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리니 손에 칼이..." 유성 노동자는 아직 아프다

해고노동자 11명, 22일 대전고등법원에서 '부당해고' 인정 받아

등록 2016.07.22 19:02수정 2016.07.22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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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1일) 참 기쁜 소식 하나가 있었습니다. 5년째 민주노조 파괴 공작에 맞서 싸우고 있는 유성기업 해고 노동자 11명이 대전 고등법원 항소심에서 전원 승소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사측의 징계절차, 징계위원회 구성, 징계 양정까지 모두 잘못되었다는 판결이었습니다. 해고보다 수위는 낮았지만 지난 5년여 동안 유성기업 노동 현장에서 사측에 의해 자행되었던 출근정지, 감봉, 정직 등 수백 건에 이르는 부당 징계들 역시 그 근거가 없었음이 밝혀진 판결이었습니다.

물론 지난 4월 14일에도 이에 버금가는 반가운 소식 하나가 있긴 했습니다.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의 중요한 전략 중 하나로 사측이 복수노조법을 악용해 만들었던 유성기업 내 제2노조(어용노조)가 법원(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도 그 자주성과 독립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설립 무효 판결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부당해고, 감시, 노조 파괴 시도... 고통받은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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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천안아산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충남 천안시 두정동 천안고용노동지청 앞에선 ‘유성기업 노동자를 살리기 위한 릴레이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단식 농성은 16일로 12일째를 맞이했다. ⓒ 지유석


사실은 당연한 일인데도 그게 그리 감격스러운 일이어야 한다니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2012년 국회청문회를 통해 모두 밝혀졌던 일이었습니다. 원청인 현대차가 기획조정하고, 청와대, 국정원, 노동부, 검경이 동조하고, 창조컨설팅이라는 노무법인이 실행한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였습니다.

국민 여론이 치솟자 그때야 정부는 노동부와 검찰을 통해 특별 근로감독 2회와 1톤 트럭 한 대 반 분의 자료를 압수수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말단 종범(從犯)에 불과한 불법 노무법인 창조컨설팅만 설립인가가 취소되고, 대표 심종두 노무사의 자격도 취소됐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심종두 노무사가 '글로벌 윈'이라는 법인명으로 다시 활동하고 있는 것이 밝혀져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기도 합니다.

검찰은 유성기업 유시영 대표 이사 등 주범들에 대한 기소를 계속 미뤄왔고, 다시 4년을 기다려서야 어제의 부당해고 판결 하나를 노동자들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원청인 현대차의 부당노동행위 개입 증거가 계속 나오고 있음에도 현대차에 대한 어떤 조사나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도 합니다. 사측은 그 긴 기간 동안 숱한 부당노동행위와 가학적 노무관리를 통해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피를 말려 왔습니다.

검찰과 법원은 노동자 탄압 수단의 하나인 사측의 고소고발을 착실히 받아주는 것으로 끊임없는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도와왔습니다. 2014년 동안 사측이 의도적으로 조합원들을 자극하고 마찰을 일으키고 이를 사건화해서 조합원들을 고소 고발한 건수만 300건. 그 외 12억에 이르는 손배가압류, 일상적인 차별과 모욕, 출근정지, 정직 등의 징계는 셀 수조차 없었습니다. 30대의 감시카메라가 돌고, 그도 모자라 수십 대의 몰래카메라가 발견된 공장 안은 어떤 수용소보다 더 반인권이 판치는 감옥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옥상 난간에 서 있는 자신을 확인하였습니다. 정신을 못 차렸으면 떨어졌을 것 같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순간의 기억을 잃어버렸습니다. 옆에 있던 동료에게 물어보고 내가 흥분을 하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000 조합원(이하 당사자의 요청에 의해 따로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순간 저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고, 누군가를 죽이겠다며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결국 회사에 있을 수 없어 휴직계를 제출하고, 요양을 하면서 산재 신청을 하여 산재 승인을 받았습니다. 산재 승인 이후에도 자살 시도를 하였고, 산재가 강제 종료되었으나, 회사에 들어갈 수가 없어 다시 휴직계를 제출하였습니다.
- 000 조합원

와이프가 와서 왜 애들을 때렸냐고 물어봅니다. 제 기억 속에는 없습니다. 한없이 길을 걷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가 어디인지? 왜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 000 조합원

너무 힘들어서 병원 상담을 하였습니다. 우울증... 회사에 휴직계를 제출하겠다고 하니, 진단서를 떼어 와야 쉴 수 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산재 진행 진단서를 안 써주려 합니다. 약을 한 번에 털어먹었습니다. 이대로 일어나지 않았으면...
- 000 조합원

흥분하면 참지를 못하겠습니다. 주위에서 누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사고를 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 000 조합원

이런 가학적 노동 탄압 과정에서 11번의 고소 고발과 2번의 징계에 시달리던 한광호씨가 지난 3월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이르렀지만 120여 일이 지나는 동안 사과 한 마디 받지 못해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분향소 천막 하나를 세우려 했다는 까닭으로 다시 50여명의 노동자 시민들이 연행당하고, 더 많은 이들이 소환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무법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나온 판결이기에 어제 대전고등법원의 판결이 더 눈물겨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명백한 사실들이 당연한 사실로 밝혀지기 위해, 왜 누군가가 또 목숨을 버려야 하고, 수많은 이들이 끌려가야 하는지 참 알 수 없는 세상입니다.

11명의 해고자가 버텨내야 했던 5년... 그들을 위로해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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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고 한광호씨의 서울시청앞 분향소를 양재동 현대자동차앞으로 옮기는 '꽃상여 행진'의 모습 ⓒ 권우성


다행히 간만에 최소한의 법원의 정의를 확인한 판결이 나오긴 했지만 아직 가야 할 날들이 많기도 합니다. 현재 유성기업 유시영 대표이사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8월 중 선고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지난 4월 15일 같은 내용의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에 의해 탄압을 자행해왔던 갑을오토텍 박효상 대표이사가 동일한 재판부에 의해 법정구속된 사례가 있기에 다시 한 번 사법 정의가 살아나기를 기대해 보기도 합니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유린한 그들은 범법자들입니다. 2000만 노동자 가족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짓밟는 악덕 사업주들에 대한 분명한 심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현대차 본사와 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이 있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 대한 조사와 기소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재벌의 갑질로 무너져가는 공동체의 윤리를 지켜야 합니다. 이 모든 불법 행위를 방조 내지는 묵인해 온, 아니 오히려 보수 정권의 기반 마련을 위해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대중적 보루인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기획 실행해 온 이명박근혜 정권에 대한 단죄도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국회의 역할 역시 중요합니다. 19대 국회 기간 중에 자행되었던 총체적인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에 대한 국정조사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지치지 않고 싸우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우리가 그들 올빼미 노동자들을 함께 지켜나가는 시대의 별똥별들이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마음 모아가는 이들이 모여 내일(7월 23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허클베리핀, 스카웨이커스, 전상규밴드, 태히언 등이 함께 하는 콘서트 <별똥별이 빛나는 밤>과 기금 마련을 위한 즐거운 바자회가 열립니다.

어제 부당해고 판결을 받은 11명의 해고자가 버텨야 했던 5년 세월을 위로하고, 작은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보고대회도 가집니다. 11명의 해고자들에게 연대의 붉은 장미를 건넬 110분의 평범한 시민분들을 특별 초대하고 있기도 합니다. 나의 한 걸음이 누군가를 살리고, 이 사회 전체를 조금은 더 밝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함께 길 나서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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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업 한광호와 함께하는 '별똥별이 빛나는 밤에' ⓒ 유성기업노조


심야노동 폐지. 우리 모두의 인권을 위해 5년을 싸워온 유성기업 노동자들. 그들과 함께 하는 콘서트와 바자회가 22일(토) 오후 3시부터 양재동 현대차본사 앞에서 열립니다. 어제 전원 부당해고라는 법원 판결을 이끌어 낸 11명의 해고자들과 승소 보고대회도 합니다.

그들에게 110송이의 연대의 장미꽃을 전해 줄 평범한 당신을 기다립니다. 내일 함께 해주실 분들, 댓글이나 연락해주시면 좋겠습니다(꽃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광호를 기억하고, 유성기업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특별한 하루 <별똥별이 빛나는 밤에> 함께해요! http://gph.is/2ak4zUb


#유성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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