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에서는 안 하고, 동네책방에서는 하더라"

[나의 책방 이야기] '독자 개발'을 꿈꾸는 광주 <동네책방 숨>

등록 2016.10.24 20:07수정 2016.10.2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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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 "동네에 자주 드나드는 단골책방 없냐"고 물었더니 "누가 요즘 책방에 가느냐"고 면박을 줍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책방은 계속 생겨나니까요. 심지어 심야책방, 책맥(책+맥주), 낭송회 등등의 문화도 선도해 만들어갑니다. 여러분의 취향저격 책방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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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안모습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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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앞모습 ⓒ 최종규


2011년부터 '마을도서관'이자 '북카페'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수완동 한쪽에 예쁘게 깃들던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15년 12월 11일부터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났습니다. '마을도서관'은 이대로 이으면서 '북카페'를 '작은 책방'으로 바꾸었어요. 이러면서 <동네책방 숨>이 되었습니다.

마을 또는 동네에 있으니 마을책방 또는 동네책방입니다. 따로 이러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마을책방이나 동네책방일 테지만, 이곳은 <숨>만이 아니라 <동네책방 숨>이라는 이름을 씁니다. 그만큼 마을살이와 마을살림을 더 헤아리고 살피겠다는 마음을 책방 이름에서도 드러내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큰길에서 두어 골목쯤 안쪽으로 걸어가면 <동네책방 숨>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마을에 깃든 작은 책방입니다. 저녁이 되어 이웃 가게에 불이 밝으면 작은 책방은 살짝 파묻힐 테지만, 환한 낮에는 조용하며 정갈한 골목에서 책내음을 퍼뜨리는 쉼터 노릇을 톡톡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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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책방으로 접어드는 골마루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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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차를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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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책들이 한자리에. ⓒ 최종규


책방 앞에 서면 '숨'이라는 글씨가 길다랗게 새겨진 간판을 볼 수 있습니다.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이름 곁에 '북카페 숨'하고 '책만세 작은도서관'이라는 이름이 함께 있습니다. 도서관하고 책방이 나란히 있는 재미난 얼거리인 <동네책방 숨>입니다. 마을에 꼭 더 커다란 책방이 있어야 하지 않으니, 이렇게 '작은도서관 + 작은책방'으로 얼마든지 책살림을 빚을 만하구나 싶어요.

지자체에서는 이러한 얼거리를 곰곰이 헤아리면 좋으리라 봅니다. 시립도서관이나 군립도서관은 굳이 새 건물을 지어서 두지 않아도 됩니다. 커다란 건물로 짓는 도서관보다는 마을마다 곳곳에 도서관이 있으면 훨씬 좋고, 도서관 곁에 자그마한 책방이 함께 있다면 무척 재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책은 도서관에 찾아가서 읽고, 어느 책은 기쁘게 장만해서 읽을 수 있어요.

도서관마실이나 책방마실이란 책만 보려고 찾아가는 마실이지는 않습니다. 집에서 걸음을 옮겨 책방까지 가는 동안 수많은 이웃집을 마주합니다. 저는 전남 고흥에서 살기에 광주에 있는 책방까지 가려면 여러 군이나 시를 지나가야 합니다. 고흥에서 광주까지 시외버스로만 두 시간이 넘습니다. 이동안 구불구불 구비구비 고갯길을 지나요. 작은 군하고 광역시 사이에 놓인 멧자락하고 시골을 지나가면서 새삼스레 여러 마을살림하고 숲살림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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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 알림글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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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 와서 책을 산 뒤, 선물을 받을 분이 손수 책방으로 마실하도록 합니다. ⓒ 최종규


광주에 계신 분이라면 광주라는 삶터에 그물처럼 퍼진 골목을 누리면서 책방마실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고장에 계신 분이라면 광주마실을 하면서 '광주에 점점이 곳곳에 있는 자그마한 책방'을 찾아다니는 책마실(책여행)을 해 볼 수 있어요.


<동네책방 숨>으로 책마실을 다녀오면서 이곳 책방지기 안석 님하고 이진숙 님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작은도서관이랑 북카페를 연 지는 여섯 해째이고, 지난 2015년 12월 10일에 북카페를 마을책방으로 바꾸었으니, 마을책방 살림을 지은 지 열 달쯤 되었다고 합니다.

"책방으로 한 지 열∼열한 달쯤 되었어요. 처음에 '도서관·북카페'로 커피·음료만 하고, 책은 무료로 보는 곳으로 5년을 했는데, 묘한 게 북카페에 오시는 분들이 책은 안 봐요. 그리고 저희가 마을도서관을 5년 넘게 운영했는데 여러 프로그램이나 활동을 해 보는데, 독자가 되지 못하는 소비자가 되더라고요. 좀더 싸고 좀더 유명한 사람이 오는 곳을 쫓아다니지, 우리 동네에 이런 도서관이 있으니까 이곳에서 (문화를) 재생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넘어오지 못해요."

<동네책방 숨> 지기들은 '소비자'가 아닌 '독자'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책이나 문화나 행사를 '소비하는' 흐름이 아닌, 책 한 권을 거쳐서 삶을 생각하고 마을을 헤아리며 이웃을 돌아볼 수 있도록 이끄는 길을 살피고 싶다고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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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시렁 한쪽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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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시렁 한쪽 ⓒ 최종규


"독자를 개발하지 못하고 소비자만 양산하는 건 옳지 못하고, 적어도 자기 주머니를 열어서 무언가 활동을 해야 애정이 남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북콘서트나 여러 가지 행사를 할 적이 무료로 했어요. 이제는 적어도 5000원이라도 받아요. 북카페에서는 어떤 책이든 무료로 보게 했고, 동네책방으로 바꾼 뒤에는 서점이니까 책을 사도록 했는데, 신기한 것은 전에 북카페로 운영했을 적에는 전혀 책을 안 보는데, 서점이 되니까 차를 마시러 온 분도 책을 둘러보고 펴 보셔요."

거저로 마음껏 책을 볼 수 있도록 하던 북카페에서는 책을 안 보던 손님들이, 이제 돈을 치러서 책을 사도록 하는 동네책방 얼거리에서는 책을 본다고 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사람들(손님들)은 그냥 차 한 잔만 마실 수 있는 곳보다는 마을에서 조용히 책을 누리면서 차도 한 잔 마실 수 있는 곳을 바란 셈일 수 있습니다.

차 한 잔이란 어디에서나 쉽게 마실 수 있지만, 막상 '즐거움을 베푸는 책'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너무 없다는 대목을 사람들(손님들) 스스로 느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살찌우고 북돋우는 예쁜 이야기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예나 이제나 한결같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러한 숨결을 담아낼 터전이 너무 모자랐을 뿐이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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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한쪽 모습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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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한쪽 모습 ⓒ 최종규


"저희가 커피·음료만 판매하다가 서점을 해 보니, 좀더 재미있고 사람 만나는 재미도 깊어지고, 고객층이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커피만 파는 것보다 책을 함께 팔면서 보니, 책 한 권으로 만나는 것, 그 한 권의 책을 함께 읽은 사람들이 책방에서 만나는 경험, 모두 새롭고 좋아요. 대안교육 잡지 <민들레> 읽기 모임도 하고요, '비폭력대화' 워크숍을 진행한 적 있는데, 그때 오신 분들이 그 주제로 책을 읽는 모임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어요."

오늘날 사회를 보면, 굳이 찻삯하고 품을 들여서 책방마실을 하지 않아도 '배송료 무료'로 집이나 일터에서 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구태여 마을책방이 없어도 된다는 생각마저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책은 '소비재'가 아닌 '읽을거리'예요. 책을 한낱 소비재로만 여긴다면 마을책방은 없어도 되겠지요. 책이 참으로 읽을거리가 되어 우리 넋을 살찌우는 길동무로 삼을 수 있다면, 우리는 즐겁게 찻삯을 들이고 품을 들여서 책방마실을 할 수 있습니다.

"동네책방을 하면서 일단 저희가 행복해졌어요. 저희가 선택한 책이 사람들한테 선택을 받고 전해지는 짜릿함이랄까요. 책방을 안 하던 사람이 책방을 하니, 유통해 주는 분들과 접촉해 보는데, 책을 단순 공산품으로 취급하는 모습이 좀 안타까웠어요."

"출판업 하시는 분한테서 책을 받아 소매로 넘겨주는 총판 일을 하는 분들은 다를 줄 알았는데, 그냥 유통이었어요. A라는 물건을 찍어 저기로 보내는. 거기서부터 한국 사회에서 독자라는 자리가 사라지지 않느냐 생각해요. 작가의 모든 것인 책인데, 책이 단순 공산품으로 취급되는 지점에서 서점이 맡는 결과는 참담할 것 같아요. 책을 그저 하나의 공산품으로 취급하면 동네책방으로서 존재이유가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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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이야기를 다루는 책도 한쪽에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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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아 한 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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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한쪽 모습 ⓒ 최종규


책방이라는 자리는 장사만 하는 자리이지 않습니다. 사람하고 사람이 만나는 자리 가운데 하나이고, 사람하고 사람이 책을 사이에 놓고 만나는 자리입니다. 더 많은 책을 팔아서 장사를 잘해야 하는 책방이 아닙니다. 책 하나마다 깃든 아름다운 숨결과 이야기와 사랑을 이웃한테 나누어 주는 몫을 맡는 책방입니다. 책방마실을 하면서 내가 오늘 새롭게 꿈을 품으면서 살아갈 기운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동네책방 숨> 지기들 말마따나 책은 '공산품'이나 소비재로만 다룰 수 없는 노릇입니다. 책은 책으로 다루어야지요. 책은 책으로 바라보고, 책으로 읽고, 책으로 새기며, 책으로 가꾸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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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야기를 책으로 만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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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림표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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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한테 책을 소개해 주는 책방지기 이진숙 님(오른쪽) ⓒ 최종규


조그마한 마을책방을 처음 열 무렵, <동네책방 숨>은 책을 받아서 갖추는 일이 몹시 힘들었다고 합니다. 너른 매장에 수만 권이나 수십만 권에 이르는 책을 꽂을 수 있는 책방이 아니라, 자그마한 매장에 만 권이 안 될 책을 꽂는 책방이라 그렇겠지요.

"서점은 참고서나 문제집만 사러 가는 곳이 아니라, '어른들의 소중한 경험이 담긴 책'을 사러 가는 곳이라는 생각을 지역 사람들이 하도록 이끌 수 있다면 좋겠어요. 책을 쓴 분이 10대이든 60대이든 그분들 인생 이야기가 담긴 건데, 그 소중한 경험을 나눠야 하는데, (출판기념회나 북콘서트나 책잔치 같은 온갖 책 문화행사는 대도시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도시에 있는 사람 아니고는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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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한쪽 모습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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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으로 햇살이 곱게 스밉니다. ⓒ 최종규


책잔치는 거의 다 서울에서 합니다. 부산 같은 큰도시에서도 더러 하지만, 웬만한 책잔치나 문화잔치는 으레 서울에 몰립니다. 전국을 도는 책잔치는 매우 드물고, 전국 곳곳에 있는 자그마한 책방에서 출판기념회나 강연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서울을 뺀 다른 모든 고장에서는 책뿐 아니라 문화라는 테두리에서도 따돌림을 받는다고 할 만합니다. 작가나 예술가도 지역에 남기보다는 서울로 가려고 하지요. 지역 작가가 빚는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기도 쉽지 않으면서, 이러한 책이 나올 적에도 지역이나 서울이나 이야기마당을 열기도 쉽지 않을 테고요.

이런 흐름을 바꾸려는 손길이 없다면, '서울로 쏠리는 물결'을 돌리지 못합니다. 이런 흐름을 바꾸려는 손길이 있어야, 이제라도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이 지역에 뿌리를 내려서 새롭게 꿈을 꾸도록 북돋울 만하지 싶습니다.

"출판 유통은 공산품 유통과 달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도서정가제도 그런 방향에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효율성이나 경제 효과만 따지려 한다면 대형 인터넷서점으로만 갈 뿐, 동네책방에는 안 가잖아요. (동네책방은 모든 책을 그대로 독자한테 보여주며 사도록 이끌지만) 대형 인터넷서점은 광고를 받고 더 띄워 주는 책이 있어요. 모든 책들이 소중하게 대접받아야 할 권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럽이 하는 도서정가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유럽에서는 책을 많이 파는 곳에는 마진을 적게 주는 유통이고, 책을 적게 파는 곳에 마진을 높게 주는 유통이라고 해요. 출판사에서 그렇게 직접 공급을 한다고 해요. 한국은 이와 거꾸로예요. 서울에 있는 큰 책방은 새로 나오는 모든 책을 다 받고, 더 싸게 받아요. 지역에 있는 작은 책방은 새로 나오는 책을 못 받기도 하고, 더 비싸게 받아요. 사회가 이런데도 작은 책방이 생기는 흐름이 있는 건, 동네책방이라는 문화공간에 가능성이 보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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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 앉아 책과 차를 느긋하게 누릴 수 있어요. ⓒ 최종규


<동네책방 숨> 책방지기가 들려주는 '도서정가제' 이야기를 한국 책마을에서도 눈여겨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느낍니다. 책을 많이 파는 커다란 책방에 '할인율(출판사가 책방에 책을 보낼 적에 값을 매기는 비율)'을 낮춘다면, 또 전국에 있는 작은 마을책방(지역책방)은 할인율을 높인다면, 참으로 책하고 얽힌 모든 얼거리가 바뀔 만하리라 봅니다. 이렇게 한다면 '베스트셀러 밀어주기'라든지 '베스트셀러 중심 광고'가 꺾일 수 있어요. 이렇게 한다면 '수많은 책이 저마다 골고루 사랑받는 길'도 열릴 수 있고, '작은 출판사에서 내는 알찬 책'이 제대로 독자 눈에 뜨이면서 사랑받는 길도 열릴 만합니다.

"어릴 적에 10원 동전 들고 동네 만화방에 가서 만화를 보고 했어요. 집에서 저 없으면 누나가 만화방에 저를 찾으러 오던 기억이 있네요. 작은 책방을 하니까 모든 책을 구비할 수는 없어서〈동네책방 숨〉에는 만화책이 얼마 없어요. 충남 홍성에 언제 가 보니까 풀무학교가 있는 그곳에 큰 만화방이 있더라고요. 그런 만화방을 운영해 보고 싶어요. 아이들은 돈 없어도 보게 하고, 어른들이 돈 내주고, 마을에서 돈을 대주면 건물을 얻을 수 있고, 그 작은 홍성군 홍성면에서도 이런 좋은 만화방을 운영하는데 광주 같은 이런 큰 도시는 아직 못 하는 게 아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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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시렁 한쪽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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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주문한 책을 놓는 자리 ⓒ 최종규


어른들이 푼푼이 모아서 아이들이 책을 누릴 수 있는 작은 보금자리를 이룬다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학습만화가 아닌 '만화'를, 학습이 아닌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는 만화를, 또 학습이나 입시나 처세라는 이름을 떼어내고 즐거운 삶과 아름다운 삶과 사랑스러운 삶을 밝히는 책들을 갖춘 '마을책방'이나 '마을도서관'이 온 나라에 생길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꿈꿀 수 있는 자리가 사라져서 오늘 청소년들이 꿈이 짓눌리지 않는가 싶어요. 예전에는 만화방이라도 있었는데, 요새는 스마트폰에 갇히고, 거의 전쟁하는 게임만 하고요. 마을에 책방이 없거나 마을에 있는 작은 책방이 참고서나 문제집만 다룬다면, 청소년은 (좋은 책을) '선택할 기회'도 못 받는 셈이에요."

"독자개발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봐요. 먼저 책방지기인 나한테 감동이 된 책을 소개했을 때, 손님들한테 '나도 이 책을 만나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끄는 게 독자개발이라고 생각해요. 이 부분을 놓치고 매출을 일으키는 데만 본다면 동네책방은 어려우리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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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손길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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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들어오는 창가 자리 ⓒ 최종규


자그마한 책방이 마을을 살린다고 생각합니다. 자그마한 가게 한 곳이 마을을 살린다고 생각합니다. 자그마한 집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마을을 살찌우며 마을을 빛낸다고 생각합니다. 커다란 덩이로 움직이는 책방이나 가게나 사람이 아니라, 아주 작은 한 사람 두 사람이 모이기에 책방도 가게도 집도 뿌리를 내려서 마을이라는 품으로 거듭나지 싶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도 쉴 수 있는 책방이 되고, 어른도 쉴 수 있는 책방이 된다면, 이런 자그마한 책방이 마을마다 문을 열 수 있다면, 우리 사회도 앞으로 조금씩 거듭날 수 있을 테고요.

"아무래도 그 고민이 있어요. 나는 이 책이 좋은 책이라 생각해서 여기(잘 보이는 데)에 놓고 싶은데, 그 책에 관심을 주는 분은 소수이고, 가벼운 책을 보는 분이 많고, 그런 가벼운 책이 잘 팔리니 고민이 되지요. 그렇다고 가벼운 책을 안 갖다 놓을 수는 없지만, 많이 놓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 사회나 철학을 기반한 책이 어려운 책이 많다 보니까, 손님들이 여기〈동네책방 숨〉은 어려운 책이 많은 곳이야 하는 마음이 될까 봐서, 책 배치를 하며 서글픈 마음이 들었어요."

마을책방으로 첫발을 내딘 지 이제 열 달이 된 <동네책방 숨>은 새로운 길을 걸어가려고 합니다. 힘들거나 어려운 벽에 부딪힐 수도 있을 테지만, 틀에 박히지 않은 길을 걸어가려고 합니다. '많은 책'이 아닌 '책 한 권'을 생각하고, '커다란 도시'가 아닌 '작은 마을'을 생각합니다.

<동네책방 숨>을 보면, 한쪽에 '책 미리내'라는 자리를 둡니다. '책 미리내'는 이곳에서 꾀한 재미난 '책선물 이음고리'예요. 책을 선물하려는 분이 이곳에 와서 책을 산 뒤에 편지를 적어 한쪽에 놓습니다. 그러면 책을 선물받을 분이 이곳으로 와서 책을 가져가도록 하지요. 책을 선물할 사람도 책을 선물받을 사람도 책방마실을 하는 얼거리예요.

<동네책방 숨> 한쪽에는 '광주 그리고 오월' 칸이 따로 있습니다. 광주와 오월을 돌아보도록 이끄는 책들을 모아 놓습니다. '세월호 기억' 칸이 따로 있어, 세월호하고 얽힌 소식지와 책을 한곳에 둡니다. '멋진 출판사' 칸이 따로 있으면서, 멋지다 싶은 출판사에서 낸 멋진 책을 곱게 펼쳐 놓습니다. 요즈음에는 이 '멋진 출판사' 칸에 돌베개 출판사 책들하고 유유 출판사 책들을 놓으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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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숨>과 <책만세 작은도서관>을 지키는 책지기 이진숙 님과 안석 님 ⓒ 최종규


"'인문학 강좌 열풍'이 삶과 괴리된 지적 활동으로 느껴져요. 고전을 공부한다 해도 '나 논어 공부해 봤어'로 흐르고, 삶이나 일상과 괴리된 것들은 다, 뭐라 해야 되나, 그렇게 하는 자체가 공허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요."

"마을에서 자영업자가 살아나는 것이 마을이 살아나는 건데, 내가 책방으로서 온전히 잘살면, 우리 책방 때문에 우리 마을에 공동체가 살아나는 것이 되리라 생각해요. 그래서 동네책방을 하면서 이 사회에 희망을 본 것 같아요. 육 년 전에 이곳에서 북카페를 처음 할 적에는 둘레에 카페가 없다가 3년쯤 전부터 많이 생겼는데, 그때에는 카페끼리 경쟁해서 살아남는 방식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한 고민을 거쳐 책방을 열었어요. 책방을 하며 출판사나 단체나 작가를 만나 보면서, 우리한테 소중한 가치를 그리워하며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경제활동만 있지 않구나, 하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봤다고 할까요."

제가 사는 전남 고흥 읍내에는 '여느 책(참고서와 문제집이 아닌 책)'을 찬찬히 다루는 마을책방이 없습니다. 마을책방 나들이를 하려고 고흥에서 광주로 네 시간 즈음 들여서 찾아갑니다. 제가 사는 마을에서 읍내로 나오고, 읍내에서 시외버스를 기다리고, 광주에 닿아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버스에서 내린 뒤 걷고, 이러니 네 시간 남짓 걸려요.

새벽같이 길을 달려 <동네책방 숨>에 들른 뒤 고흥으로 돌아가는 막차(20시 30분)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책도 고르고, '대전 이야기를 다루는 지역출판사 책'을 광주에서 만나기도 합니다. <월간 토마토>나 <우리가 아는 시간의 풍경>은 대전 이야기예요.

광주에 깃든 마을책방이니 광주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만날 수 있는데, 다른 고장에서 야무지게 펴내는 '마을 이야기'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고장이지만 '마을살이·마을살림'이라는 대목에서는 하나이거든요. 저마다 다른 고장에서 저마다 다르지만 다 같은 손길로 마을책방을 곱게 가꾸려는 숨결이 깃들거든요. 저는 이날 다음 같은 책들을 골랐습니다.

<파란 고양이>(허지영 글·그림, 로그프레스 펴냄, 2014)
<월간 토마토> 104호(2016.10.)
<수상한 작업실 세월호 번외편 : 다시, 봄>(2016)
<우리가 아는 시간의 풍경>(이용원 외, 월간 토마토 펴냄, 2016)
<우는 화살>(고영서 글, 애지 펴냄, 2014)
<엄마는 50시>(정기웅 글·사진, 2016)
<건강 신드롬>(칼 세데르스트룀·앙드레 스파이서 글, 민들레 펴냄, 2016)
<숨>(박성진 글, 소소문고 펴냄, 2016)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김도수 글, 전라도닷컴 펴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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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책"이 아닌 "책 한 권"을 보듬으려고 하는 마을책방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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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모습 ⓒ 최종규


광주에도 자그마한 책방, 이를테면 마을책방이나 독립책방이 하나둘 문을 연다고 합니다. <검은책방흰책방>, <공백>, <라이트라이프>, <연지책방>, <책과생활>, <파종모종> 같은 곳인데, 곧 이 자그마한 책방들이 모여서 이야기잔치를 벌인다고 합니다. 광주라고 하는 곳이 '빛고을'뿐 아니라 '책고을'이 되고, 또 '책빛고을'이 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동네책방 숨> 여는 때
화요일∼토요일
낮 12시∼저녁 9시
062.954.9420
광주 광산구 수완로74번길 11-8

덧붙이는 글 <동네책방 숨> 소식은 페이스북(www.facebook.com/bookcafesum)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네책방 숨 #동네책방 #마을책방 #책마실 #서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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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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