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참 빠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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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영(cyyoun)등록 2018.01.24 08:45
."시간이 너무 빠르더라."

아침에 폐암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에 가는 포항 처형과 동서를 KTX 울산역까지 차에 태워주었다. 처형은 나이가 들면서 몸이 좋지 않았다. 전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하여 경과가 호전되었고, 그 이후 항상 정기적인 검진을 받아왔다. 그러다 몇 달 전 정기검진에서 폐암초기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폐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힘이 쭉 빠졌고 동서는 울컥 눈물이 났다고 한다. 다행히 서울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은 결과 아직 초기이며, 임파선까지 전이가 되지 않아서 수술을 하면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수술 날짜를 잡고 몇 주 전에 서울로 갔지만 처형이 감기가 심하게 걸려 수술을 받을 수 없어 다시 내려와야 했다. 그래서 다시 수술 날짜를 잡고 오늘 아침 서울로 가게 되었다.

처형과 동서의 부부사이는 각별했다. 처형이 병에 걸리자 동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인터넷을 뒤져 좋다는 것은 다 사서 해주었으며, 홍당무, 양배추, 등등의 채소를 믹서로 갈아 밥맛이 없는 처형이 먹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남자가 할 수 있는 음식은 그렇게 많지 않아서 결국 울산 딸집으로 오게 되었다. 동서의 처형을 사랑하는 것을 보고 아내는  부러워하기까지 하였다.

이런 동서와는 달리 오빠는 참 생각이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처형부부와 우리 부부가 대화를 나누다 처형이 말했다.

"오빠가 집에 온 적이 있어. 어디서 내가 아프다는 소문을 듣고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물어보았지. 어떻게 오게 되었냐고. 그랬더니 그냥 놀러왔다고 하더라. 동생이 폐암에 걸렸다고 듣고 온 것 같았는데, 그러면 몸에 좋다는 것 하나쯤은 들고 와야지. 최소한 좀 어떠냐는 말이라도 해야지. 빈손으로 와서는 폐암 걸리면 못 산다고 하더라. 누구누구는 폐암 수술 받다가 죽었다더라. 누구누구는 폐암 수술 후에 죽었다더라. 이렇게 폐암으로 죽은 사람 한 5명 정도를 이야기하더니 그냥 가더라. 너무 기가 막히더라. 그 말을 듣고 맥이 빠져 그만 독감에 걸려버렸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정말 오빠 너무하네. 동생이 폐암이 걸려 죽니 사니 하는데, 빈손으로 와서 괜찮을 거라는 위로의 말은 못 할망정 폐암 걸려 죽은 사람 이야기만 잔뜩 하고, 그러면 폐암 걸렸으니 니도 죽으라는 말과 뭐가 다르노."
라며 분개했다.
"몰라도 정말 너무 모른다. 그런 건 모르면 가르쳐 주어야지."
오빠와 나이가 동갑인 동서가 말했다.
"말한다고 듣겠어요? 나이가 70이 넘었는데."
라고 내가 말하자 아내는

"이러면 되겠다. 문제를 내는 거야. 오빠에게 사지선다형 문제를 내고 맞추게 하는 것이 어때요? 오빠 문제 하나낼게요. 오빠가 아파서 병원에 있다고 쳐요. 그때 다른 사람이 병문안 올 때 어떻게 해서 오면 좋을까요? 1번 빈손으로, 2번 음료수를 사들고, 3번 돈 10만 원 봉투에 넣어서, 4번 음료수와 봉투를 함께 들고. 이렇게 문제 내고 선택을 하게 하면 어떨까요? 하하. 2번 문제는 오빠가 죽을병에 걸려 있는데 병문안 와서는 어떤 말을 하여야 할까요? 1번 빨리 낫기를 바란다. 2번 빨리 죽기를 바란다."

농담으로 아내가 한 말에 맥이 많이 빠져있던 처형도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이가 70이 넘은 오빠. 욕심이 많아 10억 가까운 부모 재산은 다 자기 앞으로 하고도 다른 형제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음료수 하나 사들고 올 줄 모르는 오빠.
진짜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도 오빠지만 처남댁은 전화 한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처형은 오빠가 갔다 온 뒤로 수술 걱정이 되어 감기가 심하게 걸렸고, 몸이 안 좋아져 서울까지 수술을 받으러 갔다가 받지 못 하고 되돌아와서는, 오늘 다시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게 된 것이다.
우리 부부가 결혼했을 때만 하더라도 40대 초반이었던 처형. 벌써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처형은

"살아보니 시간이 너무 빠르더라."

라는 말을 하였다. 처형을 처음 만났을 때 내 나이는 27살이었다. 처형이나 나나 한창 나이였는데,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처형 말대로 정말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처남은 얼마나 오래 살려고 그렇게 욕심을 부리나.'하는 생각에 기분이 울적했다.
하지만 한 톤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처형 수술 잘 받고 와서 봄에 우리 함께 놀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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