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엘리베이터 노동자들이 노조 만든 이유

용역 계약 해지에 "국회가 직접고용하라"... '비정규직 제로' 정부안에도 국회는 "아직"

검토 완료

김성욱(etshiro)등록 2017.12.18 16:13

지난 10월 24일, 김영선 국회승강기노동조합 위원장이 국회 의원회관 10층 기계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김성욱


정부는 지난달 25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밝혔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는 대선 때부터 줄곧 이어진 문재인 정부의 대표 공약이었다. 그러나,

"우린 워낙에 사람이 적어서..."

국회 승강기 관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너무 먼 얘기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근무하는 승강기 용역 노동자는 관리자를 포함해 총 20명. 이중 직급이 없는 14명의 일반 노동자는 3~5교대로 밤새 당직을 서가며 국회 본청·의원회관·도서관·의정관의 승강기 안전을 관리하고 있다. 이들의 급여는 당직 수당을 포함해 한 달에 162만원 정도.

지난 9월 28일, 이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소속된 '대명엘리베이터'의 용역 계약이 사측의 문제로 급작스레 파기됨에 따라 국회 쪽의 직접고용을 기대했으나 사실상 무산됐기 때문이다.

14명의 일반 노동자들은 모두 노조에 가입했다. 위원장을 맡은 김영선씨는 "아직 이런 것들이 좀 어색하다"며 전화를 받았다.

"관리자들이 소통이 잘 되지 않고 일방적이라 평소에 우리도 노조가 필요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저희가 하도 인원이 적다 보니... 근데 이번에 정규직 전환이 안 된다고 해서 정말 안되겠다 싶었어요."

통화가 답답했는지 그가 "언제 한번 와보실래요?"란다. 지난달 24일, 그를 의원회관 10층 꼭대기 기계실에서 만났다.

일방적인 통보

국회 승강기 관리 노동자들의 급여명세서. 당직 수당을 포함해 162만원을 받고 있다. ⓒ 김성욱


스익- 췩. 스익- 췩.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승강기 작동 소리에 맞춰 김영선 국회승강기노동조합 위원장이 상황을 설명했다. 기계실에는 탈의 공간이 마땅치 않아 노동자들이 들여다 놓은 캐비닛과 옷가지가 눈에 띄었다.

"드디어 정규직 되는 줄 알고 다들 기대했었는데..."

당초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국회 사무처와 승강기 유지보수 하청 용역 계약을 맺은 대명엘리베이터는 지난 8월 계약 유지에 필요한 직접생산 확인증명서가 취소되면서 오는 12월 말 돌연 계약이 끝나게 됐다. 노동자들은 이후 일부 관리자들로부터 용역이 아니라 직접 고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길 들었지만 국회 사무처는 이들에게 "직접 고용에 대한 준비가 미비하고 타 시설관리 용역 직원들과의 형평성에 맞지 않다"며 국회 내 다른 용역 업체 계약이 끝나는 2020년까지는 직접 고용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일방적인 통보였어요. 협의는커녕 우린 이게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어요."

김 위원장은 이 같은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깡그리 무시됐다고 했다. 그는 대명엘리베이터 계약 해지로 내년부터 직접 고용될 지 모른다는 소식조차 다른 시설관리 용역 노동자들로부터 처음 전해 들었다고 했다.

"황당했죠. 관리소장에게 당장 물어봤더니 소장은 이미 알고 있었고, 저희들한테는 숨겨왔더라고요. 어떤 간부들은 그제서야 직접 고용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고 얘기하고..."

당시만 해도 9월 초. 아직 노조를 결성하기 전이었다.

관리소장 개인 카톡으로 이뤄진 직접 고용 찬·반 투표

지난 9월 6일, 국회 승강기 관리 노동자들에게 대명엘리베이터 측이 직접고용 찬반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관리소장 개인 카톡으로 직접고용에 대한 찬반의사를 물어 노동자들은 공정하지 못하다며 반발했다. 김영선 노조위원장이 공개한 카톡들. ⓒ 김성욱


이범성 대명엘리베이터 국회 관리소장은 노동자들의 항의에 뒤늦게 직접 고용에 대한 찬·반 의견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방식이 문제였다. 김 위원장은 "어이 없었다"며 노조원들이 보낸 9월 6일자 카톡 사진 여럿을 보여주었다. 직접 고용에 부정적이던 관리소장이 자신의 개인 카톡으로 노동자들의 찬·반 의사를 보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소장 쪽이 직접 고용 안 좋아하는 걸 뻔히 아는데 어떻게 눈치를 안 보겠어요."

이 일을 겪으며 그는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럼에도 투표 결과는 직접 고용 찬성 13표, 반대 7표로 찬성이 훨씬 앞섰지만 정작 의사결정 과정에는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이 불공정한 투표마저도 절차상의 요식 행위에 불과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김 위원장은 일부 노조원들이 카톡 조사 전 관리소장으로부터 회유성 발언을 듣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익명을 요구한 승강기 노동자 A씨도 추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소장이 직접 고용으로 전환되면 60세가 얼마 안 남은 본인 같은 경우엔 정년이 줄어들 수 있다는 식으로 설명했었다"고 전했다. 간부인 B주임은 노동자들에게 "(국회)설비과에서는 잠정적으로 정년 60세 생각"이라는 문구와 함께 카톡 조사 공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반면 이 관리소장과 국회 사무처 측은 의혹을 부인했다. 이 소장은 "회유도, 강압도 없었다"면서 "카톡 의견 수렴도 공식적인 결정 절차가 아니라 그저 대략적인 흐름을 들어보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라고 했다. 국회 사무처 설비과 측도 "의견 수렴 과정에서 강압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는 입장이었다.

"국회 현장 제일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문제인데..."

지난 10월 24일, 김영선 국회승강기노동조합 위원장이 국회 의원회관 10층 기계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김성욱


꼬여온 상황을 죽 설명하던 김 위원장 얼굴엔 시름이 가득했다.

"사실 매년 비정규직으로 계약하고 백 육십 몇 만원씩 받아서 가정을 이끌거나 하긴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에요. 물론 국회 쪽에서는 당장 직접 고용 안 되는 게 무슨 큰 문제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저희들 같은 용역 비정규직 입장에선 고용된다는 보장도 없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게 참..."

그는 노조가 원하는 것은 '국회의 직접 고용'이라고, 아주 간단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노조의 지속적인 요구에 국회 사무처 측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직접 고용 전환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직접 고용에 대한 검토와 함께 새로운 용역 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준비도 병행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국회 사무처와 대명엘리베이터의 용역 계약 만료는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제 설명이 좀 매끄럽지도 않고 정리도 잘 안 되는데... 근데 사실 이런 게 저희 근로자들의 실제 모습 아니겠습니까. 저희들이야 뭐 말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기계실 소음이 익숙해질 무렵,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마지막 심경을 전했다.

"국회는 이미 8월에 이 상황을 알았는데 아직까지도... 다른 곳도 아니고 국회잖아요. 국회란 곳이 국민들을 위해 일하는 최고 기관 아닙니까. 300명의 대표가 국민들 위해 상주해서 일하는 곳인데 국회 현장 제일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문제라면 좀 더 성의를 갖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게 아닙니까. 그게 국민을 위한 국회의 역할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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