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작가/시간/위로, 내가 이 책을 기억하는 방식

[리뷰] 장강명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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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진(littlefnger)등록 2016.09.29 14:04
장강명이라는 작가는 지난해 <한국이 싫어서>라는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된 작가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작가를 알게 된 계기가 나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싫어서>라는 책은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젊은 사람들의 공감과 동의를 타고 퍼져나갈 때, 탈출을 꿈꾸며 결단을 고민할 때, 당시 청년들에게 자서전 또는 탈출 후기와도 같은 그런 책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싫어서>는 강렬했다. 그 강렬함의 여운으로 그가 쓴 또 다른 책을 골랐고 그것이 바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장강명은 10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이 싫어서>의 문장 표현들이 굉장히 자세하고 사실적이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장강명을 소설가, 작가보다는 기자로 봤던 것이다. 그런데 그 생각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읽고 사라졌다. 그는 소설의 효과를 극대화할 장치, 분위기, 시점, 문체를 활용할 줄 아는 천상 '작가'이다.

이 책은 남자의 말처럼 마치 시간 순으로 이야기가 정리된 책을 누군가 읽기 전에 작두 같은 걸로 제본된 부분을 자르고, 흩어진 수백 장의 종이를 화투 섞듯이 섞은 다음 다시 제본한 책과 같다. 이야기가 꼭 시간 순서대로 전개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한 장 안에서 시간과 시점이 서로 다른 세 가지 이야기를 쓰고 있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온 책을 통해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표현한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처음이라는 개념을 버려야 해. 남자가 말했다. 처음이라든가 시작이라든가 하는 말은 굉장히 인간적인 거야"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P10-

"우주 알이 몸에 들어오면 이런 점이 참 안 좋아. 왜냐하면 어떤 만남이 어떻게 끝이 날지 뻔히 보이거든. 그런데 어떤 관계의 의미가 그 끝에 달려 있는 거라면, 안 좋게 끝날 관계는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그 끝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과정이 아름답고 행복하다하더라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P87-

작가가 말하는 '인간적인' 시간 개념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처음 이 책의 구성과 남자의 말은 혼란스럽다. 하지만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던져서, 독자로 하여금 당연하게 생각하고 흘려보낸 것들을 돌아보며 생각에 빠져들게 만든다는 점에서 작가의 이 장치는 유효했다.

고등학교 때 자신을 괴롭히던 일진을 칼로 찔러 죽인 남자. 이 남자는 '우주 알'이 몸에 들어온 이후 시공간에 대해 새로운 개념을 갖게 된다. 그리고 아들이 남자를 괴롭혔는데도 그 사실을 부정하며 남자를 따라다니는 아주머니. 어렸을 적 누구 하나 자신를 돌봐주고 챙겨준 사람이 없었다고 믿으며 성장한 여자. 이 세 사람은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핵심 인물이다.

이 책의 제목인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마치 남자가 지극히 '인간적인' 시간 개념을 갖고 있는 아주머니와 여자, 그리고 우리들에게 던지는 위로의 메시지이다. '그믐'은 한밤중을 넘겨 새벽녘이 돼서야 나오고 그마저도 여명이 밝혀오면 금방 사라져 관찰하기 힘든 달을 말한다. 극중 인물을 포함에서 '우리'는 육체는 현재에 머물고 있지만, 마음 속 시간의 흐름은 과거에서 멈춰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시간이 멈춘 그 과거 시점에 있었던 일들을 '사실'이라고 강렬하게 믿으며 스스로를 그 안에 더 몰아넣는다. 그러나 진정한 사실이라는 것은 마치 그믐과도 같다는 것을, 과거에 얽혀 현재를 살아가지 못 하는 많은 '우리'들에게 작가는 남자를 통해 위로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이 위로 역시 주효했다.

그믐과 같이 세계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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