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별 것 아니다" 했지만... 서럽고 처량했다

[나의 암 극복기⑨] 수술보다 어렵고 힘들었던 항암치료

등록 2015.01.19 15:30수정 2015.01.1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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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 바늘을 꽂아놓고 네 개의 약물을 차례로 투입했다. 다른 약들은 그럭저럭 참을 만했는데 주황색 약이 몸속으로 들어갈 때는 온 몸의 세포가 올올이 다 일어섰다. ⓒ freeimages


주사 바늘을 꽂아놓고 네 개의 약물을 차례로 투입했다. 다른 약들은 그럭저럭 참을 만했는데 주황색 약이 몸속으로 들어갈 때는 온 몸의 세포가 올올이 다 일어섰다. 찌릿찌릿하기도 하고 간질간질하기도 했다. 간질간질한 것은 재채기가 나오려다 마는 찜찜한 느낌과 비슷했고, 찌릿찌릿한 느낌은 몸에 있는 말초신경이란 말초신경은 다 자극했다.


특히 두피 쪽은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말로나 글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기어이 표현을 하자면, 코에 찬물이 들어간 느낌과 덜 우려낸 토란을 먹었을 때 목구멍이 아린 느낌 여기에 발이 저린 것을 합친 미묘한 것이라면 대충 표현이 되는지 모르겠다. 귀는, 귀지를 꺼내지 못했을 때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신경에 거슬리는 것과 비교를 하면 될까?

정신은 말똥말똥해서 더욱 고통스러웠다. 이런 느낌이 스멀거리며 온 몸으로 퍼질 때쯤 기어이 "으아!"하고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그렇다고 큰 소리를 지를 수는 없다. 최대한 감정을 억누른 한숨과도 같은 비명이다. 이것은 나 다음으로 주사를 맞을 환자에 대한 작은 배려다.

주사실 밖 의자에 앉아 있는 남편은 안에서 일어나는 조화를 알 리 없다. 주사를 다 맞고 초죽음이 돼서 나오는 나를 보더니 근심스러운 얼굴로 "아팠어요?"한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서 말 시키지 말라는 뜻의 손사래만 치며 긴 의자에 널브러졌다.

참으로 요상한 것은, 시간이 10분 가량 지나니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멀쩡해졌다는 점이다. 마치 꾀병이라도 부린 것처럼.

'항암 아무것도 아니다' 능청 떨었지만...


화장실에 가서 변기 뚜껑 위에 걸터앉아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 냉정해지는 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입을 헹구고 머리와 옷매무새를 매만지고 씩씩하게 밖으로 나왔다. 전담 간호사가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손을 잡으며 "수고했다, 고생했다"며 위로한다. 나보다 훨씬 어린, 딸도 막내딸 같은 간호사가 마치 언니처럼 엄마처럼 포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도 손을 마주 잡으며 견딜 만했다고 허세를 떨었다.

간호사는, 이르면 오늘 밤부터 혹은 내일이나 모레부터는 음식 먹기가 거북할 수 있으니 먹을 수 있을 때 꼭 영양가 높은, 특히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으로 든든하게 먹으라고 당부했다. 그래야만 제 때 항암 주사를 맞을 수 있다고. 나는 남편에게 맛있는 걸 먹고 영화도 한 편 보자고 제안했다. 평소에도 말수가 적은 사람이 내가 하자는 대로 발끝만 내려다보고 따라 왔다. 그 모습이 참 미안하고 짠해 보였다.

야무지게 마음먹고 명랑한 척했으나 주사 맞으면서 얼마나 용을 쓰고 진을 뺐는지 점심을 먹고 나니 피로가 급격히 몰려와 몸을 주체할 수가 없다. 영화는 고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조차 멀게만 느껴졌다.

항암 주사는 2주에 한 번씩 맞아야 된다. 그것도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면 백혈구 수치를 올리는 주사를 맞고 일 주일을 기다렸다가 다시 백혈구 수치 검사를 해서 적합해야만 주사를 맞을 수 있다.

남편은 이틀 후에 시골로 내려갔다. 100세 가까이 되신 시아버님 걱정에 내가 시골로 내려가라고 권했다. 지금까지로 보면 혼자 계실 수 있겠지만, 혹여 나를 간병하는 사이에 시아버님이 편찮으시다거나 다치시기라도 하는 날에는 내가 더 견딜 수 없을 것 같기에.

어쩌면 속으로는 안 내려가기를 바라면서 입으로만 내려가라고 했을 나의 이중인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정말 그랬다. 시골로 가기를 바라기도 했고, 안 가기를 바라기도 한 부끄러운 이중인격!

남편인들 몸은 시골에 가 있지만 마음이 편할 리가 있겠는가! 하루에 수차례 전화를 걸어서 무엇을 먹었느냐, 입에 맞는 음식은 있느냐며 전화기 너머로 걱정하는 마음을 보내왔다. 나는 최대한 태연을 가장하고 천연덕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아이들에게도 "생각보다 항암 아무것도 아니다"며 능청을 떨었다. 아이들 역시 눈만 뜨면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는 입장이다 보니 여일하다. 그래도 그 늦은 시간에 퇴근하면서 이것저것 엄마가 먹을 만한 것을 사다 날랐다. 어쩌다 일찍 퇴근하는 날은 회식이나 친구들과의 만남도 마다하고 집으로 득달같이 달려오는 등 나름대로 애를 많이 쓴다.

너나 할 것 없이 바쁜 세상. 게다가 젊은이들의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이 시대에 엄마 때문에 직장 일에 소홀해질까봐, 그래서 자식에게 피해가 갈까봐 노심초사인 이 마음을, 자식을 가진 엄마들은 충분히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단팥빵도 쓰다... 뭘 먹어야 하나

뒤늦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수술했을 때보다 항암 때가 도움의 손길이 훨씬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술 후에는 아프고 움직이기는 힘들었어도 음식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지만, 항암 때는 먹을 수 없고, 억지로라도 조금 먹으면 구토가 나기 때문에 몸이 축 쳐져서 움직일 수가 없다. 그야말로 서럽고 처량하다.

입맛이 쓴지, 음식이 쓴지 모르겠다. 입에 들어가는 것은 모두 쓰다. 인터넷 검색을 했다. 항암치료 할 때 무엇을 먹으면 좋은지, 입맛이 돌아오는지를 알아보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무엇을 먹으면 좋다는 말은 너무 많아서 멀미가 나는 반면 입맛이 돌아오는 먹을거리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내 손으로 음식을 조리하는 것은 무리였기에 손쉬운 음식을 택하다 보니 평소에 즐겨 먹던 단팥빵을 사다 먹었다. 그것도 쓰다. 쓰기만 하면 괜찮겠는데 구토 때문에 굶는 편이 속은 편했다. 몸은 날로 지쳐가고 신경은 예민해져갔다.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둔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병원에서 기운 딸릴 때 맞는 포도당에 생각이 미쳤다. 포도당 주사액의 내용물이 당인 것을 알기에, 배가 고프니 포도당 주사보다는 포도를 먹는 편이 이참 저참 좋을 것 같았다. 몸을 추슬러서 아파트 상가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그 사이에 몸이 망가졌는지, 1월 중순의 찬바람에 뼈마디가 시리다. 마음까지도!

비척이며 걸으면서도 모자는 한껏 눌러 쓰고 목도리는 코까지 올렸다. 추위 때문이기도 했지만 행여나 아는 사람을 만나면 가여워 보이거나 신경 쓰이게 하기 싫어서다. 어쩌면 남편이나 자식 욕 먹이기가 더 싫었다는 게 솔직한 마음일 게다. 더러 속 모르는 사람들은 환자가 자기 먹을 것 사러 가는 모습에 혀를 찰 수도 있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가사 도우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도우미가 암에 좋은 음식을 찾아가며 해줄 리도 없고, 혼자 해결해 보기로 했다. 조금씩 걷는 것도 운동 삼아 좋을 것 같기도 했다.
#항암 #포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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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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