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명량 해전, 추장군이 뛰어들다.

겁없이 출판시장에 뛰어든 대구촌놈의 좌충우돌 첫책 출간기 (7)

검토 완료

추현호(wordsmith)등록 2015.03.10 14:59
여의도 Y인터넷 서점 본사 옆에 위치한 설렁탕집이다. 소금을 들이붓다가 뚜껑이 날아가서 소금이 통째로 설렁탕 그릇에 빠진다.

"아, 돌겠다! 진짜."

나의 혼잣말에 같이 설렁탕 그릇에 소금을 넣던 김 디자이너와 강 팀장이 '히스테리 도졌네'라는 표정을 짓고 그들만의 방어막을 친다. 그 방어막의 실체는 내가 잘 모르겠으나, 어찌되었든 잔소리가 시작될 것 같으니 머릿속으로 딴 생각을 하든 고개만 끄덕이면서 이 위기를 모면하려 하겠지.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엠디(MD)와의 미팅에서 반드시 준비되었어야 할 보도자료가 대단히 길었다. 남들은 1~2페이지로 다 준비해서 깔끔하게 내던데 우리 것은 무려 7페이지나 되지 않았던가. 구구절절 여러 이야기를 써놓은 그 보도자료는 받자마자 분명 쓰레기통으로 골인할 게 분명했다. 차갑고 도도했던 MD님이 가진 단두대에 싹둑 잘릴 판이었다.

보도자료란 책이 처음 나올 때 어떤 이슈화될 만한 사항을 부각시켜 언론사에 있는 기자에게 보내는 1~2페이지 분량의 기사원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신제품은 언론에 노출되고 보도가 되어야 고객들에게 노출이 된다.

이 노출의 횟수와 강도가 강할수록 잠재고객에게 구매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이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일은 대단히 신중하고도 전략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기자리스트를 일일이 인터넷에서 다 찾아가며 작성하고 있었다. 책 서평을 분석해서 우리 책을 실어줄 것 같은 기자에게 일일이 정성 들여 보도자료를 보내기로 전략을 짰다.

힘들게 원고를 탈고하고 탈모에 시달릴 정도로 글을 쓰고 제작했건만, 보도자료를 보낼 이 타이밍을 놓쳐버리면 책은 대중에게 읽히기도 전에 마케팅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다.

K문고에서는 신규거래에 만족해야 했다. MD님의 '용안'을 뵙지 못했다. 워낙 바쁘고 미팅이 많다. 이 보도자료만큼이나 절대신공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MD의 추천이기 때문이다.

Y인터넷 서점은 온라인 마켓의 절대강자이므로 반드시 온라인 홈페이지 엠디(MD)의 추천란에 책이 떡하니 걸려줘야 하는데, 그런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긍정이 아니라 근거없는 낙관에 불과했다. 희망과 낙관이 뭐가 다르냐고? 희망은 뭔가 일이 잘될 것 같은 그럴 듯한 씨앗이 원인으로 뿌러져있어 개연성이 있지만, 낙관은 그저 잘된다는 식으로 사업을 하는 이에게 이는 반드시 뿌리뽑아야 할 종기같은 것이다. 이 종기를 그저 놓아두면 일이 말아먹는 과정을 보는 고통스러운 고름의 나날을 보게 된다. 긍정은 중요하지만 근거없는 낙관은 망자의 지름길로 가이드한다.

엠디(MD)분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게 홍보와 광고가 많이 되야 될건데요, 아무튼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적인 말인지, 절망적인 말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보도자료와 함께 드리고 돌아오자 내 마음에는 이건 아니다 싶은 감이 왔다.

사업가는 긍정적이어야 하나 데이터가 없이 무조건적으로 낙관적이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행동했어도 무언가 개선할 여지가 보이면 바로 그 부분을 인정하고 자신의 행동방식을 바꿔 나가야 한다. 나는 무언가 일이 내 뜻대로 진행이 되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즐겁게 열심히 해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일은 틀어진다.

아침부터 바쁘게 함께 움직인 김디자이너와 강팀장이 설렁탕과 깍두기를 먹음직스럽게 보고 있는 동안 난 소금덩이가 빙하처럼 채 녹지 않아 떠있는 그릇을 외면한 채 머릿속에 마케팅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래서는 안된다.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한다.

"드십시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채 이리저리 거래처를 다니고 서점 공급계약 건으로 바쁘게 움직인 탓에 오장육부가 "밥"을 외쳐댄다. 그래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은 먹어야지. 갑자기 첫째를 임신한 대구에 있는 아내 재은이 떠오른다. 이번 책의 성공은 나에게 선택이 아니었다. 나는 이번 책을 통해 당당하게 출판업에 도전장을 내밀려는 형국인데 이거 첫수를 뭔가 잘못둔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미 마케팅 전쟁에서 지고 있다는 감이 왔다.

'짭다.' 강팀장과 김디자이너는 저 소금이 빠진 설렁탕을 어찌 먹지? 하는 표정으로 게슴츠레 날보며 혹시나 내가 바꿔달라 소리는 하지 않을까 그릇을 자기쪽으로들 끌어당긴다. 먹음직스러운 김디자이너의 그릇을 바라보니 국물이 뽀얀게 정말 맛있을거 같다.

"김디자이너, 거 짜븐거(짜운거의 대구사투리) 좋아하지요? 나랑 바꿔 먹읍시다. 소금이 좀 많이 들어간지 이거 좀 짭다."

시큰둥한 김디자이너가 이칼낍니까? (이럴겁니까의 대구사투리)의 표정으로 날 본다.

"대표님, 그 소금탕을 어찌 드시려고 합니까? 새로(새것의 대구 사투리) 한그릇 더 시킵시다."

순간 번쩍이는 머릿속에 생각이 들었다. 새로!!

그래 얼마전 밤늦게 고민한 2번째 책에 대한 출간계획을 빨리 앞당겨서 첫 번째 책의 마케팅을 제대로 다시 타임라인을 짜서 올린다면 출간전부터 화재를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가방에 넣어다니는 몰스킨 위클리플래너 수첩을 꺼낸다. 2번째 책 출간? 그리고 2번째 책에 1번째 책의 홍보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넣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출판사의 사활은 3년안에 20종의 책을 내는 것이라고 이야기들 한다. 회사의 자본구조에서 빚을 내지않고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비용의 구조를 최소화하면서 3년에 20종이라는 책을 내며 출판사로는 자리를 잡았다고 업계전문가들은 조언을 해주었다.

밥알이 어떻게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 위벽에 골인했는지 모르겠다. 먹는 둥, 마는 둥 김디자이너에게 소리쳤다.

"광화문 서점으로 갑시다."

나는 그날 광화문 K문고, Y문고에 3시간째 한곳에 앉아 사람들의 동선을 분석했다. 목요일인 평일이었지만 과연 서울은 서울이다.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책을 읽는지 고객들은 어떤 책에 눈을 기울이고 책을 바라보는지 메모지에 체크했다.

먼저 두가지 부류의 독자가 있음을 확인했다. 말그대로 이미 어떤 책을 살지 완벽하게 책을 정해와서 검색대에서 책이름을 입력하고 책을 구입하는 한 부류의 독자였다. 다른 한 부류는 요리조리 움직이면서 여러 책을 뒤적거리곤 했는데 절대적으로 어느 독자도 서가에 꼽힌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평대에 놓여진 책을 주로 살펴봤다.

그 중에서도 스탠드에 베스트셀러, 스테디 셀러, 분야별로 고객들의 눈에 띄게 진열된 책에 손이 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래 서가에 꼽힌 책이 아니라 평대에 꼽힌 책이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러고는 평대에 꼽힌 책들의 수를 헤아려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최소 5권이상은 되어야 평대에 책이 쌓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매장별로 책이 5권 정도는 전시가 된다는 말이었다.

그러면 질문은 다시 한번 간단해졌다. 어떻게 하면 평대에 이미 초고 물량이 30권으로 정해진 상태에서 책을 깔 수 있는가 차원에서 생각을 좁혀가기 시작했다. 머리가 팽팽하게 이륙 엔진증상을 보인다. 엔진과열 되면 냉수를 들이켜서 열을 식혀줘야하는데. 두리번 거리며 정수기를 찾던중 김디자이너와 강팀장이 뚱한 표정을 마주한다.

"머 문제있나요?"

"대표님, 이제 이동을 해야하는디요? 서울은 뭔놈의 주차비가 이리 비싼지, 부담시러버서리. 주차비가 비싸서 차 빼야됩니더."

열이 솟구쳐 오른다. 지금 제작비로 3천만원 쓴 책이 모두 창고서 바퀴벌레와 쥐들 틈에서 갉아먹힐지도 모르는 판국에 주차비 3천원이 머가 그리 대수란 말인가!

"주차비는 내가 냅니다.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김 디자이너 님은 여기 광고 걸린 책들 광고 포스터들 한번 다 찍어와봐요. 포스터에 트렌드가 있을 것 같으니 어떻게 대형출판사들이 광고포스터를 만드는지 보고 우리도 광고포스터를 한번 만들어봅시다. 강팀장은 평대에 깔리는 책들이 온라인에서 지금 베스트셀러순위가 어느정도 되는지 한번 봐보세요. 분명 먼가 연결고리가 있을 겁니다. 평대에 놓인 책 이름들을 메모지에 입력해서 노트북을 자리잡고 켜서 베스트셀러 순위안에 드는 것들 체크해봐요"

김디자이너와 강팀장은 미션 수행을 위해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잠시 머리를 부여잡고 벽에 기대 앉는다.

'아, 편두통'

작가출신의 출판사 대표. 나는 작가로서는 혼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출판사대표로서 이 책을 대중마켓에 내어놓는 지금 과연 혼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이 필요했다. 전화를 건다. 대구에 먼저 내려간 김영주팀장님께 거는 SOS였다.

"김 팅장님, 오늘 Y인터넷 서점건은 죽을 제대로 만든거 같아요. 준비가 많이 미흡했습니다. MD의 선택은 이번 건은 조금 힘들듯 한데, 학교별 오리엔테이션 출간기념 스피치건은 어떻게 진행이 되어가고 있나요?"

"대표님, 경북대, 계명대에는 지금 시기가 맞지 않아서 신입생입학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구요, 제가 영남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연사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오! 그래요? 잘되었습니다. 영남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규모가?"

"약 2500명 정도입니다.대표님, 잘 준비해서 이번 행사때 신입생들에게 책을 널리 알리는 일도 병행을 하려 합니다. 분명 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내용들이 있으니까요."

경쾌한 수화기 저편의 소리를 들으니 레드불을 들이킨 것처럼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본진에서 저리 열심히 일을 이뤄주고 있는데 원정나온 3남자가 성과없이 가서 되겠는가?

"고생많아요, 내 곧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식사들 거르지 말고 일하셔요!"

2시간동안 광화문 대형서점의 구석진 카펫에 쪼그리고 앉아 공책에 날짜별로 우리 회사가 해야 할 일을 적고 있었다.

옆에는 아이들이 뛰어논다. 한아이가 집어던진 공이 하필이면 내 얼굴을 강타한다.
'아 내팔자야.' 사돈 남말 할때가 아니다. 6월에 세상에 나올 추대감님, 나의 아이 사랑이도 저렇게 공을 펀펀(funfun 재미나게)하게 차대겠지. 엄마 배도 그리 차대고 있는데. 망하면 갈길 없다. 배수진에 배수진을 쳐야 한다.

난 지금 얻어 터지고 있다. 그것은 누가 때리는 게 아니다. 겁 없이 뛰어든 출판시장의 압력에 이리저리 정신없이 얻어터지고 있다. 수없이 내 자신감을 좀 먹는 시장의 압력과 스스로에 대한 의문들에 대한 질문의 연속이다. 나는 출판시장에서 제 3의 사춘기를 맞고 있다. 스스로를 정의하고 다시 분류하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이랄까. 질풍노도의 출판사 대표.

내일은 논현역에서 위치한 본사 Y문고 신규거래 및 엠디(MD)미팅이 있다. 내일은 어떤 반응이 올지 대단히 궁금하던 찰나 파병 보낸 김디자이너와 강팀장이 미팅포인트인 구석진 카펫으로 모여들었다.

흥분한 김디자이너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 하고, 강팀장은 얼굴이 시무룩하다.

"강팀장, 인상이 왜 그러오? 사람관상이 좋아도 인상을 꾸부리면 될 일도 안된다 카던데(하던데의 대구사투리) 우째 되었습니까?"

"대표님, 정말 이슈가 되는 책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메이저 출판사 책들이고요, 출판사의 광고여부와 판매양에 따라서 서점에서 발주양을 달리 한다고 합니다. 광고의 경우에는 이미 앞에 보는 저 메인 자리들은 몇 달치 광고가 완료되었고 광고비는 수십만원에서 300만원정도까지 하는데요. 이거 완전 보통일 아닙니다."

보통일이 아닌 일에 뛰어들어서 남다른 결과를 만들려면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함이 당연하다. 지금 겪는 많은 감정들이 나에게 가져다 줄 궁극의 목적지는 깨달음이리라.

"우선 숙소로 복귀합시다. 내일 Y문고 신규거래 관련 서류도 정리하고 우선 차를 빼지요."

주차장에서 차를 뺀다. 주차비가 2만원이 넘었다.
"대표님 주차비 정산하셔야 됩니대이.

김디자이너의 펑퍼짐한 (김디자이너는 남자입니다) 엉덩이를 걷어찰 정도로 얄밉다. 지갑에 남은 현금을 다 털고 나니 16000원. 설렁탕집에서 각혈을 했더니 헐빈한 자금사정.
돈이 없을수록 창의성을 발휘하라고 누가 이야기했던가?

"저희가 출판사 거래 때문에 지방에서 왔는데 현금이 이거 밖에 없는데 주차비 좀 깍아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카드됩니다."

카드.. 카드 신공을 발휘하고 광화문으로 나오니 이순신 동상이 보인다.
깜박 잠이 들었다.

나는 지금 출판 명량해전을 치룰 판이다. 코에 들러붙은 긴 수염과 펑퍼짐한
한복을 보니 나 지금 조선시대로 타임머신 주전자를 타고 이동한듯 하다.
가진 배가 없고 적은 많다. 거기다 지난 날 불까지 나 배가 몇척 타서 없어졌다.
장수들에게 오라고 초호기를 울려대지만 김디자이너와 강팀장은 저 뒤에서 홀로 싸우고 있는 내 배를 보고있다. 화살이 빗발친다. 요리조리 피해다니다가 결국 화살에 맞고 땅바닥에 쓰러져 신음을 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쩌렁한 고함이 들린다.

"대표님, 일나시소.(일어나세요의 대구사투리), 숙소 왔습니다."

멍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임시로 머물고 있는강남의 한 호텔이다. 이렇게 하루가 다시 간다. 내 서른의 치열한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간다. 김디자이너가 맥주 3캔을 어디서 구해왔는지 손에 드는데.

"오늘 맥주 한잔 합시다. 대표님, 속이 타네유"

그래, 잘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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