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

암 투병중인 오빠,그리고 언니와 떠난 도보여행

[몽실가 여행-1] "도보여행 제안, 내내 설렜습니다"

등록 2017.03.20 15:45수정 2017.03.2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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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1월 8일 오전 8시 30분

등산양말 다섯 켤레를 비롯하여 바람막이 점퍼와 간식거리 등을 넣어 빵빵해진 배낭을 메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울 것이란 예고대로 코끝이 시큰했습니다. 1시간 반 지나 도착한 곳은 친정 오빠와 친정언니를 만나기로 한 병점역. 걸어서 전라도까지, 5박 6일간의 도보여행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떠나기 1주일 전인 10월 31일 점심 무렵. 직업을 바꾸는 참에 두 달간 쉬면서 가을걷이를 도우러 친정에 가던 언니가 전화를 했습니다. "다음 주에 예정된 일이 없으면 오빠와 서울에서 고향집(김제)까지 걸어서 가보자"는 전화였습니다. 함께 가던 오빠가 제의했다면서. 이렇게 우리 몽실가 삼남매의 5박 6일간의 도보여행(11.8~11.13일)은 시작됐습니다.

첫날 서정리 인근 도로에서 "낙엽만 느끼며 걸어보자" ⓒ 김현자


길을 가며 만난 수많은 이정표 중 하나. 살아가며 수없이 찾고 만나고 의지하는 그런 이정표도 있지요(2016.11.9) ⓒ 김현자


"고생을 사서 하네! 몇 달 만에 겨우 며칠 쉬잖아! 실컷 잔다며? 집에서 그냥 쉬지? 거기다 아픈 큰처남하고?….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정말 대책 없는 사람들이네!"

언니에게 "난 100% 간다야. 그래도 김서방에게 양해는 구해야지?"라며 대답해놓고 그날 저녁 밥상에서 물었더니 남편은 이처럼 말리더군요. 가볍게 화까지 내면서. 이런 남편이 밉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걱정되어 말리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정오빠는 지난해 6월 초, 10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습니다. 침샘암이었습니다. 소설가 최인호씨도 침샘암으로 죽었다지요. 왼쪽 귀 밑부터 시작해 가슴부근까지 절개해 암세포들을 제거했지만, "작은 세포들이 여기저기에 퍼져 있어서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한다. 치료해도 일 년을 넘기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는 암울한 결과였습니다.

수술한지 8개월쯤 되었을 무렵인 2월 말, 친정아버지 생신 때 만난 오빠의 숨소리가 유독  거칠고, 가쁘게 들리더군요. 그 후에도, 방사선 치료를 하는 와중에 틈만 나면 친정으로 내려가 농사일을 거들거나, 장판과 지붕 교체 등, 고향집 정비에 신경을 쓰는 오빠를 보며 마음준비 하는 것 아닌가 싶어 눈물이 돌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큰처남이 먼저 제의했다고? 정말이야? 그런데 조건이 있어. 처형은 좀 덜렁대니까 당신이 큰처남 수시로 살펴서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무조건 119 불러 병원으로 가는 거!"
 
이런 오빠와 여행을 떠난다니, 그것도 몇날 며칠을. 그것도 온종일 걷는 여행을 하겠다니 남편이 말리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남편은 당부하고 또 당부했습니다. 이른 새벽 출근하면서도 밥은 꼭 먹는 편이라 고마운 한편 공연히 미안해져 "당신 좋아하는 사골 국물 좀 해놓고 갈까?" 묻는 제게 "김치찌개만 좀 넉넉하게 해놓고 가면 좋겠다!"며.

"엄마 여행 떠나는 날부터 한파래. 올 들어 가장 춥다는데? 목요일엔가? 그날은 비도 온다고 하고. 그래도 갈 수 있겠어? 차를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고 하루 종일 걸을 거라면서?"

떠나기 3일 전쯤 딸은 또 이렇게 걱정합니다. 그런데 도보여행 이야기가 나온 날부터 설레기만 했던 터라 '좀 추우면 어때. 따뜻하게 입으면 되지. 비? 우비도 가져가고 우산도 가져가면 되지. 이왕 가는 거. 맨 날 맑으면 뭔 재미야. 코끝이 쨍하도록 춥기도 하고, 비도 오고 그렇게 불순하면 더 좋지!'란 생각과 함께 그저 설레고, 좋게만 생각됐습니다.

밀려드는 일로 유난히 바빴던 한 해, 위로가 된 도보여행 계획

십년 째 프리랜서로 살고 있는데, 밀려드는 일로 올해는 유독 바빴습니다. 돈에 덜 쪼들려 좋긴 한데, 제대로 쉬지 못하다보니 몸도 마음도 지치더군요. 몸 안에 뭔가 불쾌한 것들이 잔뜩 차 있는 것 같고, 공연히 불안하고 짜증나고. 가뜩이나 이런데 얼마 전부터 박근혜-최순실 관련 뉴스들로 어수선, 며칠 째 걸핏하면 불안하게 서성거리곤 하던 터였습니다.

이런 내게 위로가 됐던 것은 며칠 후면 도보여행을 떠난다는 것. 그것도 모두 바쁘게 살다보니 밥 한 끼 함께 먹기도 쉽지 않은 친정 언니·오빠와 함께 떠난다는 것. 전화를 받은 날부터 매일매일 설렜습니다. 시시때때로 웃음이 났고요. 콧노래도 나왔고요. 오랫동안 쌓여있던 것들이 모두 씻기어 빠져나가 버린 듯 맑음과 상쾌함까지 느꼈던 며칠이었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몰라. 도보여행도 부러운데, 친정오빠하고 동생하고 간다니까 더욱 더 부럽다고 하더라. 대부분 친구들하고 가던데 어떻게 형제들끼리 갈 생각을 했냐며(웃음)"

"여동생들하고 걸어서 전라도까지 갈 거라고 했더니, 자기네는 '6남매인데, 명절 빼고 볼 날도 없다. 1년에 한두 번 전화할까 말까 하는데 동생들하고 여행까지 갈 정도로 살갑게 지내냐?'며 이해 못하겠단다. 우리보고 보기 드문 희귀한 인류라고까지 하더라(웃음)"

언니·오빠도 나처럼 여행을 앞둔 지난 며칠 하루하루가 행복했나 봅니다.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요. 금정역 인근 한 대형마트 앞에서 만난 우리는 김밥 한줄 씩을 들고 먹는 것으로 5박 6일간의 도보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오빠와 나는 "썰지 말고 그냥 달라"고 해 통째로 들고 베어 먹으며. "그래도 썰어 달라"고 고집한 언니는 하나씩 집어 먹으면서.

김장 배추를 갈아 엎은 밭(2016.11.8) ⓒ 김현자


논둑의 콩을 뽑다 자식들 생각에 달려와 콩을 구뭐 주시던 아버지와의 추억 때문에 삽십 여년 간 늘 그리운 풍경 중 하나입니다(2016.11.8 오산 인근) ⓒ 김현자


"지금도 논둑에 콩을 심네? 중학생 땐가? 그때는 논둑에 콩 심는 사람들이 많았잖아. 새마을운동 끝 무렵이라. 땅을 조금도 놀리지 않으려고. 중 1땐가? 아버지가 콩을 뽑아들고 들어오시는 거야. 환하게 웃으시면서. 해가 지려면 아직 한참 더 있어야 하는데. 마당에 불을 피우시더니 우리(나하고 세 동생)를 둘러 앉히대. 그 모닥불에 콩을 구워 주시는 거야. 입가가 새까매지도록 콩을 집어 먹는 우릴 웃으며 바라보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맛이 덜 난다"며 논으로 가자는 거야. 해가 질 때까지 아버지가 구워주시는 콩을 구워 먹었지.

먹을 만큼 구워주시고 콩을 뽑고 그러셨는데, 콩을 뽑다 말았더라고. 콩을 뽑다가 자식들 생각이 난거지.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움직인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바쁘잖아. 논으로 밭으로 얼마나 바쁘셨어. 그런데 그 바쁜 와중에 하나라도 거둬 먹이고 싶고, 이왕이면 들에서 구워 먹는 맛을 알게 하고 싶었던 게지. 자주 생각나. 한량없는 사랑에 힘이 나기도 하고. 돈 때문에 서글프고 골치 아프다가도 가난한 농부로 살면서도 우리에게 낭만을 알게 하고 싶었던 아버지 생각하면 덜 조급해지고, 위로도 받고 그러지"

언니·오빠에게 늘 그립고 고마운 추억을 들려줬습니다. 차로 씽씽 달리며 만나던 들판과 걸으며 만나는 들판은 정말 많이 다르더군요. 보고 자라 늘 그리운 들판의 풍경과 냄새들을 맘껏 느끼며,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하며 우리 삼남매는 걷고 또 걸었습니다. 이젠, 해마다 가을이면 언니 오빠와 함께 도보여행하며 만났던 가을 풍경들이 떠오르곤 하겠지요. 

성환~천안길, 천안 인근에서 만난 어느 오토바이수리점 풍경입니다.지금은 어떤 현수막이 붙었을까요?(2016.11.9) ⓒ 김현자


유엔군 참전 초전비(오산시) ⓒ 김현자


"첫날 너무 욕심 부리면 남은 날들이 힘들 수도 있다"

유엔군초전기념공원(오산) 앞을 지나며 참전유공자인 아버지께 보여드릴 사진도 몇 장 찍고, 잘 자라 아름답게까지 느껴지는 배추밭 앞에 서서 부러워하기도 하면서. 붕어빵도 사먹으면서. 배낭끈에 눌린 서로의 모자를 빼 모자를 씌워주거나 옷깃을 여며주면서. 너무 짧은 늦가을 오후를 아쉬워하면서 캄캄해진 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도보여행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하루에 30km 정도 걷거든. 첫날에는 대개 20km 정도 걸으면서 몸을 풀어줘야 해. 그런데 우린 11시 다되어 만나 30km 훨씬 넘게 걸었으니 정말 많이 걸은 거야. 첫날 너무 욕심 부리면 남은 날들이 힘들 수도 있다."

오후 세시 무렵부터 걸음이 무거워 보였던 오빠. 한 시간 전부터 더욱 더 무거워 보였던 오빠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도 30여분 간격으로 두 번이나. 눈짓으로 맘을 맞춘 언니와 나는 오빠에게 숙소와 식당 정하는 것을 짐짓 미뤘습니다. 7시 30분쯤 서정리(평택)에 숙소를 정한 후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밥은 먹었냐? 잘 곳은 정했나? 물으신 후 당부하시더군요.

형제들끼리 여행하면 좋은 점 하나는 공감할 수 있는 풍경이 많다는 것. 탐나도록 유독 잘 자란 배추밭 바라보며 태풍에 망친 친정의 배추밭 이야기도 했고요(2016.11.8. 오산 인근에서) ⓒ 김현자


차를 타고 또는 네비게이션에 의지해 싱싱 달렸다면 낙엽을 맘껏 느낄 수 없었겠지요(2016.11.8) ⓒ 김현자


"아고 잘했다. 일 년에 한 번씩 꼭 그렇게 함께 여행 하거라. 꼭.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처럼 당부하시던 엄마의 목소리는 평소와 많이 달랐습니다. 어떻게 표현할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은 자식을 앞세운 부모'입니다. 죽기 쉬운 암으로 열 시간 넘는 수술을 받았다는 것을 몇 달이 지나서야 알게 된 부모님. 암 투병중인 아들을 둔 부모님의 심정을 자식인 제가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요.

"어찌 그리 무모한 짓을 하냐?"며 가벼운 핀잔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와 정반대로 "잘했다"며 이처럼 당부하시는, 그것도 평소와 달리 조금 들떠 있는 듯했던(아마도 애써 참다보니) 엄마의 말은 5박 6일 동안의 도보 여행 내내 울컥하게 하거나, 지난날을 돌아보게 하거나…, 많은 생각들을 하게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16년 11월 19일에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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