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파라치'에 무조건 입마개라니, 전 반대합니다

[주장] 애견인이 납득할 수 없는 반려견 안전관리 대책, 이대로 괜찮은가요?

등록 2018.01.23 15:52수정 2018.01.2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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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에서 반려견 안전관리 대책이 발표됐다. ⓒ pixabay


최근 정부에서 반려견 안전관리 대책을 발표했다. 주된 내용은 공공장소에서 반려견의 목줄은 2m 이내로 유지해야 하며, 대변 미처리 시 혹은 맹견 5종의 입마개 미착용 시 범칙금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신고 포상금 제도, 일명 '펫파라치'(속칭 '개파라치') 제도도 시행된다. 또한 체고 40cm 이상인 개의 경우 외출 시 의무적으로 입마개 착용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다만 반려견 평가 시험을 통과한 경우, 예외적으로 입마개 착용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체고 40cm와 입마개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약 10년 전과 비교해 본다면 10년 동안 반려견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 듯했다. 도둑고양이라는 단어가 길고양이로 대체되고, 반려견 놀이터가 생겨나고, 반려동물산업박람회는 점점 규모가 커졌으며 그 수도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한국에서는 소형견을 많이 키우지만 유럽에는 대형견이 많다. 나는 레스토랑에 함께 입장하는 그들의 반려견을 보면서 한국도 곧 이처럼 동물친화적인 문화에 익숙해지지 않을까, 하고 꿈꿨다.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과 동반 문화가 점차 좋은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작년 한 해 뜨거웠던 반려견 논란을 지켜보며 마음이 심란했다. 경기도에서 15kg 이상의 개에게 입마개를 필수로 착용하게 한다는 조례안이 나왔을 때에는 그 심란함이 절정에 달했다. 15kg라는 기준은 개의 공격성은 물론 개의 몸집 이외에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없는 기준인 탓이다.

천만 인구가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는데, 과연 우리는 반려동물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성숙한 반려동물 문화가 성립되는 과정에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할 때 나는 '여성 없는 여성 인권, 장애인 없는 장애인 복지'라는 표현을 주로 썼다.


경기도에서는 뒤늦게 전문가인 강형욱 훈련사를 초대해 15kg라는 기준, '입마개 의무화'라는 규제가 얼마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탁상공론이었는지 조금이나마 인정하는 듯했다. 해당 조례안은 철회되었지만 왜 법을 만드는 데 진작에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지 않았는지 몹시 궁금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의 수가 많아졌을 뿐, 우리는 반려동물을 키울 자격과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에 대해서는 아직도 시작점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스위스에서는 바닷가재를 요리할 때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반드시 기절시켜야 한다는 법이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얼마 전 체고 40cm 이상의 반려견에게는 입마개를 의무화하자는 법안이 나왔다. 체고 40cm는 말티즈, 요크셔테리어, 토이푸들과 같은 소형견을 제외한 대부분의 개가 해당되는 사이즈다. 다시 한 번 상기하건대, 덩치가 큰 개들이 공격성이 높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개통령'이라 불리는 강형욱 훈련사가 지난 1월 19일 직접 블로그에 남긴 글에 따르면 농림축산부에서 관련 규정을 논의하는 회의에 참여해 달라고 연락은 왔으나, 당장 전날에 세종시까지 와달라는 연락이라 1차 회의와 2차 회의 모두 참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강형욱 훈련사가 아니더라도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반려견 전문가들을 모아 회의를 진행했을까? 40cm 체고 기준으로 입마개 착용을 의무화하자는 제안이 나온 것을 보면 그렇게 했을지 의문이다.

더불어 강형욱 훈련사의 보듬컴퍼니에서는 반려동물의 시각적 능력을 키우고 안정적이고 편안한 산책을 시키기 위해 3m 리드줄 사용을 권장한 바 있다. 물론 3m 리드줄이 '통제 불능'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훈련받고 주기적인 산책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개라면 긴 리드줄에도 불구하고 반려인의 통제 아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반려견 안전관리 대책은 반려견의 산책을 개의 정서적, 사회적 활동으로는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 '개가 집 밖으로 나왔을 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취지에서만 개의 산책을 다루는 것이다. 2m 리드줄 규제는 사실상 대부분의 개가 산책 시 공격성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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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위협적·공격적 대상인 걸까 ⓒ pixabay


개는 위협적·공격적 대상인 걸까

지난 개물림 사건 이후, 심지어 반려동물 매체에서도 '우리 개가 혹시 사람을 물 수도 있으니 입마개를 하고 나가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펫티켓'이라고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강조한다. 그러한 분위기에 따라 반려견에게 입마개를 하지 않고 데리고 나온 견주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생기기 시작했다. 입마개 미착용에 대해 '당연한 것을 하지 않은 개념 없는 견주'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정말 모든 개에게 입마개가 필요한 걸까? '입마개를 해야 개념 견주'라는 콘텐츠를 양산하는 이들이 어떤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실제로 많은 반려인들이 입마개 착용을 '개의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사람도 마스크를 하고 뛰면 더욱 숨이 차오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체고 40cm 이상의 모든 개가 입마개를 해야 하는 세상, 그게 정말 안전하고 좋은 사회일까?

나는 15년 동안 개를 키웠다. 입마개를 한 개를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간혹 보게 되면 입질 훈련이 잘 되지 않은 아이거나 맹견이리라 짐작했다. 그런데 입마개가 '기준'이 되고, 입마개를 하지 않는 것이 '예외 조항'이 된다면 어떨까. 입마개 필수 착용은 개라는 동물을 사람을 공격하는 대상으로 여기고, 나아가 혐오의 대상으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 되리라고 나는 거의 확신한다. 이미 우리 사회의 대전제로 '개는 특별 관리 조치가 필요한 위험한 동물'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면 과연 앞으로 반려동물과의 자연스러운 공존이 가능할까?

지나친 우려인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동물권 향상을 위해 힘써온 많은 이들의 움직임이 무색해질 것도 걱정스럽다. 타당하지 않은 반려동물 규제는 장기적으로 반려동물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몇 년째 동물단체들은 동물보호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실제로 개정안에 반영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제도와 가치관 속에서 동물이 약자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체고 40cm 이상의 개가 모두 잠재적으로 사람을 공격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퍼진다면 향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물보호법의 필요성에 공감할 수 있을지, 앞으로의 개정안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작용할지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불어 펫파라치 제도의 필요성은 일부 인정하지만, 이전에도 '개에게 입마개를 씌우지 않고 산책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지나가는 여성을 폭행한 사례가 있었다. 개에 대한 인식과 문화가 충분히 성숙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펫파라치 제도는 그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모든 사람에 대한 경계와 혐오의 시선을 야기하지는 않을까? 무엇보다, 개를 데리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개를 동반하는 사람을 감시할 수 있다는 일종의 권력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개물림 사고를 미리 방지한다는 취지는 좋으나, 일부 사고 때문에 반려동물 전체를 필요 이상으로 규제하는 방안에는 동의할 수 없다. 물론 나는 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이유로 아무에게도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개를 행복하게 키우고 싶다. 개는 냄새를 맡으며 사회생활을 하고, 집 바깥으로 나와서 산책하고, 머무르는 게 아니라 뛰어야 하는 동물이다.

밖에서 산책하고 입마개 없이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개의 최소한의 견권마저 보장되지 않는다면, 동물이 사람과의 교감과 교육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본능을 누릴 수도 없는 사회라면 차라리 한국에서는 개를 키우지 않는 것이 사람과 개를 위하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마하트마 간디의 '한 나라의 위대성과 그 도덕성은 동물들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말에 나는 깊게 공감한다. 이대로라면 반려동물 문화의 성숙은커녕, 적어도 애견인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회로 퇴행할 것 같아 두렵다.
#반려견 #동물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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