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없고 밥도둑만 있는 승려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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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닷컴(bulkyo)등록 2015.05.18 16:22
현응스님! 재가자가 납득할 만한 선지식 3명만 대보세요!

오늘도 네팔에는 커다란 지진과 여진이 반복되고 있다. 진도 7이 넘는 지진으로 신두발쵹이나 고르카 지역은 마치 폭격받은 듯한 폐허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겨우 살았나 싶어 안심했던 찰라에 다시 찾아온 대지진은 다시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이재민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로 잘 알려진 카스키주를 돌면서 이번 대지진이 한두군데의 문제가 아니라 네팔 전역의 걸친 참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붓다가 태어나신 룸비니가 있는 네팔에서는 아비규환의 지옥이 펼쳐지고 있는데 지구의 한편 한때 대승불교의 꽃을 피운 우리나라에서는 조계종 교육원장이 '참회'아닌 '참회'가 재가자들에게 화제가 된 듯하다.

동네방네를 돌면서 피해상황을 살피며 이재민의 얘기를 들며 그들에게 '치유'는 다름아닌 고통을 들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래서 관세음보살께서는 중생들의 서원을 성취하는 것보다는 귀로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없이 이심전심으로 전하신 것은 아닐까? 하지만 들어줄 말도 경계도 있고 한계도 있다. 간절함이 배긴 목소리와 건성으로만 떠드는 뻘소리는 분명히 같은 소리가 아닐 것이다.

부자가 더 부자되고 싶다는 것과 가난한 이가 목숨을 연명할 곡식을 구하는 것 역시 그러할 것이다. 요즘 네팔에 진출한 NGO활동가들은 한국에서 모은 성금으로 네팔 현지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확인하고 보살피고 구제하는 그런 보살행의 흉내를 낼 수 있어 매우 환희롭기 까지 하다고 소감을 전한다. 그런 일을 목숨 걸고 와서는 오히려 즐겁다고 하니 선재(善哉)일 따름이다. 그런 와중에 접한 조계종 교육원장의 글에 대한 칼럼을 요청받았다.

지금의 미디어붓다 이학종 대표 기자 등이 활약하던 시절 필자가 즐겨보았던 법보신문이라는 불교계 신문이 있다. 최근 이 신문에 실린 교육원장 현응스님의 글을 보면, 그는 일단 재가자의 의미조차 모르는 듯하다. 재가자와 출가자는 승려와 비승려의 차이가 아니다. 시작부터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차이도 없지만 굳이 찾자면 모두 수행자로서 그 자리 즉 경계가 어디에 있는가가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재가자를 어릴 적부터 불공 가는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본 경험이 있거나, 소풍과 여행으로 경치 좋은 명승지에 자리 잡은 사찰에 방문한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한정하는 고의성 짚은 잘못을 범하고 있는듯하다.

재가자들이 낸 보시금이나 일반인들이 내는 문화재 관람료 등으로 밥을 먹고 사는 출가자들은 어렸을 적에 안그랬는가? 라고 되묻고 싶다. 거꾸로 지금의 권승들의 행태를 보며 일부 신자들은 승려는 "고아이거나 누군가 절에 버려둔 아이들, 사회부적응자 또는 범죄인(전과자)이거나 폭력배 출신이 많기 때문이다"라는 일부 신자들의 생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할지 궁금하다.

다른 권승들과는 달리 나쁜 승려가 아닌 현응스님은 아이러니하게도 재가자들이 출가자 중심의 승가에 편입되고 싶어 하는 불자들이라는 왜곡된 주장을 하고 있다. 많은 수행단체에서 정진하고 있는 적지 않은 재가자들은 지금의 출가자의 탈을 쓴 '권승'의 자리에 전혀 관심조차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해야할 것 같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이 '자리'나 '돈'에 관심이 없이 오직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하는 재자가들에게 오히려 '권승'의 자리에 관심을 가지라는 듯이 유혹하는 교육원장의 현실인식이 마치 참으로 안타깝게 여겨진다고 한 전문가는 지적한다.

재가자를 학생으로 출가자를 선생으로 이분하는 '왜곡'은 교육원장이 과연 부처님의 제자인가조차 의심스럽게 한다고 한 도반은 신중하게 전한다. 그런 입장에서 교육원장의 기고에는 겸손이나 겸양을 떠나서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으로 승려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하심(下心)'조차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닌듯하다. 주변의 신도들에 대한 초보적인 분석의 틀을 가지고서 '교육원장'이라는 권위를 이용하여 마치 '진리'인 듯이 독자의 판단을 강요하는 듯한 어조로 판단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는 해석도 있다.

조계종의 권승들의 은처, 도박, 음주운전, 폭력 등 수많은 범계를 떠나 범죄가 속출하는 가운데 마치 딴 나라 얘기처럼 요즘 유명한 '유체이탈화법'으로 "승려는 내부규율인 계율생활을 해야 하는 생활상의 한계가 많다."는 듯한 말은 한다. 단순한 왜곡을 벗어나 어쩌면 고의적인 질곡으로 향하는 것으로 판단되기도 한다.

아울러 교육원장의 '스승관'과 '승려관'은 마치 "학교의 선생님은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지만 직접 사회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출가승려도 불교의 역사와 교리를 가르치지만 직접 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질곡의 절정을 이룬다. 사회복지와 국제재난구호에서 헌신하는 적지 않은 승려들은 그의 말에 따르면 재가자의 일을 뺏은 학생이 되는 셈이다.

애초의 출가목적이 수도하여 훌륭한 도인이 되는 것이라면 승납 10년이 넘어도 수행만 하면 되는데 80%라는 대세나 쪽수를 빌어서 사찰과 불교자산을 관리 운영하는 일을 하는 것이 마치 당연한 일로 만들고 있다. 아울러 재가자나 신도일 수 있는 종무원을 보조로만 치부하면서도 종무원의 일 또한 중요한 재가불자의 몫이라 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도 숨기지 않고 있다.

출가자가 아닌 종무원인 재가자를 고용한 신분에 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오만방자한 말이라며 '종무원'을 한 경험이 있는 한 신자는 격하게 분개한다. 종무원은 성스러운 종무를 수행하는 재가 불자이거나 일반인이지 출자가의 '종'이 아님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부처를 이루지 못한 출가자는 부처님과 성철스님 말씀처럼 '밥도둑'이거나 '코가 없이 태어날 소'일 따름이라고 한 소승불교 연구자가 말한 것이 기억난다.

거꾸로 출가자 보다도 재가자로서 수행을 하면서 불교교리를 매우 깊게 공부한 이들도 적지 않다. 한국불교연구원, 선도회를 비롯해서 출가자를 뛰어넘는 숨은 재가 수행자들이 얼마든지 있는 시절이다. 요즘 승려들이 선지식을 보고 싶다고 하는 재가자들에게, 산속 깊은 곳에 열심히 수행하는 스님들이 있다면서 이름을 물으면 정작 자기도 잘 모른다고 한다.

출가자라고 떠들면서도 수행을 하지 않고 사찰 경영만 하고 있다면 이미 진정한 승려도 아니며 삼보도 아니다. 왜냐하면 현응스님 말대로라면 '종무원'이 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보는 내가 삼보라고 해서 삼보가 되는게 아니라 정법에 맞게 수행해서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불자들이 인정하는 이들이 삼보가 되는 것이다. 성철스님이나 수월스님, 달라이라마 존자가 삼보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승려는 삼보 가운데 하나여서 삼보도 아니며, 법명이 삼보라고 해서 삼보도 아니며 삼보 종찰의 승려라고 해서 삼보도 아닌 것이다. 삼보 승려가 되고 싶다면 불법에 맞게 수행정진해서 '선지식'이나 '보살'의 성취를 이루면 될 따름이다.

이런 측면에서 재가에서 불법을 여법하게 수행하게 실천하는 이가 바로 유마거사와 같은 이로서 삼보가 맞다. 유마거사가 삼보가 아니라고 현응 스님 아니 조계종 교육원장은 말할 수 있는가! 깨달음을 얻고 보살의 길을 가는 이가 진정한 삼보다. 재가자가 원하는 것은 불자에게 보시를 받고 밥을 먹으면서도 종부리듯 하려는 그런 불학무식하고 무례한 일부 '승려'라는 신분이나 직업 따위가 아니다. 특히 도덕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무늬만 성직자인 '권승'은 더더욱 아니다. 깨달음의 길을 걷는 '선지식'으로 상구보리 하화중생하는 '보살'을 성취하는 길을 걷는 대장부 또는 여장부의 길을 무쏘의 뿔처럼 걷고 싶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것은 출가자의 서원과도 전혀 다르지 않다.

'승속불이'(僧俗不二)의 뜻을 잘 알 듯한 교육원장이 추천하는 조계종의 선지식이 누가 있는지 묻고 싶다. 있으면 딱 3명만 이름을 대주기를 바란다고 한 재가자는 묻는다. "무척 송구하지만 세명도 안될 것입니다. 아니 굳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숨은 고수와 같은 재가자들이 입실점검으로든 법거량으로든 한번 가르침을 달라고 해도 세상 밖으로는 쉽게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말 부처님의 혜명을 누구 잇고 있는지 모두에게 알려지는 것이 무척 두렵기 때문 아닐까요?"라는 한 재가자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왜일까?

이 시대 마지막 선지식이라고 칭송되는 송담스님까지 탈종한 지금의 '조계종'에 정말 선지식은 있을까? 무차선대회를 광화문에서 연다고 우리에게 달라이라마 존자와 같은 보살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밥값을 해야 한다'며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승려들을 '밥도둑'이라고 일갈했던 성철스님께서 살아계시다면, 지금의 조계종 권승들에게 과연 뭐라고 했을까?

출가자는 재가자 보다 더욱 세분화된 계율로 수행정진해야 할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하도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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