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식 성평등'은 성평등이 아니다

[주장] 성소수자 인권 없이 성평등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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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재(apriltear0517)등록 2017.04.24 16:44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성평등 실현을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여성신문사와 범여성계 연대기구는 '모두를 위한 미래, 성평등이 답이다'를 주제로 대통령 후보를 초청하여 성평등정책 간담회를 이어가고 있다. 임금격차 해소, 여성과 남성을 동수로 한 내각, 여성생애주기별 1인가구 지원, 여성정책 추진체계 확보 등 성평등 실현을 위한 제도적 노력을 서약하도록 요구하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오늘(24일) 간담회에 초청된 인물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다. 안 후보는 "성평등정책이야말로 리더의 가치관과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로 모두 발언을 시작하며, '맞벌이 부부'로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자신이 구상한 성평등정책을 풀어냈다. 이어서 범여성계 연대기구를 대표하는 여성 활동가들의 질문과 안 후보의 답변이 이뤄졌고, 서약식과 사진 촬영을 끝으로 삼십여 분 남짓의 간담회는 끝이 났다.

안철수 후보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듯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에는 전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안 후보가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아마 얼마 전 목격한 악몽 같은 장면이 쉬이 잊히지 않아서일 것이다. 

"성평등이라는 표현도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양성평등으로 하겠다."

상기된 문장은 우파 개신교 집단이 주최한 '제19대 대통령 선거 기독교 공공정책 발표회'에서 국민의당 문병호 중앙선대위 미디어·유세본부장이 한 발언이다. 20일 문 본부장의 발언은 모순적이게도 과거 자신이 한 발언과 현저히 대비된다. 문 본부장은 2014년 인천시장 출마 선언을 했을 당시, '3.8세계여성의날 기념 인천여성노동자대회'에 참석해 성평등정책 강화를 표방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정부의 열악한 여성 정책을 비판하며 "일자리와 육아가 자유로운 '성평등정책'에 최우선 목표를 두겠다"고 발언한 사실은 지역언론을 통해 보도되기까지 했다. 이외에도 조금만 인터넷 검색에 시간을 할애하면, 여러 자리에서 '성평등'이라는 표현의 힘을 빌린 것이 확인 가능하다.

그랬던 문 본부장이 급작스레 입장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문 본부장의 발언은 "성평등은 '남녀'가 아닌 '젠더'의 개념이므로 동성애를 옹호, 조장하는 용어다"라는 우파 개신교 집단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수용한 결과이며, 성평등을 순전히 '표'로만 보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정반대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또한 이러한 문 본부장의 발언은 '성평등'을 국정 운영에 있어 주요 가치로 가져가겠다는 안 후보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안 후보는 공약집은 물론 본인의 발언에 있어서까지 '성평등'이라는 표현을 강조하여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두 얼굴'의 입장 발표를 바라보며, 국민들은 자연스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유세본부장과 후보자가 전혀 다른 표현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안 후보가 말하는 '성평등'을 국민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인가. 

여기서 왜 '성평등'이어야 하는지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양성평등은 시스젠더가 아닌 사람을 배제한다는 점에서도 문제지만, 주체와 기준의 초점이 '시스젠더 남성 이성애자'에게 집중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가진다. 여성의 권리 투쟁을 '남성과의 대립'만으로 국한시키고, '껍데기뿐인 평등'을 심화시키는 모습은 양성평등이 야기하는 대표적인 문제다. 

양성평등의 문제적 측면을 곱씹어볼수록, 문 본부장의 발언이 '반성평등적'이라는 사실은 더욱 짙어진다. 성평등 자체를 '오해'로 치부해버리는 모습이 그렇다. 설상가상으로 문 본부장의 '성소수자 혐오 발언'은 안 후보 캠프가 말하는 성평등의 신뢰도를 완전히 무너뜨린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안철수식 성평등'을 믿고 지지할 수 있겠나.

양성평등과 성평등을 두 손에 쥔 채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안 후보 캠프에 강력히 요구한다. 성평등정책을 국정 주요 과제로 추진한다는 공약이 진심이라면, '한 표 두 표'에 연연하여 성평등에 반하는 일까지 자행하는 지금의 모습을 말끔히 털어버리라. 그리고 즉각 답하라. "성평등입니까, 양성평등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내놓으라.

만일 계속해서 문 본부장의 발언에 대한 공식입장과 사죄를 내놓지 않는다면, '안철수식 성평등'은 결코 성평등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 보여지고 있는 안 후보 캠프의 이중적 태도는 성평등의 필수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미완의 성평등'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성평등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다.

아울러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비롯한 성평등정책의 남은 퍼즐을 가능한 빨리 맞춰야 할 것이다. 갈기갈기 찢어진 성평등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간이 많지 않다. 대선은 가까운 미래지만, 여성과 소수자의 삶은 현재다. 누구에게도 더 이상 '나중'은 용납될 수 없는 언어다. 안철수 후보가 성평등에 있어 '베스트 찬스'를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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