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시댁을 기피하는 시절과의 불화

이유없이 시댁이 불편하다는 아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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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호(cirang)등록 2017.07.20 17:59
우리 집의 분란은 늘상 시옷에서 시작한다. 설거지와 시댁이다. 설거지 거리가 쌓이거나 본가에 갈 날이 다가오면 틀림없이 사단이 벌어진다. 예외는 없다. 달력에 여름휴가를 벌겋게 표시한 동그라미가 보인다. 불안감은 식도염처럼 가슴에 짜르르 퍼진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전 난 아내와 대판 싸웠다.

아내의 일성이다.

"휴가 때 며칠이나 거기 가 있을 거야?"

아내는 시댁을 거기라고 불렀다. 왜일까. 시댁이 홍길동 아버지도 아닐 텐데 왜 시댁이라고 하지 않을까? 누군가의 말처럼 시자는 입에 올리기도 싫은 걸까? 시금치, 시계, 시어머니.

나는 답한다.

"한 사흘 가 있을 거야."
"왜? 하루가 아니고? 하루만 있는 거 아니었어?"

아내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방아쇠를 당겼다. 즉각 부부싸움은 시작되었다.

애초에 시댁에 가는 문제는 아내의 입에서 나왔다. 아이 어린이집이 그때 방학이니 맡길 데도 마땅치 않고 시댁을 대안으로 제안했다. 본인이 가겠다는 게 아니다. 나와 아이만 가라는 거였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도 따라 가겠다고 했다가 그 말을 뒤집는 거다. 묻지도 않았는데 굳이 시.댁.에는 안 가겠다고 갑자기 못을 박는다. 누가 오라고 했나?

본가든 처가든 난 형편 되는 대로 둘이든 셋이든 갈 수 있는 사람만 가자고 해 왔다. 굳이 완전체 방문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원래부터 이런 마음이었던 건 아니다. 신혼 때 워낙 이 문제로 싸웠기에 어느 정도는 포기를 했다.

그런데도 아내는 내 속을 후빈다. 굳이 시댁에는 가지 않겠다고 한다. 하루면 참아보겠지만 그 이상은 가기 싫다는 소리를 꾹꾹 눌러하는 아내 앞에서 난 폭발하고 말았다. 이건 싸우자는 소리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뭐, 부부싸움이 다 그렇듯 하루가 지나 냉기가 풀리고 화해는 했다. 하지만 아내는 싸움과는 별개로 여전히 시댁에는 가지 않겠다고 한다.

안 가도 좋다. 그건 당신의 자유다. 하지만 궁금하다. 내 엄마가 당신을 혹사시키던가? 내 아버지가 함부로 대하던가? 시누이가 괴롭히던가? 왜 시댁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걸까? 몇 번이고 묻는 나에게 아내는 이런 답을 주었다.

"그냥 불편해. 다른 이유는 없어."

정말이지 본전 생각나게 하는 말이다.

"그럼 나는? 나는 처가 갈 때 군소리 한 번 안 했어. 그렇다고 마냥 좋기만 한 줄 알아?"

이렇게 쏘아붙이면 아내는 답한다.

"누가 그러래? 알아서 해."

벽과 대화하고 있다. 그 벽 무너뜨리려고 무던히도 애 썼으나 실패했다. 몇 년 동안 싸움의 기술만 늘었다. 내심 아내가 시댁을 불편해하는 까닭으로 짐작 가는 바가 있기는 하다. 이른바 합리적인 의심이다.

이유 없이 어떤 대상을 불편해한다? 그건 집단 무의식이 아니라면 조장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내는 왜 시댁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인간의 기초적인 의식을 형성하고 지배하는 강력한 수단은 교육 혹은 반복 학습이다. 여학교에서 시댁을 멀리하라고 교육할 리 없다. 가정과 사회에서 자연스레 구전으로 교육되고 학습되었을 것이다. '시댁=악'이라는 메시지가 사회 전반에 만연하면 거기에 반론을 재기하기는 어렵다. 대표적인 예가 방송이다.

시댁과 시댁식구들을 혐오하고 조롱하면서 깔깔거리는 예능과 시댁의 몰지각과 횡포를 주요 소재로 삼은 일일연속극이 넘친다. 대놓고 시자의 '시'도 듣기 싫다고 한다. 그걸 자꾸 보면 누구라도 시댁을 혐오하게 되어 있다. 시댁이 뭔지 모르는 외국인은 한 여성의 인격을 말살하는 범죄집단이라고 인식할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생활을 소재로 삼아 눈물을 짜 내는 거야 방송의 자유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 수준이 아니다. 수 십 년 동안 지속적이고도 일방적으로 시댁을 조리돌림했다. 다만, 시대에 따라 그 결과값이 동조나 분노, 비웃음으로 다르게 나왔을 뿐이다.

시댁이라는 특정집단을 비난하면서 재미를 보는 이 방식은 인종차별과 맥이 같다. 한국에서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이 겪은 차별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합리적인 이유 따위 있을 리 없다. 우리는 우리의 부조리를 대신 도맡아줄 만만한 상대가 필요했고 그 상대로 우리와 혈통이, 피부색이, 사는 지역이 다른 인간집단을 고른다. 군소리 없이 맞아줄 상대를 때릴 뿐이다. 그들은 죄없는 분풀이 상대일 뿐이다.

이것 말고도 개인주의 확대, 유행, 커뮤니티의 영향, 지레 겁먹음 등등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내가 내 분석에 얼마나 동의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더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 당신이 그렇게 싫어하는 시댁식구들이 누군가의 처가식구들이란 사실이다. 당신에게도 처남이 있지 않은가. 그것마저 내 일 아니니 모르겠다고 하면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하자. 나에게도 처가가 있고 그 처가에 잘하려고 하는 이유는 바로 당신 때문이라고.

그렇다. 내가 처가에 인사를 드리고 예의를 차리고 가족으로 대하는 이유는 모두 아내 때문이다. 아내가 아니었으면 평생가야 마주칠 일 없는 분들이고 희로애락을 같이 할 이유가 전혀 없는 남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점점 허물어져간다. 아내가 좋으면 처가 말뚝에 대고도 절을 한다고 했으니 그 반대도 성립한다. 내 부모가 아무 죄 없이 누군가에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라. 내 자식이 누군가에게 이유 없이 조롱이나 기피의 대상이 된다면? 그야말로 아무 이유 없이 그 존재자체로 그런 취급이라니 울화가 치미는 일 아닌가? 최소한 그 이유라도 말해준다면 이해라도 하겠으나 존재가 싫다는데야 마냥 호인일 수는 없다. 점점 처가 식구들과 말수를 줄이고 연락을 하지 않고 있는 걸 아내는 아직 모르는 걸까?

아내의 말처럼 배우자의 식구들을 내 식구처럼 편하게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일 노력이 하기 싫은 건 충분히 이해한다. 사람 싫은 데 이유 없는 것도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그 중간에 낀 사람 생각은 안 해주나? 자신의 부모가 기피의 대상이 되는 꼴을 보는 자식의 마음은 왜 몰라주느냔 말이다. 내색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는 게 예의 아닐까?

아내에게 이런 부탁과 당부를 하고 싶다. 억지로 시댁식구 불편한 마음 감추느라 얼굴 찡그리고 괜한 냉기 풍기지 말고 차라리 남남으로 여겨주길 바란다. 그저 나이 들어 병들고 약해져 혈육 보는 게 낙인 노인네들이 어디 살고 있구나 속으로만 생각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당신이 시어머니가 될 날을 상상해주기 바란다. 우리 아이가 며느리를 데려오면 당신이 어떻게 시댁을 대했는지 깨알 같이 적은 내 일기장을 보여 줄 것이다. 이건 진심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페이스북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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