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녀'는 생각하지 마

[리뷰]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_조지 레이코프

검토 완료

장교진(littlefnger)등록 2016.07.21 14:32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과제를 내드리려 한다. 개인적으로 진심을 다해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 과제는 바로 이것이다.
"김치녀는 생각하지 마세요."
과제를 수행하는 데 성공했는가? '절대'라는 말이 들어맞는 경우는 매우 소수인데, 오늘 그 중 하나를 찾은 것 같다. 그래서 자신 있게 써본다. 여러분은 과제를 수행하는 데 '절대적으로' 실패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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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인지과학 개론'이라는 수업을 할 때 학생들에게 맨 처음 내는 과제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한다. 그리고 이 과제에 성공한 학생을 그는 단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내가 앞서 제시한 과제와 성공 여부에 대한 확신은 조지 레이코프, 그로부터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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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어들이 그렇듯 코끼리도 그와 상응하는 프레임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은 어떤 이미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종류의 지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코끼리는 몸집이 크고, 퍼덕이는 귀와 엄니와 긴 코를 가지고 있고, 밀림에 서식하고, 서커스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 밖에 다른 특징도 가지고 있지요. 이 단어는 그러한 프레임에 의거하여 정의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려면, 우선 그 프레임을 떠올려야 합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조지 레이코프,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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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강남역에서 발생한 묻지마 살인 사건이 발생한 이후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는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그리고 언론은 이 현상에 주목하여 김치녀, 된장녀 등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들의 의미와 이것이 나오게 된 이유, 사회적 현상 등을 분석하고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언론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이들이 정보를 생산, 유통 또는 가공하면서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원인을 찾아내는 역할을 수행해 왔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단초를 얻었다. 또 실제 점진적으로 나아가며 발전을 거듭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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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치녀, 된장녀 등의 사회 문제를 고발한다는 명목으로 언론이 이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갈등을 유발하는 단어를 확대해서 유통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거기다 언론이 갖고 있는 매체의 영향력에 힘입어 오히려 여성을 바라보는 '여성혐오' 프레임을 더욱 강화시켜 주고 있다. 여성에 대한 차별, 불합리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김치녀는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온 언론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생각을 강화시켜 주고 실어 나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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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조지 레이코프는 사람들은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고 말한다. 프레임은 단어를 통해 활성화되는데, 그 이유는 단어가 생각을 실어 나르고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본질은 단어 안에 내재된 생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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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김치녀라는 단어를 통해 활성화되는 여성을 바라보는 프레임은 뭘까. 김치녀가 실어 나르고 불러일으키는 생각을 보면 알 수 있고 이는 김치녀의 개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치녀는 여자들의 허세와 무능력 또는 남자 등골 빼먹는다는 등의 의미이다. 즉, 이 단어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정당하다는 등의 생각을 내재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단어 사용을 통해 프레임이 활성화 된다면, 언론이 이 단어를 사용하면 할수록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대한 생각을 실어 나르고 전달하는 게 되는 것이다. 즉, 언론이 이 김치녀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사회에 존재하는 여성을 바라보는 차별적이고 편견 있는 프레임은 계속 활성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지 레이코프는 상대편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려면 상대편의 언어를 상용하지 말라고 말한다. 상대방이 주장하고 있는 단어, 낱말들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세계관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의 언어를 사용하며 프레임을 형성해야 한다. 따라서 언론이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만연한 사회를 고발하려면, 기존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언어를 선점해서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새로운 언어를 선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또는 여성을 바라보는 차별과 편견이 없는 프레임이 존재한다면 이에 맞는 언어는 자동으로 따라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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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치녀, 된장녀 등의 표현만이 각종 매체를 통해 우리 사회에 유통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차별과 편견 없는 그저 '여성'으로서의 생각을 실어 나르는 언어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있자면 어쩌면 우리 사회에 여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프레임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그래서 프레임을 활성화시키는 단어를 찾지 못하고 상대 진영의 단어를 사용하며 그 세계로 끌려 들어가는 것인가. 그렇다면 남은 대안은 하나, 언론은 이제 그만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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