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간판 내려갔다", 안철수가 사퇴 고집한 이유

[이슈분석] 불법 리베이트 수사 상황에 따라 입장 변화, '지도부 책임론' 제기에 결단

등록 2016.06.29 18:35수정 2016.06.3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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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리베이트 사건에 책임지고 사퇴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수민·박선숙 의원의 불법 리베이트 의혹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고 천정배 공동대표와 동반 사퇴 입장을 밝힌 뒤 승강기에 올라타고 있다. ⓒ 유성호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김수민·박선숙 의원과 왕주현 사무부총장이 연루된 불법 리베이트 의혹 사건에 책임을 지고 29일 사퇴했다.

안 대표의 사퇴설은 지난 28일 의원총회에서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됐다는 말이 나오면서 확산됐다. 천정배 공동대표는 말을 아꼈지만 안 대표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라며 사퇴 의사를 내비쳤다. 안 대표는 이후 최고위원들과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앞서 안 대표는 이번 사건으로 네 차례나 대국민 사과를 했다. 안 대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번 사건을 검찰에 고발한 지 나흘만인 지난 10일 첫 번째 사과를 했고, 이후 당의 진상조사단의 발표에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20일 두 번째 사과를 했다. 이어 왕 사무부총장의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박 의원이 검찰에 출두한 지난 27일 세 번째 사과를 했고, 왕 사무부총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28일 네 번째 사과를 했다.

이 과정에서 안 대표는 일관되게 "당헌당규에 따라 엄격하게 처리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국민의당은 부정부패 사건에 연루돼 기소만 당하더라도 당원권을 정지하게 돼 있고, 이것은 다른 정당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수위가 높은 징계다. 안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기 전 '혁신안'으로 주창했고, 이후 '정치검찰'에 대한 우려와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철시킨 조항이다.

그러나 거듭된 사과와 강도 높은 당헌당규 적용에도 민심은 싸늘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될 수록 당 지지율은 곤두박질 쳤고, '기소 후 당원권 정지'라는 징계도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국민의당은 당원권이 정지되면 "전당대회를 앞둔 상황에서 사실상 제명에 준하는 조치이고, 왕 사무부총장은 출마할 수도 없다"라며 항변했지만, '새정치'를 강조해 온 안 대표에게 더 큰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일부 의원들이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했다고 하지만 대다수 의원들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안 대표가 사퇴 의사를 굽히지 않은 것은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안 대표가 사건에 연루된 김수민·박선숙 의원 등에 대한 제명조치를 요구했다는 점에서도 부정부패 사건에 기존 정치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자신이 정치를 시작한 '새정치'라는 명분을 포기할 수 없다는 모습이다.

"사건 초기 판단 틀렸다", 두 현역의원 검찰 수사에 부담


이 같은 배경이 안 대표가 사퇴를 결심하게 된 '이성적 이유'라면 '현실적 이유'도 있다. 안 대표의 사퇴는 이번 사건의 수사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특히 박 의원이 검찰 수사를 받고 나온 직후 안 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 의원은 안 대표가 지난 2012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부터 함께한 최측근으로, 검찰의 박 의원 수사 내용이 안 대표 결정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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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떨구며 검찰 출두 한 박선숙 의원 국민의당 박선숙 의원이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서 '김수민 의원 리베이트 의혹'과 관련 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이희훈


복수의 국민의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검찰이 박 의원을 강도 높게 조사하면서 수사에도 상당한 진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왕 사무부총장에 이어 두 의원에게도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사건 초기에 수사에 대응하기 위해 몇가지 조치를 취한 것이 증거인멸로 비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박 의원의 경우는 당시 회계책임자로 왕 사무부총장과 동일한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후 검찰 수사가 두 현역의원 영장 청구, 국회 체포동의안 처리, 검찰 기소로 이어질 경우 앞으로도 약 2, 3개월 동안 이슈가 계속될 수 있다. 안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그때마다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 내부에서 '지도부 책임론'과 직접적인 사퇴요구(관련기사 : "안철수, 본인 위해서라도 대표 사퇴해야")까지 나온 마당에 선제적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안 대표에게는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안 대표 사퇴와 관련해 한 지역구 의원은 "안 대표가 여러가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의총에서 책임론이 나오기는 했지만 대표의 사퇴를 요구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라며 "더민주를 탈당하는 과정에서 '책임지지 않는 정당'이라고 비판을 했는데, 여기서 생긴 문제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안 대표가 당의 간판이었는데, 이게 내려진 것이기 때문에 더 진통이 생길 것 같다"라고 우려했다.

국민의당 핵심관계자는 "사무부총장 구속과 박 의원 수사까지 보면서 사건 초기 당의 판단이 잘못 됐다는 말이 나왔다"라며 "진상조사단도 별 문제 없다고 나오고 유죄 입증이 어렵다는 판단에 충실한 사과와 '당헌당규'로 처리한다는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달라지면서 안 대표가 책임지는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의 여파가 최소 연말까지 이어지고 전당대회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천정배 #사퇴 #김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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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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