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를 닮은 사회통념에 대처하는 요령

내가 무너지지 않는 게 우선, 세상은 천천히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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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호(cirang)등록 2017.11.15 16:12
주말농장. 이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나는 막연히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다. 전원생활, 흙냄새, 녹음. 들판, 후한 인심 따위의 말이 연상된다. 거기에만 가면 금방이라도 힐링을 하고 넉넉한 시골인심을 누릴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주말 농장의 해질녘에 벌레만큼 많은 게 좀도둑이다. 차분하게 한 쪽 팔에 빈 바구니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남의 밭에서 작물쇼핑을 하는 이를 많이 봤다. 그뿐이랴. 남의 땅을 헤집고 자신의 모종과 씨앗을 심는 얌체도 있었다.

왜 이러는 걸까? 남의 작물을 임의로 가져가는 건 엄연히 절도인데 그걸 몰라서 그런 걸까? 아니다. 그들도 도시에서라면 남의 물건은 쳐다보지 않는 평범한 시민이다. 마트 진열대에서 만두 한 팩, 고추 한 봉지를 슬쩍하면서 이게 진정한 나눔이라고 외치는 얼간이가 아니다. 농촌은 인심이 후해야 한다는 통념을 붙들고 그것을 확장시켜 주말농장에서 제멋대로 응용해버린 자들이다. 아름다운 서리의 추억을 잘못된 장소에서 되살려버린 거다. 물론 의외로 전문털이범일 수도 있겠지만 그 부분은 경찰에 맡기고 싶다.

통념의 힘은 강하다. 뿌리가 깊고 동조세력이 많다. 다만 법으로 강제하면 힘을 뺄 수는 있다. 즉, 오이 한 개를 훔친 손목에 수갑을 채우면 된다. 하지만 오이 한 개 훔쳤다고 경찰을 부른다? 현실성은 제로에 가깝다. 현장에서 발각된다고 해도 큰소리 몇 번 오가고 끝나기 마련이다. 오이 한 개 적선했다 치고 유야무야 넘어가기가 쉽다. 오이 한 개에 절도죄를 고심한 스스로를 쫀쫀하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회통념이란 미세먼지와 같다. 분명히 존재하고 내 몸을 병들게 하지만 그것의 원인이나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 그래서 늘 당하는 건 우리다. 또 늘 괴롭히는 것도 우리다.

사내 강간을 두고 벌이는 말잔치가 지저분하다. 여성은 피해자라고 주장하지만 술을 마시고도 남자와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혹은 집에 남자를 들어오게 했다는 이유로 강간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튀어나온다. 처음이 아니다. 전후맥락 다 자르고 술과 밤, 여자가 섞이면 어디서고 꽃뱀이 만들어진다. 진실여부를 떠나 그 조건자체로 여성은 궁지에 몰린다. 남자도 성별만 다를 뿐 술과, 밤이 보태졌지만 제비가 되지 않는다. 그게 통념이다. 지독히도 오래된 남성 중심의 잘못된 의식이다. 하지만 통념의 방패 뒤에 웅크리고 아무말이나 내뱉는 이들을 응징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통념은 임금님도 못한다는 가난도 없애버린다. 신문에 1만원 최저임금이 실현되면 결혼할 거라는 연인의 이야기가 실렸다. 과장은 있겠으나 시절의 아픔을 공감한다면 짠하기가 쉬운 캐릭터들이었다. 헌데 기사 중에 연인이 깨진 아이폰을 그대로 쓰고 있다는 걸 두고 딴죽을 거는 축들이 있다. 아이폰씩이나 쓰면서 가난을 위장한다는 거다. 이건 김치에 흰쌀밥으로 삼시세끼 먹으니 살만하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아이폰은 부의 상징이고 그걸 가졌으면 빈자가 되지 못한다는 통념이 징그럽다. 스마트폰이 없다면 세상에서 영영 따돌려 질 것인데 말이다. 매번 공중전화에 달려가야 가난을 증명할 수 있다는 건가? 운동선수라면 응당 라면만 먹고도 1등을 해야 대견하다는 식의 가난의식이 아직도 이어져 내려온 탓이리라. 무려 86년에 대중화된 건데 그 통념 아직도 생생하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잘못된 사회통념이 누군가를 위협하고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데 부술 딱히 방법은 없다. 어서 각성하고 새 시대로 함께 나아가자고 해 봤자 말잔치로 끝이다. 게시판 감시단을 조직해서 반대 댓글을 달아준다고 해도 크게 상황이 바뀌지는 않는다.

나는 이 잘못된 사회통념들을 지독한 미세먼지로 본다. 개인이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 마스크를 쓰고 창문을 닫고 공기 좋은 곳으로 떠나는 수가 제일이다. 일단 피하자. 요령껏 피하자.
주말농장을 시작한다면 당장에 울타리를 치고 경계에 퇴비를 뿌려 영역표시를 확실히 하자. 절도에 대한 경고문을 걸어두는 것도 좋겠다. 회식을 하겠거든 장소, 끝날 시간을 예상해 가족들에게 구조를 예약해두자. 10시가 넘으면 남녀7세부동석을 실천하고 남녀로 팀을 나눠 귀가하자. 시절의 가난과 그 불합리함을 호소하겠거든 10년 된 스마트폰이라도 숨기고 20년 전에 사서 30만 킬로미터를 탄 차라도 열쇠를 보이지 말자.

내가 왜 이래야 하지? 난 아무 잘못이 없는데? 잘못한 건 사회통념의 뒤에 숨은 자들인데? 맞다. 다 옳다. 하지만 잘못된 사회통념이란 짙은 미세먼지를 돌파하는 수고를 하자면 이미 내 폐 속은 더럽혀져 있다. 온전히 수확하고 인정받고 호소하려면 휘말리지 않는 게 급선무다.

그렇게 내 것을 온전히 챙긴 다음에도 잘못된 통념을 바꿔 볼 마음이 든다면 게시판에 공을 들이기보다는 내 가족과 친구를 설득해보기를 권한다. 사회통념이 지독하게 단단하다는 것을 깨닫는 좌절의 시간이 되기도 하겠으나 분명한 진일보의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개인인 나는 상처받지 않으면서도 조금씩 세상이 바뀌어 가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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