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운전사>와 양진의 사지

칼럼

검토 완료

조성일(sicho)등록 2017.08.26 14:01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택시운전사>가 연일 화제다. 영화를 잘 보지 않는 내가 일찌감치 보았던 터여서 천만 관객은 떼 논 당상이라고 점쳤었는데, 누구나 점칠 수 있는 것이었더라도 결과적으로 맞춘 꼴이 되어 한편으로 기쁘다.

이 영화는 역시 '진실'은 묻힐 수 없다는 점을 웅변적으로 말한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회고록까지 내어 호도하려 해도, '그때의 그 진실'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광주민주화운동은 이젠 기려야 할 역사적 사건 정도로 치부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다 지난 5월 18일 37주년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있었던 가슴 뭉클한 장면(당시 아버지를 잃었던 딸이 추도사를 읽고 퇴장하자 대통령이 뒤따라가 안아주던 모습)을 통해 비로소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는 광주를 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 기념식의 감동이 아직 남아있는 이 즈음 영화 <택시운전사>가 그 감동의 불씨를 살려 활활 타오르게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날의 진실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오래전 몰래 비디오로 봤던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얘기를 할라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언비어 퍼뜨리지 말라며 되레 나를 설득하려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영화에서처럼 내 주위에서도 반전이 일어났다. 내 가까운 지인 몇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나서는, 영화에 나오는 걸 보니 참혹하다는 말밖엔 할 수 없다, 그동안 오해한 내가 부끄럽다,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들었던 이 몇몇 사람들의 반응을 일반화 할 수 있을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다고 할 수 없음에도 '오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천만 관객이 보았다는 점에서 보면 '일반화의 오류' 역시 '오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이 영화에 나오는 팩트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위르겐 힌츠페터 때문이다.

일단 그는 외국인이다. 그렇다면 그는 가해자든 피해자든 누구와도 이해관계가 없다. 또 그는 기자다. 기자는 객관적 입장에서 팩트(사실)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더더욱 그의 기록은 영상이미지다. 취재기자의 펜은 사실을 전달(설명)함에 있어서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영상은 그렇지 않다. 기자가 보이는 대로 찍은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묘사이다. 그래서 힌츠페터의 기록은 문자적 기록보다 더 진실성을 담보한다. 

그때 광주에서 있었던 진실은 오직 하나다. 진실을 놓고 해석하는 문제에서 차이를 보일 수는 있다. 입장이나 생각에 따라 그 차이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해석해야 하는 대상의 진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왜곡한 상태에서 해석하는 것은 차이를 넘어 잘못이다. 

진실은 아무리 덮으려 애써도 결코 묻히지 않는다.

후한 시대 관서지방의 공자 칭호를 받던 양진(楊震)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추천하여  창읍령(昌邑令)이 된 왕밀(王密)이 부임길에 양진을 찾아와 고마움을 표시하며 금 10근 내놓으면서 이랬다고 한다.

"어두운 밤이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자 양진은 이렇게 대답한다.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이는데 어찌 앎이 없다 하는가?((天知神知子知 我知何謂無知)"

그러고 양진은 그 금을 받지 않았고, 왕밀이 무착 부끄러워했음은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대로다.

이 유명한 '양진의 사지(四知)' 고사는 청렴을 설명할 때 단골로 인용되지만, '진실은 감출 수 없다'는 의미를 상징하기도 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도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알고 있었다.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 광주민화운동이 진실이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곳곳에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증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공대지 폭탄을 탑재하고 출동대기 했다고 증언한 한 공군 조종사 출신 인사는 이제라도 이런 증언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젠 말해야 한다. 진실은 숨길 수 없다.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훗날 의식 있는 역사학자에 의해서라도 역사에 민낯을 드러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택시운전사>는 진실은 묻히지 않는다는 교훈을 준다. 진실이 묻히지 않는 것은 진실을 기록하려는 자의 용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은 용기를 먹고 자라는지도 모른다.

아울러 훗날 역사의 평가가 현세에 진실을 고백하고 반성과 용서를 구하는 일보다 더 가혹하고 오래간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하는 사람들도 이 영화를 보고 진실의 용기가 무엇인지를 깨달았으면 하는 것이 나만의 바람일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조성일의 글쓰기 충전소'에도 포스팅했습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