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민간인들이 모금을 통해 조성된 원폭 추도비

나가사키에 7만 명의 조선인중 2만 명이 원폭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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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local44)등록 2017.01.24 15:16
대한민국 국민들이 설치한 '평화의 소녀상'에 와서 비인륜적 행위에 대해 사죄하고 무력으로 침략하여 저지른 만행에 대해 반성은커녕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시비 걸며 주일한국대사를 불러서 항의하고, 주한일본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며 외교적으로 싸움을 걸고, 평화헌법의 개정을 통해 군국주의 부활을 추구하는 일본정부의 행태에 대한민국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와중에 답사단은 나가사키(長崎) 이사하야(諫早) 형무소와 일본 국민들이 아픔을 나누는 평화를 기원하는 나가사키 원폭 평화공원을 답사하였다.

1945년 8월 9일 원자폭탄이 떨어진 나가사키 원심지(그라운드 제로)와 주변에는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있었고, 전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평화의 염원을 담아 기증한 추모비와 동상들로 조성 되어 이었다. 특히 "평화를 기원하는 소녀 상", 체코의 "모자상", 폴란드의 "생명과 평화의 꽃", 무기 제조에 참여한 여학생들을 위로하는 "나가사키의 종", "전기 통신 노동자 추모비", 건설 노동자들을 추모하는 "불전평화의 탑", "종이학의 탑" 등이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평화를 기원하며 방문객들에게 전쟁의 위혐을 알리고 있었다.

공원 중앙에는 원자폭탄시 타버린 도시에서 가장 큰 고통이었던 갈증을 달래기 위해 인공연못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와 학의 날개를 형상화한 지름 18미터의 연못이 피폭자들을 추모하고 있었다. 비문에는 "목이 너무나 말라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에는 기름 같은 것이 둥둥 떠다녔지만 마셨습니다"라며 참혹한 소녀의 수기가 새겨져 있었다.

나가사키 평화공원의 평화의 샘과 평화의 기념상 원자폭탄이 투하된 나가사키에 조성된 평화공원내에 평화의 샘과 멀리 보이는 평화의 기념상 ⓒ 박진우


그리고 광장 위에는 나가사키 출신의 미술가 기타무라 세이보(北村西望)가 1955년에 완성(높이 9.7m, 무게 30t)했다는 거대한 청동상이 "평화의 기념상"이라는 제목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뒷면에는 "하늘을 향한 오른손은 전쟁의 위협을, 수평으로 뻗은 왼팔은 평화를, 감긴 눈은 희생자의 명복을 기원하고, 얼굴의 미소는 신의 사랑과 자비를, 누은 오른쪽 발은 원폭 추하후 나가사키시의 고요함을. 세운 왼쪽 다리는 움직임으로 희생자의 구제"를 의미한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일본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의미로 다가와 불편했다.

나가사키 원폭평화공원에는 전쟁을 일으킨 일본정부의 반성이나 사과의 흔적이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92년 나가사키 평화공원을 확장 공사하면서 형무소로 운영하던 시기의 사형장과 유해(遺骸)들이 발굴되었고, 일본 시민단체들이 보존을 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훼손하고 주차장을 만들었던 일본정부의 행태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폭자료관 가는 길에 승강기(엘리베이터)옆에 조선인 추모비가 있었다. 추모비 오른쪽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귀국기념식재. 1959년 12월 8일"로 되어 있었는데 일본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협정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계 재일교포를 북한으로의 송환(귀국)이 진행되었다. 첫 출발이 나가타항에서 1959년 12월 14일 975명이 출발하였는데 이때 나가사키 조선인 관계자들이 북한으로의 귀국을 기념하기 하기 위해 기념식재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일본 민간인들이 50만엔이라는 돈을 모아 원폭 피해자들의 위령비를 그 옆에 설치한 것이라 혼자 상상해 본다. 추도비는 검은 대리석 비에 노란 글씨로 대비하는 색으로 조성되었으며, 매년 거행되고 있는 나가사키 원폭 추도회에 맞추어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도 일본의 시민단체인  '나가사키 재일 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회(대표는 나가사키대학 명예교수인 다카자네 야스노리(高實康稔))가 진행하고 있다.

일본 시민단체가 조성한 원폭 추도비 나가사키 재일 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모임’에서 50만엔을 모금하여 1979년 8월 9일날 설치하고 매년 추도식을 지내고 있다. ⓒ 박진우


추도비에는 "추도(追悼), 나가사키조선인희생자(長崎原爆朝鮮人犧牲者), 1945. 8. 9)"로 되어 있었으며, 뒷면에는 "강제연행되어 징용과 노동을 하던 중 피폭된 조선인들을 추모하는 모임"이라고 되어 있다.

추도비 입구에는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로 "나가사키 재일 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회" 명의로 "일본의 패전 당시 일본에 강제연행으로 끌려와 강제노동을 당한 사람이 2백 4십여만명에 이르며 나가사키에 약 7만여 명이 거주하였고, 미군의 원자폭탄 투하에 약 2만 명의 조선사람들이 피폭하였으며, 그 중 1만여 명이 폭사하였다. 우리들 이름없는 일본사람들이 얼마간의 돈을 모아 추도비를 건설하였다. 지난 시기 일본이 조선을 무력으로 위협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그 민족을 강제로 끌고와 확대혹사하며, 강제로동 끝에 비참하게도 원폭에 맞아 죽게한 전쟁책임을 그들에게 사과함과 동시에 이 세상에서 핵무기의 완전철패와 조선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념원하여 마지 않는다. 1979년 8월 9일)라는 안내판을 설치하여 그 뜻을 전하고 있다.

이 곳에 한국인 원폭 희생자에 대한 추모비가 건립이 안된 이유는 반성없는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 왜곡의 입장도 있지만 대한민국 정부의 외교적 대응의 노력 부족도 한 요인일 것이라 생각된다.

나가사키 원폭 평화공원에 원자폭탄에 대한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를 세우고자 민간인들도 노력하고 있으나 일본정부와 나가사키시가 의도적으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YTN에서 취재한 내용을 보면 나가사키시가 한국인 원폭 희생자에 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려고 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재일동포인 강성춘(나가사키 재일거류민단 단장)씨는 한국인 위령비를 세우려고 나가사키시에 서류를 제출했으나 거북이와 용의 다자인이 "일본에서는 묘비로 보인다"고 해서 반려하였고, 단순하게 하여 디자인을 제출했더니 완전하게 '묘비로 보인다"며 몇 년째 불허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일본 우익단체들은 한술 더 떠 한국인 위령비 설립을 저지하기 위한 서명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고도 한다.우익 단체의 뒤에는 대한민국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가지고 주한일본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고 주일한국대사를 초치하는 일본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답사단은 짬을 내어 한반도의 문화재 환수 운동을 하는 혜문스님이 알리기 시작한 쿠시다신사(欟田神社)를 방문하였다. 쿠시다신사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인 히젠도를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시다신사에 답사단이 도착하여 히젠도에 대해 문의를 시작하자 쿠시다신사 관계자들은 "히젠도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안내문까지도 치우면서 명성황후 시해와 시해한 히젠도 자체를 외면하고자 하였다.

히젠도는 120년전 일본이 조선을 강제적으로 병탄하는 과정에서 장애가 되는 조선의 국모를 죽이기 위한 암살작전(일본 작전명 여우사냥)으로 1895년 10월 8일 조선공사 미우라와 일본 자객들이 건청궁에 난입하여 황후를 암살하고 유해를 불태운 침략행위였는데 이때 황후를 직접 시해한 3인중 한 사람인 '토오 가쯔아키(藤勝顯)'가 1908년에 신사에 기증한 칼로 16세기 에도시대 다다요시(忠吉)가 전투용이 아닌 살상용으로 만든 칼이다.

명상황후를 찌른 나무칼집에는 '일순전광자노호(瞬電光刺老狐)'라는 글자가 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새긴 글씨로 "늙은 여우를 단칼에 찔렀다"라고 해석하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쿠기다신사에서 히젠도 칼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안내문 쿠기다신사는 답사단이 히젠도에 대해 관심을 보이자 이 안내문까지 치워 모르는 척 하였다 ⓒ 박진우


당시 일본 정부는 명성황후를 죽인 자들을 모두 무죄 처리하였고, 그 칼을 신사에 보관하며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인가!

일본 정부가 이 칼을 대한민국 정부에게 양도하면서 통념(痛念)의 사과가 있는 그날을 기원해 봄이 헛된 꿈이 아니길 빌어본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가 취임하면서 전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고자 하고 있고, 중국과 일본, 러시아는 국토 분쟁과 함께 군비를 확대하며 긴장을 강화하고 있어 평화를 기원하는 전세계 시민들에게 찬물을 끼언고 있다.

평화는 그냥 오지 않는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서로가 공유하고, 평가와 반성을 할때만이 내일의 평화를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답사는 평화를 기원하는 시민들의 작은 흔적이었다.

식민지의 수탈, 그리고 전쟁을 통한 파괴와 인권유린.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이 저지른 만행으로 동아시아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아픔이다. 이 아픔을 공유하고 가해자의 진정어린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를 통해 화해와 상생이 존중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가해자는 외면하고 있고, 피해자의 고통은 더해 가는 현실에서 일본정부의 반성을 촉구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작은 흔적들이 모여 화해와 상생의 큰 강물로 이어지길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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