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

엄마의 카톡 "이 새끼야 어쩌자고 혼자 가니"

저질체력 미대언니의 쿰부 히말라야 기부트레킹 ②

등록 2017.04.15 20:19수정 2017.04.1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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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있으니 다 있소, 다이소 털기

준비할 게 너무 많아서 준비를 준비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평소 등산을 했던 터라 웬만한 등산용품은 다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히말라야에 간다니까 등산용품이 아닌 등산 장비를 챙겨야 할 것 같다.

산은 겨울이고, 챙길 것은 많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필요한 것을 사러 나가면 자꾸 자아가 사라지고 눈과 손이 쇼핑을 한다. 게다가 등산용품은 왜 이렇게 비싼 겁니까! (누구한테 말하는 거니...) 분명 양손이 무겁도록 뭔가를 샀는데 체크리스트는 텅텅 비어있다니.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하나는 포기해야 했다. 질 좋고 실용적이며 가격도 괜찮은 물건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싸고 실용적인 쪽을 택했다. 좋은 물건만을 사 모으다가는 패가망신하기 십상이다! 이제부터는 다이소 싸움이다!

# 출발 48시간 전 일기, 다이소를 통째로 옮겨가고 싶다

출발하기까지 48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필요한 물건은 왜 이렇게 많고 없는 물건은 왜 이렇게 많을까. 

"뒷동산 마실 가듯 떠나야지."

처음의 마음은 어디 가고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글을 읽고 불안함에 리스트만 늘어난다. 심란하다 심란해.

EBC 등반 준비 목록(2017년 2월 작성)
1. 입출국에 필요한 서류 몇 가지와 돈
2. 추위와 생존에 필요한 물품 몇 가지
3. 여성이기 때문에 필요한 물품 몇 가지
4. 기록에 필요한 것 몇 가지
5. 약품 몇 가지

몇 가지는 가지를 치고 쳐, 몇 십 가지가 되었다. 오 마이 가지. (이런 개그.. 송구합니다.)
저렴하기 때문에 필요 없는 물건도 구매하는 우를 범하기 쉬운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오늘도 다이소를 세 번이나 들러 한 손 가득 물건을 샀다. 그렇지만 아직도 구매하지 못한 물품이 남았다니! 

오 마이 지저스 크리스마스!

오늘을 마지막으로 다이소 방문은 그만하자. 자주 온다고 다이소 사장님이 상 안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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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유사랑


준비, 스크롤 압박을 이겨낸 품목들

쿰부 히말라야에 챙겨간 모든 항목을 글로( 글: 가방성애자의 가방 속) 정리해보니 A4용지로 8장 분량이 나왔다. 글을 다 쓰고 나서야 준비할 때의 감정과 기억들이 조금씩 떠오른다. 불안과 걱정과 기대가 뒤섞였던 시간이 글자로 빼곡하게 옮겨져 있다.

침낭을 살까 말까 고민하던 일, 헤드랜턴을 손에 들고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던 일, 손톱깎기를 챙겨놓고 한참 동안을 찾던 일, 그 당시에는 큰 고민거리였고, 실제로 걱정하다 신경질이 날 정도로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는데 여행이 끝나고 나니 준비하던 때가 잘 기억이 안날 정도로 옛일 같아졌다.

# 가방성애자의 가방 속中

나는 평소에도 큰 가방에 필요한 물건을 늘 꽉 채워 들고 다닌다. 작은 사이즈의 가방은 애초에 없다. 전공이 그림이어서 짐이 많은 건가 싶다가도, 가방에 별의별 게 다 들어있고 가방을 손에서 놓지를 않아 가방성애자(?)라고 불리기도 하는 걸 보면 전공과 가방의 상관관계는 그다지 크지 않은 듯하다.

엄마 말에 의하면 어릴 때도 가방이 비어있다 싶으면 동네에 예쁜 자갈돌을 한가득 주워 가방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난 그냥 이렇게 생겨먹은 거다 ㅠㅠ) 평소에도 짐이 많은 사람이 긴 시간 등반을 하니 오죽 챙길게 많았겠는가. 거기에다 여자이기 때문에 챙겨야 할 물건들이 더 있었다.(아, 가벼운 가방을 들어볼 수 없는 내 팔자야.) 

세상 많은 부피를 차지하는 의류 목록들. 안 가져갈 수도 없고 꼭 가져가야 한다면 잘 고려해서 필요한 것만 가져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고어텍스 재킷, 오리털 내피, 쿨맥스 티셔츠, 등산 반바지(동계-가죽 소재), 등산 레깅스, 챙 모자, 속옷, 등산양말, 일반 양말은 트레킹 시 착용한 의류 목록이다.

보름이 넘도록 속옷, 양말 빼고는 같은 옷을 돌려 입었더니 하산할 때 거울을 보니 거지가 따로 없더라. 거지 옷을 들고 한국에 돌아올 자신이 없어 그 자리로 빨래방에 모든 옷가지를 맡겨버렸다. 거지 꼴을 감수해야 하지만, 잘만 구성하면 많지 않은 옷으로 돌려 막기가 가능하다!

바라클라바, 버프는 얼굴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추위에 좋다. 입과 코의 구멍이 뚫어져 있는 것으로 하면 고산에서의 호흡에 도움을 준다. 중요한 것은 얼굴에 착용하는 모든 아이템은 단색이어야만 한다.

미대 언니는 줄무늬 나루 마스크로 자외선과 추위를 차단한다고 좋아했으나 하산 후 줄무늬 모양으로 자외선이 차단되어 얼굴에 누가 할퀸 것처럼 오선이 그려져 있다. (엉엉 내 얼굴. 엉엉 내 피부. 여러분 마스크는 단색으로 하세요. 제발 단색으로 하세요. 선크림도 바르세요. 두 번 바르세요.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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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유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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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유사랑


엄마, 사실은

양말을 끝으로 준비하려고 했던 모든 물품을 챙기고 내가 들어가도 넉넉하게 들어갈 만 한 커다란 캐리어에 준비한 모든 물건을 담았다. 준비와 걱정으로 보낸 한 달을 모두 가방에 넣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여행의 계획과 목적을 알렸다. 걱정을 하는 분, 격려를 하는 분 모두의 한마디 한마디가 혼자 가는 여행에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부모님, 특히 엄마에게 세세한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소녀 이 길을 혼자 가옵니다."

라고 했다간 여행의 '여'도 꺼내지 못하게 하실 터라 나는 그냥 가기로 했다. 그래놓고 보험 비상연락처에는 엄마의 핸드폰 번호를 적었다. (거짓말을 하려면 이렇게 허술해야 합니다. 다 들킬 수 있어요. 하하) 나중에 아차 싶었지만 별일 없으면 엄마에게 연락이 갈 일은 없겠거니 생각했다. 배웅을 하고 싶어 하시는 엄마에게 혼자 가야 하니 나오시지 말라고 했다. 나는 꽤나 허술했지만 엄마는 내 여행이 40, 50대 어머님 아버님들과 함게 떠나는 패키지여행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내가 혼자 떠난 것을 알고는 이런 카톡을 보내셨다. (참고로 엄마는 국내외를 다니며 어린이 선교를 하는 고상하고 참한 할머니다.)

"이 새끼야, 어쩌자고 혼자 가니. 원 세상에."

나는 엄마 새끼다. 동물만 새끼에게 새끼라고 지칭하는데 엄마는 엄마 새끼한테 새끼라고 했다. (흥) 나는 엄마 새끼지만 엄마는 새끼를 막을 도리가 없었다. 엄마가 알았을 때, 이미 나는 트레킹을 시작한 지 3일째였다. 어찌하랴. 길 위에 있는 놈을 찾아 잡아올 수도 없고. 엄마는 매일 기도와 눈물로 내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셨단다. 돌아와서 보니 엄마의 흰머리가 늘었다.

트레킹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로부체로 가던 길. 돌덩이만 빼곡한 그 길목에서 엄마의 부재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세상에 모든 엄마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럴까. 엄마도 엄마의 엄마가 이렇게 그리울까.

'엄마를 잃어버리기 전에 손이라도 한 번 더 잡고 한 번이라도 더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늘어버린 엄마의 흰머리는 어쩔 수 없지만, 오늘은 엄마와 함께 저녁을 먹고 함께 설거지를 할 수 있다. 엄마가 그리워 서러움이 사무치는 날이 오기 전에 엄마와 더 많이 손을 잡고 더 많이 얘기하고 더 많은 길을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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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유사랑


제발, 그냥 네팔 좀 가게 해주세요.

"샤오지에 네 야오 션머?" (아가씨 뭘 원하세요?)

승무원이 큰소리로 말했다. 공항에는 일찍 도착했지만 네팔에 가져가야 하는 이타 플래그를 공항에서 만드느라 보딩 30분 전에야 입국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데려다준 남자친구에게 고맙단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겨우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로 달려가 부랴부랴 비행기를 탔더니 손가락 끝까지 피로해졌다. 여권 내려놓을 생각도 못하고 멍을 때리는 중이었는데 승무원이 말을 걸었나 보다. '요즘 비행기에서는 샤오지에(젊은 아가씨)라는 말은 잘 안 쓰지 않나.' 생각하며 말했다.

"워 야오 삥슈에이" (차가운 물 주세요.)

냉수 먹고 속을 바짝 차리자. 나는 이 비행기를 시작으로 두 번의 환승과(환승할 때마다 수화물을 찾고 티케팅도 다시 해야 한다. 왜! 수화물 규정을 읽어보지 않았니! 과거의 나!!!) 세 번의 출입국심사를 통과하는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게다가 이번 환승에서는 환승 비자를 받고 밖으로 나갔다가 새벽 6시에 호텔 셔틀을 타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와야 하니 비행기를 탔다고 마음을 놓아선 안된다. 지금 이 비행기로 네팔까지 갈 수 없으니까.

복잡한 여정의 이유는 역시 예산절감. 인천발 네팔행 항공권은 40만원이다. 한 번 환승과 두 번 환승 항공권 가격이 거의 30만원 차이가 났다. 경유지에서 호텔을 자가 부담하더라도 두 번을 경유하는 비행기가 더 싸다. 머릿속으로 계산이 끝나자마자 항공권을 결제했다. 신이 났다. 몸이 조금만 고생하면 여행자금을 아낄 수 있다. 환승 숙소도 열심히 찾아 바로 결제했다. (신나서 결제할 일이 아닙니다. 경유 시간이 길면 각 항공사마다 제공하는 무료 호텔이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미대 언니 항공사에도 무료 호텔이 있었어요. 하하. 뭐 한 거니! 과거의 나!)

첫 번째 환승은 무난하게 패스. 늦지 않겠다는 의지가 아드레날린을 폭파시켜 호텔에서 밤을 꼴딱 새우고 비행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비행기는 연착되고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다 거지꼴로 숙면을 했다.(이때부터 거지꼴..) 보딩 안내에 잠이 깨 비몽사몽 시간을 확인하니 비행기가 두 시간 가까이 연착이 되었다. 살짝 불안해 다음 환승시간을 계산해보니 한 시간 반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시간이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탑승 후 헤드뱅잉을 하며 졸다 보니 금방 다음 경유지에 도착했다.

침을 닦고 서둘러 나와 배기지 클레임을 찾았다. 두 번째 경유지는 운남 쿤밍. 호도협 트레킹 할 때도 왔었고 별일이야 있겠냐며 공항 정보를 확인하지 않고 그냥 온 것이 문제였을까. 기다려도 기다려도 수화물이 오질 않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짐이 언제 오냐고 공안들에게 물어봤지만 시골공항이라 그런지 공안들이 영어를 못 알아들었다.

중국어로 짐이 언제 오냐고 묻자 한 젊은 공안이 사투리로 뭐라고 신나게 랩을 했다.(몰라! 못 알아듣겠다고!) 한 시간이 지나자 중국 승객들까지 난리가 났다. 삿대질이 오가고 랩 배틀이 시작됐다.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던 나는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해줄 공안을 찾아다녔지만 그곳은 우주정거장 같았다. 어떤 의사소통도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 내 여행은 여기서 끝인 건가.'

갑자기 콧물과 눈물이 쏟아졌다. 코를 찍찍 들이마시고 있는데 아까 랩을 하던 공안이 와서 내 비행기는 위층으로 올라가면 탈 수 있다고 손짓 발짓으로 설명을 한다. 설명은 고맙지만 짐이 안 와서 못 가고 있는 거라네 청년. 코맹맹이 소리로 설명을 하는 내게 손가락질을 한다.

'너 이 녀석, 갑자기 나한테 왜 삿대질을 하는 거니.'

기분이 나빠지려는 차, 배기지 클레임 위에서 내 캐리어가 '나 여기 있다!'고 존재감을 뽐내며 나타났다.(오예!) 공안 청년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응꼬가 빠지게 달렸다. 티켓팅도 안되어있는 엉망진창 항공권을 떴다 떴다 비행기와 함께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캐리어를 들다시피 뛰어 티켓 창구로 가서 이 티켓을 내밀었다.

"헉헉, 제발 타게 해주세요. 전 네팔에 가야만 해요."
"유사랑? 승객 명단에 없는데?"
"이건 또 뭔 소리입니까. 명단에 없다니요."

창천 병력 같은 말이다. 엎어진데 덮어졌고, 고쿠라 졌는데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렇게 꼬일 줄 알았더라면 돌아가서 공장 알바를 하는 한이 있어도 직항을 끊었을 텐데!'

찰나의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재차 확인을 부탁했다. 항공사 직원들이 하나둘 모여 내 여권 정보를 확인했다. 한참을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더니 관리자인듯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 비행기가 지금 만석이야. 자리가 없어."
'엄마야. 이건 또 무슨 말발굽 소리인가.'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제발 보내달라는 눈빛을 쏘았다.

"당신 정보는 확인이 되었으니까 비즈니스석을 줄게. 자, 얼른 뛰어가 늦었어."

벼랑 끝에 내몰려도 죽으리라는 법은 없어. 사람 말은 끝까지 듣고 봐야 한다.

"고마워! 사랑해! 수고했어! 잊지 않을게! 너희는 축복받을 거야! 갓블래슈!"

아무 말이나 좋은 말만 골라 잔치를 벌이며 달려가는 나를 보며 항공사 직원들이 깔깔댔다. 머리는 산발에 울다만 거지꼴로 펄쩍대며 손을 흔드니 웃길 만도 하다. 신나게 달려가 맨 마지막으로 보딩을 하고 푹신푹신 한 의자에 몸을 맡겼다. 역시 비즈니스는 달라. 비행기는 한 시간 넘게 활주로를 벗어나지 못했지만.(으잉? 허허 비행기가 연착됐어요.. 뛰고 울고 생난리 블루스가 무색하게스리..) 꼴찌면 어떤가, 웃음거리가 되면 어떤가. 난 마지막 비행기를 탔다.

드디어, 저 네팔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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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유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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