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가 만든 시선을 벗고 나온 그녀

젖은잡지 편집장 정두리

검토 완료

백윤호(becksujung)등록 2015.05.26 19:58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가장 편한 기준은 그가 가진 이미지다. 그가 가진 이미지에 따라 바라보는 시선이 결정된다. 기자도 그런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인터뷰를 좋아한다. 힘이 쭉 빠지는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배워가는 것도 많다. 이번에 만난 정두리 씨도 그랬다.
미스 맥심, 젖은잡지 편집장 등등. 그녀를 지칭하는 수식어는 많다. 하지만 직접 만나 본 정두리 씨에게 기자는 시원하게 뒤통수를 맞았다. 이미지가 만들어낸 시선 속의 그녀가 아닌 진짜 '정두리'를 봤기 때문이다. 이제 이 글을 읽는 그대들도 뒤통수를 맞을 때다. 본연의 그녀를 지난 5월 16일 송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 중인 정두리 씨 송도의 한 카페에서 정두리 씨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정두리


활발? 알고보면 집순이

피곤함이 가득한 얼굴로 기자를 맞이한 정두리 씨. 어제까지 4호 편집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제 디자인 마감하고 인쇄 들어가야죠. 젖은파티 준비도 해야하고요."
젖은파티는 선주문자에 한해서 하는 발간기념회다. 정 씨는 매 호 선주문자들과 함께 행사를 하고 있다.
-이름은 예명인가요?
"아니요. 본명이에요. 한글이름인데 둥글다는 뜻이에요. 모난 곳이 없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에서 엄마가 지어 주신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가? 얼굴도 약간 둥글고 생각도 둥글둥글 되는 것 같고. 이름대로 되는 것 같아요."
둥그런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동네사람들도 정 씨를 알아본다고 한다.
"홍대같이 사람 많은 곳을 갔다 오면 댓글이 달려요. '오늘 어디 카페에 계시지 않았어요?'라고요."
-부담되진 않으세요?
"부담스럽죠. 봤으면 본건데 댓글로 언급하시고. 메시지도 보내시는데 의도를 잘 모르겠어요."
-반가워서 그런 거 같아요.
"제가 '집순이'거든요. 집에 있는 것 좋아하고요. 매일 꾸미고 나가는 걸 힘들어 하는 스타일이에요. 가끔 꾸미고 나가는데 알아보시면 부담스럽죠. 조금 불편하기도 해요. 그래도 알아봐주시니 기쁘죠."
젖은잡지에서 직접 모델 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 의외로 내향적인 성격이란다.
"어릴 때 조용하고 느린 아이였어요. 엄마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저를 키우셨죠. 다른 애들처럼 학원이나 공부에 시달리거나 하지 않았어요."
남는 시간은 공상을 하거나 동화책을 읽었다. 특히, 조용히 그림 그리는 것에 몰두했다.
"남들보다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어린 시절을 겪으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관심사가 친구들과 달랐거든요."

큰 스승을 만나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던 그녀는 모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정 씨는 충격을 받았다.
"입학 전까지 제가 특별한 사람인줄 알고 있었어요. 그림을 정말 잘 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있는 애들은 다 그림을 잘 그리는거에요."
입시미술을 시작하면서 그녀의 생각이 바뀌었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은게 아니었다.
"그림 그리는 것 자체보다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걸 더 좋아한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입시 미술 3년 하는 것 보다는 빨리 대학에 가는게 낫겠다 싶었죠."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의 한 대안학교를 들어갔다. 여기서 그녀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선생을 만나게 된다.
"정은영 선생님을 이때 만났어요. 유명한 작가이신데 페미니스트시거든요. 그분이 절 엄청 예뻐하셨어요."
정은영 씨는 '2013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미디어 작가다. 페미니즘이론 및 실기 전공 석사학위도 소지하고 있다.
"그분이 주말마다 저를 전시장에 데리고 다니셨어요. 수고로운 일임에도 애정을 가지고 제자처럼 대해주셨죠. 그때 전시도 다니면서 미술을 했어요. 책도 많이 봤고요."
이 때 그녀는 미술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입시미술이 아닌 진짜 미술공부를 하고 싶었다.
"처음에 배운 진짜 미술이론이 여성주의 미술이었어요. 거기에 푹 빠졌어요. 입시미술을 할게 아니라 이런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진짜 미술이론에 눈을 뜬 정 씨는 모 예술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프랑스 쉘부르 보르자 대학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프랑스 유학을 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여성주의 미술에 관심을 가지면서 젠더, 섹슈얼에 관한 작업을 하려고 했고요. 페미니즘 공부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사적으로 봤을 때 미국과 프랑스의 페미니즘은 성향이 달라요. 미국이 더 전투적이라면 프랑스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서로 존중하는 방식이죠. 프랑스에 더 매력을 느꼈어요."
루이스 부르주아나 소피 칼과 같이 정 씨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프랑스 출신이었다는 점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기대를 가득 안고 프랑스로 갔지만 이내 침체된 프랑스 미술계를 보게 됐다.
"초반에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좀 실망했어요. 역사적으로 해낸 게 많아서 그런지 정적으로 변했더라고요."
-해낸 게 많아서라는 건?
"프랑스 사람들이 문화적 의식이나 소양이 높아요. 그래서 새로운 걸 해봐도 언젠가 했던 걸 되풀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오만할지도 모르지만 지루하게 느껴졌죠."
노르망디 지역의 우중충한 날씨처럼 그녀도 점점 지루해져 갔다. 외부활동을 하고 싶었던 그녀로서는 곤혹이었다. 학교 공부 외에 새로운 작업이 하고 싶었다.

여성BJ가 준 깨달음

-그래서 젖은잡지를 시작하신건가요?
"젖은잡지는 제 작업의 연장선이에요. 저는 계속 섹슈얼이나 젠더에 대해 작업해 왔어요. 갑자기 한 게 아니라 이전부터 하고 있었죠. 저는 어떤 사회적인 맥락에서 부딪치고 거기서 나온 현상을 만들어내는게 더 재밌다고 느껴지거든요."
그녀는 시선이 만들어내는 약자의 소외감을 이용해보고 싶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사는 건 타자고 소수잖아요. 외국에서도 동양인여성으로만 읽혀졌고요. 가령 저는 그냥 젖은잡지를 만들었는데 항상 '20대 여성'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요.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말이죠. 이 사회에서 저는 사회적인 약자, 소수자인거에요. 그럴 때 느꼈던 소외감을 슬퍼하지 말고 이용해 보자는게 작업의 시작이었어요."
그 작업의 첫 시작은 아프리카TV였다.
"아프리카TV는 관객이 있고 화자가 있는데 젠더적으로 나뉘잖아요. 남성이 관객이고 여성이 보여지는 사람. 여기에 별풍선이라는 자본이 들어가죠. 그 시스템이 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화자인 여자BJ들을 직접 똑같이 연기하면서 실험해보려고 했죠."
보통 여자BJ의 방식을 똑같이 답습했다. 그러다 하나씩 코드들을 배신하는 작업을 했다.
"여기서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여자들이 애교를 떨면 돈을 주잖아요. 아프리카에서 이렇게 하라고 가이드라인을 준 것도 아닌데 그런 룰이 생긴거에요. 저도 똑같이 했죠.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는 시청자가 별풍선을 줬는데 가만히 있거나 방송을 꺼버렸어요. 일종의 실험이죠."
-일종의 남자들이 가진 권력을 배신한거군요
"그렇긴 하죠. 그런데 꼭 그걸 남자들만이 가진 욕망으로 볼 순 없더라고요."
우연히 본 한 여자BJ의 방송은 그녀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별풍선 받는 여자애들을 사람들이 주면서도 '별풍선 창녀'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 여자가 사람들이 자기한테 욕을 하니까 화를 내는거에요. '내가 별풍선 받으면 창녀야? 그러면 나한테 주지마.'라고요."
그 여자BJ는 바로 섹시댄스를 수위높게 추기 시작했다. 어김없이 별풍선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하지만 BJ의 반응은 의외였다.
"죄다 강퇴시켰어요. 정말 미친듯이 섹시한 춤을 추는데 말이죠. 그걸 보고 깨달았어요. 보여주는 주체의 욕망이 있다는 걸요."
이전 세대 페미니스트들은 그런게 남자들의 노릿감이 되는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자BJ가 단순히 별풍선을 위해 방송을 하는 건 아니었다. 본인의 젊음을 뽐내고 매력적이란 걸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걸그룹 같은 여자들이 자기를 보여주는 것에도 욕망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해요."
보여주는 주체의 욕망에 대해 더 탐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프리카TV를 끝내고 출사모델로 작업을 확장시켰다.
"보통은 사진 찍는 주체인 사진가가 모델을 섭외하잖아요. 저는 모델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직접 포토그래퍼를 섭외했어요. 장소도 직접 정하고요. 그 사람이 저를 찍으면 저도 그 사람을 찍고. 시선의 교환이란 작업이었죠."

젖은잡지 젖은잡지 4호 ⓒ 정두리


시선의 권력을 조롱하다

-젖은잡지는 그럼 그 이후에 나온건가요?
"그렇죠. 연장된 작업이었어요. 시선의 권력을 비틀어보는 거였어요."
-시선의 권력이요?
"매체나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는 누군가가 컨텍해서 보여주는거잖아요. 거기에는 권력이 있어요. 보는 관객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저는 그걸 남성이 중심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대표적인 것은 스타 화보다. 수영복을 입고 해외에서 화보를 찍는다. 사실 그 화보의 관객은 남성들이다.
"레즈비언 포르노도 그래요. 레즈비언을 위한 포르노가 아니라 남성의 취향 중에 하나로 분류되잖아요. 레즈비언을 위한 것이 아닌 남성을 위한 거죠. 그런 종류의 시선의 권력을 비틀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여성이 예쁘게 보여지는게 나쁜 건 아니다. 단지 남성들의 시선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아름다운 면을 능동적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저도 저를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고 저의 예쁜 면을 좋아해요. 그래서 젖은잡지를 시작했어요. 도색잡지라는 컨셉을 가지고 모두 제가 기획했죠. 사진 구도, 장소, 꽃 등등. 20대 여성이 만든게 아니라 시선의 권력을 주제로 직접 만드는 잡지이니 의미가 있죠."
-왜 젖은잡지란 이름을 지은신거죠?
"남성중심적인 제목을 싫어해요. 뭐가 선다거나 그런 표현들을 많이 쓰잖아요. 여자들도 그렇고요. 완전 젖어 말 안하고 선다고 말하잖아요. 남성의 욕망은 많이 회자되고 심지어 야동보다 걸린 얘기도 자유롭게 하잖아요. 그런데 여자들은 그런 얘기조차 터부시 될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젖는다'는게 여성의 욕망에 대해 상징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지었고요."
-고민이 많은 이름이군요.
"사실 지을 때 조금 생각하고 한거긴 하지만 작업할 때 의미를 구체적으로 생각하면서 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자꾸 물어보니까 생각을 명확히 한거죠. 전 시를 해석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좋은 건 그대로 느끼면 되지 해석할 필요 있나요."

자리를 박차고 나오다

하지만 20대 여성이란 시선은 그녀에 대한 편견을 갖게 했다.
"정말 별의 별일이 다 있었어요. 지금이야 많이 줄었는데 그때는 진짜 힘들었어요. 남녀 구분없이 괴롭혔어요. 성희롱적인 메시지는 다반사였어요."
개인적인 메시지는 보낸 사람이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무시하거나 고소하면 됐다. 하지만 팟캐스트와 같은 공개자리에서는 대응하기 어려웠다.
"썩 좋아하지는 않는데 한번은 팟캐스트에 나간 적이 있어요. 게스트 목록을 보니까 좋아하는 선생님도 있어서 나갔거든요."
그녀가 느끼기에 정치적인 사항에 대해서 '깨어있는' 방송이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건넨 질문지는 정치적인 태도와는 180도 달랐다.
"녹음 전에 질문지를 줬는데 이런 질문이 있었어요. '정두리 씨는 능동적인 여성인거 같은데' 아니 능동적인 사람이면 사람이지 여성이 왜 붙어요? 그것 자체가 편견이에요. 여성이 수동적인걸 전제하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문제는 그 뒤였다.
"그 뒷문장이 정말 화가 났어요. '잠자리에서 뭐 리드하는 편인가요.' 이딴 성희롱적인 문구가 있는거에요. 깨어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여성에 대해서는 베타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던 거죠."
그녀는 정치적으로 깨어있다는 사람들이 약자에 대해서는 자신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 질문을 받았어요?
"아뇨. 그때 너무 화가 나서 '이 질문 하기만 해봐' 그런 태도로 있었어요. 그러니까 안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팟캐스트 녹음이 끝나나 싶었다.
"녹음 막바지에 '맥심 나가서 좋은 점은?'이라고 물어보는거에요. 그래서 여자팬들이 많이 생겨서 너무 좋다고 했죠. 그랬더니 '그건 안좋은건데' 이러는거에요."
이유를 묻자 개그우먼 이국주 씨 얘기를 꺼냈다. 이국주가 여자에게 외모적으로 경계심을 안주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하는거에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에요. 그 말은 사회적인 약자인 사람들을 타자화시키는 거거든요. 저는 절대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연대하면 했지 왜 우리가 적이에요."
외모적인 걸로 서로를 견제하고 미워하는 존재로 여성을 생각하는 태도에 화가 났다. 그녀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자기들 딴에는 농담이지 않았을까요?
"농담이라고 생각하는거 자체가 문제인거 같아요. 그런 일 외에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너무 사사롭고 한심한 일도 많았어요. 그런게 무섭고 끔찍해요. 그래서 그때마다 전 적극적으로 대응해요."
-앞장서서 싸우시는건가요?
"제가 막 잔다르크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요. 작업을 하고 싶지 싸우고 운동하고 싶은건 아니니까요. 물론 그런 상황이 오면 싸우겠죠. 일상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거에요."

맥심은 인쇄비를 위한 수단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젖은잡지는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출판사 신고를 했다.
"많든 적든 돈이 벌리잖아요. 그런데 세금을 안내면 탈세가 돼요. 그래서 사업자 등록을 했죠."
매번 나올 때 마다 품절됐다. 3호부터는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1, 2호는 너무 힘들었어요. 그 때는 프랑스에서 용돈 쪼개가며 만들었거든요. 그래도 악착같이 계속했어요. 작업을 지속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1, 2호는 화제가 됐다. 그러다보니 욕심이 생겼다.
"아예 한국에 3개월 들어오기로 했어요. 3호에 집중하려고요."
시간은 늘었지만 돈은 없었다. 그때 친구가 던진 한마디. '맥심모델에 지원해봐'
"1차는 사진만 보내면 돼요. 그거보고 뽑거든요. 그것만 통과해도 10만원을 준다는거에요. 그걸로 인쇄비 벌어야겠다싶어서 나갔죠."
인쇄비를 벌려고 시작한 일이 미스맥심으로 선정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맥심은 시선의 권력이 남성으로 치우친 매체다.
"그래서 저에게 계약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는데 계약을 안했어요. 성향도 안 맞았고요. 아프리카TV같은 경우야 저에게는 작업이었잖아요. 그런데 맥심은 연구하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일종의 게임? 홍보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단순히 여고생 팬이 생기게 해준 매체죠."
-여고생들이 많이 보나요?
"그렇진 않죠. 원래 저한테 관심 있던 애들이 맥심에 나가는걸 보고 팬이 된거죠. 맥심 같은 매체에 대한 여자들의 감정은 예쁘고 섹시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어떤 시선으로 보여질지 몰라 불안한거죠. 그런 매체에 전형적인 모델이 아닌 조금 색다른 여성이 미스맥심이 됐다는 사실에 환호한거 같아요."
하지만 긍정적인 반응만 있지 않았다. 맥심에 나간 것에 반발심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정말 존경했던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그 뒤로 저한테 등을 돌리셨어요. 좀 답답하게 느껴지기는 해요. 사회적인 편견에서 여성성을 두 가지로 나누잖아요. 성녀 아니면 창녀.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노는 것 자체가 재밌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그거에 대해서 갇혀있는 생각 밖에 못하는지 아쉬워요. 어떤 여성성도 존중해야 되는데 말이죠."

여성혐오에 대해 단호히 대응해야 돼

-'나는 페미니스트다'란 SNS운동에 참여하셨는데 페미니스트란 무엇인가요?
"사실 젖은잡지나 다른 작업에서 제가 페미니스트고 페미니즘 공부를 하고 싶다는 걸 내세우지는 않아요.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죠. 흔히들 여성주의자라고 하는데 그건 한국형으로 번역하거라고 봐요. 성평등주의자가 본뜻에 더 맞다고 생각해요. 여성을 위한 권익만을 대변하는게 아니라 사회적인 타자, 약자, 소수자 이런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폭력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는 일부 사람들이 인식하듯 여성들의 이익을 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타자, 소수자, 약자들에 대한 모든 종류의 차별과 폭력에 반대한다. 정 씨는 동물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나라 사회에서 여성혐오 현상이 심해졌다고 봅니다
"여성혐오에 대한 뿌리는 깊어요. 팽배해진 것도 있겠지만 이제야 자각했다고 보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젊은 세대들도 여성혐오가 심각한 것이라고 정 씨는 말한다. 그나마 일말의 희망은 있다. 이제라도 사람들이 발견했다는 점이다.
"여자가 숫자적으로 적어서 소수자다가 아니에요. 정말 약자이기 때문이죠. 남성이나 유사 남성 같은 여성들은 이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여성들 중에서도 여성혐오에 대해서 침묵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장동민 사태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녀는 많이 우울했다. 사건이 본질과는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는 거였다.
"언론에서는 젠더커뮤니티 간의 싸움으로 묘사하더라고요. 여성 커뮤니티에서의 음해라는 식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해석해서는 안되는 문제에요. 여성혐오 현상이라는 본질에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사랑하는 힘보다 혐오하는 힘이 더 강력하고 뭉치기도 쉽다. 그녀는 그렇기 때문에 더 노력해야 된다고 말한다.
"백인들이 검정피부를 혐오했기 때문에 차별하고 폭력을 휘둘렀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는게 터부잖아요. 차별 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비난을 받죠. 그렇게 인식을 바꾸기 위해 얼마나 차별에 대해서 넘어가지 않고 잘못됐다고 얘기했겠어요. 지금도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젖은잡지도 그런 노력 중 하나죠."
-LGBT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나요?
"젖은잡지라는게 이성애자,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타자들의 욕망을 다루는 잡지잖아요. 그 중에 동성애도 있어요. 저는 LGBT 굉장히 지지해요. 이번 퀴어 퍼레이드에도 참여하고 싶고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묻자 그녀는 계속해서 섹슈얼에 대해서 다루고 싶다고 말한다.
"저에게 팬이 생기는 이유가 예쁘니까 생기는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의 생각, 활동, 작업을 좋아하시는거겠죠. 그런 사람으로서 더 좋은 작업을 보여주는게 가장 큰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도 작업을 하는게 가장 큰 목표라고 한다. 하지만 당장은 젖은잡지를 잘 해내고 싶다.
"젖은잡지가 하나의 플랫폼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런 주제로 작업하는 사람이 모여서 만드는 작품을 보여주는 통로요. 손익분기점도 넘었으니 더 좋은 작업자들과 함께 일하고 싶기도 해요. 이제는 페이도 드릴 수 있으니 자신있게 컨텍할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젖은잡지에 대한 홍보도 잊지 않았다.
"이번 4호 백합이란 주제는 제 인생주제거든요. 엄청 관심있는 주제여서 열심히 만들었어요.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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