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남미처럼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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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진(littlefnger)등록 2016.06.10 11:06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고 있다. 언론사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논술 시험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논술에 나오는 주제의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이다. 언론사마다 주목하고 있는 현안이나 중시하고 있는 가치가 제각각이니 언론사를 준비하는 이른바 '언시생'으로서는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연습 삼아 써 본 글이 운 좋게 논술 시험 주제로 나오기를 기다려본다.

이 연습에 가장 적합한 주제는, 기출 문제다. 올해 그리고 과거에 인턴, 공채 선발 필기시험에 출제됐던 주제들을 써보는 것 말이다. 여느 날과 같이 서류에서 떨어진 것을 한탄하며, 지원했던 언론사에서 출제된 논술 주제를 찾아봤다. 주제는 '우리나라 정치, 경제 상황에 빗대어 우리나라도 포퓰리즘 정책들로 인해 남미 국가들처럼 될 수 있는지' 였다.

쓰라면 쓰지만, 1시간 안에 1500자의 글을 완성하기 벅차 기계처럼 써 내려가야 하지만, 짧은 찰나에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질문을 낸 의도가 무엇인가. 남미 국가들에 들어섰던 이른바 좌파 포퓰리즘 정권, 이들이 내세운 파격적인 복지 공약. 그리고 스위스의 국민투표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에도 감지된 기본소득 도입 논의, 포퓰리즘이라면 비난받았던 청년수당 등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정치, 경제 상황. 복지는 곧 포퓰리즘으로 직결되는 것인가 하는 기자를 준비하는 언시생의 삐뚤어진 시선. 개인적으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어, 넌 대답만 하면 되)스러운 느낌이 드는 주제에 대한 답을, 시험장에서 풀지 못한 한으로, 여기서 풀어볼까 한다.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우리는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프레임은 단어를 통해 활성화되는데 그 이유는 단어가 생각을 실어 나르고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논술 주제가 남미의 복지정책은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이미 단정 지은 이 '포퓰리즘'이 실어 나르는 생각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남미의 '좌파 포퓰리즘 정권'이 좌초하게 된 이유는 국가 재원 부족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먼저 남미 사회에 복지 정책이 필요한 이유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가장 간단하게 그 사회의 불평등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로 이야기하자면 세계은행이 발표한 브라질의 지니계수는 0.529이고, 멕시코는 0.482다. 보통 지니계수가 0.4 이상이면 소득 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심각하다고 본다. 즉, 브라질, 멕시코 등 남미 사회의 불평등 정도는 심각한 수준으로 우리는 흔히 이런 사회를 '1:99의 불평등 구조'라고 부른다.

IMF와 OECD는 연구를 토대로 불평등이 경제성장에 해가 된다는 경고를 하고 있는 만큼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국가 개입의 필요성은 점점 부각되고 있다. 그러므로 절대적 빈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가구를 위해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에 현금을 지급하는 것,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받도록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두고 인기에 영합한 선심성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남미의 지금과 같은 국가 재정 마비, 위기 사태는 재원을 마련하는 데에 있어서 소득 분배 구조를 개선해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을 마련하지 않고, 세계 경제에 영향에 민감한 원자재, 석유 등의 자원 사업에 기대어 재원을 조달한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 수단의 잘못된 선택으로 비롯된 것이다. 정책 실현으로 경제성장률, 국내총생산 등을 끌어올렸는데도, 이를 두고 단순히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공짜 공약라고 볼 수 없다. 

불평등이 구조화된 사회, 다수가 가난한 사회에서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선거는 절대 다수에 해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표를 얻는 과정으로 환원된다. 이들을 위한 파격적 복지 공약은 민심 수용의 명목으로, 개인적으로는 당선을 위한 명목으로 필수가 되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인, 국회의원들은 국민을 대표해 민심을 제도권 안으로 반영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한편으로 정치와 정치인이란 대중의 관심, 인기와는 떨어질 수 없는 속성을 가졌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리고 언론은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를 '빨갱이'와 같은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건설적인 논의와 논쟁을 막아 결국 복지는 포퓰리즘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낳았다.

위의 논술 주제는 사실 우리 사회에도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부터 시작된 복지에 대한 논의, 그리고 스위스의 국민투표로 촉발된 기본소득 논의와 청년수당 등 보편적 복지에 대한 필요성에 대한 논의 등 이 모두가 사실은 포퓰리즘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남미의 국가들처럼 될 수 있다며 위기를 촉발하려는 것은 아닌지. 1시간 안에 한편의 논술을 완성하는 데 방해만 되는 이런 생각들이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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