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결혼기념일에 있었던 일

사는 것의 즐거움은 사소한 배려에서

검토 완료

윤창영(cyyoun)등록 2018.01.22 11:08
어느 결혼기념일에 있었던 일

이제껏 가족의 기념일은 잊은 적이 없었는데, 새롭게 일을 시작하여 정신이 없어선지 아내와 나 모두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렸다. 전날 사소한 일로 다투어서 아침도 먹지 않고 출근을 했다. 싸우고 나면 항상 누가 먼저 화해 전화를 할 것인가로 자존심 싸움을 하며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데, 결국 내가 먼저 전화를 했다. 그런데 아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단단히 토라진 모양이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전화기가 울렸고 전화기를 들자마자 아내의 고음이 들려왔다.
"오늘 우리 결혼기념일인줄 알아요, 몰라요?"
"아! 그렇구나."
"포항에 조카가 전화가 와서 나도 결혼기념일인줄 알았어요."
"...... 밥 먹었어?"
"아니, 밥이 넘어가요?"
"그럼 밥 먹어."
하며 전화를 끊었다. 다시 수화기가 울렸다.
"결혼기념일인데, 밥 먹자 소리도 안 해요?"
"나, 그럴 기분 아니니까 전화 끊어."
전화를 끊고 나서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같이 밥 먹자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세시쯤 되어서 아내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결혼기념일만 아니면 나도 찾아오지 않으려 했는데..."
아내의 얼굴을 보니 화가 풀렸고 내가 웃자 아내도 웃어 버렸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싸움이 끝났다.
조금 있으니 전화벨이 울렸다. 큰 아들이었다.
"아빠, 오늘 결혼기념일이죠? 힘내세요."
'아니, 이 녀석이' 어떻게 알았지?' 생각하며
"그래. 고맙다."

라고 말했는데 가슴이 부듯해져 왔다. 항상 철이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새 부모를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랐다는 사실이, 부부싸움으로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든 우리 부부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날 저녁 일이 늦게 끝나서 밤 아홉 시가 넘어서 집으로 향했다. 결혼기념일이고 하니 외식이나 하자 싶어 아파트 밑에서 전화를 했다.
"성원아, 엄마 아빠 밑에 있으니까 성호랑 내려와라 맛있는 것 사줄 게."
"아빠, 일단 올라오세요."
"왜? 그냥 내려와"
"아니에요, 일단 올라오세요."
순간, 직감적으로 이 녀석들이 무슨 일을 꾸며놓은 것 같았다. 아내와 함께 아파트로 올라갔다. 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다. 형형색색의 초에 붙은 불들이 형광등을 끈 집안에 가득했다. 요구르트 병에 꽂아 타오르는 불꽃놀이에 사방으로 빛이 튀고 있었고, 아이들 양 손에 든 불꽃놀이에 거실은 온통 빛으로 넘쳐 났다.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축하해요."
이제 12살, 9살 된 아이들인데 이렇게 소박하고 화려한 축제를 연출할 줄이야. 아내와 나의 얼굴에도 빛이 났고 아이들의 눈망울에도 빛이 가득 들어 있었다.
" 엄마, 아빠 선물. "
아내와 나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아이들을 힘껏 안아 주었다. 우리의 귀한 보석들
"성원아, 성호야 고맙다. 그리고 많이 많이 사랑한다."
'이런 일을 꾸며놓고 하루 종일 엄마 아빠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엄마 아빠가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얼마나 이 순간을 기대했을까'라는 생각에 또 한번 울컥하며 아이들이 고맙게 느껴졌고, 사는 것의 즐거움이란 절대 돈으로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에게 배려하는 작은 마음임을 가슴 속 깊이 새기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결혼기념일은 너무 아름답게 장식되었고 우리 가족은 손을 잡고
'구공탄 구이집'으로 향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