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홍준표 식칼 전달 사건' 문제삼지 않았나?

[인터뷰] 여운환,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를 쏘다 1부-③

검토 완료

구영식(ysku)글·사진소중한(extremes88)등록 2018.01.08 14:36

여운환 아름다운컨벤션 대표가 지난 10월 25일 광주의 한 호텔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소중한


'조폭 두목'과 '조폭 자금책 및 두목의 고문급 간부'

- '공판 전 증거보전신청'이란 절차 자체가 위헌이라고?
"형사소송법 제221조 2항에 공판 전에 하는 증거보존절차가 있어. 그것에 의해 증거보전신청을 하는 것은 검사만을 위한 거야. 증거보전하려면 검사도 있어야 하고 피고 대리인도 있어야 해. 그래서 증거가 합당한지를 판사 앞에서 따져야 하는데 한쪽(검사)만 와서 판사가 공증하듯이 도장 찍는 것은 위헌이라는 거여. 엄연히 형사소송법 제184조에 따라 공판기일 전에 양쪽에서 다 나와서 판사 앞에서 재판해야 한다는 조항이야.

홍준표가 이렇게까지 악착같이 사활을 걸고 했는데 (공소사실) 전체가 다 무죄가 났어. 그럼 나를 뭣으로 유죄 판결을 했냐 하면, '자금책 및 두목의 고문급 간부'야. 그럼 자금책은 뭐고, 두목의 고문급 간부는 뭐냐?

재판부가 박주화에게 '여운환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냐?'고 물으니까 이런 말이 나왔어. '여운환이 단합대회 때 50만 원의 찬조금을 내놨고, 두목 김길용에게 뭔 사건이 났을 때 피했으면 좋겠다는 전갈을 김길용에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내용이 검찰진술조서에 써 있다는 것 하나로 내가 '자금책 및 고문급 간부'라는 거야. 그것도 나중에 정식 증거보존절차에 따라 박주화의 진술이 허위였다는 것이 다 밝혀졌어."

- 두목 김길용에게 자문해줬다는 것인가?
"내가 법원에 대고 내가 언제, 어떤 축구시합을 하는 데 돈 50만원 줬다는 거냐, 증거를 대봐라고 했어. 그렇다면 법원도 박주화를 불러 이것을 따져 물어줘야 하는 거 아녀? 글고 뭔 사건 때 김길용에게 내가 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거냐? 내가 두목의 고문급 간부라면 김길용은 두목인데 김길용은 이미 부두목으로 재판을 받았어. 그러니 국제PJ파에는 두목이 없어져가긴 했어. 처음에 두목이라고 해서 재판받은 놈을 탄원서 하나로 부두목으로 만들어서 그렇게 된 거여. 지금까지도 김길용은 두목으로 활동하고 있어. 이것은 경찰 관리대장에 다 나와 있어.

어떻게 보면 나는 완전히 엉터리 재판을 받은 거야. 김길용이 1986년인가 국제PJ파를 결성했다고 하는데, 당시 내가 운영하는 호텔 오락실을 보호받는 대가로 축구시합 찬조금을 내고, 김길용에게 사건이 나면 피하라고 얘기해주었다는 거다. 말하자면 이거는 폭력배 최고의 두목에서 완전히 호구로 나를 판결한 거야. 지 점빵 보호받으려고 폭력단체에 찬조금을 지원했다는 거 아녀? 누가 월정금을 내주고 폭력단체에 가입하나? 게다가 나는 호텔 오락실을 1991년도에야 했어. 그렇게 엉터리 판결로 끝난 거여! 생기지도 않았던 호텔을 보호받는 대가로...."

- 백제관광호텔 오락실을 말하는 건가?
"그건 목포에 있는 거고. 광주 백운동에 있었던 국제관광호텔. 거기 오락실을 나와 호텔측이 각각 50%의 지분을 갖고 있었어. 운영은 호텔에서 하고."

"조폭 두목에서 깡패에게 돈 댄 놈으로 만들어 버렸어"

- 백제관광호텔은 본인이 소유한 것이고, 국제관광호텔은 지분투자만 한 것인가?
"국제관광호텔에는 50%의 지분을 투자하고 나는 배당만 받았어. 내가 운영하지도 않아서 폭력단체의 보호를 받을 이유도 없어. 광주 지리를 알겠지만 국제PJ파의 활동구역은 충장로 1, 2가야. 무등극장을 무대로 했다고. 국제관광호텔은 백운동에 있어. 충장로에서 5km도 더 떨어져 있어. 대동고 밑에 있는 호텔이 국제관광호텔이야. 그럼 거기는 뭐 깡패들이 없다요? 이런 엉터리 재판을 해부렀어. 검찰 로비에 의해서 말이여. 그때는 검사가 맘만 먹으면 판사를 하루에 15번도 만날 때여. 지금이야 허가받고 만나야 한다지만.

홍준표는 1심에서부터 지가 기소했던 거 다 무죄받았다는 거 누구보다 잘 알아. 그러니 홍준표는 사면초가이고, '네가 무죄받으면 나는 옷 벗을란다' 했는데 할수록 불리한 것만 나오니까 홍준표가 노심초사하고, 지 입으로도 사면초가라고 얘기했어. 홍준표가 이런 우악스러운 짓을 했어. 근데 왜 했냐? 처음에는 나를 혼내야겠다는 감정에서 했어. 그러다가 (조폭 두목을 인정받지 못하니까) 내가 하는 사업 보호받으려고 법원에다 로비해 깡패에게 돈 댄 놈이라고 만들어 부렀어. 한마디로 조폭 두목에서 호구가 된 거여. 

김길용이가 어떤 애냐? 나이는 나보다 5살, 6살 후배여. 옛날에는 6개월 차이 갖고도 형동생을 따졌어. 그러면 내가 대선배야. 내가 돌아다닐 때 김길용이는 막둥이었어. 그러고 중간에 후배들이 단계별로 여러 명이 있어. 학교만 해도 1년 차이가 크듯 사회도 마찬가지잖아. 그 애는 5살, 6살 차이나는 후배여. 중간에 있던 후배들은 다 마음잡고 살았어. 애만 그때까지도 마음을 못잡고. 글고 지가 데리고 있는 후배들은 오로지 지 후배들이여. 우리랑 전혀 상관없는. 그런데 홍준표가 감정 하나로 나한테 파렴치한 짓을 했어.

난 홍준표가 제기한 공소사실에 모두 무죄를 받았어. 이것은 본인도 너무 잘 알 거야. 그런데도 자기가 제기한 공소사실대로 내가 호남 최대폭력조직인 국제PJ파의 두목처럼 판결난 것 같이 얘기하고 다녔어. 나를 활용해 모래시계 검사로 조작해서 대한민국에서 국가훈장보다 더 큰 것을 만들어냈다. 자기도 속(양심)이 있으니 너무나 잘 알 것 아닌가? 말 그대로 이것은 팩트니까.

난 20여 년 동안 틈틈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 억울함을 주장했어. 심지어 2014년도에 책도 냈어. 책을 내면서 홍준표에게 공개서한을 보냈어. '당신도 책을 냈고, 나도 인자 책을 썼으니, 사법부의 판단은 끝난지만 당신과 나의 양심의 진실은 안 끝났으니 공개토론 한번 하자'고. 그 편지에 답이 없어서 책하고 서한을 각 언론사와 방송사 편집국장과 보도국장, 국회의원 299명에게 모두 보냈어. 그런데 하필 책 나온 날이 4월 16일이야. 느닷없이 세월호 사건이 터져분 거야. 결국 이것을 밝히고자 했던 내 마음과 뜻이 좌절할 수밖에 없었어. 내가 홍준표한테 도지사실로 두 번이나 전화했어."

"경찰, 1996년부터 2014년까지 나를 조폭으로 관리했다"

- 홍준표가 전화를 받았나?
"안 받더라고. 비서가 받아서 전해준다 하더니 연락도 없고. 집사람의 반대가 너무나 컸어. 거대한 홍준표의 횡포를 봤기 때문에 이제 조용히 애들 키우면서 살자고. 울분을 참지 못하면 나만 상처받고, 혹시라도 병을 얻을지도 모른다고. 자기를 봐서라도 참으라고. 근데 요즘 홍준표의 행태를 보면 정말 잘못됐어. 너무 파렴치하고, 거짓말과 사기로 얼룩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진실을 밝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홍준표가 지난 대선 때 전 서울 당사에서 회의하면서 '내가 광주에서 1년 3개월 근무하면서 이런저런 일이 많이 있었는데 저하고 풀지 못했던 사람이 한 분 있다'고 해댔어. 호칭을 여아무개씨라고 했다가 여 회장이라고도 하고. '이 분하고만 내가 풀지 못했는데, 기회가 있으면 이분하고 풀고 싶다. 이 분도 나와 풀고 나면 나를 지지할 것이다.' 내가 그 소리를 했다는 것을 전해듣고 '역시 당신은 지금도 정말 나쁜 사람이구나' 생각했어. 자기한테 당한 사람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지. 나한테 정중하게 진심으로 사과 한마디 하면 되는데.

나와 가족들 고통이 너무 컸거든. 연좌제 고통을 받아왔어. 홍준표가 유명해지니까 나도 유명세를 타고. 자기는 모래시계 검사고, 나는 그 (조폭 두목) 모델이라고 무대 위에 올려놓고 흔들어대고. 그런 식으로 만들어놓으니 공무원이든 수사기관이든 나와는 만날 수도 없고 식사 한번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거야. 옛날로 치자면 나를 간첩쯤으로 만들어놓은 셈이잖아. 그 당시 조직폭력으로 넣으면 간첩이나 다름없었어. 누구도 비호할 수가 없었던 사회 분위기였으니까..

홍준표는 그때도 나한테 '나는 정치에 뜻이 있다'고 그랬어. 자기는 내 사건을 엄청난 업적으로 만들어서 서울로 입성하고, 서울에 입성해서 나한테 했던 것 그대로 해서 박철언 사건을 만들어서 대한민국 뉴스메이커로 승승장구하고. 게다가 당 대표를 두 번씩이나 하고 대선후보까지 됐지 않나? 하지만 우리 가족이나 저는 피눈물 났어.

나는 20여 년 간 사찰을 받았다. 조폭 두목이라고. 계속 경찰이 내 동향을 체크해서 동향보고서를 쓰더라고. 내가 아들만 셋인데, 애들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내가 사돈들에게 어떻게 설득하고 해명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 결국 2014년 8월에 광주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에 제소해버렸어. '나를 뭣 때문에 사찰하냐? 허울 좋게 동향보고한답시고 뒷조사하냐?'고. 경찰이 사찰하고 동향보고한 것은 다 인정했어."

- 출소한 다음부터 동향보고했다는 건가?
"내가 1996년에 출소했지."

- 그럼 그때부터 2014년까지 동향보고를 했다는 건가?
"그렇지."

- 경찰에서 관리하는 조폭 명단에 '여운환'은 없었을텐데.
"원래 나는 리스트에 없었는데 홍준표 때문에 리스트에 올라갔어. 그 전에는 리스트에 없었어. 만약 있었다면 (국제PJ파 두목으로 활동했다는) 증거가 되지 않았겠나? 연좌제 고통에 한이 맺힌다. 경찰도 다 인정했는데 국가인권위에서 2년 동안 가지고 있더니 나한테 통보도 없이 기각결정을 했더라고. 그때 언론에 보도되니까 경찰에서 '관리상 동향보고했다'고 인정하더라고.

그리고 홍준표가 맨날 서민처럼 얘기하잖아. 하지만 얼마나 양면성이 있는 사람인 줄 아나? 당시 광주에서 우리가 살았던 우산동 현대아파트가 광주에서 최초로 들어선 제일 큰 대형 아파트이야. 홍준표가 거기 아파트 55평에 살았어. 그때 분위기는 어떤 분위기냐? 부장검사, 차장 이런 사람들이 24평, 27평에 살 때야. 물론 관사가 있었겠지만 검사장 관사도 55평이 안됐을 거야 그런데 홍준표는 55평에 살면서 나중에 파출부까지 둔 사람이야. 파출부가 왔다갔다 했는지 먹고자고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홍준표가 사람들을 자기 집에 데리고 가는 걸 좋아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홍준표 집에 갔다온 사람이 더러 있는데 그 사람들이 그래. '그 사람 사람도 아니대. 자기 마누라를 하인으로 취급하듯 대놓고 쌍욕을 하더라고. 또 은행에 근무하던 형편없는 사람을 자기가 구제해줬다고 큰소리치면서 말이야."

여운환 아름다운컨벤션 대표가 지난 10얼 25일 광주의 한 호텔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소중한


"식칼 전달 사건, 검찰에서도 법정에서 언급된 적 없어"

- 홍준표 부인이 전북의 지역유지 딸로 알고 있다.
"여고만 나왔다는 이유로 그랬나 봐. 자기가 자격지심이 있어서 그랬나 봐. '이년, 저년'은 기본이야. 그런 베이스가 깔려 있었으니까 지난 대선 때 '여자는 설거지나 해야 한다'고 했지. 성질이 어마어마하게 급한 사람이라고."

- '울트라 마초'라는 평가도 있다.
"그 사람이 무슨 서민이나? 자기 맘대로 위에 있는 사람들 눈치도 한 번 안 보고. 그때는 차도 지 상관보다 좋은 차는 못탔다고. 부잣집 아들이고 부잣집 사위여도 그랬어. 그런 시기였는데 본인은 아무 구별도 없이 지맘대로 해부렀으니까."

- 홍준표는 자기는 5층 전세로 살았고, 여운환 사장은 15층 60평 아파트를 자가로 살았다고 하면서 엄청나게 대비시키던데.
"내가 60평짜리에 살든 70평짜리에 살든…. 내가 범죄꾼도 아닌데 남이 저보다 잘 산다해서 배 아파라 하고, 그렇게 산다고 끌어내려야겠다고 하는 발상 자체가 문제 아녀? 내가 조폭이었다면 누구와 시비가 있었거나 누구를 뺨 한 대라도 때린 사소한 사건기록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녀? 그런데 이만한 것도 하나 없이."

- 재판받을 때 범죄경력을 조회했을 거 아닌가?
"1974년에 딱 한 번이야. 그때 내가 한 달 구속된 경험이 있어. 그리고 내 목표는 집사람하고 결혼하는 거였으니까 결혼하기 위해서 마음을 잡아분 거여."

- 이번 인터뷰는 전문을 그대로 정리해서 여러 개로 쪼개서 내보낼 계획이다.
"내가 두 가지 정도 덧붙일게. 홍준표가 내 사건을 어떻게 조작했냐 하면, 자기가 나를 수사하기 시작하니까 내가 식칼을 보내서 위협했다고 문종정 지검장에게 보고했다고. 이것은 광주 지검장이 울분을 터트린 단초가 됐어. 나는 얼마나 흉악한 놈이 돼버렸냐고? 대한민국 검사가 수사하려는데 조폭 두목이 협박용 식칼을 보냈다고 하니까 그 이상의 흉측한 일이 어디 있겠나? 나를 이렇게 만들어부렀어.

홍준표가 이 사건을 대검과 법무부에도 허위보고해. 검찰 백서에도 나와 부러. 그렇다면 내 사건의 가장 중요한 증거이고, 어마어마한 일 아닌가? 근데 검찰에서 그 칼을 나한테 단 한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재판 중에도 물어본 적이 없어. 증거도 없고. 철저히 꾸며서 만든 이야기야. 이렇게 나쁜 사람이여. 정말 사실이면 증거 내놓고 재판에서 한 마디라도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이상의 증거가 어딨겠어? 허위보고해서 검사장을 자기 편으로 만든 거여."

- 그렇게 되면 식칼이 검찰권을 위협하는 것으로 됐을 테니 검찰에서 공분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겠지.
"그렇게 분위기를 만들었어. 그것은 선물로 잘못 배달됐다가 돌아온 지도 꽤 오래된 일이고.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홍준표가 순간적으로 만들어분 거야. 검찰청에서 쌍둥이 레이저 헨켈 세트를 받은 사람이 여러 분이었어. 어쩔 수 없이 그 사실을 말했었어. 그랬더니 홍준표가 거짓말했다는 것이 드러나자 문정수 지검장이 '그 문제는 두 번 다시 말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어. 그것이 사실이었으면 검찰 진술이나 재판 과정에서 한마디라도 나왔어야 하는데 한 번도 안나왔어."

- 홍준표는 깡패의 그런 위협 때문에 국회의원 됐다고 했다.
"대한민국 공권력이 어떤데 그런 위협을 받았다면 당연히 수사해서 응분의 벌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 진짜 그랬다면 입건할 수 있었겠지.
"당연하지. 구속을 해도 백 번도 더 구속했을 일이제. '석궁교수'맨키로 그런 일이 발생했으면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켜불제. 근데 입건도 안되고 재판과정에서 거론도 안됐어. 그런 것을 홍준표 혼자 만들었어."

- 사실이면 검찰에서 충분히 활용할 사안이었다.
"(사실이면) 누구도 개입해서 변명해줄 수 없는 일 아닌가?"

- 결국 홍준표는 언론플레이하고 열매만 따먹은 셈이다.
"그렇지. 언론플레이하고 열매만 따불었제."

- 호텔로 이동해서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하자.
"그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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