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끈한 인연, 10년간다

이론보다 실행, 결과보다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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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태(naul)등록 2015.11.09 10:05

우리가 흔히 뚱딴지라 부르는 돼지감자는 이렇게 생겼다. ⓒ 신광태


'내일이 시험인데, 지금 술을 퍼 마시는 건 용기냐? 아니면 객기냐?'

객관식 시험 전날, 옛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렸을 때 같은 동네에 살았던 키가 아주 작았던 녀석이다. 이름도 또렷이 기억난다. 시험을 생각하면 '뉘신지 잘...'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45년만의 재회를 그렇게 무시할 순 없었다.

'내일 시험이기 때문에 술은 좀...' 이런 말이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 그냥 옛날이야기를 안주삼아 한잔 두잔 기울이다 취기가 올라올 즈음 헤어졌다. 한 글자가 두 개로 겹쳐 보인다. 도저히 공부 할 상황이 아니다. 결국 다음날 그 잘난 평소 지식을 가지고 시험을 치렀다.

지난 10월 5일, 전북 완주에 위치한 지방행정연수원에 입교했다. 전국에서 모인 341명 모두 6급 공무원으로, 사무관 진급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5급 진급을 위해 그곳에서 6주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기자 횡포? 당신이 기자가 되어라

지난 8월21일 사내면장으로 발령 받았다. ⓒ 신광태


지난 8월21일,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1989년 9급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지 딱 26년만이다. 시골 군단위에선 그나마 빠른 편이다. 아직 6급으로 남아있는 선배들이 떠올랐다. 열 손가락으론 모자란 숫자다. 진급대상자 발표가 있던 날, 표정관리에 각별히 신경 쓴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그들보다 낫다고 내세울 만한 게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이거다'라고 할 수 있는 건 없다. 있다면 강의도 나가고, 기사도 쓰면서 내가 담당한 일 외에 설치고 다녔다는 것 정도 일거다. 업무를 가지고 핑퐁하는 걸 참 싫어했다. '관둬라 내가한다' 라고 하는 게 차라리 편했다.

어느 날 시민기자로 나섰다. 잘못된 기사 한줄. 그것을 뒤엎기 위해서였다. 바로잡아 달란 말에 담당 기자가 '알았다'란 말 한마디만 했어도 시민기자 생각도 못했을 거다.

이런저런 내용으로 보도자료를 써 언론사에 보내면 딱 두 줄 단신으로 처리하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용이 뒤집혀 기사화된 날엔 막말로 환장을 했다.

내가 기자를 하자. '사실은 이렇다' 라는 걸 미리 알려 버리는 거다. 민감한 사안은 보도자료가 나가기 전 미리 기사로 썼다. 잘못된 기사에 대한 반박도 서슴치 않았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기자의)고의든 실수든 엉뚱한 내용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 것들이 사무관 진급대상자 선정에 작용을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열심히 두드려라! 단단해지는 건 진리다

글쓰기 초보자를 위한 강의자료 ⓒ 신광태


"점수가 필요하신 분, 분임장이나 총무님 하시죠. 발표는 제가 하겠습니다."

지난 10월6일, 지방행정 연수원 입교 두 번째 날. 분임장 선출이 있었다. 발표는 내가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자 분임원 모두는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들이다. 발표자도 0.2점의 가점이 있는 줄은 몰랐다. '짜식 점수가 필요하니까' 란 오해가 있을지 몰라 밝힌다.

사실 난 남들 앞에 나서는 게 죽도록 싫었다. 살아온 과정에서 비롯된 듯하다. 내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가정환경 때문이다. 어렵게 검정고시를 통해 중.고등 과정을 이수했다. 어렸을 때 단체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이 대인 기피증으로 작용한다고 느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남들 앞에 나설 일이 많아지는 현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다. 남들 앞에 나서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2006년 10개월간의 장기교육 동안 발표만 무려 10번이나 했다. 떨리면 떨리는 대로, 긴장되면 긴장되는 대로 무조건 했다. 남들이 뭐라 든 나 스스로를 위한 훈련이었다. 복귀 후 홍보계장 보직을 맡은 이후 라디오 통신원도 자처했다. 지금까지 9년여 기간 매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다. 

"글쓰기 강의 좀 부탁드리면 안 될까요?"
"저는 글쓰기 전공도 아니고, 관련 지식도 없는데요."
"쓰신 기사가 포털에 올라온 것 빼 놓지 않고 읽었습니다. 그 방법을 설명해 주시면 돼요."

몇 년 전, 어느 자치단체 교육청으로부터 강의 제의를 받았다. 수강생은 초중고 교감선생님들이라고 했다. 글 쓰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해 달란다. 순간 스친 생각. '교감선생님이라면 그 분야에 전문가들 일거다. 망신 당하기전 사양하는 게 맞다'라는 생각에 이은 '까짓 거 한번 부딪혀 보자'라는 갈등. 결국 후자를 택했다.

"앞으로 다섯 번만 더, 같은 강의 부탁드리면 안 될까요?"

이게 웬 말인가. 150여명의 교감 선생님들 앞에서 강의를 했었다. 내 위트에도 무반응, 그 대목쯤에선 박수가 나와야 하는데 조용했다. 강의를 끝내고 인사를 할 때도 형식적인 박수를 받았다고 느꼈었다. 그런데 강사평가에서 내가 최고 점수를 받았단다. 선생님과 공무원. 리액션이 없는 건 어쩜 그렇게 비슷할까.

이론보다 실행, 결과보다 홍보

연수 중 쓴 정책기자단 기사 ⓒ 신광태


민생체험.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을 통한 지역 창조경제 발전방안 연구'. 지방행정 연수원 7분임이 선택한 과제다. 난 그보다 포항에 건설 중인 '제4세대 가속기'와 경주의 '양성자 가속기'에 관심이 더 컸다. 모르는 건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고집. 가습기는 내게 전혀 생소했던 분야이기 때문이다.

"우린 다른 분임처럼 요란한 퍼포먼스 하지 말고, 우리가 활동한 것을 기사로 한번 내 봅시다."
"그게 될 까요?"

난 <오마이뉴스>시민기자이며 대한민국 정책기자다. 지난해 12월 엄격한 심사를 통해 합격했다. 150명을 뽑는데 몇 천 명이 몰렸다는 소식도 들렸다. 젊은 대학생들과의 경쟁에서 몇 안 되는 연장자로 당당히 합격했다.

내용은 좋은데, 노골적 행정홍보성 취재거리가 있다. 그런 건 내가 시민기자로 몸담고 있는 <오마이뉴스>에선 채택하지 않았다. 정책기자단 문을 두드린 이유다.

'자랑질 좀 하고 가실게요. 우리 7분임에서 민생체험 한 내용이 포털에 떴습니다.'

지방행정 연수원 10기에서 운영하는 밴드에 위 같은 글을 올렸다. 우리 분임원 외에 아무도 반응이 없다. 그럴 만하다. 분임별로 보이지 않는 경쟁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끈끈한 인연, 10년 간다

지방행정연수원 2015년 제10기 7분임원들. ⓒ 신광태


"솔직히 노인 요양시설에 가면 빨래도 해야 하고, 냄새도 날거고, 장애인 시설도 그리 편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어린이 보호시설로 가면 어떨까요?"

사회봉사활동. 더 편한 일을 하고 싶다는 공통적 심리 때문일까, 내 주장이 먹혔다. 어린이 보호시설에선 아이들과 놀아주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우리 20명의 분임원들은 '상록원'이란 간판이 붙은 고아원 문을 열고 당당하게 들어섰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아이들이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학교가고 없습니다' 라는 원장님 말씀. '그럼 우린 뭐해야 합니까'라는 불안한 표정. 분임원들 시선은 동시에 원장 얼굴로 집중됐다.

'저기 뚱딴지(돼지감자) 밭 보이죠. 저거 캐는 게 여러분이 할 일입니다'

에고 잔머리 굴렸다가 완전히 망했다. 괜히 고아원가자고 했나보다. 분임원들 얼굴을 똑바로 볼 낯이 없다. 

사무관. 지방행정의 꽃이라고 한다. 벼슬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우리 341명 교육생 모두는 아직 미완성이다. 6주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사무관이란 직책을 정식으로 얻는다.

이제 일주일 후면 교육이 끝난다. 대체 내가 그 기간 동안 무엇을 배웠을까, 가방을 뒤적였다. 민법, 행정법, 헌법, 지방재정, 공공갈등과 협상전략, 행정쟁송 과목이 잡혔다. 이것들을 현장에 접목해야 한다. 날 잡아 정독을 하기로 했다. 

우리 7분임원들과의 인연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연수를 통해 만난 소중한 사람들이다. 2개월 뒤, 산천어축제가 열릴 때 첫 모임을 화천으로 제안했다. 6개월에 한번 씩 분임원들이 소속된 단체에서 만난다면, 10년 동안 우리의 끈끈한 인연이 지속될 거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신광태 시민기자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장입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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