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들도 즐겨 찾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

[써니's 서울놀이 ③] 서울의 미래유산이 된 60년 전통의 다방, 학림다방

등록 2017.04.03 14:05수정 2019.06.2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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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럽고 편안한 분위기가 배어있는 학림다방. ⓒ 김종성


커피 체인점 외에도 특색 있고 개성적인 카페들이 차고 넘치는 도시 서울. 많은 시민들이 오가는 번화가인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다방' 간판을 단 카페가 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6년 지금의 자리에서 문을 연 지 60년이나 됐다는 오래된 카페 '학림다방(서울 종로구 대학로 119)'. 명실공히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이다.

대학로에 갔다가 카페에 들어갈 일이 있으면 꼭 찾는 곳이 된 건, 그윽하고 아늑한 느낌이 드는 게 가까운 친구가 하는 카페 같은 편안함이 있어서다. 2층으로 오르는 좁고 낡은 나무 계단을 걸어 오르면 커다란 창문을 배경으로 왠지 흑백의 풍경이 어울리고, '빈티지'한 느낌이 가득한 공간이 나온다. 오래되고 허름하고 낡은 것은 좀처럼 참지 못하는 도시 서울에서 만나는 다방이라니, 언제나 이채롭고 고마운 마음이 드는 곳이다.

다방이라는 촌스러운 이름 때문인지 중장년의 손님만 올 것 같지만, 20대에서 6,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오래 앉아 있어도 편안한 푹신한 소파가 있는 고풍스러운 카페 같고, 편안한 찻집 같은 편안한 분위기 때문이지 싶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도 있었다.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 서울시 미래유산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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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서 중장년까지 손님층이 다양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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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이 모았다는 클래식 LP를 감상하는 즐거움도 좋다. ⓒ 김종성


학림다방은 '서울시 미래유산'이기도 하다. 미래유산이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가운데 미래 세대에 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100년 후의 보물을 지정한 것이다. 학림다방은 1960~1980년대 서울 시민들의 추억이 담겨있는 장소이자, 혜화동 일대의 시대적 모습을 보여주는 장소로서 보존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학림(學林)이라는 이름이 특별하다 싶었더니, 1956년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이 서울대학교 문리대 건너편이었단다. 지금은 관악구에 있는 서울대학교가 당시에는 이곳에 있었다.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단골이 되면서 서울대학교 문리대 '제25 강의실'이라는 별칭이 붙었다니 재밌다. 당시 문리대에서 열렸던 '학림제'라는 축제 이름이 '학림다방'에서 유래했다니 그 인기를 알만하다. 하지만, 학림다방은 시대가 부른 예기치 않은 일을 겪기도 했다.

19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 세력인 '전민학련(전국민주학생연맹)'이 이곳에서 모임을 했는데, 용공조작으로 학생들을 검거한 치안본부에서 이 사건을 '학림사건'이라 명명했다. 영화 '변호인'의 배경이 된 공안조작사건인 '부림사건'은 '부산의 학림사건'이라는 뜻에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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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층으로 된 다락방 같은 아늑한 2층 공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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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림다방의 대표 메뉴 가운데 하나인 '비엔나 커피'. ⓒ 김종성


학림다방은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 아지트인 동시에 예술인들의 사랑방이기도 했다. 황지우, 이청준, 김승옥, 김지하 등 문인들과 김민기, 김광림 등 대학로 공연 연출가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공연이 끝난 후 단골 뒤풀이 공간이기도 했다. 황지우 시인은 학림다방을 시에 담았고, 김지하는 자신의 주소를 학림다방으로 했단다.  

카페에서 일하는 30대의 실장님은 청년들도 찾아오는 다방이 되기 위해 유명 카페 못지않은 맛좋은 커피를 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단다. 모든 커피는 직접 로스팅해 만든다. 학림의 대표 메뉴인 '로얄 블랜드'는 서너 잔 분량의 원두를 한 잔의 물로 내린, 향과 맛이 진한 커피.

우유를 섞은 커피 위에 설탕을 섞은 식물성 크림을 올려 맛은 물론 눈도 즐거운 '비엔나커피'도 대표 메뉴다. 일본 관광객들이 어떻게 알고 왔나 했더니 이곳에서 SBS에서 방영한 <별에서 온 그대> 촬영을 했단다. 그래서일까 소품으로 전시된 옛 영사기가 다방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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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 분위기에 어울리는 클래식한 소품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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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구식 피아노. ⓒ 김종성


30년째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진작가 출신의 사장님(이충렬씨)이 소장한 1500장의 LP와 둔중한 고동색 옛 피아노도 눈길을 끈다. 예전엔 DJ도 있었는지 계산대가 된 DJ박스도 있었다. 원하는 손님을 위해 LP를 틀어주고, 피아노도 그냥 장식용이 아니라 누구나 연주할 수 있단다. 학창시절 집에 피아노가 있었던 친구에게 재미로 배웠던 곡 가운데 'Fly Me To The Moon'을 쳐보았다. 내 피아노곡을 듣고 5명 이상이 손뼉을 치면 비엔나 커피 값을 깎아 주기로 했는데 아쉽게도 인원수가 부족했다.

학림다방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이제는 거의 사라진 복층으로 된 2층 공간이다. 나무 계단을 따라 몇 발짝 오르면 좁지만 아늑한 다락방 같은 곳이 나온다. 이곳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면 다방 직원이 커피 내리는 모습,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 나누는 손님들 다정한 모습, 커다란 창문을 통해 스며든 화사한 봄 햇살이 한눈에 보인다.

학림 안쪽의 공간을 대학로라는
첨단의 소비문화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고립된 섬처럼 느끼게 될 정도이다.
말하자면 하루가 다르게 욕망의 옷을
갈아입는 세속을 굽어보며
우리에겐 아직 지키고 반추해야할
어떤 것이 있노라고 묵묵히 속삭이는
저 홀로 고고한 섬 속의 왕국처럼...

다방 입구에 써있는 문학평론가 황동일씨의 글 가운데.

덧붙이는 글 * 지난 3월 24일에 다녀왔습니다.
* 누리집 : http://hakrim.pe.kr
* 찾아가기 : 서울 전철 4호선 혜화역 3번 출구에서 도보 5분.
* 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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