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크리스마스엔 신선이 되어보는 기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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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태(naul)등록 2014.12.24 15:19

지난 12월20일, 선등거리 점등식이 열렸다. ⓒ 신광태


'이 거리를 거닐면 누가나 신선이 됩니다'

지난 12월20일, 강원도 화천에서 선등거리(仙燈거리) 점등식이 열렸다. 화천군 인구를 의미하는 2만7천 숫자가 카운트되자 2만7천개의 산천어등(燈)이 일제히 불을 밝혔다. 참석한 5천여명의 주민과 관광객들의 환호와 폭죽. 마치 수만 명이 만들어낸 대형 퍼포먼스를 연상케 했다.

선등거리는 2009년 최초로 조성됐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도로에 돔 형태의 틀을 만들어 수천개의 산천어등과 안개등을 달았다. 6m의 높이에 길이는 무려 380m에 이른다. 거리로만 따지면 세계 최대의 크리스마스트리인 셈이다.

감성마을 촌장 이외수 작가는 산천어등으로 덮인 거리를 '선등(仙燈)거리'라고 칭했다. '이 거리를 거니는 사람은 누구나 신선이 된다'는 의미란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사람도 신선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는 말에 작가는 '이미 당신은 신선이다'라고 말했었다. 선등거리에서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면 그것이 곧 신선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거란다.

"술에 취해 이유 없이 시비를 거는 사람도 스승이고, 내게 불쾌감을 준 사람 또한 스승이다."

어떤 사람이 무심코 한 행동에 대해 기분 나빴다면 입장을 바꿔 '내가 저렇게 한다면 상대방도 나 같은 기분이 들거다'는 것을 몸소 가르치는 큰 스승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곧 신선의 마음이라나. 다소 억지스럽긴 해도 일리는 있는 것 같다.

선등거리, 평범한 트리가 아니다

선등거리. 세계 최대 크리스마스 트리로도 유명하다. ⓒ 신광태


선등거리엔 수만 명의 땀이 배어있다. 산천어등을 만들기 위해 매년 마을회관이나 노인정에는 노인들로 분주하다. 선등거리에 붙일 산천어등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지역 노인들은 연중 일거리가 생겼다고 반겼다.

몇 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해서 일까. 가히 전문가 수준이다. 한 노인이 찰사를 구부려 물고기 모양의 틀을 만들고, 또 다른 할머니는 철사에 창호지를 붙이고, 그것을 건네받은 사람은 물고기 눈과 산천어 특유의 마크를 그려 넣었다. 이어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니스를 칠하면 한 마리의 화려한 산천어등이 탄생한다.

"어떤 비행기 회사가 땅콩 때문에 문제가 생겼대"
"왜? 그 업체에서 땅콩을 심었었대?"

산천어등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그 일은 노동이 아니다. 정보교류의 장 역할도 한다. 뉴스나 새로운 소식을 접한 사람이 해설도 곁들이는 소통의 마당이다. 시사에 둔감했던 한 노인은  일이 끝내는 대로 뉴스 보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고 했다. 대화에 끼어들기 위해선 그것이 필수라고 생각했단다.

화려한 산천어등의 연출에 넋을 잃었다. ⓒ 신광태


"저기 저 등(燈) 보이지? 내가 만든 거야."

지난 12월 23일 어스름한 저녁, 선등거리 촬영을 하고 있는 내게 한 노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본인이 만든 등 이란다. 그처럼 화천사람들은 선등거리에 매달린 산천어등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본인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또는 당신들이 탄생시켰다는 자부심에 등이 훼손되는 것을 강하게 거부한다.

크리스마스다. 산골마을 화천에 '선등거리'라는 이름의 세계최고 거대트리가 있다. 특정 단체에서 만든 작품도 아니고, 개인이 조성한 건 더더구나 아니다. 연인원 수만 명의 노인들이 1년 내내 조성한 거대 크리스마스트리다. 

올 12월은 유난히 추웠다. 추위만큼이나 경제도 꽁꽁 얼어붙었다는 말도 들린다. 움추린 마음을 추스르고 화천 선등거리를 찾아 한번쯤 '신선'이 되어보길 권장한다. 선등거리는 내년 2월22일까지 불을 밝힐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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