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영화 <암살>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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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준(gogogonight)등록 2015.07.27 17:52
"내가 아는 친일파 중에 네가 제일 가난해."

이 말은 술자리에서 등장한 농담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문장으로 적어 놓고 보니 그 문장이 가지는 역설이 대단하다. '친일파는 가난하지 않다.',  '너는 가난하다.', '고로 너는 친일파라고 말하기엔 여러모로 부족하다.'라는 유추가 가능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1945년에 패망한 일본을 따랐던 친일파 역시 일본의 패망과 동시에 가세가 기울었거나 당시 이 땅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에게 핏박을 받아가며 모질게 살았다면 이 이야기는 농담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부와 권력의 중심에 쟁쟁하게 버티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기에 저 문장이 농이 될 수 있고, 역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친일파' 꽤 무거운 단어이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1945년 이전의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일본 정부의 정책에 동조하거나 협력하는 등 반민족적 행위를 한 무리'라고 정의되어 있다.

진정 1945년 전에만 존재했을까.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에서 염석진은 훗날 반민특위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뒤 그를 처단하러 나타난 과거 독립군 동지들에게 "몰랐다."라고 얘기한다. 이 나라가 해방될지 몰랐기 때문에 일제의 밀정 노릇을 했으며 일본 순사가 되었고 독립군을 배신했다고 말이다. 그럴 수 있다. 세상사 어떤 일이 어찌 벌어질지 감히 예단할 수 있겠는가. 그 시대를 살면서 살아가는 이 스스로가 자신의 양심과 능력에 맞추어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으로 보자면 그 시절의 '친일' 역시 욕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당시 자신들의 선택으로 '친일'하여 잘 먹고 잘 산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들이 부정했던 조국의 독립이 이루어진지 벌써 70년이 지나가는 요즘 '친일'이라는 단어가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앞서 말한바 이 나라의 대부분의 부와 권력 중심에 서 있는 이들이 그 '친일'의 끝자락을 붙잡고, 그 시절 누렸던 교육과 시스템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아가며 꾸준히 부와 권력을 재편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오히려 민족의 해방과 자주 독립을 위해 한 몸 내던진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은 오히려 핍박받고, 가난하며 그 조상들의 후광이 빚으로 치환된 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분노의 게이지는 더욱 올라 간다.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정의고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정의와 진리가 통해야 한다. 난 그렇게 배워왔고 나보다 어린 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쳐 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선택에 대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삶을 살며 선택한 방법이 누군가에게 고통을 준 사실이 있다면, 그리고 그 고통의 총량이 절대적이라면 반드시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친일'하여 모은 재산이니 모두 몰수하라." 라던지 "'친일'하며 배운 지식이니 그 뇌를 끄집어 까 내겠다." 등의 단순하고 과격한 책임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누리는 동안 누리지 못해 괴로운 지금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나누어야 한다. '친일'로 축적된 부와 권력이 적어도 이 나라의 정체성과 주권을 회복하는데 그 힘을 다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에게 나누어져야 한다. 지나간 시대를 계속 한탄하며 그 시절의 잘잘못을 계속 끄집어 내서 문책하고 갈군다면 그 사회적 비용이 만만찮을 것이다. 조금 더 생산적인 방법을 강구하여 '친일'로 인해 누린 것이 있는 자들은 그들의 '친일'로 인해 상대적으로 박탈당한 이들과 그 누림을 나누는 책임을 져 주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 채 계속 시간이 흘러 간다면 이 골은 더욱 깊고 더 깊어져 지금의 사회 양극화 그 이상의 재앙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화 <암살>에서 염석진은 반민특위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 난다. 반민특위당시 대한민국의 경찰이었던 일제 시대의 밀정이자 순사는 재판장에서 나온 뒤 경찰관들로부터 축하 받는다. 보살핌을 받는다. 같은 화면 안, 염석진의 등 뒤에서는 '반민특위 해체'를 외치는 시위대가 현수막을 펼친 채 행진을 하고 있다. 영화의 말미였기에 걱정했다. 그렇게 끝이 날까봐. 하지만 최동훈 감독은 그런 결말을 선택하지 않았다. 더 이상은 스포일러이기에 쓰진 않겠지만 누군가 책임 질 일을 했다면 그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

2015년 7월 현재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이 48분만 생존해 계신다. 최근 미국이나 중국 등에 고개숙여 사과하는 일본군국주의 시절의 군수업체 미쓰비시의 행태를 보며 우리나라의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일본정부나 일본의 기업 그리고 그들의 충견 노릇을 한 '친일파'들. 모두 잘 새겨야 할 것이다. 그 책임을 통감하고 진실된 사과해야 할 것이다. 그 책임에 적합한 보상도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꾸준히 그대들을 위한 '암살'을 기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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