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벚꽃잎을 담은 아름답고 감동적인 소설

[서평]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책의 제목부터 흥미로운 감성 소설

검토 완료

노지현(onmikuru)등록 2017.04.28 15:15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이라는 책의 제목 부터 묘한 흥미를 가지게 되는 책을 만났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일지 좀처럼 감을 잡지 못한 상태로 책을 읽었다. 책을 읽어가면서 서서히 알게 되는 책의 분위기는 비 내리는 하늘처럼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하고, 책의 주인공인 너와 사이좋은 클래스메이트가 눈앞에 그려졌다.

책을 읽기 전에 주변에서 '정말 감동적인 작품이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하지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읽고 나서 나는 깨달았다. 이 책은 단순히 감동적인 작품이다'는 말로 감상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마음을 뒤흔드는 작품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심지어 책을 읽은 이후에도….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느닷없는 장례식 장면에서 시작해 그 장례식의 주인공인 소녀와 장례식에 참여하지 않은 주인공 소년. 이 두 사람은 서로의 접점이 '같은 반 클래스메이트'라는 점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인공 소년은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았고, 주인공 소녀는 타인에게 사랑을 받았다.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은 어디까지 순전히 우연이었다. 병원에서 우연히 의장에 남겨진 '공병문고'라는 이름이 붙은 일기장을 소년이 읽은 것.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소년에게는 '비밀을 알고 있는 클래스메이트'라는 수식어가 붙고, 일기장의 주인인 소녀 사쿠라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두 사람이 연인이 되었다는 건 아니다. 친구라고 말하기에 조금 애매한 관게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가 처한 상황에 대해 무심한 듯이 시간을 보낸다. 그러는 사이 주인공 소년은 사이좋은 클래스메이트로 불리기도 하고, 이윽고 후반에 이르러서는 XX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인공 소년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게 이 소설이 가진 매력 중 하나다. 클래스메이트를 향해 뻔하게 이름이 아니라 다른 말로 그를 부르며 그의 존재감이 달라지는 걸 느끼고, 소녀를 향해 이름이 아니라 '너로 부르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 서툰 모습이 그려져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게 한다.

단 한 가지, 어제부터 마음속에 잠복해있던 의문이 그녀의 의지에 촉발되어 불쑥 떠올랐기 때문에 그것만은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기, 너 말이야."

"응, 뭔데?"

"정말 죽어?"

그녀의 표정이 일순 사라졌다. 그 표정만으로도 이런 질문은 안 하는 게 좋았을 걸,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후회의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그녀의 표정은 다시 평소처럼 눈이 핑글핑글 돌게 변화했다.

처음에는 웃음, 그다음에는 난간함, 쓴웃음, 화남, 슬픔, 그리고 다시 난감한 얼굴로 돌아왔다가 마지막에는 내 눈을 똑바로 마주보고 웃으며 말했다.

"응, 죽어."

".....아, 그렇구나."

그녀는 평소보다 눈을 더 많이 깜빡거리며 웃음이 깊어졌다.

"죽어. 벌써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어. 요새는 의학이 발전해서 증세가 거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남은 수명도 길어졌어. 하지만 틀림없이 죽어. 앞으로 일 년을 버틸지 말지 모른다는 선고를 들었어."

딱히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똑똑히 내 고막에 와 박혔다.

"사이좋은 클래스메이트, 너 말고는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너는 분명 나한테 진실과 일상을 부여해줄 단 한 사람일 거야. 의사 선생님은 내게 진실밖에는 주지 않아. 가족은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과잉반응하면서 일상을 보상해주는 데 필사적이지. 너만은 진실을 알면서도 나와 일상을 함께해주니까 나는 너하고 지내는 게 재미있어." (본문 79)

윗글은 사이좋은 클래스메이트가 소녀의 병을 알게 된 이후의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나눈 대화다. 이 대화를 잠시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너의 췌장이 먹고 싶어>의 주인공 두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대충 상상해볼 수 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밝은 웃음을 짓는 소녀와 덤덤히 그녀의 곁에 있는 소년.

서로서로를 강렬하게 끌어당기거나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천천히 서로의 마음에 들어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마치 봄의 끝자락을 맞아 떨어지는 벚꽃잎 같았다. '초속 5cm'로 떨어지는 벚꽃잎은 그 일순의 순간에도 아름다움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마치 그러한 벚꽃잎 같았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읽다 보면 문득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과 마찬가지로 벚꽃잎이 떨어지는 4월에 만나 밝은 얼굴의 소녀와 그 소녀의 영향을 받는 작품이다. 그 작품은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기도 했고, 한국에서도 만화로 정식 발매되며 많은 사랑을 받은 <4월은 너의 거짓말>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읽으면서 분위기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장면이 놀랍도록 닮았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아주 천천히 이별을 준비하며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 OP23 연주를 통해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돌연히 이별이 찾아와 무척 당황케 했다.

여기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면 중요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책을 펼쳐서 읽은 첫 장면부터 이를 예측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쇼팽의 발라드 G단조 op23 마지막 장에서 격렬히 건반이 요동치는 순간, 맥없이 피아노의 선이 끊어진 것 같은 결말을.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단순한 감성 소설, 연애 소설로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책을 읽는 동안 사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와 타인의 관계를 떠올려보고, 주인공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깊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정말 오랜만에 깊은 감동을 한 소설을 만났다. 홀로 지내는 주인공이 사쿠라를 만나 바뀌어가는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타인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타인에게 사랑받는 사람. 그 끝에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말에 도달한 이 이야기. 이 멋진 이야기를 당신에게 추천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노지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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