 KBS를 방문해 긴 시간 동안 애타게 사장과의 면담을 요청했을 때는 묵묵부답인 채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더니 뒤 늦게, 그것도 청와대 앞에 모인 유족들을 직접 찾아 사과한 것이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었다면 '국민의 방송'은 더 이상 존재하지도, 회생의 기대조차 할 수 없는 것 아닐까?

게다가 김시곤 전 보도국장은 "사사건건 보도에 개입하며 보도의 독립성을 훼손한 길환영 사장은 즉각 자진 사퇴해야 한다"며 충격적인 폭로발언을 쏟아내 이를 뒷받침해 주었다. KBS의 정치적 독립성 보장과 공공성 수호, 국내 최대 공영방송으로서의 품격이 그동안 얼마나 훼손됐는지를 여실이 드러내 보인 것이어서 KBS가 세월호 침몰 이후 드러내고 있는 민낯은 차마 눈뜨고 봐줄 수 없을 지경이다.


9일 기자회견 직후 김 전 보도국장은 한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길환영 사장은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이며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끊임없이 보도를 통제해 왔다"고 밝혔다. KBS 기자협회가 즉각 길 사장을 향해 '스스로가 행한 보도와 관련한 간섭 내용 및 청와대 압력 정황 밝힐 것'과 '자리에서 즉각 물러날 것'을 즉각 촉구한 바 있지만, 더 이상 국민들도 묵과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앞선다. 국민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친정권 인사의 낙하산 사장 임명으로 KBS가 권력의 감시견이 아닌 권력의 애완견 또는 시녀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지난 정권과 대선과정 등에서 입증돼 왔다. 특히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KBS의 허약한 치부가 그대로 드러났다.

권력에 천착해 온 KBS가 최근 들어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것은 연이은 자업자득 때문이다. KBS 내부에서 길 사장의 퇴진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사퇴한 빈자리에 백운기 시사제작국장이 임명됐지만, '그 밥의 그 나물'이라는 따가운 지적은 또 다른 갈등과 파국을 예고한다.

KBS 새 보도국장, 화려한 전력 '우려'

KBS는 12일 신임 보도국장으로 백 국장을 선임했지만 신임 국장을 임명하자마자 말들이 많다. 신임 백 국장은 지난해 KBS 탐사프로그램 <추적 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 편을 방송 이틀 전 보류하라고 지시해 논란의 한 가운데 섰다.

이에 앞선 지난 2009년 11월 이명박 정권의 낙하산 인사로 지목됐던 김인규 사장의 첫 출근을 저지하던 KBS 새노조 조합원들을 저지하며 사장을 호위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당시 김인규 낙하산 논란에 대해 "평생을 KBS에 몸담았던 김인규 선배"라고 하는 등 김 사장을 두둔하는 내용의 글을 사내게시판에 올려 노조원들의 반발을 샀다.

이번 인사가 과연 적절하고 적재적소인지 의문을 낳게 하는 이유는 이외에도 많다. 신임 보도국장이 김인규 전 사장의 사조직 멤버였으며, 이정현 현 청와대 홍보수석과는 같은 고교 동문이란 점 때문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게 된다. 가뜩이나 극심한 뉴스의 편향성으로 신뢰가 크게 실추된 KBS 뉴스가 공정성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 앞선다. 편파성 시비에 휘말렸던 인사를 보도국장에 선임한 것이 과연 적절한가라는 지적이 나올 만도 하다.

노조와 전 보도국장의 주장대로 KBS 사장이 청와대 정무수석 한마디에 즉각 청와대로 달려가거나, 사사건건 청와대 눈치를 보며 대통령에 관한 뉴스를 조절하는 것에 직접 개입하는 것도 모자라 '편파방송'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을 보도국장에 앉히려는 것은 '국민의 방송'이 아닌 '권력의 방송'을 택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의 방송, '박 바라기', '청 바라기' 오명부터 탈피해야

"이 나라는 대통령은 없고 물병 맞고 쫓겨나는 총리. 부패하고 무능한 해경. 구원파만 있는 건가요? 대통령은 찬사와 박수만 받아야 하고 아무 책임도 없는 건가요? 정권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는 언론은 어디로 간 겁니까? 왜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지 않는 건가요."

후안무치한 세월호 참사 보도를 보며 KBS 막내 기자들이 내뱉은 쓴 소리를 조금이라도 겸허히 간부들이 받아들였다면 더는 비상식적이고 견강부회한 행태들이 사내에서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구성원들이 정확히 진단했듯이 지금 KBS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한 듯하다.

"우리는 지금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이 사장이 됐을 때 공영방송이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질 수 있는지를 두 눈으로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다."

KBS가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박 바라기', 혹은 '청 바라기'의 오명에서부터 탈피해야 한다. 정치적 독립성 확보와 공공성 수호 등 대변혁을 위해서는 누구보다 건강한 구성원들의 강한 의지와 단합된 행동이 중요하다. 나아가 '국민의 방송' 주인은 국민이라는 사실을 국민들도 잊어서는 안 된다.
#KBS보도국장 #백운기 #편파성 논란 #길환영 사장 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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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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