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 모이는 친척들을 위한 '덕이의 선물'

[말없는 약속 20년 38] 한 명 한 명 떠올리며 만드는 종이접기

등록 2015.09.25 15:25수정 2015.09.2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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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덕이는 추석을 앞둔 약 20일 전부터 일가친척 개개인이 좋아할 취향에 맞게 종이접기 작품을 만드느라 바쁜 일정을 보내곤 한다.

친척들 각자에게 어울릴 만한 양말을 고르고 포장한다. 종이접기로 만든 컵받침은 양말과 함께 막내고모에게, 종이학은 사촌 동생이 좋아할 만화 캐릭터 모양이 있는 양말과 함께... 이렇게 각각의 선물을 준비한다.

주로 추석 하루 전에 친척들이 모이면 덕이는 한 사람씩 준비한 선물을 전달한다. 그 선물을 받은 사람마다 "덕아 고맙다"라고 말을 건네면 덕이는 살짝 미소만 남기고 쑥~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혼자 앉아 있다.

덕이의 방에는 TV, 컴퓨터도 없고 그렇다고 만화책을 보는 것도 아니면서 어울리기를 낯설어한다. 덕이는 친척들이 모이는 걸 좋아하면서도 말을 섞지 못하고 겉도는 것이다. 일가친척 동생들도 성장하면서 점점 덕이를 알아가고 있다. 무슨 말을 해도 덕이가 아무말 없이 미소만 띄고 있고 물어도 빨리 빨리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딱히 대화거리가 없는 것 같다.

여러 방법으로 덕이가 그렇게 좋아하는 가족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지지, 격려와 지도를 해보았으나 아직까지는 효과가 없다. 내가 "덕아 거실로 나와서 함께 과일 먹자!"라고 불러도 "안 먹어도 돼"라며 방에 혼자 있는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서 덕이와 마주한다.


"덕아, 네가 좋아하는 친척들이 왔는데."
"응."
"친척들이 덕이가 정성껏 만들어준 종이접기와 양말을 많이 좋아하는 것을 덕이도 알고 있지?"
"나도 알아."
"고마움을 갖게 되면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거든... 그래서 가족들이 거실에서 지금 덕이와 함께 마라톤과 태권도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예쁘게 다양한 모양을 종이로 접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고 싶어하는데."
(아직 자기에 대하여 그리고 자기의 특기에 대하여 자랑이나 뽐내는 것을 하지 않는 덕이는 '피식' 미소가 전부다)
"덕이가 친척들을 좋아하듯이 친척들도 덕이를 좋아하고 관심이 많아."
"나도 알아."
"그러면 거실로 나가서 함께 있을까?"
"싫어."
"싫어~~ 왜?"
"할 말 없어."
"할 말?"

"나는 엄마, 아빠가 없어"라는 말에 그만...

"응, 나는 재미나게 말도 못하고..." 하면서 말을 흐린다.

"말도 못하고?"
"그리고 동생들은 엄마, 아빠의 무릎에 앉아있는데 나는 엄마, 아빠가 없어."

'아~ 저런... 그랬구나 그래서 네가 방으로 들어왔구나.'

순간 내가 할 말을 잃었다. 그 점을 헤아려주지 못한 것에 대하여 덕이에게 미안했다. 덕이의 사촌동생들은 크든 작든 각자 자기 엄마, 아빠의 무릎에 앉아서 또는 기대어 있으나 덕이는 누구의 무릎에 앉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할머니께서는 무릎인공관절수술을 하셨고, 나 또한 항암제를 투여받은 이후로는 무릎에 덕이를 앉혀본 적이 없었다.

"에구... 덕아 미안해. 내가 그 점을 미처 몰랐구나 정말 미안해!"
"괜찮아."

나는 참 난감했다. 덕이가 초등학교 때는 내 형제들이 덕이를 안아서 자기 무릎에 앉혔었는데 어느해 부터인가 그런 일이 없었다. 아마도 덕이가 컸다고 여겼나 보다. 덕이는 그 점을 예리하게 알고 있었으니 얼마나 섭섭하고 또 한편으로 본인도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알고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

"덕아 이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모를 뻔했는데."
"괜찮아."
"고모가 만약에 덕이 입장이었다면 섭섭했을 텐데 덕이는 어떠니?"

"조금..."이라며 고개를 떨군다. 나는 조용히 덕이를 안아주었다.

덕이는 아마도 성서에 "여러분 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일에도 관심을 가지십시오"란 성구를 읽어보고 또 써보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덕이는 이런 내용을 알고 있고 실천해야 함을 알고 있었을 텐데... 덕이는 읽고 써본 내용은 잘 기억하는 면이 강하다.

그 다음날인 추석 날씨가 아주 쾌청해서 성묘가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덕이가 추석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친척 모두 아침식사 후에 한 차를 타고 선산에 가기 때문이다. 차 안 가득히 꽉 채운 상태로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보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선산에 도착해서는 묘들 사이로 뛰어 다니기도 하고 무엇인가 곤충이나 떨어진 밤을 주워보기도 하는데 그런 덕이 곁에서 나는 혹시 벌이나 뱀은 없는지, 밤송이에 찔리지나 않을까 하며 덕이 보디가드 노릇을 한다.

이렇게 성묘를 마치고 일가친척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며 인사를 할 때 덕이의 애절한 눈과 가슴으로는 '가지말라'고 발만 동동 구른다.
#추석 #선물 #종이접기 #양말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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