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유권자가 아닌 주권자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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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현(gorhf011)등록 2016.04.17 19:16
2016년 4월 13일 총선이 끝났다. 청와대와 여당의 '국회심판론'. 그리고 야당의 '경제심판론'과 정권심판론' 등 수많은 어구가 이번 총선을 꾸몄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보니 애초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사 그리고 정치 비평가들의 예상과 달리 여소야대(與小野大)가 16년 만에 재현되었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국민의 정권 심판이라고 연신 보도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에게 봄이 왔는가?

선거의 양태를 본다면 단연코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먼저, 공약의 부재이다. 내가 중학교 때 일이었다. 어린 마음에 반장이 너무 하고 싶어, 공약으로 한 달에 한 번 과자 파티를 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리고 나는 부반장이 되었다. 그리고 교실 뒤에는 나의 사진이 걸린 공약 포스터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1번뿐 이지만 나의 공약을 실천했고, 친구들은 과자 파티를 하게 되었다.

하물며 학생들의 선거에서도 공약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공약은 학급 친구들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게 교실 뒤에 게시를 해두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어떠했는가? 내가 있던 지역구의 국회의원들이 어떤 공약을 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단지 공약이라고 하면 길가다가 받은 조그마한 명함에 있는 것뿐. 국민은 어떠한 사람을 뽑아야 하며, 그 사람이 어떠한 공약을 내걸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단지 나를 비롯한 국민에게 남은 것은 '과연 당신은 어떠한 정당이냐'였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꼭 심판받았으면 하는 당을 떨어뜨리는 방법 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당을 찍었다. 사표는 만들면 안 되니까. 그렇게 나의 20대 총선은 결정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사회 구조에 의해 반강제적 선택을 강요당하고 말았다. 과연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유권자였는가 아니면 투표를 바탕으로 한 나라의 주권자였는가? 그저 투표만 하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단지 유권자에 지나지 아니했는지 궁금하다.

아직 봄이 오지 않은 다음 이유는 야권이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의 결과로 새누리당은 122석, 더민주는 123석, 국민의당은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을 얻었다. 그리고 야당인 더민주가 원내 1당이 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과연 승리일까? 내가 쓰고 있는 지금 이 글과 다르게, 그들이 자신들이 승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절대 아니다. 앞서 언급한바, 나의 투표는 선택을 강요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심치 않게 언급되는 '새누리당 내각제 개헌론'이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시점, 또한 유례없이 점점 어려워지는 20대 청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보다 끔찍한 일이 없으므로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청년이 그랬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다. 4월 14일 JTBC의 '썰전'에서 전원책 변호사의 말대로 새누리당의 '자폭자기식 공천 파동'으로 묻혀서 그렇지, 더민주의 공천과정도 썩 훌륭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제1야당으로 임기 4년간 제대로 된 야성을 보여준 것은 '필리버스터' 하나였다. 그마저도 모양새가 나지 않게 마무리되었다. 더민주의 말대로 경제심판론이 국민에게 더욱 와 닿아서가 아니라, 단지 둘 중에 좀 더한 정권과 여당을 심판한 것이지, 당신들의 승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진정한 봄은 언제쯤 오는가? 정당은 영어로 'Party'라고 부른다. 그 말 그대로 정당은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 단지 일부분일 뿐이다. 정당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색깔을 가지고, 모두의 이익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집단이다. 그러한 정당이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3개 많아야 4개밖에 없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정당이 국민 모두의 의견을 대변하려고 자꾸만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며, 사회적 구조도 정당에 사회 모든 전반의 문제를 맡으라고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슬란드에서는 현재 '해적당 돌풍'이 불고 있다. 해적당은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를 옹호하고, 대의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급진적 정당이다. 저번 임기까지 아이슬란드 국회에서 3개의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정당이, 이번 선거에서 40%에 가까운 지지율을 받으며 원내 1당으로 발돋움 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해적당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군소 정당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에 있어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번 총선에서 나도 내심 군소 정당을 투표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군소정당에 투표하게 되면 대한민국의 투표 구조상 흔히 말하는 사표가 발생하게 된다. 1위만이 당선되는 현 투표 구조에서 군소정당이 살아남을 길은 극히 희박하다. 그러나 정당의 성격이 애초에 부분만을 대표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더욱더 많은 정당이 힘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양성 아래에 서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다양한 정당이 나름의 목소리를 가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예상보다 많은 득표를 받지 못한 군소정당에 사과의 말과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먼저는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현재 구조의 굴복 해서 찍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러나 당신들이 얼마나 서민들을 위해서 일하고자 하는지 알기 때문에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달라고 말이다. 이번 국회를 통해 선거법이 조금은 더 민주주의적으로 개진되었으면 좋겠다. 선거의 비중을 비례대표제에 무게를 두고 가는 것은 사표를 방지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 측면에서, 지금의 선거제도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국민이 유권자에 지나지 않고, 투표를 통해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주권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언론인을 지망하는 학생으로서 올 2월 세명대저널리즘스쿨에서 운영하는 '단비뉴스'에 내가 첨삭을 요청했던 글이 올라왔다. 그 글에서 나는 청춘들이 덫에서 탈출하려면 청춘들이 연대해 움직여야 함을 역설했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에 내심 실망도 했었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를 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이 섣부른 판단이었음에 너무나 기뻤다.

이번 총선이 봄은 아니다. 그러나 순수 우리말 중 '시나브로'라는 말이 있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마치 우리가 손톱이 자라나는 것을 모르다가 어느 순간 알게 되는 것처럼, 우리들의 봄도 시나브로 찾아올 것이다. 이번에 투표를 해주신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여러분 덕분에 이 나라의 봄이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찾아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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