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과거의 히딩크를 원하면서 미래를 논하는 한국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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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예근(byk0930)등록 2017.09.07 11:34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은 지극히 필자 개인의 의견임을 밝힌다.

우여곡절 끝에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남자 한국 축구대표팀이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에 성공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꾸준하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한국은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행 티켓도 따내면서 세계 6위에 해당하는 연속 진출 기록을 세웠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까지 합치면 한국은 러시아 월드컵을 통해서 총 10번의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됐다.

'도하의 기적'으로 정의 내려지는 1994 미국 월드컵 최종 예선만큼이나 이번 최종 예선 과정은 험난했다. '갓틸리케'라 불렸던 울리 슈틸리게 감독은 최종 예선 과정에서 졸전을 거듭한 끝에 최종 예선 8차전 카타르전 패배를 끝으로 경질됐다. 소방수로 나선 신태용 감독은 월드컵 진출이란 결과를 얻어냈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 내용으로 많은 질타를 받고 있다.

이제 부임한 지 2개월이 지난 '초짜' 감독에게 과정과 결과를 모두 바라는 것은 가혹한 면이 없지 않지만, 신태용호가 시원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사실이기에 그들을 향한 언론과 여론의 비판은 합당하다.

근거 있는 비판까지는 이해할 수 있고 당연히 이뤄져야 하는 일이다. 허나 신태용 감독 부임 당시 과정보다는 결과를 원했던 언론과 여론이 이제 와서 과정이 좋지 않았다고 과도한 비판을 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란-우즈베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지옥의 2연전'에서 결과를 끌어낸 신태용 감독을 향해서는 비판보다 응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냉정히 봤을 때 이란-우즈베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지옥의 2연전'을 그 흔한 평가전 한 번 없이 지휘봉을 잡은 감독이 통과했다는 사실은 박수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박수는 커녕 감독 교체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6일 한 유력 방송사는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거스 히딩크 감독의 "한국 국민이 원하면 감독직 수용 의사가 있다"는 발언을 보도했고, 한국 축구 팬들 대다수는 히딩크 감독의 복귀를 반기고 있다.

갑자기 히딩크?

'히딩크 키드(KID)'인 필자도 히딩크 감독의 대표팀 감독 자체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큰 환상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 사실 환상이 아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임을 부정할 수 없다.

2002 월드컵을 위해 부임한 히딩크 감독은 다사다난했던 준비 과정 끝에 월드컵 본선에서 1승도 거두지 못했던 한국을 준결승까지 인도한 신화적인 인물이다. 당시 히딩크 감독이 도입한 현대적인 훈련 방식과 축구 철학, 세계적인 흐름에 뒤쳐지지 않는 전술 등은 한국 축구의 근간을 바꿨다. 한국 축구 역사를 히딩크 이전과 이후로 나눠도 될 정도로 한국 축구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그러나 2002 월드컵이 끝난지 15년이나 지난 시점에 갑자기 히딩크 감독의 감독 부임설이 떠도는 것은 의아하다. 현재 대표팀이 부진할수록 과거의 찬란하게 빛났던 2002 대표팀을 추억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히딩크 감독의 부임을 간절히 원하는 여론이 큰 것은 이해할 수 없다.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히딩크는 전설을 써내려간 한국 축구의 신화적 인물이지만 그는 '신'이 아니다. 2002 월드컵의 성공을 위해 대한축구협회는 과거에도 혹은 미래에도 볼 수 없을 전폭적인 투자를 약속했고 시행했다.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 한국 축구의 지상과제는 'FC 대한민국'이 높은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히딩크 감독은 '시간'이란 무기를 쥐고 싸웠다. 본인 철학의 관철과 한국 축구의 성적을 위해서는 긴 준비 과정이 필요했고, 그 점을 이해한 관계자들은 히딩크 감독이 '오대영' 감독이란 비난에 시달려도 그를 믿고 달려갔다.

물론 충분한 '시간'이란 조건 아래에서도 히딩크 감독만큼의 성과를 이뤄낼 수 있는 감독은 거의 없기에 히딩크의 업적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히딩크에게 '시간'이란 무기가 최대 강점이었던 점은 사실이기도 하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대표팀 감독 퇴임 이후에도 꾸준하게 한국 축구와 교류했지만 당장의 한국 축구 현실을 파악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히딩크란 위대한 명장에게도 '시간'이 필요하지만 러시아 월드컵까지 남은 시간은 9개월이다. 히딩크 할아버지가 와도 9개월 안에 팀의 체질을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미션이다.

히딩크 감독이 무보수로라도 한국 축구가 위기를 타개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은 고맙지만 시기가 옳지 않다. 현 대표팀 감독은 신태용 감독은 본인의 영달을 누릴 수 있는 안정적인 길을 버리고 '독이 든 성배'를 기꺼이 마셨다. 월드컵에 한(恨)이 있는 신태용 개인의 욕심보다는 국민들의 요구로 감독직을 수행하게 된 감독이다. 과거의 인물인 허정무가 슈틸리케 감독 후임으로 유력시 되자 결과가 나쁘더라도 신태용 감독이 부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대다수의 여론이 '결론을 만들어 낸' 신태용 감독에게 이리도 빨리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히딩크 다음에 찾은 감독은 누구인가

히딩크 감독의 위대한 업적을 폄하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또한 신태용 감독의 지난 2연전을 옹호하고자 쓰는 글도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최근 격하게 토의하고 있는 내용의 핵심은 '한국 축구 대표팀'에 관한 미래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크게 세 가지가 결합된 집단이다. 먼저 '한국'은 한국 축구를 응원하거나 지켜보는 모든 이들을 뜻한다. '축구'는 축구에 관련된 모든 종사자 및 관계자를 의미한다. '대표'는 한국 축구를 대표할 만한 객관적인 인물들. 즉, 대표팀 선수 및 코치진 이하 실무진 등을 말하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세 가지 그룹이 합쳐진 산물이기에 한국 축구 대표팀의 문제에 대해서 반성할 때는 한 집단의 반성이 아니라 모든 집단의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축구'와 '대표'에 관련된 이들에게만 비판의 화살을 쏘아댄다.

그들이 한국 축구를 이끄는 주도적인 주체이고 실질적인 당사자이기에 합당하고 꾸준한 비판이 이어져야 함은 사실이다. 지속적인 문제 제시에도 쉽게 변하지 않는 '축구'와 '대표'의 당사자들에게 필자 본인도 답답함을 느낀다.

그런데 한국 축구 대표팀의 가장 큰 주체인 '한국'은 과연 정당한 비판을 받고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 축구 대표팀의 존재 이유는 '한국'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팬들이 지지하지 않으면 대표팀은 의미가 없는 집단이 된다.

'한국'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해서 그들이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 흔히 말하는 '한국'의 대다수의 팬들은 '축구'와 '대표'들의 근시안적 문제 해결 방식을 강하게 비판해왔다. 특히 최근에 조광래-최강희-홍명보로 이어지는 감독 선임 문제에 있어서 당장의 문제만 해결하려는 대한축구협회의 안일한 결정에 대해 심한 불만감을 드러냈다.

문제는 '한국'을 지지하는 대다수의 팬들의 행보도 그들이 비판하는 대한축구협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이 슈틸리케 감독이 만든 일련의 사태를 해결할 해결사로서 팬들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언론이 신태용을 꼽았다.

당시 그들은 말했다.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신태용호가 혹여나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더라도 비난하지 말자고. 일부 팬들의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표면에 두드러지게 노출된 여론의 목소리를 그러했다.

이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이란과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두자 모든 언론과 팬들은 신태용호에게 등을 돌렸다. 최근 상대 전적에서 한국에게 4연패를 선사한 이란과 홈에서 한국에게 30년 동안 패하지 않은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언론과 팬들은 승리를 요구했다. 그들이 비판하던 근시안적 태도에서 정작 그들은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필자가 가장 궁금한 것은 만일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는데 국민들이 원하는 성적을 올리지 못했을 경우다. 히딩크 감독이 실제로 부임한다면 좋은 성적을 거두길 진심으로 바라지만, 현재 히딩크 감독이 훌륭한 성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보장은 전혀 없다. 그가 실패했을 때 그가 창조해낸 2002년의 아름다운 추억도 폄하될까 두렵다. 지금까지 언론과 팬들이 보여준 모습에 근거하면 합당한 의심이다.

그가 시대를 대표하는 명장인 것은 맞지만 한국 축구 팬들이 2002 월드컵 히딩크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쉽다. '축구'와 '대표'에 관련된 이들이 2002년의 신화에 아직도 젖어있다고 비판하면서, 2002 신화의 핵심인 히딩크 감독을 찾는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

과거의 큰 성공을 일궈낸 감독이기에 지금도 성공할 것이란 막연한 추측에 따르면 언론과 팬들은 신태용이 아닌 허정무를 슈틸리케의 후임으로 택했어야 한다. '이미지'가 좋지 않은 허정무 감독은 '적폐'로 치부하고 '이미지'가 좋은 히딩크 감독은 '신적인 존재'로 포장하는 모습은 우리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항상 미래를 찾으면서 과거 인물의 향수에 젖은 팬들. 팬들이 과거만을 추억하게 만든 축구 관계자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고민해야 할 숙제다. 필자 또한 한국 축구의 지지자로서 깊이 반성하고 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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