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독부 건물 만든 바위, 그 위에 사람이 산다

[써니's 서울놀이 ⑤] 낙산기슭의 돌산마을, 서울 종로구 창신동 골목 여행

등록 2017.05.10 21:41수정 2019.06.2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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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 성곽이 품은 창신동의 해저물녘 풍경. ⓒ 김종성


오랜만에 골목여행을 했다. 그것도 서울에서. 요즘 골목길에 유행처럼 번진 벽화 하나 없는 평범한 골목이었지만 길을 잃어버리고 헤맸을 정도로 길고 깊은 골목이 있는 곳. 서울 낙산 기슭의 언덕동네 종로구 창신동이다. 안양천이 흐르는 평지 물가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골목이 있는 산동네 혹은 언덕동네는 언제가도 멀리 여행을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창신동은 몇 년 전 뉴타운 재개발 대상에 포함되어 마을 자체가 사라질 뻔했으나, 삶의 터가 된 정든 동네에서 계속 살고 싶어 하는 주민들의 반대로 재개발은 무산됐다. 이후 서울시는 동네의 노후화된 곳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문화와 공간을 조성하는 '마을 재생'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런 도시 재생 사업 가운데 하나가 백남준 기념관과 박수근 집터다.  

화가 박수근과 백남준이 살았던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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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과 주민들 풍경을 주로 그렸던 화가 박수근의 집터 기념석.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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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한옥에서 독특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백남준 기념관. ⓒ 김종성


서울 1호선·6호선 전철 동묘앞역 6번 출구로 나오면 화가 박수근(1914-1965)의 작품이 그려져 있는 기념석과 집터(창신동 393-16)를 알리는 표지석을 볼 수 있다. 1952년부터 1963년까지 11년간 창신동에 살았던 화가 박수근은 한국전쟁 후 곤궁한 삶을 이어가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에 인간애를 담아 그림 속에 그려냈다.

후일 사람들은 이 시기를 '창신동 시절'이라 말한다. 그의 대표작인 '길가에서(1954)', '절구질하는 여인(1954)', '나무와 두 여인(1962)' 등 많은 작품이 이때 나와서다. 집터 알림 기념석에 창신동 집 마루이자 그의 아틀리에에서 아내와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이 왠지 행복해 보여 눈길을 끌었다.

창신동 마을 그림이 그려져 있는 기념석을 지나 길을 건너면 시대를 앞서간 전위 예술가 혹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기념관(창신동 197-33)이 나온다. 화가 박수근과 한 동네에서 살았지만, 1950년 백남준이 일본 도쿄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이어지지 못한다. 서울시에서 복원한 아담한 한옥집으로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이란 간판이 여행자를 맞는다. 마당을 중심으로 'ㄷ'자 모양의 한옥에는 현대적 감각의 조형물들이 어우러져 색다른 공간으로 변신했다.

당시 '큰 대문 집'이라 불렸던 이곳은 99칸에 뒷동산이 있는 거대한 한옥집이었다고 한다. 백남준의 아버지는 섬유업을 하는 거상으로 요즘으로 치면 재벌이었다. 백남준의 독특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고, 동네 주민들이 운영하는 작은 카페가 마당에 있어 좋았다.
(운영일시 : 오후 6시까지 / 월요일 휴무 / 관람료 무료)

'당고개·마이깡·걸거리··' 이채로운 봉제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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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단을 실은 오토바이들이 쉼없이 오고가는 창신동 봉제골목.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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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분화, 전문화된 봉제골목 가게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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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은 길을 잃을 정도로 깊고 언덕진 골목이 많다. ⓒ 김종성


백남준 기념관에서 나와 1호선·6호선 동묘앞역 9번 출구 방향으로 걷다보면 안양암이 나오는데 바로 창신동 골목길의 들머리다. 큰 돌에 서울시 문화재인 불상이 새겨져 있는 작은 암자가 골목 초입에 있어 벌써부터 흥미로웠다. 안양암에서 보이는 동네는 왜 이곳이 화강암이 많은 돌산마을이라 하는지 알게 된다. 동네 위쪽에 지장암이란 암자가 또 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암자와 달리 본격적으로 언덕길을 오르는 순간 갑자기 주변이 부산하고 시끄러워 어리둥절했다.

구불거리고 경사진 골목을 묘기 부리듯 굉음을 내며 오토바이들이 요란하게 오고갔다. 다들 한가득 짐을 싣고 가까운 동대문 의류상가로 달려가는데, 이 동네에 자리한 봉제가게에서 만든 것들이다. 겉으론 평범한 단층 주택처럼 보이지만, 겉에 써있는 글자가 심상치 않다. '당고개·스냅·마이깡·시야게·걸거리··' 여러 나라 말이 섞인 전문용어가 재밌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가게 안에서 들리는 재봉틀 소리와 일하는 분들의 모습이 너무 바빠 보여 차마 말을 붙여보지 못했다.    

가내수공업을 하는 작은 봉제가게가 골목 양편으로 빼곡히 들어차 있는데 '봉제거리'라는 이름이 생길 만했다. 몇몇 가게는 문밖에 전문분야를 재미있게 표시해 놓았다. 단순히 봉제가게가 아니라 옷의 원단을 자르고 바느질하고 마무리하는 일이 전문적으로 세분화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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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내 수공업 형태의 봉제 가게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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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작지만 알찬 창신시장.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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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시장에서 마주친 개구리 뒷다리 튀김. ⓒ 김종성


창신동 봉제골목은 1970~80년대 동대문 의류시장이 번성하면서 자연스레 생겨났다. 2000년대 들어 값싼 중국산 의류가 물밀듯 들어오면서 일감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다행히 봉제골목은 말을 못 붙일 정도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봉제골목의 역사와 특성을 살려 올해 말엔 이 골목에 '봉제 박물관'이 생긴단다.

오르락 내리락 골목 언덕길에서 평평한 길이 나타나는데 '창신 시장'이 있는 곳이다. 시장통이 자전거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작은 동네시장이지만, 백종원이 찾아와 인증했다는 족발집과 여러 반찬집, 마트 등이 알차게 자리한 시장이었다. 어느 통닭집에선 놀랍게도 개구리 뒷다리 튀김도 있었다. 옛날엔 고기가 귀해 개구리를 잡아먹었다는 동네 어르신들이 단골이라고.

어릴 적 시골 외갓집에 놀러 가면 사촌형들, 동네형들과 들판에서 놀다가 논에 가서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구워 먹었던 기억이 났다. 작고 착한 개구리가 불쌍해 먹지 않아 그런지 추억으로 남진 않은 요리다. 경사지고 구불구불한 언덕이 많은 덕택에 이 동네엔 대형마트가 없다. 내가 사는 동네에선 사라져 버린 작은 길목슈퍼, 버금슈퍼, 만물슈퍼 등이 남아있어 반가웠다.

창신동 골목의 특별한 풍경, 절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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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마을답게 동네 곳곳에 거대한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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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사연을 품고 있는 경관 '절개지'. ⓒ 김종성


언덕 골목길에서 만나는 특별한 가게 혹은 사회적 기업들도 반갑다. 창신동 라디오 '덤', 000간, 뭐든지 도서관 등 여느 골목 동네에서는 볼 수 없는 곳이 골목 틈틈이 숨어있다. 타지에서 온 여행자에게도 동네 주민마냥 친근하게 대해 주어 좋았다.

창신동 골목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풍경이 나타났다. 높다란 언덕 위에 여기저기 깎이고 패인 절벽이 생뚱맞게 출현한다. 절벽 바로 위에 집들이 매달리듯 아슬아슬하게 터를 잡고 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한탄 같은 감탄이 새어나왔다. 이름도 생소한 '절개지'. 정확한 이름은 '채석장 바위 절개지다'.

화강암이 많은 돌산마을은 그 돌 때문에 일제강점기 때 피해를 본다. 낙산 허리를 깎아 채석장을 조성해 돌을 캐서 경성역(서울역), 경성부청(시청)과 총독부 건물을 지었다. 해방 후 채석장이 버려지고 60년대 채석장 주변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보기 드문 풍경이 생겨났다. 절벽 위에 자리한 집들을 보니 사람살이가 참 끈질긴 것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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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골목엔 라디오 방송국, 공방, 미니 도서관 등 특별한 공간들이 숨어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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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가 한 눈에 바라다보이는 창신소통공작소. ⓒ 김종성


세월이 흐르면서 독특한 경관이라며 호기심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서울시는 이 일대를 공원과 전망대 등이 있는 명소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그 일환으로 먼저 만든 곳이 절개지가 발 아래로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있는 '창신소통공작소'다. 손공작·목공작·봉제공작 등 공예수업을 하고, 생활공구를 무료로 빌려주는 공구도서관도 있다.

바로 위에 전망 좋은 낙산 공원이 있지만, 이곳 야외 벤치에 앉으면 창신동 동네가 한 눈에 펼쳐진다. 해저물녘이면 더욱 좋겠다. 은은한 불빛이 비쳐주는 낙산 성곽 아래로 하나둘 불이 켜지는 동네 풍경이 참 정답다. 전망대에 서면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이나 디카 액정화면을 통해 풍경을 보곤 했지만, 모두 내려놓고 눈으로 바라보고 싶은 정경이다.

올봄 창신동 골목에 두어 번 찾아갔다. 한 번은 길을 잃어서 다시 찾아갔고, 또 한 번은 낙산 공원에서 성곽이 품은 동네 야경을 보고 난 후, 가로등이 밝혀주는 골목길을 따라 창신 시장까지 걸어보고 싶어서였다. 잔일이 남았는지 드르륵드르륵 들려오는 재봉틀 소리, 달그락 톡톡톡 밥상 차리는 소리, TV 소리와 섞인 아이들 목소리...아파트에 살면서 잊어버렸던 정겨운 소리와 소음이 반가워 되도록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덧붙이는 글 지난 4월에 여러 번 다녀 왔습니다.
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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