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사태, 교육부는 왜 숨어있나

[주장] 교육부의 대학 구조조정, 피할 수 없다면 민주적 절차 지켜 진행해야

등록 2016.08.10 14:08수정 2016.08.1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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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이화여대 졸업생과 재학생 100여명이 2일 오후 5시경부터 이화여대 정문부근의 벽에 졸업증서 사본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벌이기 위해 모여있다. ⓒ 최윤석


지난 7월부터 이어온 이대 구조조정 사태가 절정에 다다랐다. 학생들의 본부 점거농성과 이대 동문의 촛불집회가 이어졌다. 본부의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 건은 철회됐다. 나아가 학생들은 불통으로 일관해온 총장의 사퇴를 부르짖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더해 교육부의 핵심사업 중 하나였던 평생단과대학 사업에 대한 논란이 일며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불씨가 재점화된 듯 보인다.

하지만 이대 사태를 새삼스러운 일로 여길 순 없다. 이미 올해 2월 신산업융합대학 설립을 놓고 이대 본부와 학생들 사이에 마찰이 있었다.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통을 겪어온 대학 구조조정는 학생들에겐 익숙한 일이 됐다. 우리가 놓치거나 간과해온 수많은 '이대'가 한국 도처에 널려있는 게 현실이다. 언뜻 '산업수요에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학 구조조정은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왜 여러 대학에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걸까.

사실 대학 구조조정 자체는 '필요한' 사안에 가깝다. 김영삼 정부의 531 대학교육개혁안 이후 대학 인허가가 쉬워졌다. 학벌주의를 바탕으로 4년제 대학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하지만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여기서 비롯된 수입원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

그에 따라 나온 대안 중 하나가 평생단과대학 사업이다. 모든 연령대에 양질의 직업교육을 제공하는 한편 고등교육 수요를 늘림으로써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부작용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게 골자다. 정식학위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평생교육원과 다른 개념이다. 학령 인구의 범위 자체를 늘린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대학 재정에 필요한 방법이며 고등학교 이후 바로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부담을 줄여 실업계 고등학생들의 부담과 공고한 학벌주의를 완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란 기대도 있다.

놈들의 구조조정은 잘못됐다

하지만 대학 구조조정이 필요함에도 실상은 다르게 흘러갔다. 재정 악화로 인해 여러 4년제 대학이 교육부의 돈주머니를 바라봐야 하는 형국이다. 한데 교육부의 구조조정안은 '산업수요'라는 하나의 키워드에 맞춰진 터라 각양각색의 대학들이 비슷한 노선을 걸어야 한다. 재정지원을 두고 경쟁이 붙고 프라임사업, 코어사업 등을 따내기 위해 대학들은 마음 급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뜬금없는 융합학과가 졸속으로 마련됐다가 학내 구성원의 뭇매를 맞는 경우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여기서 불통으로 일관하는 대학 본부의 졸속 행정이 이어진다. '미래라이프대학 신설'을 통해 이대 본부는 교육부로부터 35억 원을 지원받을 예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졸속한 행정처리가 이어졌다. 여타 교수들도 학생들의 본격적인 학교 점거가 시작된 28일에서야 교무처로부터 관련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비슷한 현상이 건대 영화학과 통폐합 문제, 동국대 평단 사업 문제 등에서도 등장한다. 모두 학생 의견수렴 없이 사업준비를 급하게 추진한 본부에 거센 비판이 일었다. 소비자 내지 고객인 학생들로부터 충분한 자본을 얻을 수 없기에 그들을 배제하고라도 사업을 벌이고 예산을 따내야 한다는 게 학교를 '경영'하는 입장인 셈이다.

여기에 한국 대학의 모호한 정체성 문제가 곁들여진다. 전문대와 평생교육원을 두고도 무리하게 단과대를 신설한다고 비판하자 '순혈주의'라는 비판이 나왔다.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현재 한국의 대학 학제는 상아탑이 아닌 듯 상아탑인 여러 4년제 대학을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연구중심대학, 학부교육중심대학, 직업교육대학, 학벌, 이 중 어디에도 온전히 속했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러니 막상 직업교육 기관화라며 본부나 정부를 비판할 때 다른 한편에서 '순혈주의''학벌주의'라는 대립각이 불쑥 튀어나온다.

모호한 정체성 위에 서서 자본의 팔을 붙든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대학이라는 기업을 경영하는 재단의 입장에서 모호한 정체성을 지켜주느니 산업 수요에 맞추면 재정지원을 해준다는 교육부의 구조조정 안을 따르는 게 이득인 셈이다. 절차에 어떤 문제가 있든, 잠깐 왔다갈 학생들이 과하게 '경영'에 참견하면 무력으로라도 그들을 제쳐두면서 대학 구조조정은 오늘도 무섭게 내달리고 있다.

여기서 하나. 교육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현재 대학 구조조정에 대해 가해지는 숱한 비판과 질문들에 성실하게 응답하고 있는가. 대학마다 교육부의 단편적인 구조조정 안에 색깔을 통일했다. 이마저도 2014년부터 추진한 대학 특성화 사업과 2016년에 준비 중인 프라임/코어사업이 겹치며 대학들은 1~2년 단위로 개편안을 내놓아야 할 실정이다. 지속적이지도, 일관적이지도 않지만 반드시 따라야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는 악순환의 연속. 학교도, 학생도 맞부딪치며 혼란한 상황에 정작 근본적인 문제 원인을 제공한 구조조정 사태, 그 중심에 있는 교육부에 대한 언급은 쏙 빠져있는 게 마음에 걸린다.

'느린'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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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에 반대하며 본관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2일 오후 서울 이화여대 본관 입구에 최경희 총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최윤석


대학이 학문이 아닌 학벌로 작용하는 한국 사회에서 큰 그림을 보고 근본적인 지각변동을 허하는 대학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모델처럼 전문대, 주립대 내지 학부교육중심 대학, 연구중심대학 등의 경계가 명확해지도록 보충하거나 프랑스의 대학 모델처럼 특수한 대학을 제외하고선 대학 평준화를 도모하는 식으로라도 변화가 필요하다. 이는 분명 대학이라는 존재의 정체성이 보다 선명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고 이를 통해 대학을 가도 좋은, 나중에 가거나 안 가도 좋은 사회로 진일보할지도 모른다.

교육부의 역할이 여기 있을 것이다. 대학 구조 모델을 제시하고 다양한 기준을 설정해 각 대학이 각자의 방향으로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독려하고, 견제하고 확인하는 것. 또한 변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혼돈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안전망이 필요할지, 예컨대 전역자가 2년 후에 와보니 갑자기 자기 학과가 사라지는 소요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처리할지 등을 꼼꼼히 대비해야 한다. 혼란과 갈등을 유화하기 위해 대학 구성원들에게, 대학 내외 사회 구성원들에게 이 구조조정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도 필요해보인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구조조정의 단상은 정말 대학의 정체성을 고심하는 차원은 아닌 것 같다. 재원을 쥐고 국립대 총장선출에 관여하거나 사회수요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교육부가 대학 길들이기 중이라는 혐의를 벗긴 어려워 보인다. 여러 정권을 걸쳐 오랜 노력을 필요로 하는 학제 변화에 대해 교육부는 더 이상 숨죽이지 말아야 한다. 대학 구조조정 책임자인 교육부가 이렇게 중할진대 어째서 교육이라는 백년대계를 보지 못하고 한 치 앞에 놓인 상황에서만 안주하는지, 그 안일함에 유감을 표한다. 작금의 사태에서 불구경하듯 손 놓고 있는 건 책임자의 자세가 결코 아니다.

또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절차를 지키고 진통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모색해도 모자랄 판에 대학 본부는 '대학'이 아닌 '경영'에 방점을 두고 안일한 경영을 펼쳤다. 설명을 요구하는 학생들에게 1600명의 경찰 병력으로 답했다는 건 실로 충격적이다. 아무리 대학 재정을 위한 구조조정 단행이라 해도 그들의 불합리한 대우에 수긍할 수 없다. 대학생 일반으로, 시민의식을 가진 보통 시민으로 비민주적인, 이대 구조조정 사태에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이와중에 일방적으로 학생들을 찾아가 대화를 시도하려는 최경희 총장의 행보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학은 사회를 반영하는 호수와 같다. 그래서 자꾸만 붉어지는 구조조정 갈등에서 책임자들의 방만과 '정치질'을 떠올리게 된다. 사회를 빼다박은 듯 너무 자주 마주친 불통이라도 무뎌질 수 없다. 이대 최경희 총장과 이대 본부는 공권력을 오용하기까지 한 이번 일에 대해 제대로 된 입장을 내놔야 할 것이며, 교육부는 반복되는 대학 내 구조조정 갈등에 책임자로써의 복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대학 구조조정 #이대 #교육부 #평생단과대학사업 #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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