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많은 아빠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대구 촌놈의 아내 제니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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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현호(wordsmith)등록 2015.06.25 16:55
필자가 중학교 1학년 시절, 1998년도에는 피시통신과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즐겨했던 게임 중 하나가 스타크래프트입니다. 정말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게임이 티비에 중계가 되고, 게임 프로그래머가 미래의 장래희망 목록에 오를 정도로 영향력은 컸습니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묻곤 했습니다.
"니 꿈이 머꼬?"

"난 게임도 하고 돈도 벌고, 연예인도 사귀는 게이머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면 친구들은 한바탕 웃었고, 선생님은 한심한듯 그 친구를 쳐다보셨지요.

많은 청소년들은 PC방에 중독되었습니다. 저도 처음 밤을 샌 것이 아버지께서 중국으로 출장을 간 날 집밖에서 주말에 친구들과 PC 방이었습니다. 저는 32살인 요즘도 가끔 친구들을 만나서 맥주를 한잔하고 나면 스타크래프트를 합니다.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때의 시간이 그리워서입니다.

추억이란 그리움과 깊이 연결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전 1-3살 때 까지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과학적으로는 인간의 뇌가 아직 뉴런의 연결이나 구조적으로 완전하지 못해서 그 시기의 기억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전 살아오면서 제가 태어났던 그 시절, 그 모습을 사진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의 평범했던 저희 집안에서 많은 사진을 남길 만큼 마음의 여유도 시간의 여유도 부모님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게 남겨진 영유아시절의 사진은 손에 꼽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전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커 나갈때까지 무언가를 남겨주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글을 쓰고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작성하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소소하게 저의 블로그에서 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그 미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글을 쓰는 순간이 온다면 아이는 지난 저의 글들을 읽고 댓글도 달고 질문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 편지에 답장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남긴 반응들도 함께 읽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다양한 의견에 노출되고 자신의 생각을 비교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과거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출발할 것입니다.

앞서 말한 그 게임에는 미니맵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 미니맵에서는 오로지 자신이 지나간 길만 밝게 볼 수가 있고, 그 변한 부위 또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어두워집니다. 저는 이것이 인생사와 참 닮아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온 길도 때론 다시 돌아보고 걸어갈 길을 조심스레 살펴야 하는 것, 그것이 인생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인생길에서 먼저 삶을 살아간 선배이자, 친구이자, 아버지라는 이름의 제가 해야할 일들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좀더 일찍, 좀더 계획적으로 했어야 하는데 아빠가 된다는 것은 꼭 그렇게 마음먹은대로 진행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아빠가 할 역할이 무엇일지 많은 고민이 듭니다. 어쩌면 아빠가 되어보지 못했다면 평생 품지 않았을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빠가 이런 철학적인 질문을 하고 엄마의 수발을 들 동안
조리원에서 엄마는 매우 바쁩니다. 아이에게 젖을 물려야 하고, 3시간 간격으로 도는 젖을 유축기로 잘 빼내어 젖이 뭉치지 않게 관리해야 합니다. 젖몸살이 나지 않게 양분도 충분히 섭취해야 하고 그리고 그 와중에 새우잠도 충분히 자야만 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렇게 버겁던 이 일과도 이제 어느덧 익숙해져가나 봅니다.수척해진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생기는 날이 많아집니다. 참으로 엄마는 위대한 존재입니다.

요즘은 많은 부부들이 맞벌이를 합니다. 산후조리원에 있는 많은 산모들도 바쁘고 치열한 직장에서 출산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오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빠는 여전히 직장일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내가 육아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아빠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바깥 생활을 하며 바깥생활에 지친 남편과, 하루 종일 아이를 보며 기쁘지만 또한 지쳐 있는 아내입니다. 많은 갈등들이 신혼 때의 기쁨과 다르게 생겨남을 동료와 선배 아빠,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들었습니다. 출산의 기쁨도 잠시 생활의 빠듯함이 버거움으로 변하는 순간이 다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때 서로가 부부로서 필요한 것은 배려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떡뚜꺼비같은 자식과 출산으로 지쳐있는 아내를 보면 아빠는 가정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엄마는 아빠가 돈만 벌어주는 사람이 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아빠는 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합니다.

아내가 수유를 하러 간 사이 저는 이런 생각들을 메모지에 적습니다.

분명 아이를 키우는 시간인데 제가 다시 태어난 것 같습니다. 매일을 사는 똑같던 삶이었는데 무언가 변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아이가 생겼다는 건 아빠에겐 그런 느낌입니다.

조리원에서 마주하는 많은 아빠들은 출산휴가로 맞이하게 된 이 꿀같은 휴가를 참 고마워하고 감사해했습니다. 아침마다 올라가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셔야 하는 옥상에는 사실 담배를 피는 아빠들이 더욱 많았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금연을 하면 더 좋을 텐데요.

아빠는 겁쟁이가 됩니다. 콘센트 구멍도 겁이 나고, 테이블 모서리도 겁이 납니다. 조그만 벌레도 겁이 나고 미끄러운 바닥도 겁이 납니다. 아이에게 어쩌면 세상은 참 겁나는 곳일텝니다. 하지만 곧 배워 나갈 겁니다. 세상은 또한 참 살맛나는 곳이란 것을요.
덧붙이는 글 엄마가 산후조리의 과정동안 대단히 예민해지고 민감해집니다. 체력적으로 극한의 순간들을 경험하고 난 뒤이며 호르몬의 변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때 아빠는 강한 멘탈로 무장해야합니다. 수면 박탈과 잦은 심부름을 해맑은 미소로 응대해야합니다. 그렇게 아빠는 희생과 배려를 배워갑니다. 엄마와 아이에 대한 사랑도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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